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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시편 8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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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시편 84:1~12)


저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이라고 정해 보았습니다.  이 제목은 ‘필립 얀시’라는 기독교작가의 책제목입니다.  그는 책에서 교회에 대한 놀랍도록 솔직하고 깊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는 한 때 교회에 대한 실망으로 교회를 떠났던 아픈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모색과 고뇌 속에서 교회를 재발견합니다.  이 지상의 교회는 완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사랑의 공동체임을 확인합니다.  

그러면서 교회의 한계와 희망, 그리고 교회를 향한 전격적인 헌신으로 새로운 전망을 발견하고 마침내 도달한 은혜의 경지를 진솔하게 담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그것도 하나님의 교회란 한없이 크고 한없이 작다. 그토록 크므로 겸손한 자들이 와서 높임 받는 곳, 그토록 작으므로 높은 자들이 낮고 낮아져야 들어올 수 있는 곳, 교회란 실로 이와 같다... 우리는 비록 작곡가가 애초에 구상한 음에는 결코 이르지 못하겠지만 불완전한 그 음이나마 세상에 들려줄 사람은 우리 외에는 없다.’

신앙생활하면서 교회로 인해 한두 번 고민하지 않는 성도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를 떠나서는 살수 없는 존재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살 수 없듯이 믿는 자는 교회를 떠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우리 신앙과 삶의 중심입니다.  많은 고민 속에 좋은 교회를 찾아 여기까지 온 우리들입니다.  진정 좋은 교회는 내가 몸담아 있으므로 좋아지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우리교회와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면서 36년의 세월을 지내왔습니다.  

이제 교회에 대한 우리의 고민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여기에 있어서 감사하고, 앞으로 교회와 함께 받을 은혜와 축복을 기대하는 사랑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오늘 창립기념주일을 보내면서 교회사랑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진정한 교회사랑은 무엇일까요?  지금까지도 그랬던 것처럼 나와 후손들이 머물며 신앙생활 하는 좋은 교회를 꿈꾸며 과연 성경적인 교회사랑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사모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84편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모든 성경이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 시편은 누가, 언제 기록했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시편도 우선적으로 그런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표제를 보면 고라자손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라고 나옵니다.  본문은 고라자손이 부른 노래입니다.  고라는 레위족속이었으며, 고라자손은 성가대원의 가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성전에서 평생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며 섬기던 사람들입니다.  히브리 민족의 음악은 바로 이들에게서 시작되고 발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 ’영장‘이란 말은 성전 예배의 음악을 관장하는 성가대장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깃딧‘은 당시 음악에 사용된 악기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여기 노래를 한번 마음에 그려 보십시오.  그들은 지금 하나님의 성전에서 탁월한 지휘자가 좋은 악기에 맞춰 잘 훈련된 성가대원들이 아름답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부른 노래의 주제가 무엇이었을까요?  성전에서 떠나 있는 순례자가 성전을 그리워하는 내용입니다.  성전을 사랑한 백성들의 마음을 모아 신앙을 고백한 노래입니다.  그들은 이런 성전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 가운데 먼저 주목할 말씀은 2절입니다.  여기에 보면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인은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한다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성전을 사모했는지, 주의 장막을 그리워하다 못해 이젠 병을 얻을 지경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토록 시인은 성전을 사모하며 살았음을 알려줍니다.  이런 깊은 믿음을 표현한 고백이기에 이 시편은 구체적으로 한 사람의 신앙을 대변하거나 나타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신앙의 영웅 다윗입니다.  

다윗만큼 성전을 사랑하고, 사모한 인물이 드물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성전사랑을 노래한 27편에 보면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이것이 다윗의 신앙입니다.  그는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고 싶었습니다.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성전을 사모하며 살던 신앙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성전사랑입니다. 

사모한다는 말은 사랑한다, 그리워한다, 바라다, 열망한다, 혹은 관심을 갖는다는 뜻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사모할 때 그것은 사랑에서 나오고, 그리움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온통 마음과 생각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모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가 그립고, 보고 싶고, 떠나있으면 궁금하고,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개봉동에 살고 교회가 개봉동에 있습니다.  서울의 동네를 유머러스하게 만든 것이 있습니다.  ‘인정도 사정도 없는 곳이 모진동, 잘못한 것 없이 매일 면목이 없는 면목동, 학교가 있으나마나 곳이 방학동, 매일 불조심  해야 하는 동네는 방화동, 현금 한 푼 없는 동네는 수표동, 멋쟁이들만 사는 곳이라 해서 신사동’이라고 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름 가운데 ‘개봉동’은 모든 영화가 상영되는 곳이라고 해서 개봉동이라 합니다.  개봉동은 늘 개봉박두입니다.  원래 개봉동은 개웅산의 '개' 자와 신정동과 경계를 이루는 매봉산의 '봉' 자가 합쳐져 생긴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름 그대로 개봉동은 산 아래에 있는 살기 좋은 동네입니다.  공기가 맑고 한적하여 가장 늦게 개발된 지역입니다.  강남이나 목동도 개봉동 이후에 개발된 곳입니다.  이렇게 좋은 동네인데도 한 가지 약점이 있었습니다.  지대가 낮고 늪지대라서 종종 물난리를 겪은 동네입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몇 번의 물난리가 생각납니다.  아파트나 고지대에 살면 좀 괜찮았지만 저지대나 지하에 있는 집은 큰 홍역을 치러야 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옛날 교회에 물난리가 나면 지하실에 푹 잠겼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바가지를 들고 교회로 모였습니다.  자기 집들도 힘들 텐데 교회가 궁금하고, 교회를 물을 퍼내기 위해 교회로 모였습니다.  교회를 사모하고, 교회에 관심을 갖던 성도들이 이렇게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처럼 떠오르는 지난날, 그렇게 성도들은 교회를 사랑하며 섬겼습니다.  지금도 교회를 사랑합니다.  교회는 나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 사랑은 사모하고, 그리워하고, 관심을 갖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모두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거처하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시인은 성전을 사랑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3절과 4절을 보십시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인은 성전을 보금자리로 말합니다.  주의 집에 사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10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성전의 하루가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좋다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호화스럽게 사는 것보다 성전의 문지기로 사는 것이 더 좋다고 고백합니다.  이게 다 무슨 뜻입니까?  한마디로 성전을 자기의 거처, 집, 보금자리로 삼겠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고라자손들은 성전에서 살았습니다.  성전이 처소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도 성전을 떠나있어도 가고 싶었고, 그들의 발걸음은 언제나 성전을 향했습니다.  성전이 그들의 거처, 보금자리였습니다.  성전이 힘을 얻는 곳이었고, 위로를 받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눈물골짜기를 지나는 곤고한 인생길에 성전은 가장 큰 위로와 힘을 얻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머물기를 즐겨했고, 성전에 있으면 언제라도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성전사랑입니다.  또한 이것이 오늘 우리의 교회사랑이어야 합니다.

성전이 거처가 되고, 보금자리가 되었다는 말은 성전이 그만큼 편하고 좋았다는 말일 것입니다.  편안하고 안전한 곳에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교제하고, 위로받고, 섬기며 지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면 바로 우리가 이렇게 교회를 신앙의 거처로 삼고 터를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날마다 때마다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여기에 머물며 평안을 누리고, 모여서 기도하고, 서로 섬기고 봉사하는 현장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교회사랑 입니다.

교회창립36년을 지내며 이렇게 교회를 거처로 삼고 평생 교회를 사랑하며 섬긴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젊어서 교회에 들어와 이젠 노인이 되신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다가 이곳을 떠나 서울이나 지방으로 이사하여 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를 보금자리로 삼고 살다가 이젠 하늘나라로 거처를 옮긴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런 많은 사람 가운데 우리는 초대 담임목사였던 故 김태환 목사님을 잊지 못합니다.  벌써 그분이 떠나신지 10년이 되어갑니다.  

목사님은 누구보다도 교회를 사랑한 분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거처를 삼았습니다.  그리고 평생 땀과 눈물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분은 개척자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개척이 가장 힘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자리를 잡고, 안정되게 교회생활을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닙니다.  황무지와 같은 이곳에,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 그는 개척자로서 수고한 것입니다.  이젠 하늘나라에서 누구보다도 교회를 사랑하고, 새성전을 보며 기뻐하고, 성도들을 생각하며 감사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앞서간 성도들의 교회 사랑의 신앙을 이어가야 합니다.  이곳을 우리 신앙의 거처로 삼고, 보금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힘을 얻고, 복을 받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특히 눈물골짜기를 지나는 우리 인생길에 교회가 큰 힘과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늘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그런 곳이어야 합니다.  이제 이곳에서 우리가 열심히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사랑 입니다.  교회가 언제까지 나의 고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젠 사랑, 진정한 나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이제 교회를 나의 거처로 삼고, 보금자리가 되고,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이곳에서 예비하신 큰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이곳에 찾아오는 많은 사람을 위해 우리도 더욱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사랑은 사모하고, 거처를 삼고, 이제 기도하는 것입니다.  눈물과 통곡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것을 아주 귀한 교훈으로 전합니다.  본문은 성도들의 성전사모곡의 감동만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성전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기도’로 전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은 시고, 찬양이지만 또한 기도입니다.  기도의 관점에서 시편을 보아야 합니다.  여기 성전 사랑의 믿음을 기도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의 구절마다 기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만군의 여호와여’로 시작합니다.  

2절에도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라고 말합니다.  특히 8절과 9절에 성전을 향한 시인의 기도를 잘 보여줍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시인은 이처럼 기도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소서’ 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것이 성전사랑, 교회사랑입니다.  우리가 진정 교회를 사랑하면 기도해야 합니다.  내 모든 기도에 교회가 우선순위이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한 우리의 기도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저는 그것을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를 통해 찾기 원합니다.  요즘 금요기도회에 사도행전의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령과 은혜로 충만한 교회, 기도와 열정으로 세워가는 교회입니다.  그 가운데 4장 후반부는 그들의 기도를 알려줍니다.  기도를 통해 나타난 결과를 보여줍니다.  그들의 능력 있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교회를 위해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행4:31-35)  여기 말씀을 통해 교회를 향한 3가지 기도제목을 발견합니다.  

하나는 한마음과 한뜻, 둘째는 섬김과 봉사, 그리고 셋째는 전도와 선교입니다.  교회는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17:11)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한뜻을 이루고, 한마음으로 모아져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교회의 능력이 있습니다.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영광이 드러납니다.

또한 교회를 위한 기도에는 섬김과 봉사가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그것을 위해 성도들을 모으십니다.  그것을 위해 직분과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섬김과 봉사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이 일을 합니다.  주님도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5)  섬김과 봉사가 신앙의 표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또한 이것이 교회의 표지입니다.  교회는 안으로 밖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교회에는 오직 일하는 자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길을 따르고,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와 선교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이름이 우이 된 것은 큰 빛을 발하기 위함입니다.  한마디로 전도하고 선교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9-20)  여러분, 우리는 나만 구원받아 행복해서는 안 됩니다.  나만 천국가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족과 이웃과 주변사람도 구원을 받고, 천국까지 같이 가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 전도하는 공동체,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발이 닿는 곳에 전도해야 합니다.  모든 영혼을 사랑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발을 닿지 않는 곳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그들을 물질과 기도로 후원하여 세계선교에 동참해야 합니다.  교회가 전도와 선교에 소홀하지 않고, 무엇보다 영혼구원에 초점을 두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사랑 입니다.  한마음과 한뜻, 섬김과 봉사, 그리고 전도와 선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이곳에 우리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가 나의 고민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진정한 교회사랑은 교회를 사모하는 것이고, 거처를 삼는 것이고, 그리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 가슴에 깊이 새기고 헌신과 결단으로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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