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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복종하신 주님께 영광돌립시다 (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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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하신 주님께 영광돌립시다 (빌 2:8)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께 대한 복종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왕좌에 내가 앉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앉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종을 하는 아브라함은 복이 되었습니다.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아브라함의 복종은 그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왕이시기 때문에 그 말씀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복과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태복음 8:10)”고 칭찬했던 백부장은 그렇게 말씀에 복종하는 믿음을 가짐으로써 그는 자기 종의 병을 낫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복종은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 말씀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런 사람을 복이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하나님은 우리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자기 비움의 사랑을 가장 놀랍게 표현하며 복종으로 표시합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기 까지 복종 하십니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의 삶은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2-6)

  낮추시고 죽기 까지 복종 하십니다
  
주님은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실 뿐만 아니라 낮아지셨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말구유에 오셨고 피난 가셨고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눅 9:58)는 삶을 사셨습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 앞에서 무릎 꿇으셨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매다셨습니다.
  
주님의 낮아 지심을본 받아 우리도 낮추어야 합니다
흥분과 감정을 낮추어야 합니다.

잠언 12장 16절에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고 하셨고, 잠16장 32절에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감정을 낮추는 습관을 들이면 살인사건도 없어질 것이고 이혼율도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혈기가 날 때 분노가 치밀 때 낮추어야 합이다.
  
자기의 지위를 낮추어 생각하여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7장 29~31절에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있어도 없는 자같이 하라”, 또한 “높아도 낮은 자같이 하라” 하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소망을 가진 자들인데 잠깐 있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이 세상에서 좀 높으면 어떻고 낮으면 어떻습니까? 재물이 좀 많으면 어떻고 좀 가난하면 어떻습니까? 있어도 없는 것같이, 높아도 낮은 자같이 낮추어 처신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욕심을 낮추어야 합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명예욕도, 권세욕도, 물욕도, 너무나 큽니다. 그래서 절제를 못합니다.
병원 개업하고 집사의 직분인 사람이 바쁘니까 교회를 안 나갔습니다. 전도하고 권면할 때에 “나 박사 학위 받고 나갈게”라고 하더니 학위를 받은 다음에 또 교회 나가자고 하니까 이 번에는 “병원 빌딩 하나 사고 나갈게” 하더랍니다. 얼마 후에 만나니까 얼굴이 핼쑥해져서 “왜 얼굴이 안 좋냐?”라고 물어보니 “소화가 좀 안 돼서 그래. 괜찮아” 그러더니 얼마 후 “간암 말기가 되었다”라고 하더니 얼마 안 가서 사망했습니다. 장례식 때 보니까 관 위에 의사면허증, 박사학위 등과 무슨 표창장들이 즐비하게 올려 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비판을 낮추어야 합니다
남에게 손가락 하나 가지고 비판하고 흉을 보면 손가락 세 개는 나를 가리킵니다.
낮춤이 감동을 줍니다

전에 존슨 대통령이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갈 때에 전용 비행기를 마지막으로 타고 갈 수도 있고 또한 기차를 타고 간다면 비서를 시켜서 표를 사올 수도 있을 텐데 자기 자신이 기나긴 줄을 서서 신문을 보며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자신을 낮추신 주님은 십자가 고통을 당하시면서 속건제 숫양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으신 다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말마를 외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 
이 말은 본래 상업 거래 용어였습니다. 지불 완료 지불 끝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왜 하필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마지막 말씀으로 이런 상업 용어를 쓰고 계실까요? 무슨 거래를 하신 것일까요?

우리가 지불해야 할 모든 죗값을 십자가에서 지불하고 계셨고, 마지막 순간 온 몸으로 우리의 죗값을 다 지불하신 다음에는“지불 완료!”라고 외치신 완성의 생애였습니다.
자기의 욕망도 내려놓고, 자기의 바람도 내려놓고 예수님처럼 걸어갈 수 있었을 때 고통의 시간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승리하며 걸어갈 수 있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걸어간 길을 걸어가는 마음의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비움의 자세로 나아갔기 때문에 죽기까지 복종 하셨습니다. 그 사랑에 감동한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했기에 내려놓음, 자기 비움의 삶을 넉넉히 살 수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뜻에 복종하십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자기를 내려놓아 부끄러운 죄인의 자리에 스스로 내려앉으심은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주님을 하늘 보좌를 버리게 했고, 하늘의 모든 것을 내려놓게 했습니다.
한 영혼을 사랑함이 주님으로 하여금 하늘 왕관을 벗어놓게 하였습니다.
사랑이 주님으로 이 땅으로 달려오게 하였으며, 사랑이 주님으로 하여금 죄인들을 위한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게 하였습니다.

아들을 내놓으신 하나님의 마음, 자신을 던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 수 있을 때 우리는 십자가를 이해할 수 있고 십자가에 나타난 놀라운 사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십자가에 서린 것은 오직 한 가지 세상에 생명을 주기 원하신 하나님의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어느 권사님 남편이 3남매를 남겨 두고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 25세에 혼자되었다 합니다. 세 아이를 데리고 젊은 여인이 혼자서 산다는 것이 1960년대, 1970년대에 얼마나 어려웠든지 자식들하고 살아갈 방도가 없어서 한강에 빠져 죽으려고 소풍 나가는 것처럼 나갔다합니다. 아이들에게 도시락 싸가지고 가서 먹이고 세 아이를 품에 안고 그대로 한강에 뛰어들리라고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식사를 먹이는데 어머니의 눈에서 피눈물이 쏟아집니다. 큰 딸 아이가 눈치를 채고 도망을 갑니다. “엄마, 나는 죽기 싫어.” 둘만 안고 죽을 수 있었지만 “내가 죽고 나면 저것이 어떻게 살아…….”하는 생각에 쫓아가다가 못 잡아 포기하기를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살아야겠구나 생각하고 안 해 본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고생 고생하여 3남매를 키워 다 출가시켰고 나름대로 다들 성공을 했다합니다. 

그런데 막내였던 아들은 인천공항 물류센터에서 일했는데 인정을 받아서 젊은 나이에 부장 자리에 오를 만큼 능력 있는 아들이었다 합니다. 30대 초반의 성공한 아들이 책임감이 아주 강했는데 직원이 잘못하여 떨어뜨린 고가의 짐 꾸러미를 받으려고 뛰어갔다가 그 짐 꾸러미에 깔려 머리를 심하게 다치고 말았다합니다.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의식도 없고 뇌를 다쳐서 가망이 없다면서 가족들이 오면 산소 호흡기를 떼려고 합니다. 오히려 사람이 죽으면 문제 해결이 간단하다고 생각한 회사 직원들은 서둘러 기기를 떼내려고 합니다. 거의 송장이 되어 있는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그 어머니는 24시간 아들 방을 지켰다고 합니다. 회사 직원들은 근처에도 못 오게 하면서 아무런 의식도 없이 누워 있는 아들을 붙잡고서는 “너 지금껏 잘못 살아온 것, 하나님께 회개해라. 회개해라.”

아들 귀에 소리치면서 의식도 없이 송장처럼 누워 있는 아들을 위해 몸부림치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과 기도가 아들을 살려냈다 합니다. 아무도 가망이 없다고 했는데 중환자실에서 2년, 일반 병실에서 1년……. 수차례 수술을 통해 뇌도 일부 잘라냈고, 재활치료도 받고 언어 재활치료도 받고 3년만에 퇴원하게 되었다 합니다. 비록 한 쪽은 마비가 되었지만 4년이 지나 지팡이 잡고 교회도 나와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집회를 참석합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요즘 아들 곁을 잠시도 떠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젊은 아내는 직장생활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데, 4년 동안 투병하면서 최근에는 말수가 많이 줄어들고 우울 증세까지 보여서 혹 딴 마음이라도 먹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지 않을까 싶은 생각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들 곁을 떠나지 못하고 지키는 어머니, 모두가 죽는다고 했어도 그렇게 믿지 않았던 그 어머니의 자식 사랑의 마음이, 기도가 그 아들을 살려냈습니다.

아들을 살려야겠다는 한 어머니의 집념 만큼이나 십자가 위에 나타난 하늘 아버지의 집념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간절합니다.  그 사랑이 우릴 살게 합니다. 저들을 살려야 하리……. 저들을 살리는 일이라면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실 수 있었던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의 복종이 우리를 살게 했습니다. 
그 사랑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아무리 노력해도 다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만남으로 우리에게는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는 용기와 담력이 생기게 됩니다.

이 생명의 은혜, 하늘 축복이 쏟아지는 절기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는가요?
눈물 몇 방울 흘리고 보내는 연례행사가 되어도 될까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일까요? 이런 은혜, 이런 감동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단지 잘 먹고 잘살게 하기 위함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것을 받은 사람이, 그것을 누린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여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오늘 해야 할 일은 그 놀라운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단 한번뿐인 생애가 이렇게 영광스럽게 사용될 수 있다면 얼마나 값지겠는가요?

최근 의학이 발견한 호르몬 중에‘다이돌핀’(Didorphin)이라는 것이 있다합니다. 엔도르핀이 암을 치료하고 통증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지만, 다이돌핀의 효과는 엔도르핀의 4,000배라는 사실이 발표되었다합니다. 그럼 이 다이돌핀은 언제 우리 몸에서 생성되는가요? 바로‘감동받을 때’라고 합니다.

좋은 노래를 들었거나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되었을 때,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 엄청난 사랑에 빠졌을 때……. 이때 우리 몸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합니다. 전혀 반응이 없던 호르몬 유전자가 활성화되어 안 나오던 엔도르핀, 도파민, 세로토닌이라는 아주 유익한 호르몬들을 생산하기 시작한다합니다. 특히 굉장한 감동이 왔을 때 드디어 다이돌핀이 생성된다고 합니다. 이    호르몬들이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강력한 긍정적 작용을 일으켜 암을 공격한다합니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하나님 사랑에 대한 감동……. 이것이 생명을 살립니다. 기적을 가져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박해 가운데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계속되는 박해 상황 가운데서 지치고 힘들어하고 있었을 때 그들에게 들려진 것은 다른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노래였습니다. 어떤 위로의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 사랑의 메시지가 새롭게 울려 퍼졌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주님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주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주님을 위해 내려놓을 수 있을 때 그때 참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 거룩한 절기에 이 세상을 향해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복종하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이 땅이 갈수록 복음에 적대적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현대 사회와 문화의 변화에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교회와 지도자들, 그리스도인들의 책임 역시 적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역할과 깨어 있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반기독교적 정서가 팽배하고, 복음을 거부하는 이 땅을 가슴에 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 십자가의 복음이 온전히 증거되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때에 다시 민족을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강력해지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을 비우시고 사람이 되시는 일에 복종하신 주님을 본 받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 까지 복종하신 주님 본 받고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에 복종하신 주님을 본 받고 학습 세례 유아 세례 입교에 참여 하며 종려 주일을 지키고 고난 주일을 지키며 영광 돌리며 사명 감당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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