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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죽임당한 어린 양 (출 1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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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임당한 어린 양 (출 12:1~14)

     
부활절을 앞두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거룩한 삶을 힘쓰는 사순절 기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주후 4세기에 열린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부활절 날짜 정하는 방법을 결의하였습니다.  춘분이 지나고 보름달 다음에 오는 주일을 부활절로 정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오늘날까지 이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금년에는 3월21일이 춘분이었고 3월30일이 보름이므로  금년 부활절은 4월 4일이 됩니다.   

부활절을 기준으로 그 앞의 40일 기간을 사순절이라 부르는데, 주일은 제외하고 성금요일로 끝나는 금년의 사순절은 2월17일 수요일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유월절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살핌으로 유월절의 참 주인공이시고 유월절의 참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감사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 내려가 400여년을 지냈을 때 하나님은 정하신 뜻을 따라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택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받드는 대행자로 바로 앞에 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모세는 애굽의 바로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라고 당당하게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강퍅한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모른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하고 하나님의 명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바로와 애굽 백성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심으로 여호와가 어떤 하나님이신지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열 가지 재앙이 애굽 백성에게는 고통과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자유와 회복의 징조가 되었으며 자신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확실하게 아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누가 진정한 신인가? 애굽의 바로와 그 백성들이 섬기는 신들인가? 아니면 히브리 백성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자유케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신가?  모세를 통해 보여주신 이적과 재앙들이 하나씩 나타날 때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으로 상징되는 애굽의 세력과 그들이 섬기는 신들을 심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400년 종살이로 시달린 히브리 민족이 벗어야 할 세상의 것들을 하나씩 처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애굽을 가로질러 흐르는 거대한 나일강은 온 애굽을 먹여살리는 생명수였고 자랑이었으나 그 물을 피로 만들어 도리어 고통이 되게 하셨습니다. 물가의 개구리가 애굽인들에게 풍요의 여신으로 사랑받았습니다만 그 개구리들이 온 애굽 땅에 덮혀 침실과 밥상 위로 뛰어올라올 때  개구리는 더 이상 사랑스런 신이 아니라 저주스런 생물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그 개구리들이 죽어 썩는 냄새로 숨을 쉴 수 없게 하심으로 애굽의 신을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럽고 귀찮은 존재로 만들어버리신 이적입니다.    

애굽인들은 세상 나라 가운데 가장 강대한 국가임을 자랑하였습니다. 어떤 나라도 애굽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이와 파리와 독종과 메뚜기가 온 애굽 천지를 뒤덮을 때 그들은 그 미약한 생명체들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허약한 존재들임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태양을 가리워 3일 동안 온 애굽을 흑암으로 가두신 이적은 태양을 최고의 신으로 섬기던 애굽인들에게는 두렵고 치명적인 재앙이 되었습니다.    

누가 참 신인가? 라는 질문의 답은 이제 판명이 났습니다.애굽인들이 자랑하고 자부하던 제국의 힘과 신들의 위엄은 히브리 노예들을 보호하고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허약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애굽 백성들은 하나님이 보이시는 이적과 재앙들 앞에 더 이상 버틸 힘도 재주도 없었습니다. 오직 그 나라의 최고 권력자 바로 한 사람만 마지막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예정하신 장자 죽임이라는 마지막 재앙으로 애굽을 심판하셨고 강퍅한 바로는 드디어 항복하였습니다.    

장자는 첫 생명이니 곧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재앙이 임한 그날 저녁 히브리인 집집마다 어린 양의 죽음이 있었고 그 집 문에는 어린 양의 피가 칠해졌습니다. 삶과 죽음의 권세를 위임 받은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 땅의 모든 집을 찾아다니며 첫 생명들을 거두는 그 밤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 그리고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임을 당하는 심판의 밤이었습니다. 최고 권력자 바로는 물론 바로의 백성 중에 그 누구도 장자 죽임의 심판으로부터 피할 집은 없었습니다. 바로의 궁궐과 온 애굽 백성들의 집이 장자를 잃은 두려움과 슬픔의 비명으로 가득할 때 죽임 당한 어린 양의 피가 발라진 히브리인들의 집은 안전하게 보존되었습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12:13) 하신 말씀대로 삶과 죽음은 죽임 당한 어린 양의 피의 유무에 달렸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달렸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사람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넘어갔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첫달에 시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는 그 달을 그 해의 첫 달로 삼게 하셨습니다. 곧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과거 400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를 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처럼 몸에 배인 삶의 방식들을 벗어버리고 새 마음 새 생각으로 시작하는 첫 달에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 달 십일에 식구 수에 따라 한 어린 양을 지정하여 14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가 질 때 잡았으며 그 피를 집 문 사방에 발랐습니다.   고기는 날것으로 혹은 삶아 먹지 않고 꼭 불에 구워 먹어야 했으며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모두 먹으라 하였고 아침까지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하는데 혹 남은 것은 불에 태우라고 하셨습니다.   

애굽을 떠나던 날 밤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는 식탁은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음식을 즐기는 시간이 아니라 어린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금방이라도 떠날 준비를 하고 서둘러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어야 했습니다. 어린 양 고기는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먹었습니다. 무교병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아 발효되지 않은 딱딱한 밀가루 빵이었습니다.밀가루가 발효될 시간이 없이 급하게 빵을 만들어 먹고 떠나야만 했던 그 날의 긴박함을 보여주는 고난의 떡이며(신16:3), 쓴 나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겪은 쓰디 쓴 삶을 기억하게 하는 음식이었습니다.    

애굽 온 나라에 장자 죽음의 비극이 벌어지는 그 밤이 이스라엘에게는 종살이로부터 해방되는 자유의 날이었습니다. 바로는 아홉 가지 재앙을 겪을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줄 듯 하면서도 또 다시 마음을 바꾸어 붙들어 앉혔었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자신의 큰 아들을 잃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워 허겁지겁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 밤에 당장 백성들을 데리고 이 땅을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죽음을 면한 히브리인들은 그 밤에 죄악의 도성 애굽을 급히 떠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약속의 땅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가지 못하여 홍해를 만났고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울부짖었습니다. 그 바다는 인간 능력으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었고 죽음의 덫으로 다가왔지만 하나님은 그 장애물을 또 다시 새생명을 얻는 간증의 장소로 바꾸어주셨습니다.    

그들은 홍해에서 과거를 수장시키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애굽을 떠나온 그들은 과거의  삶을 홍해에 빠뜨리고 나와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여 홍해를 통과하며 과거의 삶을 장사지냈습니다. 더 이상 애굽의 노예가 아니므로 애굽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고 그리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뒤따르며 생명을 위협하던 바로의 마병군대는 이스라엘이 통과한 홍해에 고스란히 수장되었고 다시는 추격자가 없었습니다. 오직 앞서 인도하는 구름과 불기둥이 그들의 앞길을 인도하는 안내자였습니다. 그들은 앞만 바라보고 나아가면 되었습니다.   과거의 나는 바다에서 죽었고 새로운 내가 새 땅을 향해 전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세례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고전10:1, 2).   우리의 세례 또한 이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례는  나의 옛 사람은 죽었고 예수 안에서 나의 새 사람이 출생하였음을 선언함이며 죄 씻음의 표시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날까지 하늘의 신령한 양식과 반석의 생수를 마셨습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은 더 이상 애굽에서 먹었던 양식을 먹지 않았고 광야에서 주시는 신령한 양식으로 살아갔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바울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면서 세례를 받았고 광야에서 생수를 마심으로 신령한 음료를 마신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새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새로운 양식이요 신령한 양식입니다. 자신들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하늘의 양식입니다. 그들은 다만 하늘로부터 공급되는 양식을 감사함으로 거두어 먹으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건뜻하면 과거를 회상하며 애굽의 고깃가마와 향신료와 마늘과 부추를 그리워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보고 넘어가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또 다시 애굽을 그리워하며 옛날로 돌아가 죄의 종노릇하는 그들에 대하여 실망하셨습니다. 이런 연약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입니다. 세례받고 새 삶을 시작한 후에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옛날을 그리워하며 그때가 좋았다고 아쉬워하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바라봐야 할 곳은 떠나온 죄악의 도성, 불의한 세상 애굽이 아니라 저 멀리 뵈는 하나님의 도성,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이 경험한 유월절의 어린 양은 곧 세상의 죄를 대신하여 죽게 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였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던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에게 오심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로다’ (요1:29)하고 소개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유월절이 시작되는 니산월 14일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 밤에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 간절히 기도하셨으며 다음 날 새벽에 체포되셨고 15일 아침에 영문 밖으로 끌려가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셨습니다. 

유월절을 제정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입니까?’ 하거든 하나님께서 애굽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의 집은 넘어가시어 우리를 구원하심을 기념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알려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유월절 첫날 저녁에 음식을 드시던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성찬식을 가르치시고 내가 다시 오는 날까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분부하셨습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성찬예식은  이스라엘이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유월절의 완성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새생명을 얻은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주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지켜야 할 새로운 언약의 예식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식을 행할 때 우리는 이 예식이 무슨 뜻입니까?   묻고 그 뜻을 이해하고 믿는 마음으로 참여함이 마땅합니다.   

애굽 땅에서 첫번째 유월절 음식을 먹었던 사람들에게 어린 양의 피가 구원의 표식이었던 것처럼 세상의 끝날 심판의 날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구원의 표식이며 그 피를 믿고 고백하며 의지하는 자들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유월절 어린 양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형벌을 다 받고 숨을 거두신 순간 예루살렘 성전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마 27:51).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고 이제부터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은혜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라고 하셨습니다(히10:19, 20). 그리스도의 육체가 찢기어 죽임을 당함으로 우리가 그 육체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은혜를 얻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광야생활로 비유됩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도착하게 될 그 약속의 땅을 향해 여행하는 나그네들입니다. 이스라엘 앞에 놓인 홍해와 광야의 삶은 400여 년 동안 애굽에 살며 몸에 밴 삶의 방식을 떨치고 새로운 백성으로 준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새 삶을 훈련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준비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연단을 받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사랑하는 그 백성들에게 신령한 양식을 공급하십니다. 그 양식은 곧 생명의 떡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자신을 주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 그분으로 말이암아 우리는 생명을 보존하게 되었고 새생명을 얻어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바로를 향해  ‘내 백성을 보내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 속에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이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위한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된 민족이었습니다(출19:6).  애굽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적하는 세상 나라를 대표하는 대제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법이 시행되지 않고 인간의 권력과 탐욕이 지배하는 세상 나라가 애굽이었습니다. 그 세상의 정점에 있는 애굽의 왕 바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적하는 인간 권력의 대표였습니다. 불의한 세상 나라와 불의한 인간 권력이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고 고통을 안길 때 하나님은 약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세상과 우주만물의 주인이시며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해방의 복을 주셨습니다.

애굽의 장자 죽음은 생명의 주인이 누구신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동이십니다.    살리고 죽이는 권세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공의가 하나님의 뜻대로 시행되지 않는 세상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으로 심판을 받도록 예정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세력의 폭력과 억압과 수탈로 고통받는 약자들을 지켜보십니다. 세상의 악한 세력들이 영원토록 그 힘과 특혜를 누릴 것 같지만 불의한 세상 나라, 세상 제국들은 안개와 같이 사라져 갔습니다.  이것이 인간 역사를 통해 본 우리의 경험이며 결론입니다. 물론 또 다른 나라와 권력자가 등장하겠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허용하신 한도 내에서 자기의 악한 역할을 맡다가 심판의 자리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정결한 성도의 삶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불의한 강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약자로 사는 편이 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 앞에서 순종과 헌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유월절 어린 양은 사람의 손으로 선택되어 사람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위하여 스스로 제물이 되신 분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먼저 우리를 택하여 불러주셨고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의 형벌을 당하셨습니다.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라’ 하신 하나님의 구원 약속은 ‘내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고 너희를 구원하리라’는 약속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죽으심을 묵상하는 계절에 나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구원받은 거룩한 자녀들의 삶을 힘 있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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