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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편이신 하나님 (시 11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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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신 하나님 (시 118:1~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이제 폐막식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선수들이 대단한 선전을 했습니다.  한국은 역대 가장 많은 메달을 받았고, 예상했던 목표를 훨씬 뛰어넘어 동계올림픽의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올림픽강국이 경제 대국으로 인식되는 때에 한국은 강한 인상을 심어주면서 다시 한 번 세계정상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번 경기를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여자 3000미터 쇼트트랙 계주경기였습니다.  한국은 이 분야에 독보적인 존재로 지금까지 계속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기대에 저버리지 않고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달렸고, 1위로 골인했습니다.  하지만 심판은 우리 선수의 진로방해 반칙을 선언했고, 급기야 실격처리를 하면서 금메달이 날아갔습니다.  선수들은 억울하다며 통곡했고, 코치도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온 국민도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이번 경기의 주심은 호주의 제임스 휴이시라는 사람입니다.  특히 이번 심판이 2002년 대회 당시 우리 선수의 금메달을 빼앗아 미국선수에게 준 사람입니다.  그래서 선수들은 더욱 억울해 하고, 국민들은 당시의 아픔을 다시 떠올리며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호주대사관을 폭발시키겠다는 협박문자가 접수되어 경찰이 진화에 나섰습니다.  올림픽에서 심판의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에 아무리 항의해도 회복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그런 아쉬운 면도 있었지만 이번에 가장 감동적인 경기는 역시 피겨스케이트의 김연아 선수였습니다.  그의 연기는 정말 환상적이었고, 거의 완벽했습니다.  김연아의 경기는 시간당 시청률로 최대를 기록했고, 서울시내 차량이 아주 한가했다고 했고, 주식매매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경기는 온 국민을 잠시나마 텔레비전 앞으로 모으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일손을 멈추고 숨죽이며 그의 경기를 시청했습니다.  이처럼 국민적 관심 속에 드디어 금메달이 확정되자 온 국민은 환호를 외치고, 박수를 치며, 모두 얼싸안고 감격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선수도 감독도 국민들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여러분, 왜 우리는 김연아의 금메달에 이처럼 열광했을까요?  왜 우리는 호주심판의 판정에 분통을 터트리고, 날아간 금메달을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같은 편, 우리 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상대선수가 잘해도 우리선수들에게 더 마음에 가고, 격려하고, 응원하고, 함께 울고 웃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내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시작하면 우선적으로 확인해야 할 중요한 것이 하나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내편, 우리 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앞서간 많은 신앙의 선진들은 그들의 삶에 하나님이 바로 내편임을 알고,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힘을 얻었습니다.  본문은 바로 그것을 대표적으로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강조하여 하나님은 내 편이라고 말합니다.  분명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그렇다면 내 편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대하실까요?  우리는 내 편이신 믿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내 편이신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가 무엇이며, 교훈이 어떤 것일까요?

첫째는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며 부르는 대표적인 노래 중의 하나입니다.  이 시를 정확히 누가 지었는지 저자를 밝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일인칭 단수 ‘나’가 많이 반복되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의 신앙을 고백하며 부르던 노래가 대중에게 확장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다윗이라는 것에 학자들의 이견이 없습니다.  본문은 다윗이 경험한 하나님, 그의 인생을 통해 발견한 하나님을 믿음과 신앙으로 고백한 시입니다.  그가 발견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바로 내 편이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139편을 통해 살피시는 하나님을 고백했는데, 오늘은 내 편이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6절과 7절에서 반복하여 ‘여호와는 내편이시라, 여호와는 내 편이 되사’ 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편이었고, 다윗은 하나님께 속해있었습니다.  바로 그 믿음으로 내 편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나와 함께 하시고, 이끄셨는가를 고백합니다.  그 가운데 먼저 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여기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내 편이 되셔서 나를 돕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이제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고관, 높은 사람도 의지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피하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다윗이 발견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언제나 함께 하셨고, 그의 편에서 도와주셨습니다.  특히 다윗을 대적하는 자에게서 도와주셨다고 말

합니다.  그는 자기를 대적하는 자의 보응을 본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닐 때에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시고, 악인들의 손에서 그를 보존해 주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다윗 편에 있었고, 다윗을 지키셨고 도와주셨습니다.

시편 121편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기에서 말하는 도움, 돕는자를 히브리어로 ‘에제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에제르의 하나님, 나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탄은 어떻게 하면 나를 넘어트릴까, 나를 유혹할까,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할까, 죄를 짓게 할까, 세상에 빠지게 할까, 그것을 위해 내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면 나를 도울까, 힘을 줄까, 바르게 살게 할까, 깨닫게 할까, 선을 행하게 할까, 성공하게 할까, 바로 그것을 생각하며 내 곁에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내 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고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도우시는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나 할 수 없는 일이나,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어떤 경우든지 우리는 내 편이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답답하고 괴로울 때, 막막하고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는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시인은 분명한 믿음과 신앙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내편이시니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10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뭇 나라가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열방이 자기를 공격해도 두렵지 않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내편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인생은 한마디로 두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 그가 성경의 무대에 등장할 때 그는 양을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목자가 홀로 들에서 양을 칠 때 엄습하는 두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외로움도 있다고 합니다.  나이가 어리거나, 목동의 경험이 없으면 더욱 불안해합니다.  다윗은 그런 시기를 거쳤던 사람입니다.  또한 그가 본격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과의 싸움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위협하며 거드름을 피울 때 그를 두려워하여 아무도 대항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도 사람인데 왜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자기 앞에 있는 두려움의 존재 앞에 떨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또한 그가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닐 때에도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입니다.  차라리 적군이라면 용감하게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겠지만, 그럴 수도 없었던 다윗의 당시 심정은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가득해 있었습니다.  왕이 된 이후 밧세바의 사건이 있은 뒤에도 두려웠습니다.  그는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함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런 예감이 집안의 살인과 강간으로 치닫더니 급기야 아들의 반역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는 다윗의 심정은 이제 두렵다 못해 허무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막막하여 더욱 낙심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계속해서 굴곡의 삶이었고, 두려움과 외로움이 그의 인생에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다윗의 삶에 그를 지탱하고, 담대하게 한 힘의 원동력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내 편이신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그를 굳건하게 세운 신앙과 삶의 원동력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시는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는 외로웠지만 외롭지 않았습니다.  쓸쓸했지만 혼자가 아니었고, 힘들었지만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질 듯 쓰러지지 않았고, 두려웠지만 결코 떨지 않았습니다.  어떤 상황,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돕고, 나를 붙잡고 있음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41:10)  예수님은 앞으로 세상의 현장에서 영적으로 싸우고 또 싸워야 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악한 자들이 경고하고, 협박하고, 위협해도, 내면에 흔들리는 상황이 생겨도, 사탄이 집요하고 공격해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담대함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말씀처럼 승리했던 것입니다.

김연아 선수의 별명이 ‘강심장’이라고 합니다.  이제 갓 20살의 어린소녀인데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 선수들이 연습을 잘해도 대회에 나가면 긴장합니다.  특히 올림픽과 같은 큰 대회에서는 더욱 긴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김연아처럼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 부담감은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또한 라이벌선수가 먼저 높은 점수를 받으면 더 초조해 지는 법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일본선수와의 대결에서의 승리는 바로 담력, 집중력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수요일에 일본선수가 먼저 연주하여 높은 점수를 받았을 때 김연아는 입을 삐죽 내미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차분히 연기를 마쳐 더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금요일에는 반대로 김연아가 먼저 연주하여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 뒤에 아사다 마오는 흔들렸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승패가 갈렸다는 것입니다.   김연아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강심장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고 세상으로 나가는 우리의 삶에도 이런 믿음과 담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신앙의 강심장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신데 무엇이 두려울 게 있습니까?  하나님 외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당당하게, 사탄과 악한 세력 앞에서 더욱 담대하고, 약해지고 쓰러지는 나를 향해 담대함을 선포하며 나가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분명 내 편이십니다.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 믿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찾겠다는 것입니다.  

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시편에 많이 나오는 평범한 기도처럼 보이지만 다윗의 중심에서 나오는 말이고, 깊은 감동이 있는 고백입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이 말씀에서 돋보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먼저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넓은 곳에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넓은 곳으로 세우는 것보다 더 귀한 축복과 은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결과에 이르기까지 다윗이 보여주었던 믿음의 모습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는 말입니다.  기도했다는 것이고,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특히 부르짖었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그의 기도는 간절하고, 절실하고, 절실했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내 편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찾으면 만나고, 그분을 붙잡으면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분께 매달리면 해결 받지 못할 문제가 없고, 그분을 의지하면 안 되는 것도 되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이 발견한 하나님이요, 믿음의 행동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정말 필요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진정 내 편으로 믿는다면 어찌 그분을 찾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찌 그분께 맡기지 않고, 어찌 기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특히 여기에서 다윗은 고통 중에 부르짖었다는 말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처절한 아픔의 순간이 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두움의 터널을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거친 파도가 엄습해 오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날들이 있습니다.  맥이 빠지고, 쓰러지고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에는 더욱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을 찾았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나와 동행하시고, 나를 아시고, 나를 붙잡고, 나와 함께 하시는 내 편이신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다윗처럼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날마다 부르고, 그분을 깊이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님을 절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특히 어렵고 힘들 때 더욱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고통 중에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고통을 다루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고통이 때론 축복이고, 유익이고, 나를 겸손하게 만들고, 성숙하게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일본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의 고백을 참 좋아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믿지 못할 기적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聖所)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 뵙지 못할 성안(聖顔)이 있다/ 아, 아!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 수조차 없다” 

아프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믿지 않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않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겸손하지 않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니 고통이 우리에게 축복이고, 은혜요, 선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고통은 물론 힘들고 아프지만, 고통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갑니다.  아주 가까이 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 가운데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라”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이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특히 고통 중에는 더욱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야 합니다.  아프고 힘들 때는 더욱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이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검은 구름이 덮이고 광풍이 일어나도, 괴로운 일 당하여 낙심이 되어도, 예수님은 나의 친구요, 하나님은 내 편이시고,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온천지는 변해도 하나님은 날 버리지 않습니다.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이 지금부터 영원까지 나를 붙잡고 있습니다.  이제 내 편이신 하나님을 굳게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보십시오.  특히 고통 중에 더욱 그분을 불러보십시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큰 도움을 받으며, 담대함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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