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네 형제에게 네 손을 펴라 (신 15:7~11)

  • 잡초 잡초
  • 777
  • 0

첨부 1


네 형제에게 네 손을 펴라 (신 15:7-11)

유대인들이 구약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는다는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천국 문이 열리자 수많은 사람들이 천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 명씩 들어가서 재판을 받았다. 먼저 랍비가 심판대에 섰다. “나는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말했다. “그러나 그 동기를 알아봐야겠다.” 다음에 성인이 심판대에 섰다. “나는 평생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천사가 말했다. “그러나 그 동기를 알아봐야겠다.” 여관주인이 그 다음에 섰다. “저는 집 없는 사람들에게 항상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항상 밥상을 차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말했다. “천국 문을 열어라. 여관주인에게는 더 조사할 것이 없다.”

천국에 들어가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친 것과 금식하며 기도한 것보다도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준 것이 더 우선했다는 것이다. 천국은 믿음으로 들어간다고 믿고 있는데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가?

그러나 예수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다. 마태복음 25:31이하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보면 마지막 날 심판대에서 배고프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돌본 사람들을 의인이라 부르고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라고 했고 반대로 그런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외면한 사람들을 악인이라고 부르고 영벌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들이 그런 적이 없다고 항의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태복음 25:45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곧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이란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야고보서 2:22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세상을 위로하는 교회”이다. 교회는 세상의 위로자가 되어야 한다. 첫 번째 실천사항은 “날마다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는 믿음”이다. 내가 먼저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는 믿음이 되어야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 

두 번째 실천사항은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는 영혼의 위로”이다. 죄에 빠져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가장 큰 복과 위로는 죄를 용서받고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다.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헛되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사람들에게 이 구원의 복음을 전해서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게 해야 한다. 

세 번째 실천사항은 “사랑으로 나누고 섬기는 사랑의 위로”이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는 것은 말로만 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몸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가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면서 그들을 섬겨야 한다. 그런 구체적인 실천이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인정해 주신다. 

그런데 가난하고 헐벗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많이 하고 있다. 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한다. 그러면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가 무엇인가? 똑같이 선행을 해도 차이가 있다. 불교는 그 선행으로 자신이 무엇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선행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기만족을 위해서 또는 부정한 행위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또는 보상심리로 선행을 하기도 한다. 선행을 하는 사람들마다 그 동기와 목적이 각각 다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그 동기가 다르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 돕고 섬기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갚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 그 은혜를 갚으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22장에서 예수님은 율법의 두 큰 계명을 첫째는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요 둘째는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하셨다. 

사도행전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34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은혜를 받으니까 나누며 살았다.

고린도후서 1:6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다른 사람의 손길을 통해 사랑과 위로를 받았다면 이제 우리도 그 하나님의 사랑을 갚고 내가 받은 사랑을 갚기 위해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살아야 한다.

본문 신명기 15장의 내용을 보자. 신명기는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사십 년을 지낸 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말씀이다. 이 신명기는 그래서 그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를 자세하게 가르쳐 주는 말씀이다.

오늘 읽은 말씀은 안식년에 대한 규례 중에 들어 있다. 1-6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되면 매 칠년마다 안식년을 지켜서 농사를 짓지 말고 땅을 쉬게 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 안식년에는 빚을 진 사람에게 빚을 독촉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했다. 

오늘 본문 7절 이하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가난한 사람이 와서 먹을 양식을 꾸어달라고 하면 거절하지 말고 넉넉히 주라고 했다. 전에 빌려준 것도 다 못 받았는데, 전에 꾸어준 것도 갚지 못하고 있는데 또 꾸어주면 언제 다 받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넉넉히 주라고 했다.

이것은 내 것을 꾸어 주느냐 안 꾸어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당하는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우리는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는 일 즉 나누고 섬기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볼 수 있다.

이웃과 함께 나누고 섬기는 것은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의무이다 

8절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10절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8절에서는 ‘꾸어주라’고 했고 10절에서는 ‘구제하라’고 했다. ‘구제’의 ‘나탄’은 ‘주다’는 뜻으로 “반드시 구제하라”는 이 단어가 두 번 반복되어 있다. 즉 “주고 또 주라”는 뜻이다. 단순히 꾸어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의 필요한 것을 계속해서 그리고 넉넉히 공급해 주라는 것이다. 11절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이것은 권고사항이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렇기 때문에 9절에서 “네 궁핍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고 했고 10절에는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했다. 궁핍한 형제를 구제하면 복을 받지만 주지 않는 것은 죄라고 했다.

왜 우리가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을 반드시 해야 하는가? 그들이 내 형제이기 때문이다. 7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11절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네 경내’란 내가 사는 동네, 내 이웃이란 뜻이다. 즉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그를 반드시 도울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우라

7절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9절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 ··· 네 궁핍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강퍅한 마음’은 굳은 마음이다. ‘악념’은 ‘망령된 생각, 사탄적인 생각’이다. ‘악한 눈’은 못마땅해 하고 멸시하고 싫어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나눔과 섬김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한 사람이 먹을 양식을 구하러 왔을 때에 악한 생각을 품거나 못마땅해 하는 눈으로 대하고 양식을 주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범죄행위로 여기신다는 것이다.

나눔과 섬김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 물질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마음이 담기지 않은 도움은 받는 사람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에 큰 상처를 주게 된다. 성 샌프란시스가 길을 가는데 어떤 거지가 도와달라고 했다. 마침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그는 얼른 다가가서 그 거지의 손을 잡고 “형제여, 가진 것이 없어서 도와줄 수가 없군요. 미안하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거지는 “저는 오늘 가장 큰 선물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형제라고 불러준 사람도 그리고 제 손을 잡아 준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라고 감격해 했다고 한다. 진정으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울 때 진정한 위로가 된다. 

이왕 도울 바에는 아까워하지 말고 넉넉히 주라

8절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10절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똑같이 도와주더라도 아까워하면서 도와주는 것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와주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이왕에 도와줄 바에는 아까워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힘껏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신다. 10절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시고 내게도 유익이 없다. 고린도전서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무엇을 하든지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쁘고 즐겁게 할 때에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 고린도후서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시편 112: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3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이왕 나누고 섬길 바에야 아까워하지 말고 기쁨으로 도우라.

나누고 섬기는 일은 쉬지 않고 계속해야 한다 

11절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우리가 열심히 이웃과 함께 나누고 섬기더라도 어차피 이 땅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 일한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원리이지만 악하고 불의하고 욕심 많은 인간사회에서는 자신의 잘못이나 또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 때문에 먹고 살기도 힘든 가난한 사람들이 항상 그치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우리가 균등한 삶을 위해 아무리 애써도 가난의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누고 섬기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반드시 손을 펴라고 명령하셨다. 11절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그리고 여러 가지 사회적인 장치를 마련해 놓으셨다. 예를 들면 추수할 때에 밭모퉁이의 곡식은 베지 말고, 흘린 것도 다시 줍지 말고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해 남겨두라고 했다. 레위기 19:9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두라.” 

또한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 외에 삼년마다 제 2의 십일조를 드려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레위인과 함께 나누라고 했다. 신명기 14:28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29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이처럼 가난한 이웃을 돕는 나눔과 섬김은 쉬지 말고 계속해야 한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먹고 살기 힘든데 어떻게 남을 도울까?” 고린도후서 8: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예루살렘에 기근이 닥쳤을 때에 다른 교회들이 구제헌금을 했던 경우이다. 그런데 어떻게 극한 가난이 풍성한 구제헌금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이 극한 가난을 경험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통 중에 돕는 손길을 통해 위로와 사랑을 경험했기이다. 고난의 때에 작은 손길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경험한 사람들은 비록 적은 것이라도 할 수 있는 대로 다른 환난당한 사람들을 돕는데 최선을 다한다.

또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남을 돕고 싶기는 하지만 지금은 여유가 없으니 나중에 넉넉해지면 하지.” 그러나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도 하지 못한다. 지금 못하면 나중에는 더 못한다. 소득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더 힘들어진다.

또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땀 흘려 열심히 일해서 번 것인데 다른 사람에게 주기가 썩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로 일할 능력을 주셔서 벌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나로 일할 수 있게 해주시고 일한 대로 거둘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따라 나누고 섬겨야 계속 거두게 해주신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눔과 섬김을 실천할 수 있을까?
첫째, 평생 나누고 섬기며 살기로 결심하라. 가진 것이 많다고 나누고 섬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진 것이 적다고 나누고 섬기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할 마음이 있으면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살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둘째, 청지기 신앙을 가지라.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청지기라고 가르쳐 준다. 즉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맡기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하고 바르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이든지 또 얼마나 가졌든지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것을 주셨는가를 생각하고 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하고 바르게 사용하는 신앙을 가지라.

셋째, 물질을 드리라. 나눔과 섬김은 구체적으로 내가 가진 것을 내놓는 것이다. 어떤 여전도회에서는 연말에 결산을 한 후에 적은 액수만 차기년도로 이월하고 구제를 위해 사용하라고 가지고 왔다. 어떤 청년은 인도네시아 단기선교를 가려고 돈을 모았다가 단기선교가 취소되자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그 돈을 가져왔다. 지금도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급식비를 못 내는 아이들이 주위에 많이 있다. 또 등록금이 부족해서 고생하는 학생들도 있다. 구제헌금을 드리고 장학헌금을 드리라.

우리 교회는 사랑회 봉사를 이십 년이 넘게 해오고 있다. 65세 이상의 무의탁 노인들이 매 주일 오후 5시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 그동안 너무 많이 와서 감당하기 힘들어서 2,000원씩 드리던 것을 1,000원으로 줄였더니 오시는 분들이 많이 줄었다. 그래서 다시 2,000원씩 드리려고 한다. 일부에서는 돈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냐는 말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모인 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전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고도 매주일 수백 명을 모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다른 좋은 방법이 있으면 알려 달라. 그리고 그분들이 와서 예배도 드리고 말씀도 듣고 그리고 교통비도 받아서 힘든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은가? 2,000원이면 매주 한 분의 노인이 와서 예배하고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후원할 수 있다. 여러분도 이 일에 기쁨으로 헌금하고 동참하라.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갑자기 하려면 하기가 힘들다. 평소에 조금씩 미리 떼어놓고 준비해 두어야 한다. 그러다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고 도와줄 일이 생길 때에 그것으로 돕는 것이다. 십일조를 떼듯이 나눔과 섬김을 위해 떼어놓으라.

넷째, 시간과 몸을 드리라. 물질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귀한 것은 시간을 내서 몸으로 섬기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돈으로 하는 것은 가장 쉬운 것이다. 주일 오후에 사랑회 예배에 봉사하라. 이미용 봉사에 참여하라. 이동목욕, 호스피스에 동참하라. 반찬 만들기와 청소해 주기에 동참하라. 주위에 어렵고 힘들게 사는 이웃들을 말없이 찾아가서 도와주고 섬기는 삶을 살라. 시간과 몸으로 봉사에 동참하라. 
우리 교회가 매월 한 번씩 하는 노인들에 대한 이미용봉사에 대해 교회 주위의 이미용실을 운영하는 분들이 불평을 한다고 한다. 교회가 부정한 방법으로 영업을 방해한다고 하면서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전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고 전도하는 분들이 염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자원해서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그들의 부모님들 같은 분들을 섬기는 일인데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비난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미용 봉사를 하는 분들 중에 두 분은 미용실을 경영하고 있지만 한 달에 한 번 문을 닫고 나와서 봉사한다. 다른 분들도 한 달에 한 번 직장에 가기 않고 가게에 나가지 않고 온종일 봉사한다. 하루 벌 수 있는 돈을 손해 보면서 봉사하는 것이다. 또 이미용에 필요한 재료들도 스스로 구입해서 쓰고 점심저녁도 직접 사먹으면서 봉사하고 있다. 오히려 그 이미용실을 경영하는 분들이 자원해서 매달 한 번씩 이 일에 동참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그렇게 좋은 일에 참여하는 이미용실은 우리 교인들이 많이 가지 않겠는가? 전도와 섬김을 방해하는 세상적이고 인간적 논리에 끌려가지 말고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설득하라. 

생각으로만 그치지 말고, 말로만 하지 말고 직접 시간과 몸을 드려 봉사하라. 앞으로 시간과 몸을 드려서 봉사하는 일들을 많이 하려고 하는데 직접 참여하라. 내 몸으로 일하고 땀 흘리며 돕고 섬길 때 진정한 기쁨과 사는 맛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도우며 나누고 섬기며 살기로 결심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원주밥상공동체를 시작한 허기복 목사님이 밥상공동체를 시작하던 때의 일을 이야기했다. 

97년 IMF사태로 경제위기에 처했을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실직하고 노숙자가 많아지고 밥을 못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파서 가진 것은 없지만, 교회가 크지 않지만 일단 결심하고 쌍다리굴 밑에 밥상공동체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어떤 자매를 통해서 도시락회사 이사 한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마침 그 회사가 이웃돕기를 하려고 한다고 하면서 “목사님이 아무 뜻 없이 단순하게 배고픈 사람들을 돕겠다고 하면 매일 백 명분의 음식을 무료로 제공해 주겠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생각지 않게 일이 커지게 되었고 그 후로 주위에 알려지면서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밥을 주고 연탄은행, 자립후원 등의 일을 한다. 

우리가 아낀다고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바르게 사용해야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잠언 11: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받기만 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으면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받을 수 없게 된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지만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처럼 계속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나도 계속 복을 받고 살 수 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경험했다면 이제 나가서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라. 내 손을 움켜쥐지 말고 내 형제에게, 내 이웃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