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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고전 1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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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고전 15:12~22)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칼빈은 말하기를 "그의 부활의 영광은 그의 죽음 자체를 화려한 승리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성도들의 부활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했습니다(고전 15:20). 부활은 단순한 생명의 회복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사로가 살아난 것이나 과부의 아들이 살아난 것 등등은 부활이 아니라 단순히 죽었다가 살아난 것입니다. 죽은 자가 단순히 살아난 것과 부활의 의미는 다릅니다. 부활은 천성체(天性體)로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몸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담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첫 열매라고 합니다. 왜 첫 열매입니까? 예수는 성도들 앞서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체는 썩지 않는 몸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또한 영광스럽고 능력 있는 몸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눅 24:31-43; 요 20:13, 19; 21:7). 

그리스도의 부활은 참 육체를 가진 몸으로 영적인 것입니다(눅 24:39).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소망하는 것이 이 땅에 있는 것뿐이라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 신앙의 핵심이 부활신앙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Ⅰ. 부활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1) 악인의 부활입니다. 
성경은 악한 자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구속(救贖)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공의를 위한 것으로서, 영원한 사망의 극형을 위한 부활이라고 하였습니다. 
『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단 12:2)라고 했습니다. 

2) 의인의 부활입니다. 
의인들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결과로 조성됩니다. 대요리문답 87문답의 하반부에서 『 …의인의 몸은 그리스도의 영(성령)으로 그리고 저희들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에 의해 능력 있고 신령하고 썩지 않는 몸으로 살아날 것이며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과 같이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의인들이 장래에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부활할 것을 믿고 이것을 자신의 확실한 소망으로 삼는 것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 3:21)라고 했습니다. 

Ⅱ. 부활체의 특성은 예측 가능합니다. 

1) 부활체는 현재의 신체와 동일한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생존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계신 것을 감안할 때 우리의 부활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20절에 『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고 했습니다. 
따라서 성도의 부활체도 현재와 같은 신체를 가지게 될 것이며 개별적인 신체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서로가 알아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또한 그 모습은 시공(時空)을 초월한 불사(不死)의 몸, 영화로운 몸, 영원한 몸일 것입니다. 

2) 부활체는 세상에서처럼 육을 중심한 육체(natural body, 肉體)가 아니라 영혼을 중심한 영체(spiritual body, 靈體)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부활체가 본래의 신체적 모습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신체보다 월등한 모습으로 크게 변화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이 영체에는 영광의 부활체와 저주의 부활체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영광의 부활체 
『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고전 15:42-44)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부활체는 썩지 않으며 고통을 받지 않으며 병들지 않으며 죽지 않으며 강하고 영광스럽고 최고로 아름다운 신령한 몸, 곧 영화로운 영체(靈體)가 될 것입니다. 

(2) 저주의 부활체 
성경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부활체에 대하여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저들의 부활체가 『 깨어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단 12:2)것이라고 했으며, 『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8:12)고 하였고, 불과 유황 못 속에서 『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 20:10)고 하였으며, 저들은 지옥에서 『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을 것 』(막 9:49)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의 부활체는 불에 타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는 영생 불사체로, 고통과 수욕을 영원 무궁히 당하며, 그 고통으로 인해 매우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 확실합니다.

Ⅲ. 부활은 사망 권세를 정복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24절에 『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3장 15절에 『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고 했습니다. 

1) 성부 하나님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능력이 함께 역사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에 비해 열등한 것이 아니라 동일한 신성에서 나온 동일한 능력입니다. 
사도행전 2장 32절에 『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30절에 『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4절에 『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20절에 『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 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6장 4절에 『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절에 『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이라고 했습니다. 

2) 부활은 영생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라고 했습니다. 

3)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18절에 『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33절에 『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라고 했습니다. 

4) 부활은 신앙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9절에 『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고 했습니다. 

Ⅳ. 부활은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3-4절에 『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고 했습니다. 
본문의 말씀과 같이 우리의 바라는 바는 이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새 삶을 시작하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는 자들의 산 소망이 된 것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예수는 친히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부활에 무게를 두는 것은 첫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들의 부활을 확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장 12절에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라고 했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들의 장차 누리게 될 영생에 대한 기쁨과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9-32절에 『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우리의 부활을 확증 받는 것은 우리의 행복의 요체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사라지면 경건의 모든 구조는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신앙이 식어지면 교회 운동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언급될 때 우리는 언제나 사흘 전체를 통시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의 죽음과 장사가 우리를 복된 승리와 새로운 삶으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여!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 땅에서의 삶과 부활을 거짓 없이 등식화 시켜야 합니다. 부활신앙이 우리의 사고의 자유가 될 수 없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은 그리스도인들의 강력한 지배 이데올로기입니다. 부활신앙은 그 누구에게도 양보나 타협이 될 수 없는 우리 신앙의 아이콘이자 복음의 압권입니다. 
우리의 죽음이 부활의 확증 없이 고통에서 끝이 나고 원망에서 중단된다면 우리 인생의 한 평생의 의미와 가치는 어디서 찾겠습니까? 부활이 있기 때문에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세종대왕이 있었다는 증거나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증거나 숭례문이 불탔다는 증거보다 더 확실합니다. "죽은 자가 어떻게 살 수 있느냐?"라는 것은 믿음이 아니요, 철학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가시권에서 이루어진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로의 탈출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면 우리의 죄가 다시 지배력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이별은 죽음을 맛보게 하고, 모든 만남은 부활을 맛보게 합니다. 부활신앙은 사랑의 한계도 없고, 인내의 한계도 없고, 겸손의 한계도 없고, 충성의 한계도 없고. 봉사의 한계도 없습니다.

이 땅에서 온갖 불행과 부조리와 편파적 이해관계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를 사람에 의해서 평가받고 인간이 만든 법정에서 상대적 우위로 말미암아 승패가 갈라진다면 정글의 법칙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서 평가받는 한 날이 예비 되어 있으니 우리의 소망이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여인의 숱한 아픔과 의로운 장정들의 고통을 어디서 보상 받겠습니까? 

부활이 있기 때문에 피곤한 사람들에게도 야공의 반짝이는 별들이 아름답고, 부활이 있기 때문에 섬사람들의 소금기 있는 팔뚝이 자랑스럽고, 부활이 있기 때문에 흐르기도 전에 말라 버리는 농부의 구리빛 얼굴이 아름답습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고, 부활이 있기 때문에 나를 내어주고, 부활이 있기 때문에 나를 미워하다가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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