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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아픔, 감격, 드림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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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감격, 드림 (눅 19:1~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사순절 주간을 맞이해 지난주일 사순절의 영성으로 ‘침묵’에 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과 또 다른 영성으로 ‘아픔’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 가지 아픔 중에 ‘마음의 아픔’입니다. 바로 속사람의 아픔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평강, 기쁨, 즐거움이 함께 합니다. 그러나 아픔도 함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마음의 아픔’없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아픔’을  겪어가며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영성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아픔을 피하려고 하고 잊으려고 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에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세속성에 붙들려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픔은 피하지 말고 받아드려야 하고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아픔이 아픔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픔을 뛰어넘어 아픔보다 더 큰 감격과 가치, 유익함과 행복을 찾기 때문입니다.      
  
이 아픔을 설명해 봅니다. 어떻게 보면 아픔은 하나님의 말씀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예수님께서 다가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픔은 ‘깨달음의 문’입니다. ‘자기 깨어짐’입니다. 새롭게 변화하도록, 회개하고 깨어나라는 ‘양심의 흔들음’입니다. 아픔은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값진 삶이나 새 역사를 시작하게 하는 ‘결단의 유발’입니다. 그러므로 아픔은 하나님의 새로운 ‘축복의 징조’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큰 아픔을 겪고 있는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가 예수께서 어떤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자나가시게 됨이러라.“(2-4절)        
   
그의 이름 ‘삭개오’는 ‘깨끗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의 부모는 신앙이 아주 좋았던 분들인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아들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 깨끗하고 의로운 사람이 되라고 그런 이름을 지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기대대로 성장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의 직업과 그의 삶이 설명합니다.       
  
그의 직업은 ‘세리장’이고 그의 삶의 상태는 ‘부자’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성장과정을 설명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삭개오는 키가 무척 작았던 것 같습니다. 난쟁이가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그는 부모님의 사랑과 신앙가운데서 잘 자라기에, 율법을 배우기 위해 회당에 다니기 시작했고 유대인들의 공동체가 그렇듯이 성전예배나 공중모임에 자주 참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 부터입니다. 
  
“이상하게 생겼네, 저 아이 난쟁이 아냐?, 그래도 저걸 자식이라고 낳고 멱국을 먹었겠지?, 부모가 참 않됐어...., 무엇을 하다가 조금 실수하면, 병(신) 꼴값 하네, 못난 놈, 병(신)이 한다는 짓이.... ”     
  
삭개오는 어려서부터 소외감, 외로움, 열등감, 속에 살았을 것입니다. 그는 분노와 증오와 저주의 적개심 속에 자란 났을 것입니다. 
‘어디 이놈들 두고 보자.... 내가 성공해서 갚아 주리라....’  
  
이를 갈면서 출세하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머리가 제법 똑똑해서 부요한 경제도시 여리고에서 로마정부의 관리 세리가 되었습니다. 끈질기게 노력해서 세리장이 되었습니다. 악착같이 잔인하고 매정하게 사람들을 다루면서 부정을 행하기에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세금징수라는 수단으로 치부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부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앞에 고개 숙였습니다. 세금감세 받기위해 쩔쩔매며 아부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 출세했으면 행복해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보는 데서는 고개 숙이고, 떨고 아부하지만, 뒤에서는 도둑놈, 매국노, 죽일 놈이라며 욕했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해주지 않았습니다. 외로움과 고독감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가진 것으로 누려보지만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밀려오는 죄의식,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으로 마음이 힘들고 아팠습니다. 세속적 방법으로 술에도 취해보고 향락으로  즐겨보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더욱 힘들어 왔고, 아프고 또 아팠습니다.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것은 속사람의 아픔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아 오셨다는 신호였습니다. ‘깨달음의 문’이 열리는 아픔이고, 자기가 깨어지는 아픔이었습니다. 회개하고 깨어나라는 ‘양심의 흔들림’ 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신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그가 들어왔던 예수라는 분, 그분은 자기가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면서 죄를 사하시기도 하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준다고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소문은 각종 병든 자들을 고치고 죽은 사람까지 살린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이 예수님을 만나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 보기 위해 거리에 뛰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때문에 볼 수 없었습니다. 키가 너무 작았습니다. 그러나 달려가 세리장의 체면 생각하지 않고 돌무화과 나무(뽕나무에)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예수님은 삭개오를 보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예수님은 마치 삭개오를 만나주시기 위해  일부러 그곳에 오신 것처럼 말씀하신 것입니다. 삭개오의 아픔을 알고 계신 분처럼 이름을 부르면서 말입니다. 이름은 어떻게 알았을까...  삭개오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감격했습니다. 나무에서 급히 내려왔습니다. 너무 너무 행복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기쁨으로  예수님을 집으로 모셨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모든 죄의식을 용서받았습니다. 괴롭히던 분노와 증오감에서 놓여났습니다. 마음의 깊은 상처와 아픔들이 살아졌습니다. 
  
삭개오의 아픔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들어가는 문이었습니다. 그 아픔은 변화의 시작이고 새로운 시작의 출발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감격으로 예수님께 그의 인생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약 누구를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8절)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9절)
  
삭개오는 물론 그의 집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새로워진 것입니다. 드려진 그의 인생과 모든 재산들은 여리고 도시에 하나님나라의 역사를 일으키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는 새 창조역사였습니다.  
  
우리가 사순절기간에 가져야 할 영성은 아픔입니다. 이 절기중에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게 하시는 아픔을 외면하지 마십시다. 오히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돌감남 나무에 올라간 삭개오처럼 아픔에 대하여 열정과 적극성을 가지십시다. 그러므로 아픔 속에서 우리를 만나려고 찾아오시는 예수님만남의 감격을 가지십시다. 그 아픔은 우리로 회개와 함께 결단으로, 새로운 축복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아픔은 예수님이 만나주시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사순절 기간 우리가 감수해야 할, 또 다른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은 절기기간 기도해온 성전건축의 나의 몫을 결정해야 하는 아픔입니다. 
  
하님님의 아들 우리 인류의 그리스도인신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아픔가운데서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중에 가장 큰 아픔은 십자가를 져야하는 아픔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전 예수님은 마음에 너무나 큰 아픔을 가지셨습니다. 그 아픔이 얼마나 크면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하자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도 간절히 기도해야 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아픔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6-39)   
  
예수님은 큰 아픔을 피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아버지 하나님이 함께 아파하시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이 어두워(눅23:44) 졌습니다. 그곳에 하나님 뜻이 실현되어지는 큰 감격이 함께 했습니다. 바로 인류구원이 이루어지는 감격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아낌없이 드리셨습니다. 피 한방울 아낌없이 모두 드리셨습니다. 그 드림이 인류구원의 새 역사가 시작 되게 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새아침 새 창조의 역사가 만방에 선포된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금주일부터 28일 주일까지 건축헌금 작정하는 기간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명령 앞에 우리는 마음의 큰 아픔을 겪을 것입니다. 이 아픔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픔 속에 함께 하는 성전건축의 감격이 있습니다. 성전건축의 감격과 영광을 놓치지 마십시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아픔에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감동하실 것입니다. 아픔에서 주님과 함께 드림의 결단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이 드림이 교회 새 역사를 창조하는 동력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새 창조역사에 참여자가 되도록 하십시오.     
  
저희교회는 지난주간 장로님들이 먼저 건축헌금 작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의 일기를 읽어 드립니다. 한 분의 장로님에 대한 부분적인 내용입니다. 

3월 11일 목요일 아침,
새벽예배를 끝내고 A장로님이 들어오신다. 
‘목사님, 건축헌금 작정을 가족과 함께 끝냈어요 .... ’ 
드리시는데 아까와 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뻐하시는 장로님, 
기도로 준비 하시는 중에 먼저 자녀들과 의논했다고 하신다. 
염려는, 부군 권사님이 어떻게 하실는지...  기도 하셨단다. 기쁨으로 함께 작정 할 수 있도록 성전 건축의 영광 그 감격을 기도에 담으시고 기도하신 것 같다.    주님이 감동주시도록 기도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의 응락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중풍으로 오래 앓고 계신 권사님이 오른손을 사용하시기 어려워 왼손으로’ 하나님께 드림을 위해 직접 쓰셨다고 하신다. 나는 기도해드리기 전에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가 내용 보아도 될까요?’   ‘그러세요.’ 
나는 장로님의 기쁨과 감격에 가득 찬 표정을 보았다. 장로님의 눈 깊은 곳에 고인 눈물이 보이네.....  
작정 카-드를 꺼내 보았다. 왼 손으로 쓰신 글씨, 삐뚤삐뚤하게 흔들린 글씨, 그러나 정성껏 기록한 글씨이네....
일금 (   )억원, 액수 옆에는 ‘건물드림’이라고 기록하셨네... 
소유하고 있는 집을 드린 것이다. 
‘아니, 장로님....’ 

내 마음이 깊은 아픔으로 저려온다. 아, 마음 깊은 곳에서 눈물샘이 터졌네..., 그 눈물이 내 아픈 마음을 가득하게 채우는 것 같다. 장로님 가족의 드림을 가지고 주님께서는 감동으로 내 마음을 흔들어 대시네....

나는 작정 카-드에 손을 올려놓고 기도했다. 
“오 하나님, 장로님과 가족을 축복하옵소서.” 
  
가족들을 향한 기도를 떠오르게 하신다.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마친 후, 내 아내와 장로님의 눈에는 눈물방울이 조용히 맺혀져 있다. 
그렇게 큰 부자도 아니신데.....  
  
지난 주간 모든 장로님들이 거룩한 아픔 속에서 새로운 성전건축의 감격을 마음속에 그리시면서 건축헌금 ,카드를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주님의 성전을 궁색하지 않게 지어드려야 할 텐데... 성도들의 헌금이 부족함이 없는 것이 되어야 할 텐데... ”
  
거룩한 부담의 아픔 속에서 성전건축의 감격을 마음에 간직하시고 주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감동하심 속에 여러분들보다 앞서 함께 결단하셨습니다. 눈물의 드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장로님들의 드림은 교회의 새 역사, 곧 새 창조의 역사에 귀중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드림의 감격 속에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순절 절기의 우리의 영성은 아픔입니다. 우리를 새롭게 만나주시기 위해 아픔 속에서 만나시는 주님을 새롭게 만나야 합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 인생가운데 우리를 더욱 복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새 역사를 가지십시오.
  
성전건축을 위한 거룩한 아픔도 피하지 마십시다. 그곳에 함께 하셔서 감격하게 하시는 주님의 감동을 간구 하십시다. 우리의 드림이 우리가 섬기는 이 교회의 새 창조 새 역사가 되도록 하십시다.
저는 여러분에게 나누어 드린 저의 목회서신을 읽는 것으로 말씀을 끝맺겠습니다. 
사순절 아픔의 영성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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