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영적 어둠에서 벗어납시다 (마 16:1~12)

  • 잡초 잡초
  • 438
  • 0

첨부 1


영적 어둠에서 벗어납시다 (마 16:1~12)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깨닫느냐가 무척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면 본질을 놓치고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부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셨던지 제자들을 향해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시고 있는 듯합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여러분이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깨닫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하여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는 영적 수준에 이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본질을 놓친 인생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마 16: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들의 요구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들은 지금껏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놀라운 표적들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이적들이 하나님의 힘이 아닌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행한 것이라 비난한 바 있습니다. 또한 사두개인들은 천사의 존재, 부활, 기적, 이적과 같은 영적인 일 자체를 믿지 않았습니다. 이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표적도 보여 주실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한번 보여 달라며 공격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듯 악의에 찬 그들을 향해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 16:2~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세상적으로는 눈이 밝으면서 영적인 일에는 무지한 것에 대한 지적입니다. 그들은 영적 눈이 닫혀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성취되는 시간표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메시야로 예언되었던 그분이 오셔서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음에도 그들은 믿지 않고 도리어 거부하며 배척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모습 속에서 이미 각인된 사상과 체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게 됩니다. 그들은 복음이 아닌 인간 전통 중심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종교적 율법으로 각인된 것들이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복음을 깨달았다고 하는 우리도 문제와 사건이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옛 체질로 돌아가고는 합니다. 이처럼 체질은 변화되기 쉽지 않습니다. 복음 안에서 기도와 훈련을 통해 과거에 각인된 것들이 무너지고 새롭게 복음 체질, 영적 체질로 바뀌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렘넌트들은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렘넌트 문화센터와 성전 건축이 시급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에 헌신해야 할 분명한 이유를 붙잡고 생을 건 헌신의 응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마 16:4)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보여 주실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에 대해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마 12:40)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있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동안 무덤에 계시다가 다시 살아나실 것임을 이르는 말씀입니다. 요나의 표적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표적이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구원과 화해, 치유와 회복의 상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창세기 3장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 가운데 사단 종노릇하며 영원한 멸망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근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를 보이시기 위해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 대속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참 기쁨이 회복되었습니다. 또한 모든 죄가 완벽히 해결되었으며 참 평안이 오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사단의 권세가 깨지고 참 자유가 회복되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이러한 영적인 본질을 완전히 놓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통해 주어진 이 놀라운 영적 비밀을 성도 여러분은 사실적으로 누리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희생을 통해 주어진 영적 축복을 빠짐없이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반복이 주는 은혜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논의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마 16:5~7)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의 누룩은 그들의 사상과 교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아닌 율법과 형식의 인간적 전통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 말씀의 본뜻과는 다르게 엉뚱한 해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룩이 떡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시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말씀을 하셨는데 제자들은 육신적인 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마 16:8~11) 얼마나 더 말해야 영적인 것을 깨달을 수 있겠느냐는 질책입니다.

 제자들은 이처럼 영적으로 어두운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전에 있었던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예로 들어 다시 한 번 영적 의미를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먹는 것 즉 육신적인 것에 더 이상 매이지 말고 그것을 넘어 영적 진리를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제야 예수님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의 이런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치 복음을 다 깨달은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엡 3:19 말씀을 통해 “복음이신 그리스도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계속 깨달아 가라.”고 간구했습니다. 복음은 반복하여 알아갈수록 그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짧은 선율과 리듬을 반복하는 ‘오스티나토’라는 연주법이 있습니다. 스페인 무용곡인 ‘볼레로’는 이러한 연주기법으로 반복적인 리듬이 계속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깊은 음악의 맛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계속해서 반복하여 들으면 들을수록 더 깊은 맛을 느끼게 됩니다. 이 맛을 느끼는 만큼 여러분의 체질이 바뀌고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도 여러분이 모든 예배와 훈련 속에서 말씀을 듣고 그것을 붙잡고 기도함으로 그 말씀이 현장에서 성취되는 맛을 보는 참된 현장 전도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바다로 흐르는 큰 강에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점을 이르는 솔트라인(salt lin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 뉴욕에 있는 허드슨 강은 이 솔트라인이 수시로 변한다고 합니다. 뉴욕에 비가 오지 않아 가물면 민물의 힘이 약해져 바닷물이 강의 상류까지 침범합니다. 그러면 상류의 수원지가 소금기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반대로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의 양이 많아지면 솔트라인은 바다 가까이까지 밀려가서 형성되어 수원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이러한 영적 솔트라인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은혜를 지속적으로 받지 못하면 사단의 공격이 바닷물과 같이 여러분 속으로 밀려들어오게 됩니다. 영적으로 오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단은 항상 여러분의 옛 체질과 옛 습관을 건드리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은혜의 자리, 말씀의 자리, 훈련의 자리, 기도의 자리, 전도의 자리, oneness 교제의 자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를 통해 성령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여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는 현장 전도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