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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시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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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시 101:6)


한 철학자가 밝은 낮에 등불을 들고 아테네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제자가 묻기를 “선생님 밝은 낮에 왜 등불을 들고 다니십니까?” 하자 “햇빛만 가지고야 사람다운 사람을 찾을 수가 있어야지!”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많으나 사람다운 사람은 귀합니다. 

이 시간 봉독한 시편 101편 6절 말씀에“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성경 역대하 16장 9절에도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행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땅을 두루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찾고자 온 땅을 살피실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진난 주 이 시간에도“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온 땅을 두루 살피시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을 찾으실까요? 지난주에 드렸던 말씀을 다시 한 번 간략하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시되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잃어버린 보물을 찾듯, 간절히 찾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의 날인 주일을 거룩하게 지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 소유의 물질인 십일조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립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의 집 성전 즉 교회를 사랑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며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뿐만 아니라 온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러한 사람의 예배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과 함께 하셔서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충성된 사람입니다. 본문인 시편 101편 6절 말씀에“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一. 어떻게 하는 것이 충성이겠습니까?

충성을 분별할 수 있는 몇 가지 시금석(試金石)이 있습니다. 

1.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충성에 대하여 누가복음 16장 10절에 말씀하시기를“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 하니라.”하셨습니다. 흔히 생각하기를 작은 것은 시시하게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작은 것에 충성해야 큰 것에도 충성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충성했더니 하나님은 그에게 애굽 총리의 직분을 맡기셨고 그는 그 자리에서 충성했습니다. 다윗은 목장에서 양치는 목자로 충성했습니다. 양치는 다윗의 충성스러운 모습에 대하여 사무엘상 17장 34절~35절에 기록하기를“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양치기 소년 다윗은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맡은 일은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기필코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작은 일에 충성하는 다윗을 이스라엘 나라의 왕으로 세우셨고, 다윗은 왕의 직분에 충성하므로 나라가 크게 번창했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셨습니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성실한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집안이 가난하여 머슴살이를 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주인이 사용하는 요강을 깨끗이 닦아 놓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이 머슴의 자세를 유심히 지켜보던 주인은, 이 청년이 머슴살이를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머슴의 학비를 담당하며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로 보내 공부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 청년은 숭실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이 청년이 바로 산정현 교회 장로요,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인 조만식 선생입니다. 그는 제자들이 인생의 성공비결을 물을 때면“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충성이란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2. 어려워도 변함없이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찬바람이 불며 얼어붙는 겨울이 되어야 송죽의 절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전해지는 말에“가정이 어려움에 처해야 어진 아내를 알 수 있으며, 나라가 어지러울 때 비로소 충신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화로운 날은 모두가 충성된 성도 같아 보입니다. 모두가 착하고 진실해보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핍박을 받거나 어려운 시험이 들게 될 때 충성된 신자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일제 치하 때, 함께 땀 흘려 교회를 세우고 함께 기도하던 같은 교회 성도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성도는 순교를 각오하고 숨어 다니며 믿음을 지킵니다. 그러나 그때 어떤 교인은 일본경찰의 앞잡이가 되어 교회 대문에 함께 못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숨어있는 신자들의 위치를 일본경찰에게 밀고하므로 많은 성도들이 모진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롯 유다의 행동이 이와 같습니다. 같은 제자였는데 로마군에게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하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입맞춤으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이처럼 충성함이란, 어려운 환경에 상관없이 맡은 일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4장 2절에 말씀하시기를“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입니다. 내게 재능이 있습니까? 지식이 있습니까? 재물이 있습니까? 시간이 있습니까? 건강이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청지기일 뿐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되 환경에 상관없이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충성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2차 대전 말기 일본군이 마지막 발악한 가미가제 특공대가 있습니다. 가미가제란 “신풍(神風)” 즉 “신이 내려준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신이 내려준 바람” 즉 가미가제는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나 일본을 침공하던 몽골 군선(軍船)이 하카다만(博多灣)에서 바람에 괴멸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후부터 일본은 가미가제를 나라를 지켜주는 신의 바람으로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2차 대전 말기에 가미가제 특공대를 조직하고 전투기에 한 사람만 탑승하도록 하고 폭탄만을 탑재한 채 연합군 함대 굴뚝을 향해 돌진하여 군함을 파괴하는 임무를 띠고 출격했습니다. 

죽기를 각오한 마지막 비행이었습니다. 그들은 살아도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비행기에는 목적지까지만 갈수 있는 연료를 주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공대원이 출격하기 전에는 반드시 흰 천을 덮은 탁자에 비행사들이 받을 마지막 잔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천황이 내려준 그 잔을 받아 마시고 “천황 만세”를 외친 후 출격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일본 조종사들은 나라의 왕을 위해 기꺼이 생명을 버리며 충성했습니다. 하물며 나를 지으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을 위해 충성하는 것이겠습니까? 당연히 해야 할 성도의 도리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가미가제 특공대와 같은 순교로 충성하도록 요구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평화로운 가운데 내게 맡겨진 직분을 성실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시며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3. 끝까지 책임을 잘 감당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잠깐 동안 충성하기란 쉽습니다. 며칠 동안 충성하기란 쉽습니다. 혹은 몇 해 동안도 충성하기란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충성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언제까지 충성하느냐 하는 것이 충성의 시금석이 됩니다. 

충성에 있어서 끝까지 충성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도중에 충성했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변절하면 그 동안의 충성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의 충성은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 예로, 예수님의 제자 가롯 유다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을 때에는 남다른 충성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에게 재정을 맡겼을 때에는 남다른 성실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재정을 맡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충성은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변절하여 예수님을 배신하고 했습니다. 

아무도 가롯 유다의 이전에 행했던 충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배신자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배신이 그가 쌓은 공적을 다 소멸시키고 말았습니다. 충성은 끝까지 맡은 일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말씀하시기를“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하셨습니다. 즉 죽는 날까지, 내게 있는 모든 힘과 정성을 다해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로마 근교에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핍박을 피하여 땅굴 속에 들어가 살다가 죽은 카타콤이 있습니다. 햇빛도 없고 습기 찬 그 지하 동굴에서 처참하게 살다가 죽으면 그 동굴 한쪽에서 장사를 지냈습니다. 200년이 넘도록 그 생활이 계속되었는데, 그때 죽은 순교자가 175만~4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그들이 늘 암송한 말씀이“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는 디모데후서 2장 9절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이 곧 충성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충성하는 것은 인간의 본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다 죄악으로 타락한 존재입니다. 그 결과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담하시고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1장 5절-6절에 말씀하시기를“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해야 할 마땅한 도리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二. 충성함의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1. 내세의 영광된 상급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말씀하시기를“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면류관은 세상의 것처럼 쇠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영광입니다. 이 영광의 가치에 대해, 하늘나라를 직접 목격한 바울사도는 로마서 8장 17절~18절에 기록하기를“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충성하며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힘들고 어렵기도 하지만 이에 비교할 수 없는 하늘나라의 상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본문인 시편 101편 6절 말씀하시기를“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삶의 승리자가 됩니다. 

다윗의 성공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 것입니다. 사무엘하 5장 10절 말씀에“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보잘 것 없는 양치기 소년 목동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시므로 골리앗 장군이 당치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다윗은 수많은 전쟁을 했지만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다윗 왕이 통치한 이스라엘의 국력은 끝없이 뻗어나갔습니다.

3. 후손이 복을 받게 됩니다. 
구약성경 느헤미야 9장 7절~8절에 기록하기를“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 씨에게 주리라”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충성을 보신 하나님은 그 후손에게 큰 축복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후손에게 어떤 유산을 남겨주시겠습니까? 가장 귀한 유산은 무엇이겠습니까?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설교학 교수인 블랙우드 박사는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남겨야 할 세 가지 유산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기쁜 기억의 유산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정에서 좋은 기억을 가지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기억이 있으면 죄악 가운데서도 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부모들의 주일을 성수하는 모습, 경건하게 예배드리는 모습,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 어른을 존경하는 모습, 남을 돕는 모습 등은 아이들에게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좋은 습관의 유산입니다. 
아이들의 생일날 음식점에서 낭비하는 모습보다 아이들과 함께 보육원이나 양로원을 찾아가 봉사하는 추억을 심어주는 일입니다.

셋째, 높은 생의 목표의 유산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교회에 나가지만 돈을 위해 산다.”는 등의 기억을 남겨주는 것은 불행이라고 했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고귀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유산이라고 했습니다. 

높은 생의 목표에 대해 디모데전서 6장 17절~19절에 말씀하시를“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높은 생의 유산이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내가할 수 있는 모든 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충성하며 살아야 훗날 하나님을 만날 때 부끄럽지 않습니다. 

잠언 25장 13절에“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할 충성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충성된 자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본문인 시편 101편 6절 말씀에“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은 내 삶에 후회함이 없는 보람된 발자취를 남기게 됩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은 후손들에게 가장 값진 유산을 물려주는 삶의 지혜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충성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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