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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3) (고후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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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자신을 확증하라(3) (고후 13:5)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1.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만을 데리고 산에 가셨다가 돌아오자 어떤 사람이 예수께 무릎을 꿇고 간청합니다. ‘주님, 제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얘가 간질병에 걸려서 몹시 고생하며 자주 불에 넘어지기도 하고 물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나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그리고서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자 귀신이 아이에게서 나가고 바로 그 순간에 아이가 나았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예수께 조용히 와서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20절) 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성경 사본에는 21절이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환자의 아비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아들을 예수께 데려왔으나 예수께서 변화산에 가셔서 만나지 못하고 대신 남은 아홉 제자들에게 자신의 딱한 처지를 호소했던 것입니다. 사실 그 제자들도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이적을 행하기도 했었습니다.

(마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눅10:17)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그러나 그 같은 권능은 항상 나타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온전한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지해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기적을 행하는 권능과 능력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온전한 믿음입니다. 

그런데 산 아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무려 9명이나 남아 있었는데도 간질병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며 그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다.”는 것은 ‘믿음이 조금 부족하다.’(little-faith, poor-faith)는 것이 아니라 아예 ‘믿음이 없다.’(unfaith)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앞서 지적하신대로 당세대가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 일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역시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너희와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지내야 믿음을 가지겠느냐?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너희 믿음 없는 것을 참고 기다려야 하느냐?’ 그리고 예수께서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고 지적하시므로 제자들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믿음의 양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록 겨자씨같이 하찮을 정도일망정 겨자씨만큼도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과 비슷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9:17-29입니다. 어떤 사람이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제 아들을 데려왔습니다. 귀신이 그에게 발작을 일으키면 아무데서나 넘어져 거품을 내고 이를 갈면서 온 몸이 빳빳해져 버립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나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막9:19)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를 예수께 데려가니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아이에게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땅에 엎어져 뒹굴며 거품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아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어렸을 때부터입니다. 귀신이 자주 아이를 불과 물 속에 던져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하실 수 있다면 우리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막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말씀하시자 바로 그때 아이 아버지가 큰 소리로 ‘(막9:24)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점점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며 ‘(막9:25)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에게 심한 발작을 일으켜 놓고 나갔고 아이는 죽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이가 죽었다.’ 고 말했지만 예수님이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그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집에 들어가 계실 때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은 ‘(막9:29)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치유 기적 사건에서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 아버지가 ‘선생님, 하실 수 있다면 우리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십시오.’ 라고 간청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고 예수께서 하실 수 있다면 고쳐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와 반대로 ‘(막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시므로 예수 자신의 능력 유무와는 별개로 아이 아버지의 예수께 대한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믿음에 치병(治病)이 달려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고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병 고침을 받는데 필요한 조건이 아니라 ‘믿음’ 그 자체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바로 소리 질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 아이 아버지의 말을 보면,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는다고 했지만 자신에게 믿음이 없음을 고백하고 믿음까지도 도와달라고 부르짖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말씀, ‘(막9:29)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은 매 순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을 때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으로 그 아이 뿐만 아니라 아이 아버지의 불신앙, 믿음 없는 것까지 치유하신 것입니다. 

기도란 어떤 초능력적 힘을 나타내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루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성전에 나가 기도하는 생활 중 성전 입구에서 구걸하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보고 ‘우리를 보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해서 바라보는데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사람들이 이 일로 심히 놀랍게 여겼습니다.(행3:6-10) 항상 기도하는 신앙생활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믿음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2. 사도 바울이 2차 선교 여행길에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던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주변에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골로새, 히에라볼리, 라오디게아,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등) 바울이 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희한한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그러한 기적들이 나타나게 하신 이유는 그 도시들이 각종 미신과 마술, 주술이 범람하는 지역들이었기 때문에 바울의 선교를 위해 특별한 기적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바울이 사용하던 손수건이나 천막을 기울 때 사용하는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대기만 해도 병이 낫고 악한 귀신들이 나갔습니다. 

이때 몇몇 떠돌이 유대인 무당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용하여 귀신들을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그 중 대제사장 가문을 사칭하는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악한 귀신들에게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노라.’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악한 귀신이 ‘나는 예수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도대체 너희는 누구냐?’ 면서 귀신 들린 사람이 달려들어 모두 때려눕히자 그들은 상처를 입고 알몸으로 도망쳤습니다.(행19:8-16) 

사도 바울이 행한 희한한 능력들은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 자체에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과 그 능력을 받아들인 믿음을 통해서 기적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거룩한 대제사장 가문을 사칭한 스게와의 아들들이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예수의 이름을 빙자해서 귀신들에게 명령했다가 봉변을 당하고 도망쳤습니다. 이들이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빌린 것 뿐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귀신들이 스게와의 아들들에게 ‘나는 예수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도대체 너희는 누구냐?’ 한 말을 보면, 귀신들은 사람들과는 달리 먼저 하나님의 사람들을 알아보고 그들의 믿음과 능력들을 먼저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귀신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멸하러 세상에 오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이미 이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가버나움 유대 회당에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가르치심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으므로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큰 소리로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려고 오셨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이신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이십니다.’ 하고 소리쳤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며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자 더러운 귀신은 그 사람에게 발작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습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정말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로다! 더러운 귀신들도 그 명령이 복종하는도다!’ 하며 서로 말했습니다. 

(막1:21-27)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고, 세상에 오신 목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귀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사도 바울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 세우신 사도이며 믿음과 능력의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귀신들이 스게와의 아들들에게 ‘너희는 누구냐?’라고 한 것은 곧 이 귀신들이 스게와의 아들들이 대제사장의 가문을 사칭하고 예수의 이름을 빙자함을 먼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들었을 뿐 그 이름을 믿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 안에 거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도 전혀 없이 예수의 이름을 이용하려는 자들은 오히려 사탄의 무리들에게 봉변당할 수가 있습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고 떤다고 했습니다.

(약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이처럼 귀신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떨지만,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고 귀신들은 믿은대로 행함도 없습니다. 귀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떨지만 예수 믿으면서도 행함이 없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귀신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지만 그 말씀을 전하거나 그 말씀대로 행하지는 않습니다. 요한일서 3:8입니다.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마귀가 세상에서 하는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을 믿지만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이와같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며 그 말씀대로 사는 생활이 가장 중요합니다. 

A.D. 34년경 스데반이 순교당하며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큰 박해를 받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유대와 사마리아의 여러 지방으로 흩어져 갔고 사도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흩어진 성도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는데 그 중 빌립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자 더러운 귀신들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가고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치유되는 기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 도시에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있었는데 마술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자 여러 계층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며 ‘이 사람은 하나님의 큰 능력을 받은 사람이다.’며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자 시몬을 따르는 자들이 모두 예수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 그 마술사 시몬도 예수 믿고 세례 받은 후 빌립을 줄곧 따라 다니며 기적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에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은 이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 보내 새로 믿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만 받았지 아직 성령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도가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시몬은 그 광경을 보고 사도들에게 돈을 주면서 ‘내게도 이런 능력을 주어 내가 손을 얹는 사람은 누구든지 성령을 받게 해 주소서.’ 라고 요청합니다. 

이에 베드로는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네 돈과 함께 네가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므로 이 일에는 아무 상관도 없고 얻을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마음에 품은 악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주께서 네 악한 생각을 용서해 주실지도 모르니라. 내가 보기에 너는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고 죄에 사로잡혀 있도다.’(행8:1-25) 

성령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역자들이 안수, 즉 손을 얹고 기도하는 가운데 임하기도 하고(행9:17), 하나님 말씀을 듣는 중 체험할 수도 있고(행10:44), 여럿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곳에 임하기도 합니다.(행2:1-4) 

이렇게 임하는 성령은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마술사 시몬은 돈을 주고 마술을 전수하듯이 성령도 돈을 주면 얼마든지 전수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성령을 전수받으면 자신의 마술을 능가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행하여 크게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사실 마술사 시몬이 예수 믿고 세례를 받았지만 그것은 자신이 마술을 행할 때보다 성령으로 나타나는 능력과 권능이 더 크다고 판단해서 마술보다 성령의 능력으로 돈 버는 것이 더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예수 믿고 세례받은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함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시몬이 성령을 돈 주고 사려는 불의한 생각이 들통 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네 돈과 함께 네가 망할지어다는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고전2:4-5)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능력을 행하게 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갈3: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 중 겨자씨 만큼만이라도 행하면 산을 명하여 옮길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명색(名色)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서 기도생활도 없고 성령으로 나타나는 생활도 없다면 귀신들의 조롱거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성령이 없는 성도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도 없는 신앙생활에는 성령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살아 있는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나타남이 충만하신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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