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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5:3~11)


베드로는 평생에 세 가지의 신앙고백을 합니다. 첫째는 죄의 고백, 둘째는 믿음 고백, 세 번째는 사랑고백입니다. 오늘은 첫째 시간으로 첫째 죄의 고백에 관련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갈릴리 어촌의 어부였습니다. 그는 처자의 생계 유지를 위해 날마나 배를 뛰워 고기를 잡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던 그날도 베드로는 생계 유지를 위해 밤새도록 일하였습니다. 갈릴리 바다에는 밤에 잡히는 고기가 있습니다. 불을 켜고 밤에 잡았던 그 고기를 베드로 오늘 날은 베드로 고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5절에 보면 “밤이 새도록 수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 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밤 새도록 수고를 했지만 헛수고 한 것입니다. 날이 밝고 더 이상 고기잡이를 할 수 없는 시간이 되어 이제 그물을 씻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바닷가에 나오셨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예수께서 가시는 곳 마다 언제 어느 때고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 날 아침도 일찍부터 예수님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갈릴리 바닷가는 소란스러웠습니다. 

주님은 그물을 씻고 있던 베드로의 배로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육지에서 조금 뛰기를 요청하셨습니다. 베들로는 주님의 말씀에 그가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주님의 요청대로 응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천국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예수께서 갑자기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고기를 잡기 위해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습니다. 밤에 잡는 고기는 해가 뜬 낮에는 잡히지 않습니다. 이미 고기를 잡을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다시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이미 밤새도록 그물을 안 던져본 곳이 없을 정도로 다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던져봐야 헛수고 할 것이 뻔한 일입니다. 

그 때 베드로가 뭐라고 합니까?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다”
이 말은 좋게 해석하면 그의 순종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사실은 “하나마나 뻔한 일입니다. 밤새도록 수고했어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곳에서 무슨 고기가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말씀이 정 그러시니 한 번 해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도 않고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잡혔습니다. 

베드로도 놀라고 보는 모든 사람들이 놀랬을 것입니다. 여러분 상상을 해보십시오.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하다가 기대도 않고 그물을 던졌는데 상상할 수 없는 만큼의 고기가 그물에 걸린 것입니다. 감격과 놀라움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기뻐서 어쩔줄 몰랐을 것입니다. 그 감격의 현장에서 우리는 베드로의 행동을 보게 됩니다. 

눅 5:8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베드로는 고기를 끌어 올리던 손길을 놓고 주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울었다는 말은 없지만 아마 그는 울먹이며 그렇게 말하였을 것입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행동에서 약간은 의아스럽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에게 예수라는 사람이 와서 잠‘깐 배를 빌려서 사용하고 그 댓가로 기적을 베풀어 많은 고기를 잡게 하였다고 생각한다면 베드로는 그저 엎드려서 고맙다고 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야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기적의 현장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힘써 수고했어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자신의 한계성 앞에 쓸쓸하고 허탄한 마음으로 깊이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말씀 한마디에 갈릴리 바다의 수많은 고기떼가 몰려오게 할 수 있는 그분의 능력 앞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이 깊이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가장 나약하고 연약한 인생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연약함과 나약함을 깨닫고 솔직히 자신의 연약성과 죄성을 인정하는데서부터 시작 되어 집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것은 베드로의 고백이 아닌 은혜 받은 모든 사람들이 주님께 드려야 하는 첫 번째 고백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 어떤 고백을 드리고 있습니까? 베드로처럼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의 이 고백이 없이는 주님을 온전히 만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주님을 만난다 해도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는 한 나그네로 지나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베드로처럼 고백하여야 하겠습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고백을 하게합니까?

1.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눅 5:3-4 절에 보면 예수님은 이미 베드로의 배에 올라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4절에 보면 말씀을 마치시고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을 마치셨다는 것은 말씀을 베드로가 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고백을 하게한 것은 바로 주님이 전하셨던 그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배에서 말씀을 들었기에 누구보다 주님과 공간적으로 가까이서 들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가르치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헛수고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려고 그물을 씻던 그에게 주님의 말씀은 그의 심령을 치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말씀이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다는 것은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진리에 반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힘이 생기고 능력이 주어집니다. 완악한 심령이 그 말씀으로 깨어지고 부숴지기도 합니다. 
히 4: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찔러 쪼개어 치료하는 검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치료를 위해서는 찔러 쪼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칼입니다. 죄를 도려내는 칼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베드로의 죄 된 성품이 아픔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느껴야 하는 아픔은 어떤 아픔입니까? 죄를 공격하는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느끼는 아픔이어야 합니다. 
이 시간 주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여러분들의 죄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교만성과 자만성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양심이 하나님 앞에서 소리쳐야 합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말입니다. 

말씀은 그 자체가 위로입니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삽니다. 그리고 마음의 양식과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양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끔씩 위로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놀라운 위로가 됩니다. 곤고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너와 함께 하신다” 는 주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사 41:10 절에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2.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베드로에게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게 한 것은 주님의 풍성한 은혜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그물에 잡힌 엄청난 고기는 하나님의 한 없는 은혜를 깨닫게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힘으로 산다고 큰소리치고 살았습니다. 갈릴리 바다의 노련한 뱃사공으로 그 누구에게도 뒤질 수 없는 “열심”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은 밤새도록 헛수고였으나 주님의 말씀 한마디에 자신에게 돌아오는 수백 배 수 천 배의 은혜 앞에 그는 자신의 자만과 교만을 깨트리는 회개하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무슨 은혜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간단 말입니까? 오직 주님이 베푸신 은혜를 가지고 나갑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주님께 업드려 고백하는 말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입니다. 

베드로의 일생에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를 고백하는 장면은 두 번 있습니다. 
첫째는 본문에 기록된 대로 갈릴리 바다에서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입니다. 
둘째는 누가복음 22:60-62절에 나오는 가야바의 법정에서 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대 제사장 가야바의 법정에 끌려가서 재판 받을 때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침 뱉음을 당하고 매로 맞고 온갖 수모를 다 겪습니다. 그러한 장면을 목격하면서도 베드로는 누군가 “당신도 예수와 한 당이냐” 물을 때 주님을 모른 다고 맹세하고 큰소리로 저주하면서 부인했습니다. 그 소리를 주님이 다 듣고 계셨습니다. 
눅 22:61-62절에 보면 주님이 몸을 돌이켜 베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셨습니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 하니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던 베드로의 그 말을 다 듣고 계셨던 주님께서 베드로를 말없이 바라보실 때 베드로는 주님의 그 눈빛을 보았을 것입니다. 
책망이 아닌 오히려 측은하고 가엽게 여기시던 주님의 눈빛을 말입니다. 
이미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아셨기에 가장 신뢰하던 제자의 배반에도 결코 당황하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베드로에게 용기를 주는 눈빛을 보내셨습니다. “베드로야 나는 네 진심을 안다. 힘내라” 라고 말입니다. 이미 주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할 것에 대하여 다 아셨습니다. 

눅 22:31-34절의 말씀을 보면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주님은 베드로가 완벽하기를 기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가 넘어질 것을 아셨지만 그의 믿음을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너는 돌이킨 후에....” 라고 했습니다. 사단이 인간의 모든 연약함을 다 지니고 있는 베드로를 밀 까부르듯 가지고 놀려고 청구했지만 주님은 그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주님의 은혜를 그 눈빛을 통해 느낀 베드로는 밖에 나가서 통곡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무슨 고백을 하며 통곡했을까요?
“주여 나는 역시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고백이 아니었을까요?
3년이라는 세월동안 주님을 따르며 제자로서 훈련을 받고 이제는 누구보다 더 큰 믿음을 갖고 누구보다 더 열심이 더 많다고 큰 소리 쳤던 그였지만 역시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받으면 자신의 허물이 더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더 겸손하게 머리가 숙여지는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의 삶에서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누가 큰 소리 치겠습니까?
주님의 은혜 앞에 누가 감히 자기 자신의 공로를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총이요 은혜인데 말입니다. 

은혜를 느낀다면 우리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의 고백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고 사람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 은혜가 감격하여 더욱 주님게 엎드려져야 합니다. 부족하지만 은혜 베푸신 주님게 목숨이라도 바치고자 하는 고백이 바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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