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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직무자는 누가 어떤 일을 하는가? (행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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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직무자는 누가 어떤 일을 하는가? (행 6:1~7)


여러분! 1965년 10월 4일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물론 여기에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 날에 대하여는 잘 몰라도 강재구소령이라고 하면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백과사전에 그를 소개하는 글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 인천 출생. 1960년 육군사관학교를 제16기생으로 졸업, 육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수도사단에 배속된 후, 전 ·후방 각 부대에 전속된 뒤 대위로 진급하였다. 1965년 한국군 1개 사단의 월남 파병이 결정되자, 자원하여 맹호부대 제1연대 제10중대장이 되었다. 출발하기 전 10월 4일 홍천(洪川) 부근에서 수류탄 투척훈련 중 부하 사병이 실수하여 수류탄이 중대원 한가운데로 떨어지자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수많은 부하의 생명을 구하고 산화하였다. 숭고한 군인정신을 찬양하여 소령으로 특진, 4등 근무공로훈장을 추서하고, 그가 속했던 대대를 ‘재구대대’라 명명하였다. 또 그의 모교 서울고교에는 기념비를, 육군사관학교에는 동상을 세웠으며, 육군에서는 ‘재구상’을 제정, 매년 모범 중대장을 선발 ·시상하고 있다. >

강재구소령은 지휘관으로써 온 몸을 던져 부하들의 목숨을 보호하고 살렸습니다. 이런 지휘관에게 국가는 치하를 하고 훈장을 주어 기념하게 했습니다. 지휘관으로서 해야 할 일을 가장 모범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점을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1. 오늘 본문까지 사도행전 문맥

오순절 성령강림은 예루살렘 교회를 탄생케 했습니다. 예배공동체가 세워졌고 예배함에 따른 성도들의 삶도 떡을 떼는 원리를 따라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의 한 몸을 나타냈고 그리스도의 떡 떼심의 원리를 따라 소유와 재산을 팔아 서로 나누고 도왔습니다. 이렇게 교회 내적인 생명이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이 임한 권능으로 교회 안팎의 대적에 대하여 굴하지 않고 싸워 이겼습니다. 예루살렘 당국자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였고, 자기 사리사욕을 차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교회 공동체로부터 영원히 제거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 곧 그리스도의 한 몸을 나타내는 교회의 진정한 직무자가 누구인지 나타냈습니다. 대제사장과 사두개 당파가 더 이상 새 성전의 직무자가 아닙니다. 사도들이 주 예수를 임금으로 모시고 성령이 임한 직무자입니다. 주님이 받으신 능욕을 이 사도들도 받고 있기 때문에 분명 성령이 함께 하는 직무자요 부활하신 주님을 모시는 제자들입니다.


2. 오늘 본문은 주님의 교회에 직무자가 어떤 일을 하는가를 말한다.

이렇게 지난 시간까지 교회, 곧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세우신 하나님 나라의 직무자가 누구인지 밝혔다면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무엇이겠습니까? 누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말할 것입니다. 교회를 효과적으로 봉사할 새로운 직무자를 세워 업무를 분담하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3. 예루살렘 교회에서 발생한 원망

오순절 예루살렘 교회에 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원망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를 보더라도 우리는 초대교회, 사도행전의 예루살렘 교회가 완전 이상형인 것처럼 생각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왜 원망하는 일이 생겼습니까?

우리가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각국으로부터 온 유대인들에 대하여 들었던 것처럼 예루살렘 교회는 크게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헬라파 유대인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라고 해서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후로 이방인 나라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이 나이가 들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이주를 하여 살았습니다. 그런 헬라파 유대인들 가운데 남편이 일찍 죽으면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어 홀로 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오랫동안 예루살렘에서 정착해 왔던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그래도 근거가 있어 조금 나은 생활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원망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 대상에서 자주 제외되었기 때문입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도 있지만 아무래도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친척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오래 함께 지내서 그런지 형편도 잘 알고 쉽게 구제를 받을 수가 있었으나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아마 전체적으로 공평하게 구제를 시행할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 일은 의도적으로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헬라파 유대인들을 멸시하거나 업신여겼다고 보기에는 맞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사도들로부터 책망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의 원인은 한 가지였습니다. 6장1절이 말하듯이 ‘그 때에 제자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 사도들이 구제하는 일에 전적으로 관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을 돌아보지 못하고 온전히 구제하지를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의 능력부족이라고 하기 보다는 자기 일이 아니었던 데에 더 큰 원인이 있습니다.

제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아시는 분이 계시겠지만 저희가 선교헌금이 들어오면 약한 교회의 사역자를 후원하며 섬겼습니다. 우리도 자족하거나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보다 더 약한 곳을 섬겨야 하겠다고 해서 그리한 것입니다. 그런데 노회 안에 정말 어려운 분이 있는데 해마다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그 분도 자기 형편을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고 다니는 분이 아니라서 사실상 다른 분보다 더 어려웠는데 노회가 잘 알지를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노회가 모여 결의하기를 이제부터는 지교회가 알아서 사역자나 교회를 후원할 것이 아니요 노회에 경상재정의 10%를 내면 노회가 시찰하여 더 어려운 곳을 먼저 후원하자고 결정하였습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4.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사도들이 대책을 마련하다.

이러한 일이 생기자 열두 사도들은 제자들을 불러 자신들의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일곱 집사를 택하기로 했습니다. 2절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함으로 사도들이 식사 대접이나 구제에만 힘쓰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고 했습니다. 이 일은 7집사를 세워 그들에게 맡기고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안하겠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듣고 온 무리가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7명을 뽑고 사도들이 안수하여 집사로 세웠습니다. 그러하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였습니다. 제자의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즉 오늘 본문은 제자들의 수가 많아 잘 돌보지 못하는 부분이 생겼는데 사도직과 집사직을 구분하여 세우니 오히려 더 제자의 수가 많아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5. 구약의 민수기에 나타난 성소의 직무자들이 할 일.

이 일은 구약의 민수기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반역하여 일어난 고라자손과 다단과 아비람을 비롯하여 250명이 죽었고 자그만치 1만4천7백명이 전염병이 돌아 죽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는 다 죽었습니다. 우리가 다 망해야 좋습니까?”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18:4-5절입니다. “레위인은 너와 합동하여 장막의 모든 일과 회막의 직무를 지킬 것이요 외인은 너희에게 가까이 못할 것이니라 이와 같이 너희는 성소의 직무와 단의 직무를 지키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미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아론과 그 아들들, 그리고 레위자손에게 직무를 주었습니다. 그들이 성소의 직무를 지킴으로 여호와께 함부로 나아오는 자들이 죽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은 아론의 자손들에게 응식을 주고, 레위 자손은 이스라엘 중에 기업이 없게 했습니다. 오직 이스라엘 자손이 주는 십일조로 여호와를 위해서만 그 성소에서 일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레위 자손과 아론의 아들들을 구별하여 성소의 직무를 지키게 함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민수기 19장에는 흠이 없는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 불로 태워 재로 만들어 마치 양잿물처럼 잿물을 만들어 죽은 시체와 접촉한 자들을 정결케 하여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히지 않도록 했습니다. 이스라엘 회중이 부정한 자와 접촉했을 때 그들을 정결케 하여 여호와의 성소와 이스라엘 총회로부터 끊쳐지는 일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성소에 가까이 나아오다가 죽는 일이 없도록 아론과 그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워 레위 자손들과 함께 성소의 직무를 지켜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의 성소에 가까이 나아오면 죽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시체와 같이 부정한 것에 접촉한 자들을 정결케 하도록 하여 여호와의 총회에서 끊쳐지지 않게 했습니다.

이렇게 민수기 18장과 19장은 아론과 그 아들들, 그리고 레위 자손에게 직무를 주셔서 여호와의 성소에 가까이 나아오다가 죽는 일이 없도록 했고 부정한 것에 접촉하여 더러워진 것을 정결케 함으로 여호와의 총회에서 끊쳐지는 일이 없도록 한 것입니다. 그들의 생명을 보호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여호와의 성소에 가까이 나아오는 일을 제한한 것입니다. 
 

6. 구약의 직무자와 신약의 직무자의 차이.

오늘 사도행전에서도 사도들의 직무가 무엇인지, 교회의 집사의 직무가 무엇인지 서로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말씀전하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토록 했습니다. 이 말은 교회가 사도들을 전적으로 부양하여 생활을 근심하고 염려하지 않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구제받지 못하여 낙심하거나 생명에 위험을 느끼는 일이 없도록 집사들을 세워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제자들의 수가 더 많아졌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들도 이 도에 복종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의 ‘제사장이 복종했다’는 말은 민수기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의미심장합니다. 

옛 나라의 성전의 직무자들이 들어와 복종했다는 말입니다. 성소와 단을 지켰던 직무를 버리고 이제 사도와 집사의 직무로 봉사하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처럼 죽지 않도록, 죄를 정결케 하는 직무가 사라졌습니다. 더 많은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성령을 선물로 얻는 새 새명의 나라에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땅의 여호와의 성소에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도록 지키는 자들이 아니라 하늘의 성소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들이 더 많아지도록 신약의 교회 직무자들이 봉사를 한 것입니다. 신약의 직무자들은 영생을 얻도록 하는 일에 봉사했습니다.
 

7.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을 봉사하는 직무자들은 누구인가?

1) 말씀의 직무자

디모데전서에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신 집을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 가를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교회에 귀신의 가르침을 좇는 자들이 나타나 미혹케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선한 싸움에 교회는 감독과 집사를 잘 선출해야 합니다. 군대의 지휘관이 어리석거나 바르지 못하면 많은 사병들이 전쟁에서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딤전 3:1절입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8-9절입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 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라.” 이들이 믿음을 가지고 선한 봉사를 하게 되면 성도들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영생을 쟁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디모데는 말씀을 가르치는 직무자의 일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즉 성도들을 경건의 교훈에 착념하도록 해야 하며, 부자가 되려 하는 일에 경계해야 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 이를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다시 오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망하지 않고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려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딤전 5:17-19절입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하되 특히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베스트를 다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존경을 베스트로 하는 것이겠습니까? 

뒤에 18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일하는 자에게 삯을 주라는 말입니다. 즉 교회의 사역자가 그 일을 하기에 근심하지 않도록 생활을 부양하고 책임을 져야 하고 그것이 교회가 사역자를 청빙할 때 반드시 서약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두 세 증인이 없이는 장로들에 관한 송사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경우 그만큼 신중하고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말씀으로 봉사하는 직무자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고, 그 사역자 자신에 대한 존엄성도 있겠지만 결국 하나님이 세우신 직무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2) 봉사의 직무자

그럼 일곱 집사를 어떻게 예루살렘교회는 선출했습니까? 3절과 5절에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온 무리가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뽑았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을 선출했다는 말인데 그럼 그들은 어떻게 성령이 충만했을까요? 곧 지혜와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믿음이 충만하고 지혜가 충만할 수가 있나요? 어떤 사람들이 믿음이 충만하고 지혜가 충만한 사람인가요?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에 이은 속편입니다. 즉 부활하셔서 보좌 우편에 승천하신 주님이 성령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아 부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이 주님의 일을 하며 주님의 증인으로 사는 자요, 구름 가운데서 올리운 대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요 모인 형제와 자매들이 하늘 가족임을 알고 섬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어떤 지혜입니까? 예전 교회에서는 금요일마다 철야기도를 기도원으로 다녀왔습니다. 밤새도록 기도하고 성령이 충만하다고 은혜받았다고 좋아하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그곳을 교회버스를 이용해서 다녀왔는데 정원보다 성도님들 숫자가 더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냐면 자유롭게 기도하는 시간을 아주 짧게 하여 어느 누가 좌석을 먼저 차지하는지 쟁탈전이 일어났습니다. 서로 좋은 좌석 차지하려고 노인네들부터 뛰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전에 성령충만한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이렇게 교회를 봉사하되 어렵고 힘든 일은 피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일을 찾아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점심식사를 봉사하더라도 일 잘하는 집사님들 편에 서서 감당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수고가 덜해 지고 자기 힘이 덜 들게 되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이런 지혜가 아닙니다. 성령충만함으로 지혜가 충만한 자는 특히 집사들은 이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 제외되었던 것을 안 것처럼 더 약하고 더 어려운 곳에 손을 펴는 사람들이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았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증거했습니다. 누가복음은 가난한 자들에게 희년을 주러 주님께서 오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주님의 지혜가 함게 하는 자가 성령충만한 제자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지혜가 충만한 집사들을 세워 교회 안에 핍절한 자가, 소외된 자가 없도록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능한 많은 집사를 세우는 것이 더 좋습니다. 십시일반이라고 조금이라도 더 교회의 약한 점을 살펴보는 일을 협력해서 나타내지 않겠습니까?

교회는 모든 자가 같은 일을 하는 직무자가 아닙니다. 교회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는 자기 직무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경계해서 가르쳐야 할 부분이 바로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즉 회사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하는데 교회일은 봉사가 매우 약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엇을 사랑하는지, 어떤 선한 일을 사모하는지 분명하게 드러나 보인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목사 혼자 잘해서도 안되고 장로님들만 잘해서도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한 몸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각기 다르게 공급하여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를 이루어 서로 협력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셨습니다. 

제가 좀 오지랖이 넓습니다. 교인들이 전세계약을 해도 내가 보고 확인하지 않으면 안심이 안되었습니다. 제가 있었던 교회는 그게 사역자의 사명인 줄 알아서 모든 교역자가 성도들의 집에 젓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사랑이 많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도들을 마마보이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사역자가 시키지 않으면 아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8. 신약의 직무자가 할 일과 구약의 직무자가 할 일의 차이.

신약교회의 직무자는 죽은 자를 살려 영생을 얻게 하는 일에 보호자가 됩니다. 구약교회는 단지 죽지 않도록 방어만 할 뿐입니다. 

고린도후서 3:6절입니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구약의 직무자인 레위지파와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소 가까이 나아오는 것을 막아서 그들로 죽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는 생명의 교제는 누리지 못한 셈입니다. 결국 율법을 따라 레위 지파가 자기 직무를 지키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가까이 나아오지 못하도록 막아 육체의 생명은 보존되었으나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은 죽은 것과 같으니 의문의 법인 율법은 죽이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신약의 직무자는 약하고 가난한 형제를 돌봄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늘 성소에 나아가는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 앞에 담대히 나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주님이 지금도 대제사장으로 교회를 위하여 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10:19-20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스스로 가난하게 되셔서 우리를 하늘 성소에 나아가는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여신 것처럼 이제 교회의 새로운 직무자도 약한 형제들을 보호함으로 그들로 하늘 성소의 구원의 길로 나아가도록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실제 신약교회의 직무자는 살리는 영의 직분입니다.

 
9. 맺음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더 약하고 가난하며 어렵고 힘든 부분을 돌아보며 봉사함이 성령이 충만한 지혜가 있는 일꾼입니다. 이 일은 참으로 영광스럽습니다. 가나안 땅의 여호와의 집에 나아가지 못하게 하여 그들의 죽음을 보호하였던 구약의 직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펴는 손 하나하나가 형제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는 생명의 손입니다. 우리 주님이 오셔서 고난과 죽음을 당하사 휘장 가운데로 새롭고 산 구원의 길을 여신 것처럼 여러분도 이 일에 참여하여 형제로 구원의 새 길을 가도록 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 앞에 가까이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느 직무가 이런 영광을 줄 수가 있겠습니까? 단,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진 직무를 성실하게 감당하여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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