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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디메오처럼 기도하자 (막 10: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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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메오처럼 기도하자 (막 10:46~52)
  

많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힘이 없고, 영적성장에 진보가 없는 이유는 바로 기도부족 때문입니다.

리차드 뉴톤(Richard Newton)은 “나의 여위고 열매 없는 생활의 근본 원인은 기도생활의 퇴보에 있다. 내가 무릎을 꿇을 때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 인정하는 얘기지요! 
오늘은 ① 기도란 무엇인가? ②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에 대하여 설교하면서 기도생활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을 나누고자 합니다.

1. 기도란 무엇입니까?

1)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만드실 때 유독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이유는 서로 영적인 대화(교제)를 나누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은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풍성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자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복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교제하는 복의 핵심은 기도입니다.
히4:16절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복은 그리스도인에게만 주어진 특권입니다. 
다른 사람은 누릴 수 없어요!

권력주변에서 ‘누가 실세냐?’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누가 실세입니까?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그 판단은 ‘누가 대통령과 자주 만나느냐’, ‘누가 대통령과 자주 대화하느냐’가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 삶에서 실세로 사는 여부는 하나님과 얼마나 자주 깊이 대화하느냐에 따릅니다.

2) 기도는 영적인 호흡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일생동안 8,000여곡의 찬송을 작사한 크로스비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호흡이며, 우리의 울부짖음이다.” 
아무도 호흡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가끔 중환자실에 가보면 산소마스크를 쓰고 힘겹게 호흡을 하면서 가까스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환자들을 보게 됩니다. 

그때 우리가 이렇게 코로 자연스럽게 숨을 쉰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 육신의 생명은 공기 호흡을 통해 유지됩니다. 
산소공급이 부족하면 육체의 세포들이 죽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기도라는 호흡을 통해서 유지되고 성장합니다. 
따라서 영적 호흡이 부족하면 영적인 세포들이 죽게 되어 신앙생활에 활력이 없어지고 무기력해지고 죽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죽지 않으려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어떤 방해가 있더라도 기도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3) 기도는 하늘의 보물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절) 
기도는 하늘의 보물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기도함으로 하늘 보고를 여는 자는 풍성한 은혜 속에 살게 되고, 게을러서 열쇠에 녹이 쓴 자는 영적으로 가난하게 되고 무력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새벽기도회 때 말씀드렸지요?
‘드와이트 무디’는 모세의 삶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영어로 표현했습니다.
something, nothing, everything입니다.
초반 40년은 바로의 왕자로 애굽 궁중에 머물렀던 세월입니다. 
그 시절 모세는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자신의 삶을 꽤 괜찮은 인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something'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중반 40년은 모세가 시내광야에서 지내면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세월입니다.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어쩌면 사막에 널 부러진 모래만도 못한 존재로 인식했기에 ‘nothing'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후반 40년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한 세월이었습니다.
그 시기에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갈 길을 모를 때 기도하면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길을 인도하지요.

먹을 것이 없어 기도하면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지요.
목말라 기도하면 바위가 깨뜨려져 물이 솟구치지요.
그래서 'everything'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기도는 하늘의 보물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저는 어제 설교를 준비하면서 놀라운 말씀을 접했습니다. 
스가랴서 8장 23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날에 말이 다른 이방나라 사람 열 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는다.’는 것은 ‘나를 살려달라.’, ‘나를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유다사람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스가랴 8:21절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란 말이지요.
무슨 말씀입니까? 
기도하는 사람 하나에게 기도하지 않는 열 사람이 옷자락을 잡고 살려달라고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도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2.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맹인 바디메오를 고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맹인을 고치셨지만 성경에 그의 이름이 나온 것은 바디메오가 유일합니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도 나옵니다.
그리고 과거 2천년 동안 그의 이름이 강단에서 외쳐졌습니다.
그만큼 바디메오가 눈을 뜨게 된 치유사건은 인상적이었다는 말씀이지요.
어떤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까? 
이 치유사건을 통해 우리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교훈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바디메오의 기도의 자세를 보라고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맹인 바디메오의 기도의 자세는 어떠했나요?

1) 예수님은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메시아이심을 확신했습니다. 

47절 “…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다윗의 자손이란 말은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호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11:1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사야 11장은 메시아 탄생에 관한 예언입니다. 
메시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다윗의 자손에서 메시아가 오신다는 거지요. 
따라서 소경 바디메오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예수님이야말로 내 눈을 뜨게 할 메시아이시다’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분으로 믿는 것이 기도자의 기본자세입니다. 
막9:14-29절에는 귀신들린 아들을 예수께 데리고 온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가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귀신이 아이 속에서 요동치면 아이는 거품을 입에 물고 쓰러져 얼굴이 파리해지면서 죽어갑니다.” 
자식의 그런 모습을 보고 그 부모가 얼마나 안타까웠겠어요?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소서.” 

예수님은 이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아들의 귀신들린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도 더 큰 문제는 아버지의 불신임을 간파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아버지를 보고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자기의 불신을 직시하고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호소합니다.

그 아버지에게 믿음이 생기니 아들은 저절로 나았습니다. 
하나님을 어느 정도 큰 분으로 믿느냐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나 사람보다 못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나 사람보다 못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메시아이심을 믿어드리십시오.
  
2) 방해를 극복하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48절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맹인 바디메오의 소리 지르는 것을 듣고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책망에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더욱 더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기도는 뜨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열심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사59:17절에 “…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롬12:11절에는 “…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눅5:17절 이하에는 천장을 뚫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린 열심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중풍병자를 친구들이 예수님께 메고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을 뵐 수가 없습니다. 
눅 5:19절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그래서 포기했나요? 
아니지요. 

눅5:19절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 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생각해보십시오.
방해를 극복하는 열심이 없어 그냥 돌아간 사람은 얼마나 많았을까요?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침상 째 예수 앞에 달아 내렸다는 소식, 그리고 그 사람이 나았다는 소식을 나중에 듣고 ‘우리도 그럴 껄’하고 후회한 사람은 얼마나 많았을까요? 
기도하지 않을 핑계를 찾지 말고 바디메오처럼 방해를 극복하는 열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 세이레 기도회를 시작할 때는 340명 정도 나왔는데 며칠 지나자 270명으로 줄었습니다. 
기도에 관심이 없거나, 믿음이 없거나,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은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한 번 나오시고 안 나오는 70명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21일 동안도 기도 못합니까?
이렇게 열심이 없어서 기도응답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기도는 뜨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해야 합니다. 
  
3) 기도제목이 분명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맹인 바디메오에게 묻습니다. 
51절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대답합니다. 
51절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바디메오는 지체하지 않고 대답합니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바디메오는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어쩌면 “한 푼 줍쇼.”라는 말이 먼저 쉽게 튀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바디메오는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여러분. ‘한 푼 줍쇼.’와 ‘보기를 원하나이다.’가 어떻게 다릅니까?
‘한 푼 줍쇼.’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구입니다.
반면, ‘보기를 원하나이다.’는 자유의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구입니다.
이것은 “굶어 죽어도 좋사오니 한번 보고 죽게 해주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그만큼 기도가 강열하고, 기도제목이 분명합니다.

아이쇼핑(eye shopping)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화점 같은데서 물건을 반드시 사야하겠다는 의도 없이 구경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몇 시간씩 돌아다녀도 살 의도가 없이 구경만 하기 때문에 돌아올 때에는 빈손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이런 아이쇼핑식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원하는 것이 없고, 간절히 바라지도 않고, 애가 타지도 않습니다. 
기도를 드린 후 한 1주일 정도 지나면 무엇을 기도했는지 몰라요! 
기도한 사람도 모르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는 막연한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봄철 다니엘 세이레 기도회에 참석하는 교우들에게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다니엘 세이레기도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분명하고 구체적인 기도제목을 들고 나오자. 그래서 기도응답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인하자.”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맹인 바디메오는 보게 되었습니다.
5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이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님은 육체적인 문제를- 생업이라든, 육체의 건강이라든가, 자녀교육이라든가 등- 외면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긍정의 힘’이란 책에 나온 얘기입니다.
저자인 조엘 오스틴의 어머니에 대한 내용입니다.
조엘 오스틴의 어머니는 1981년 간암으로 몇 주밖에 살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됩니다.
몇 달이 아니라 몇 주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을 불러 모아 가족회의를 했습니다.
가족들은, 의사의 진단과 하나님의 진단은 다를 수도 있다는, 그리고 의사가 포기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이 개입하실 기회라고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조엘 오스틴의 어머니도 믿음으로 투병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먼저, 마음의 청소를 했습니다.
미워했던 것, 원망했던 것, 비판했던 것, 보기 싫어했던 것, 불평했던 것.......
성령께서 지적하시는 대로 다 털어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전화로 용서를 빌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편지를 써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다음, 말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부정적인 말, 불신앙적인 말, 패배적인 말을 입에서 지워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두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치유의 말씀을 30개를 찾아 종이에 적었습니다.
수십 번 읽고, 외우고, 큰 소리로 선포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 식욕이 생기고, 소화가 잘 되고, 몸무게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밖에 살지 못한다는 분이 ‘긍정의 힘’이란 책이 2004년도에 나왔는데 그 때까지 20년을 건강하게 지내오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입니다.
이번 다니엘 세이레 기도기간 동안 바디메오처럼 응답받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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