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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로 가라 (마 28:1~10)


(마28:1-10)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쌔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1.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째 되는 날, 즉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살펴보려고 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고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모양은 번개처럼 빛났고 옷은 눈같이 희었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은 이 광경을 보고 무서워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마28:5-7)

그래서 그 여자들은 두려우면서도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에 너무나 기뻐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뛰어가는데 그때 갑자기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평안하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가까이 가서 예수께 경배하자 “두려워 말고 내 형제들에게 가서 갈릴리로 가라고 하라. 거기서 나를 보게 되리라 하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일어났다는 것은 ‘안식일’이 암시하는 구약 율법 시대가 마감되고 예수 부활의 새 아침,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율법의 ‘안식일’이 하나님의 천지 창조 사역을 기념하는 날이라면 ‘안식 후 첫날’, 즉 ‘주님의 부활하신 날’, ‘주일’(主日)은 예수께서 이 세상을 다시금 새롭게 재 창조하셨음을 기념하는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부활을 믿는 사람은 부활의 생명으로 인생의 새 아침, 인생의 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무덤 위에 앉아” 예수 부활의 소식을 알리신 것은 사망의 권세를 굴려내고 무덤에 갇힌 인간을 생명으로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부활생명으로 거듭난 사도 바울이 이렇게 부활 생명의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며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전15:55-58)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세상 부귀영화를 다 누리며 인생을 승리했다고 해도 예수 부활의 생명이 없다면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없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는 믿음으로 부활 생명을 가진 사람만이 인생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무덤을 찾은 여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는 무덤에 계시지 아니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던 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 빈 무덤을 보라.” 는 천사의 말, 그대로였습니다. 

그 ‘빈 무덤’은 예수께서 ‘몸’으로 부활했다고 하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유대 지도자들도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의 증언으로 예수의 ‘빈 무덤’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예수의 부활을 믿으려 하지 않고 예수의 제자들이 그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경비병들을 돈으로 매수해서 예수 부활의 증거를 인멸하고 어떻게 해서든 예수 부활의 사실을 덮어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28:11-15을 보겠습니다.

(마28:11-15) 여자들이 갈제 파숫군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시던 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누구도, 그 어떤 세력도 진리를 거스릴 수 없습니다. 아침이 밝아오면 어둠이 사라지듯, 얼어붙은 땅에도 봄이 오면 새 생명이 움트듯, 빛이 비추이면 흑암이 사라지듯, 진리가 되시는 예수 부활의 사실을 거짓으로 덮으려던 어둠과 사망의 세력은 사라지고 온 인류에게 예수 부활의 소식이 증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부활의 소식은 골짜기의 마른 뼈들처럼 소망을 잃고 절망의 깊은 늪에 빠진 인생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있습니다.(겔 37:1-10) 

이 부활 생명의 기쁜 소식은 더 이상 빈 무덤에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이 천사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고 한 말을 제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달음질했습니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 여인들에게 나타나셔서 “평안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는 일찍이 예수께서 자신이 죽을 때 제자들이 근심하게 될 것을 염두에 두시고 “(요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고 하신 말씀대로 이제는 더 이상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기쁨으로 부활의 소식을 전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부활의 실체를 직접 보여주심으로 부활을 확인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여인들은 부활하신 예수의 몸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가장 확실한 예수 부활의 증인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께서 다시 한 번 명령하십니다.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라.” 

이 말씀은 십자가 죽음 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마26: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고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약속대로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에 가셔서 부활의 몸으로 그들을 만날 것이라는 뜻입니다. 


2. 이는 인류 구원을 위한 부활 생명의 빛을 갈릴리에서부터 비추고자 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복음, 생명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대로 세상에 오셔서, 성경대로 사시고, 성경대로 십자가에 고난 받으시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사신 예수께서 성경대로 온 인류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시기 위해 갈릴리로 가신다는 것입니다.(고전15:3-4)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이사야 9:1절 말씀 그대로입니다.

(사9: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께서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셔서 사셨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4:12-16입니다.

(마4:12-16)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부활하신 예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한 사역(使役)을 시작하신 ‘갈릴리’는 어떤 곳이겠습니까? 먼저, 지형적으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는 넓은 의미에서 갈릴리를 중심으로 ‘상(上) 갈릴리’와 ‘하(下) 갈릴리’를 말합니다. 

이 지역들에 살고 있는 백성을 ‘흑암에 앉은 백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B.C. 721년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이후 이 지역은 이방인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하면서 ‘이방인의 갈릴리’(사 9:1)가 되어, 이스라엘 역사, 종교의 변방으로 멸시받고, 영적으로 가장 비참한 상태에 놓여있으며, 정치적인 이점이 거의 없는 가장 어두운 지역이며, 경제적으로 가장 열악한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앗수르 제국 등에 의해 혹독한 압제와 재난을 당해 회복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그들 지역들은 ‘사망의 땅과 그늘’이 드리운, 곧 죽음과 절대 절망의 상태에 놓인 곳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 체포 영장을 발부해주었지만 그 하속들이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깊이 감동되어 체포해서 구인(拘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 전에 밤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 만난 적이 있는 니고데모가 ‘우리 율법에는 사람을 판결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의 말을 들어 보고 그가 행한 일을 알아보도록 되어 있지 않소?’ 라며 예수 체포의 부당성을 따졌습니다. 이에 발끈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당신도 갈릴리 사람이오? 성경을 찾아보시오. 갈릴리에서 예언자가 나온다는 말이 어디 있소?’ 하고 쏘아붙였습니다.(요7:45-52) 

이렇게 멸시 천대받았던 사람들이 갈릴리 백성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갈릴리, ‘흑암에 앉은 백성’에게 참 빛이 되시는 예수께서 진리와 은혜의 빛을 비추시었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생명의 빛으로 비추시고자 갈릴리로 먼저 가신 것입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는 말씀은 부활 생명의 참 빛이 다른 지역에서가 아닌 ‘이방의 갈릴리’에서 제일 먼저 눈부시고 아름답게 ‘발’(發)했다는 뜻입니다. 부활의 참 빛은 가장 어두운 곳을 가장 먼저 가장 찬란하게 비추었다는 것입니다.


3. 그러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고 말씀하신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먼저, 갈릴리는 그 누구보다 11 제자들에게 지난날을 회상하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부활 신앙으로 새롭게 변화되도록 하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입니다. 갈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향입니다.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셨지만 그 분의 성장과 일생은 대부분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갈릴리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체포되어 끌려가 심문받으시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뜰 앞에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어느 하녀가 그에게 다가와 ‘당신도 저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닌 사람이지요?’ 라며 묻자 소스라치게 놀라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소.’ 하며 모든 사람들 앞에서 강력하게 부인했습니다.

(마26:69-70)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이렇게 하녀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갈릴리 사람’으로 알고 불렀던 것입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의 인류 구원을 위한 복음 전도의 중심지였습니다. 인류 구원을 위한 첫 번째 메시지인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이 선포된 곳이 바로 갈릴리였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기적인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도 갈릴리 동네의 가나마을에서 일어난 표적이었습니다. 

예수께서 12제자 중 6명,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그리고 마태 등이 이곳 갈릴리 출신이었습니다. 가롯 유다를 제외한 11제자들을 이곳에서 택하셨고, 베드로가 살던 집도 이곳 갈릴리 해변의 가버나움 마을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 주변은 온통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로 가득한 곳입니다. 그의 공생애 활동이 바로 이곳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한 약 12개 마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던 들판도 바로 갈릴리 호수의 북쪽 연안이었으며, 유명한 산상보훈의 설교도 이곳 언덕 위에서였습니다. 믿음이 부족했던 베드로가 풍랑이는 물 위를 걷다가 빠진 것도 이 갈릴리 호수에서였습니다. 

이렇게 ‘갈릴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신앙의 고향, 신앙의 요람이기도 한 곳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있어 갈릴리는 자신들의 꿈과 비전이 시작된 곳이었습니다. 바로 그곳,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하던 중 꿈에 하나님의 음성, “(창28:13-15)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 이곳이 바로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라며 그곳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곳 이름을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이렇게 서원했습니다.

 “(창28:20-22)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그 후 20년 세월이 흘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야곱을 축복하셔서 거부가 되어 형 에서와의 원한도 깨끗이 해결하여 그야말로 평안히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20년 전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벧엘’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우선 눈에 좋아 보이는 세겜 땅으로 갔습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사랑하는 딸 디나가 세겜 족에게 강간을 당하고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할례라는 거룩한 의식을 악용해서 세겜 족들을 복수하고자 잔인하게 대량 학살하므로 후환이 두려운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재난을 당하게 됩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야곱의 잃어버린 믿음을 회상하게 하여 그를 새롭게 변화시키고자 ‘벧엘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창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났던 곳, 벧엘로 돌아가게 해서 그를 새롭게 변화시켜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을 이루시고자 하신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처음 불러 제자 삼으셨던 그곳, 갈릴리로 가게 하셔서 변화된 그들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을 이루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주님을 배반했던 제자들, 자신들도 체포될까봐 공포에 떨면서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숨어 지내야 했던 그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고 명령하신 것은 분명한 목적과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갈릴리에서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던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부활의 기쁨과 삶의 부활이 제자들에게 일어나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들을 통해 부활 생명의 빛을 온 인류에게 비추이기 위해 “이방의 갈릴리”로 가신 것입니다. 처음 부르심을 받고 너무나 감격해서 배와 그물, 그리고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던 그곳, 갈릴리에서(마4:18-22) 이제 “(마28:19-20)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으로 ‘모든 족속’에게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새롭게 하기 위해 ‘갈릴리 거기서 내가 너희를 보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릴리’는 믿음으로 오늘 부활의 예수님을 확인하고, 그 부활의 감격과 기쁨으로 부활의 복음을 전하여 어둠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인류의 생명을 구원해야하는 사명을 새롭게 하는 곳입니다. 갈릴리 바다 항구 중 가버나움 항과 막달라항 사이에 위치한 ‘타부가’(Tabgha) 항구는 베드로와 안드레가 고기 잡던 곳으로 아주 유명한 곳입니다. 

이 ‘타브가’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소명을 주셨습니다.(막 1:17) 그 후 베드로는 열두 제자 중 으뜸가던 제자로,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는 믿음의 고백으로 그 신앙고백 위에 사망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약속을 받았던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 고난 직전, “(마26:31-35)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며 절대 배신하지 않겠노라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시자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예수를 부인하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러한 베드로가 정작 그 밤으로 체포되어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으시던 새벽녘,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새벽닭이 울기 전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른다며 강하게 부인했던 사람이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새벽닭이 울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마26:75) 그 순간 베드로는 믿음을 지키지 못한 패배자임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깊은 좌절감에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베드로는 영적으로 완전히 실패하고 이제는 본업으로 돌아가서 고기나 잡아 생계를 유지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낙향하여 갈릴리 호숫가에 그물을 내렸습니다. 밤이 새도록 그물을 내렸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밤이었습니다. ‘사망과 그늘이 드리운 갈릴리’처럼 그의 인생은 영적인 깊은 밤을 맞이하게 되었고 물고기 한 마리도 건질 수 없는 그늘진 삶으로 전락했습니다. 

바로 그 때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배의 오른 편에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이러한 일은 3년 전,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눅5:4)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눅5:5-8)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즉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심히 많았던 그때의 기적을 회상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순간 요한은 당장에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다.’고 소리쳤습니다. 

베드로는 단숨에 육지로 올라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시자 이내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며 예수님을 배신했던 자신이었지만 예수님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고백합니다. 그 고백 위에 예수께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말씀으로 베드로에게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요21:1-15)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이것은 예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이처럼 갈릴리로 찾아오신 예수님은 실패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좌절하고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힘이 없어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삶에 지친 사람들, 넘어진 사람들을 일으키기 위해서 갈릴리로 급히 오셨습니다. 사명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그 사명을 새롭게 하기 위해 갈릴리에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 부활의 아침이 갈릴리에서 맞이하는 부활절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의 현실은 많은 고난이 있고, 슬픔이 있고, 실패가 있고, 좌절이 있는 갈릴리와 같은 곳이지만 주님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갈릴리로 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성도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하고 거룩한 사명 수여를 위해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실 때,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는 고백을 드릴 수 있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던 11제자들이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올라가 다시 한 번 예수님을 뵈옵고 예수님을 경배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모습은 이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멸시와 저주를 당하시던 나약한 모습이 아니라 높이 들림을 받으신 영광스런 모습,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영광스러운 부활체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영광스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자리를 옮겨 하늘로 올리워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그야말로 놀라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지극히 영광스런 모습이었습니다. 열 한 제자들이 마지막으로 본 예수님의 모습은 땅에 속한 분이 아닌 하늘에 속한 분이었습니다. 저들이 따르던 예수님은 베들레헴에 속한 분도 아니었고, 나사렛에 속한 분도 아니었고, 예루살렘에 속한 분도 아니었고, 이스라엘에 속한 분도 아니었습니다. 저들이 마지막에 본 예수님은 온 땅에 속하신 분이었고 하늘과 온 우주에 속하신 분이었습니다. 아니, 온 땅과 온 우주를 손에 쥐시고 온 땅과 우주를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셨습니다. 

제자들은 “(마28:18-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는 명령을 받고 단지 자신의 나라 이스라엘의 회복만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이방의 갈릴리’가 암시하듯 유대를 넘어 ‘모든 족속’, ‘땅 끝까지 이르러’ 전파되어야 할 복음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행1:8-11)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으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시고 ‘그들이 지켜보는 데서 하늘로 올리워 가시자 구름에 가려 다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열 한 제자들이 정신을 잃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때 천사들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십니다. 2010년 부활절을 맞아 예수 부활의 생명과 기쁨의 소식을 모든 족속, 땅 끝까지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여 부활하신 예수께서 약속하신대로 다시 오실 때, 영광가운데 맞이 할 수 있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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