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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인격의 실패자 롯 (창 1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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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격의 실패자 롯 (창 19:1~11)


인간은 항상 두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①성공할 가능성 ②실패할 가능성이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성공이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다. 주먹구구식으로 살아서는 성공할 수 없다.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성공의 비결을 알고, 그 성공의 길을 걸어야 한다. 성경은 이러한 삶을 지혜라고 말한다. 

전10:10=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성공하려면 “지혜” 즉 성공적인 삶의 비결을 알아야 한다. 그 비결을 알고 그 비결을 삶에 적용할 때, 저와 여러분 모두는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성공이라고 하는가? “자신이 목적했던 것을 이룬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남부럽지 않게 돈을 모으고, 지위도 높아지고, 배울 만큼 배우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것을 “성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참된 성공”이라고 하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내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① 그가 이루어 놓은 성공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
②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두 가지 방법으로, 실패의 길을 피해 갈 수 있는 것이다.
①성공의 길과 실패의 길을 미리 알고 가는 것.
②다른 사람이 실패한 것을 교훈으로 삼는 것.

⌜덮는다⌟는 이름의 뜻을 가진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삼촌인 아브라함과 함께 고향을 떠나 가나안으로 왔다. 하지만 자신의 재산이 너무나 많아 삼촌 아브라함과 함께 살 수 없어 소돔으로 분가하여 나갔다. 
외형적으로 보면 그는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영적이며, 신앙적인 면에서는 큰 실패로 끝난 사람이었다.

1.롯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

인생은 엄숙한 선택의 과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선택을 하면서 산다. 시장에서 물건을 선택하는 작은 일에서부터 일생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중대한 문제를 선택하는 일까지 인생은 사실 선택의 연속이다. 

인간은 자유의 주체이다. 자유가 없다면 기계에 불과하다. 자유가 있는 곳에는 선택이 있고, 선택이 있는 곳에는 자유가 있다. 자유의 구체적인 표현이 바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의 지혜와 경험과 판단력을 가지고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므로 선택은 참으로 엄숙한 것이다.

인생의 불행과 비극은 대부분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 오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적인 선택보다 이성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현재만을 생각하고 선택하지 말고, 먼 미래를 생각하며 선택해야 한다. 

롯은 선택을 잘못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우리가 함께 살기에는 재산이 너무 많아 힘들겠으니 서로 분가하자. 네가 먼저 거주할 지역을 택하라.”고 했을 때, 롯은 이 때다 하고 제 빨리 소돔 성을 선택하였다. 
그는 소돔의 영적 상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외부적인 조건만 보았다. 

창13:10-11=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롯이 소돔을 보니 지상의 모든 기쁨이 그곳에 있을 것 같았다. 그곳에 정착하면 더욱 번창할 것 같아 보였다. 지상낙원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곳은 영적으로 타락한 도시였다. 창13:13=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잠28:16=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꿀벌은 꿀이 없이 살 수 없다. 그러나 그 꿀이 날개에 묻으면 날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만다.

그와 같이 인간이 탐욕에 메이면 한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 롯은 자신의 일생의 향방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세상적인 이득을 가장 먼저 생각하였다. 

옛 속담에 “돈을 갖다 놓으면 나오지 않던 아기가 빨리 나온다.” “죽어가는 사람도 돈을 보면 눈을 번쩍 뜬다.”는 말이 있다. 그 만큼 사람들이 물질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영혼과 신앙의 유익을 고려하지 않는 선택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과 축복을 기대할 수 없다. 
그가 처음 아브라함을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온 것은 영적인 목적 때문이었다. 영을 중심해야 할 사람이 육을 중심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가 소돔을 선택한 것은 신앙을 잘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택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육신의 목적을 위해서였다. 그가 소돔에 가서 산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 목적이 잘못된 것이다. 

롯은 소돔에 살면서 그 이웃들에게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우리의 주변에 영적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영적으로 실패한 삶이다.


2.불의와 타협을 하였다.

어느 날 롯은 사람의 몸으로 소돔을 찾아온 두 천사를 자기 집으로 모시고, 극진히 대접을 했다. 하지만 소돔 사람들이 그 두 천사를 성폭행하려고 하자 그 천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의 두 딸을 내 놓겠으니 당신들 마음대로 하라.”고 하며 타협을 했다.
어떻게 보면 자기의 두 딸을 희생시켜서라도 두 천사를 보호하고자 하는 애틋한 박애정신을 가졌다고, 좋게 평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큰 실수를 한 것이다. 불의와 타협을 한 것이다. 우리는 신앙의 문제나, 진리 문제가 아닌 이상, 양보하거나 타협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신앙문제, 진리문제, 양심의 문제에서는 결코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다. 

롯은 불의를 막기 위하여, 불의한 세력과, 불의한 방법을 놓고 타협을 하자는 것이다. 그런 방법만이 집에 들어온 두 천사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롯의 이 제의는 비 신앙적이고 악한 것이며, 더 큰 불의였다. 악을 막고자 더 큰 악을 방법으로 쓰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로서 비겁한 태도이다.

하나의 옳은 일을 위하여 다른 불의한 수단을 사용하겠다고 하는 것은 불의와 타협하는 잘못된 태도이다. 그것은 딸을 구하는 방법도 아니요, 찾아온 천사들을 구하는 방법도 아니다. 

델리취는 이것을 가리켜 “죄로서 죄를 피하려는 또 다른 죄”라고 하였다.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할 수 있는 한 이해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자세로 모든 사람과 화목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신앙문제, 진리문제, 양심문제에서만은 결코 타협하거나,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 옳은 일은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한다.


결론.

우리는 결코 롯과 같은 실패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우리는 영적이며, 신앙적인 실패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의 선택이 신앙을 우선하고, 하나님을 우선하는 선택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불의와는 결코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살 때 여러분의 삶은 모두 성공적인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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