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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가 받는 능력(고전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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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바라보는 자가 받는 능력(고전 1:18)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주 내게 행하셨네” 

우리의 약함이나 가난함은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약함과 가난함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주에 망운중앙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몸이 너무나 좋지 않아서 설교하는데 힘이 들었습니다. 목감기로 목소리도 좋지 않았고, 이틀간 설사를 하느라 기도회를 인도하는 중에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집회를 강력하게 이끌고 싶었으나 오히려 다른 때보다 더 약하게 집회를 인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다른 집회 때보다 더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그런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가장은 가족을 먹여 살릴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능력이 없으면 가족들에게 무시당하는 세상입니다. 과거에는 무능력해도 가장이라는 권위 하나만으로도 가족들에게 군림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능력 없는 가장은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왕따 당하는 시대입니다. 어디 가장만 그렇겠습니까? 직장인도, 사업가도, 전문가도 심지어 목회자도 능력이 없으면 배척당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능력을 얻으려 합니다. 돈을 버는 능력, 공부를 잘하는 능력, 천재적인 능력을 사모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사모해야 할 능력은 주님의 능력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낮아지셨고 고난 당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능력을 믿고 주님 앞에 나아가 도움을 구하면 주님은 우리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십자가의 도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믿고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오직 승리만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능력은 주님을 찾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벤허(Benhur)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을 때에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전통적인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우발적인 사고로 졸지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노예로 끌려 갈 때 갈증으로 죽게 되었을 때 한 사람이 물을 주어 마셨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었습니다. 그 후 사랑하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문둥병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문둥병자들만 모여 사는 곳을 추방당하였습니다. 가정이 쑥밭이 되고 말았습니다. 

벤허는 노예로 끌려가 배속에서 노를 젖는 일을 합니다. 죽기까지 이 일을 해야 합니다. 배를 젖다가 체력을 잃으면 죽여 버렸습니다. 그의 인생이 끝장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배가 침몰하였습니다. 벤허는 로마 호민관의 생명을 구하였습니다. 그래서 호민관의 양아들이 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라는 청년이 사형 당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벤허는 구경을 나갔습니다. 그 청년을 보고 놀랐습니다. 자기가 노예로 끌려 갈 때 갈증으로 죽게 되었을 때 물을 주어 살린 이였습니다.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였습니다. 미친 듯이 달려가 물을 떠 예수님에게 마시게 하였습니다. 

로마 병정이 채찍으로 치며 물 주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로마인에게 노예로 끌려가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던 참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로마인을 향한 증오가 지글지글 타올랐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에 평화가 깃들었습니다. 로마 병정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순간에 벤허의 마음은 왠지 모르는 기쁨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와 누이의 문둥병도 다 나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던 그 순간 병도 다 나았고, 마음에 미움도 다 사라지고 가정도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십자가는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능력이 어떤 것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첫째, 죄사함의 능력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죄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되었고 에덴을 상실했고 온갖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질병도, 가난도, 불행도, 죽음도, 지옥도 죄로 인하여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죄사함은 오직 피흘림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성경은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피가 죄를 속한다고 말씀합니다(레 17:11). 그래서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피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죄 지을 때마다 피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으신 예수님이 인류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심으로 인간의 원죄와 우리가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까지 모든 죄악에서 우리를 구속해주셨습니다. 성경은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골 1:14)고 증거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가면 주님은 우리의 죄를 먼저 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셔서 죄사함의 능력을 경험하게 해주십니다.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은 빛입니다. 빛 앞에서 온갖 더러운 것이 드러나듯이 주님이 은혜를 주시면 주님의 빛으로 인하여 자신의 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죄사함은 죄를 보므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기 잘못을 깨닫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느 처녀가 호두과자를 사가지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옆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그 여자와 자기 가운데 놓여 있는 호두과자를 자꾸만 꺼내 먹는 것이었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끝까지 같이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한 개가 남으니까 얼른 집어 반 잘라 자기에게 주는 것이었습니다. 별 남자가 다 있다고 속으로 욕하고 집으로 와 보니 자기가 산 호두과자 봉지가 자기 가방 속에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전화도 걸 수 없고 혼자 어쩔 줄 몰라 하였습니다. 자기 잘못을 깨닫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님 앞에 서면 죄가 깨달아집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실패한 후 주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는 밤새워 그물을 던졌기 때문에 지치고 허기지고 쓸쓸한 마음으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를 빌려 수없이 몰려 든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한 참 말씀을 전하시던 예수님께서 그물을 깊은 곳에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하였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자 죄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던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아들이 너무 방탕하였습니다. 친구들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친구와 관계를 끊으면 되리라 생각하고 아들을 잘 되게 하여 보고자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미국에 가자 아들은 얌전하여졌습니다. 그러나 말을 하게 되고, 친구들을 사귀자 또 방탕을 시작하였습니다. 술을 먹고 죄를 범하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어두운 방에서 아버지 펑펑 울면서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들이 방 밖에서 아버지의 눈물로 뒤범벅이 된 기도를 들을 때 주님의 빛이 아들에게 임했습니다. 주님의 빛을 받은 아들은 그 때 자기 죄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회개하고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죄를 깨달은 사람이 회개하면 어떤 죄든지 다 용서해 주십니다. 

중국에서 나병 환자촌에서 선교하고 있는 김 요석 목사님 간증 테이프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북에서 생긴 일입니다. 어느 마을에 몰래 예수를 믿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일어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아들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공산 사상에 깊이 물들었을 때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어머니를 당에 고발하였습니다. 그 동네에서 아들이 친 아버지를 고발한 사건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공산당은 온 마을 주민을 교육을 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공개재판하기로 하였습니다. 사형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를 벙거지를 씌우고 손을 뒤로 하여 꽁꽁 묶어 무릎을 꿇려 올려놓았습니다. 그 앞에서 아들이 고발장을 큰 소리를 읽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이들은 공산당을 배반하고 아침마다 미신 같은 신에게 기도한 배반자입니다” 

공산당원들은 이 아이를 영웅으로 치켜세웠습니다. 그리고 상을 주고 대단히 환영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는 어디론가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한편 이 아이는 영웅이 되었지만 고아가 되었습니다. 공산당은 이 아이가 공산사상이 투철하다는 이유로 공부를 시키고 길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결혼을 하였습니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이 국민학교를 들어갔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아버지를 보고 싱긋이 웃는 데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사형 당하신 아버지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보고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서야 비로소 자기가 부모님에게 얼마나 죄를 지은 것인지를 알기 시작하였습니다. 결혼하고 아들을 낳고 자기가 아버지 고발할 때 나이가 들어서야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런 번민 속에서 김 요석 목사님을 만나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죽은 아버지 어머니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날 펑펑 울면서 김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도저히 용서받지 못 할 죄도 용서하시나요?” 김 목사님은 무슨 의미인지 알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보다 더 한 죄도 용서하십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위의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이제 자기도 아침마다 기도하고 있고 아들이 자기를 고발할까봐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니다.

강문호 목사님이 기도원에서 집회할 때 한 사람이 목사님께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장마철에 한강에 물 구경을 하러 나갔습니다. 집도 떠내려가고, 돼지도, 통나무도 온갖 것들이 다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여자가 떠내려가면서 “살려 주세요”라고 소리 지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손가락에서 금반지들이 반짝 거리고 있었습니다. 손가락마다 금반지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다급하니까 금반지만 모조리 챙기었던 것 같습니다. 그 남자는 여자에게로 생명을 걸고 수영을 하여 들어갔습니다. 그 여자를 구한 것이 아닙니다. 금반지를 빼려고 하였습니다. 손이 물에 불어서 금반지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손가락의 반지는 잘 뺏는 데 어떤 손가락에 낀 반지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손가락을 잘랐습니다. 그리고 금반지 금 목걸이를 다 빼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날 밤부터 자리에 눕기만 하면 “으악” 하는 그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금반지 하나씩 팔아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밤새도록 술을 마셨습니다. 자다가 깨어 보니 술집이었습니다. 목마르기에 갈증으로 옆에 있는 그릇의 물을 마시고 보니 재떨이에 있는 물이었습니다. 담배꽁초, 술 마시다가 딸아 놓은 술 찌꺼기, 침 뱉은 것 등의 혼합물을 마신 것이었습니다. 

‘내가 짐승이지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사실 그런 사람은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지요. 그는 터덜터덜 공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새벽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새벽부터 왠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나?’ 하고 따라 들어가 보았습니다. 교회 새벽기도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앉아서 목사님 설교를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어도 예수님의 십자가만 붙들면 다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시면서 강도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강도짓을 하였어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사함 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설교였습니다. 그는 이곳이 바로 내가 평안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부터 교회 다니기 시작하여 지금은 그 죄로부터 자유함을 받고 평안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주님에게는 어떤 죄도 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면 어떤 죄도 사함 받는 능력을 받게 됩니다. 

둘째, 문제 해결의 능력입니다.

이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문제는 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문제가 일어나게 된 원인을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 우리 삶에는 저주의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납니다. 

그러므로 죄를 해결하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면 문제도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골 1:20절 보면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시는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랐을 때 재앙이 피해간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면 재앙이 우리를 넘어가고 우리 삶에도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막막한 일을 만나거든 우리의 어떠한 문제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주님을 바라보시고 믿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사모의 이야기입니다. 목사님이 돌아가시자 토요일 밤에 장로님들이 마지막 봉급을 가지고 오셔서 같이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마지막 드리는 이나 마지막 받는 이가 같이 슬퍼하였습니다. 사모님은 그 돈을 얼마인지 세어 보지도 않고 밤새 어린 세 자녀 기를 생각에 울었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 가려고 하는 데 ‘하나님이 계신 데 왜 내가 이렇게 약해지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돈을 새벽기도 시간에 몽땅 헌금했습니다. 그리고 주님만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 후 세 자녀는 목사, 대학교수 그리고 목사 사모가 되어서 다 잘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막막해도 주님 앞에 나가면 문제 해결의 능력을 주십니다. 

탤런트 김혜자 권사님의 딸의 간증입니다. 김혜자 권사님은 지금 남대문 교회 권사님으로 계십니다. 권사니까 얼마나 신앙생활이 오래 되었고 인정받았을까요? 그런데도 그 권사님은 방송가에서 유명한 골초였습니다. 심지어는 성경을 읽으면서도 담배를 피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담배 냄새가 싫더랍니다. 그래서 담배를 끊었습니다. 방송가에서는 그 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담배를 끊고 권사님이 미국에 있는 딸한테 전화하다가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얘야, 이상한 일이다. 담배 냄새가 갑자기 싫어졌다. 그래서 담배를 끊었다." 그 얘기를 듣고 딸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알고 보니까 딸이 엄마가 담배를 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3개월 작정 새벽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권사인 엄마의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기 싫게 생각한 딸이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김혜자 권사님에게 담배 냄새가 싫어지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IMF 때문에 수많은 부도사태가 났습니다. 정말 심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사태는 기도가 부도나는 것입니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문제를 당하는 것도 문제인데 더 심각한 것은 문제 속에 있으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문제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데, 문제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고 교회를 찾아오는 횟수가 줄어들며 영적으로 다운됩니다. 이게 진짜 문제입니다. 
조용기 목사 - 브라질에서 여권을 잃어버리고 길바닥에서 기도하니 ...


셋째, 치료의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신 이유는 우리를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키시기 위함입니다. 벧전 2:24에 보면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주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으로부터 치료되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우리를 괴롭히는 미움, 원망, 시기, 분노, 질투, 절망과 같은 마음의 병도 치유합니다. 이웃과 벽을 쌓고 자기만 잘살겠다는 이기심까지도 고칩니다. 예수님은 가족간에 화목 하지 못하는 불화의 병도 고칩니다. 심지어 병의 마지막인 죽음까지도 치유합니다. 우리가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공로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찾고 주님을 의지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 치료받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프랑스 군인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에는 배낭에 책 두 권은 꼭 넣고 나간다고 합니다. 하나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파스칼의 팡세입니다. 파스칼이 팡세를 쓰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여동생이 불치병 안질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파스칼은 처음으로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타나더니 동생 눈을 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파스칼은 기도를 마치고 동생을 찾아가서 눈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동생이 말했습니다. “오빠!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눈이 방금 나았어요” 이 때 파스칼은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철학자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노라. 확신, 확신, 사랑, 기쁨, 평화,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당신을 알지 못했어도 나는 당신을 알았습니다.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파스칼이 죽은 후에 옷에서 이상한 가죽 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옷깃마다 가죽에 이 말을 적어 놓고 그 것을 넣고 다녔음이 발견된 것입니다. 주님에게는 치료의 능력이 있습니다. 

넷째, 부요의 능력입니다.

어느 시골의 할아버지가 서울에 있는 아들 집에 가려고 서울역에서 내려 택시를 탔습니다. 아들 집 앞에서 내릴 때 요금표를 보니 오천 원이 나왔습니다. 할아버지는 돈이 아까워 기사에게 이천 오백 원만 주었습니다. “할아버지, 오천 원이에요.”, “나 혼자 타고 왔나? 자네도 타고 왔잖아.”, “할아버지, 어찌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세요? 오천 원을 주셔야 돼요.”, “아, 이 사람아, 둘이 탔으니 반반 나눠야지.” 할아버지가 자꾸 우기니 결국 운전기사가 이천 오백 원만 받았답니다. 그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잔머리를 굴렸겠습니까?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요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해 우리의 가난을 담당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분은 얼마나 부유하신 분이십니까? 온 하늘과 땅이 그분의 것입니다. 시 50:10-12을 보면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짐승도 내 것이며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에 부요하신 주님이 나의 가난의 짐을 지시고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태어나실 때 마굿간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땅에 오셔서 머리 둘 곳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가난하게 되신 이유를 고후 8:9에서 분명히 밝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현대인에게 가장 힘겨운 것은 가난입니다. 우리는 가난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가난의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과 함께 했던 이들은 항상 넉넉히 남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시면 빈 배도 가득 채워졌고,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도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세계의 역사를 보더라도 주님을 믿은 나라들은 부강한 나라, 힘 있는 나라, 건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남편 잃은 선지자의 제자의 부인이 엘리사 선지를 찾아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재정적 위기에 신적 개입을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간섭하시면 자신 안에서 재정적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하나님은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과연 그에게 재정적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릇을 빌려 기름을 부으니 그릇이 다 찰 때까지 기름이 나왔습니다. 그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생활했습니다. 

지난 화요일 목양 컨퍼런스에 갔던 아내가 그곳에서 듣고 와서 저에게 전해준 간증입니다. 용인에 있는 교회가 교회를 건축하고 빚이 20억이나 되었습니다. 건축하고 남은 청장년 교인이 약 30명 정도 되는데 이자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교회를 팔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양하는 학생들이 믿음으로 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교회이니 교회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은 하나님께 재정을 공급해달라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철야 하며 부르짖었습니다. 학생들이 재정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학생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외부에서 20억이라는 돈이 와서 빚이 청산되고 교회를 지켰습니다. 

우리교회 자동차가 좋지 못해서 장로님들과 안수집사님들이 회의를 했습니다. 견적을 뽑아보고 자동차를 고칠지 수리할지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 망운중앙교회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금동화평교회 주현광 목사님이 다녀갔는데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 교회는 노인 10명 나오는 교회인데 자동차 수명이 다되어서 기도했더니 외부에서 2400만원의 헌금이 들어와서 자동차를 바꿨다는 것입니다. 그 간증을 듣는데 ‘내가 왜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있던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다함께 자동차를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존 아반지니 박사의 책 중에 「채무의 영을 결박하라」는 책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시고 채무의 영을 주님의 이름으로 대적하십시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채무의 영은 떠나라!” 또 조상으로부터 계속 내려오는 가난의 저주가 있습니까? 가난의 저주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난의 저주는 떠날 지어다.” 끊임없는 재정적 압박이 있습니까? 선포합시다. “나는 자유인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질적 압박은 떠나라!”


다섯째, 변화의 능력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신분을 바꾸신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도 바꾸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면 주님은 우리의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인생의 목적이 바뀌면 그 사람의 삶도 완전히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베드로의 인생이 물고기 잡는 어부에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몇 년 전에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The Passion of the Christ”라는 영화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명감독 멜 깁슨의 역작입니다. 그는 할리우드 최고의 감독으로 각광을 받다보니 교만하여져서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도 했었고, 마약과 도박에도 빠져서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이 너무 허무하고 공허해서, 고층 빌딩의 창밖으로 뛰어내려 자살할까 고민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깊은 회개를 경험하게 됩니다. “나는 정말 나쁜 죄인이다. 내 죄악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것이다.” 이런 영적인 변화의 경험을 하고 난 후에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멜 깁슨은 이 영화를 12년 동안 구상했다고 합니다. 그가 3천만 달러라는 거액을 들여 이 영화를 만든 목적은 십자가의 능력을 전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허무함을 발견한 후 주님 앞에 나아갔고 주님은 그의 인생을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멜깁슨은 영화 촬영을 감독하던 중 일어난 감동적인 일들을 간증해줍니다. 영적인 영화를 제작하는 일에 임하는 사람들이 정결해야 했기 때문에 촬영하는 동안 매일 오전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일에 종사했던 모든 사람들이 변화를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팀 멤버로 있던 불가지론자들과 무슬림들마저도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다고 보고해줍니다. 주님은 영화 감독인 멜깁슨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모든 멤버들을 변화시키셨습니다.  변화의 능력입니다.

심한 가뭄이 들어서 농부들이 물싸움을 하는 판에 한 성도도 밤 새워가며 자기 논에 물을 대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집에 들어가 잠깐 눈을 붙이고 나와 보니 아래의 논임자가 물을 모두 도둑질하여 자기 논에 대놓았더랍니다. 그는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인데 이 정도는 참아야지” 하고는 그날 밤도 자정이 넘도록 논에 물을 댔습니다. 새벽에 들어와 한숨 자고 나가보니 또 물을 빼갔습니다. 당장 쫓아가서 분풀이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꾹 참고 목사님을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기 전에 당신도 살고 그 사람도 사는 길을 찾아보십시오. 두 번이나 속았으니 한 번 더 속는 셈치고 아랫 논에 먼저 물을 대주고 당신의 논에 물을 대 보십시오.”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 성도는 울분을 달래며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아래 논임자가 울면서 “내가 그렇게 잘못했는데도 이번에는 내 논에다 물을 대주셨습니까? 저도 당신을 따라 예수를 믿겠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 성도의 순종을 보시고 주님이 변화의 능력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양영자라고 하는 유명한 탁구선수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탁구를 시작했는데, ‘테니스 앨보’라고 하는 팔꿈치 통증 때문에 자그마치 6년 동안을 시합에 나갈 때마다 진통제 주사를 맞고 나갑니다. 마지막이다 하고는, 18살 때 동경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에 나갔는데, 놀랍게도 중국선수를 물리치고 우승했습니다. 많은 신문들이 ‘양영자’야말로 한국 탁구계를 이끌만한 인물이라고 하며 얼마나 높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은 엄청난 고통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진통제를 맞아도 소용이 없는 팔꿈치 때문에 더 이상 선수생활을 없다고 생각하고 마지막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합니다. 기도원에 가서 눈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병을 깨끗이 고쳐 주셨습니다. 통증이 없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양영자의 인생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탁구는 이제부터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게 해 주시옵소서! 내 자신의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해 주소서.” 

선수촌에 가서 훈련을 하는데, 간염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받아 병을 고쳤는데, 또 간염이 걸린 것입니다. 선수촌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또 기도하니 또 간염이 나았습니다. 다시 선수촌에 들어왔습니다. 86아시안 게임에서 우승하고, 88올림픽에서도 우승했습니다. 88올림픽에선 한경기, 한경기마다 눈물 흘리며 기도하면서 경기를 치루었습니다. “이 금메달은 내 금메달이 아니고 하나님 영광의 금메달입니다.” 

그는 그때 이런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소망이요, 힘이요, 기쁨이요, 능력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탁구의 금메달이 아니고 천국의 면류관,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인도하심의 승리인 줄로 믿습니다.” 인생관이 바뀌었습니다. 그 유명한 이름 가지고 지금 몽골에 가서 선교사 생활 하고 있습니다. 그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변화의 능력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에게는 죄사함의 능력, 문제해결의 능력, 치료의 능력, 부요함의 능력, 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믿으십시오. 그러면 우리에게도 동일한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리이까?”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굳게 믿으면 굳게 설 것입니다. 굳게 믿지 못하면 굳게 서지 못할 것입니다. 능력의 주님을 확실히 믿고 풍성한 승리의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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