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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 은행에 잔고가 있는가? (사 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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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은행에 잔고가 있는가? (사 38:1~7)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불치병에 들린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낯을 벽에 대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3절에 보면 기도의 내용이 나오는데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이런 히스기야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6절을 봅시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15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 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히스기야의 기도를 잘 살펴보면 과거에 잘한 것을 기억하여 지금 살려달라고 하는 형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히스기아의 과거에 잘한 것을 인정하셔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의 모든 것은 하늘나라 창고에 저장된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아는 하늘나라의 영적 은행에 저장했던 것을 찾아 쓴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들이 무엇을 하늘나라 은행에 저장할 수 있고 그리고 그 저축한 것들의 잔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저축할 수 있습니까?
하늘 나라의 영적 은행에는 다음과 같은 5가지를 저축할 수 있고 5 가지를 찾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잔고가 없으면 역사가 없습니다. 그것은 진실 기도 구제 십일조 전도입니다. 

1. 진실 잔고가 남아 있습니까?

히스기야는 영적 은행에 진실을 적금 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앗수르가 쳐들어 오고 자기가 불치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진실을 찾아 사용하였습니다. 사 38:3절에 보면 히스기야는 기도하였습니다.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진실하게 그리고 전심으로 사랑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치적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왕하 18:2-7절에 보면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요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찢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 라고 했습니다. 

사실 25살이면 아직 청년이고 어린 나이입니다. 그 나이에 국가 경영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5살에 왕이 되어 29년 동안 나라 경영을 하였습니다. 그 동안에 한 일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1.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2.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어 버렸습니다.
3.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4.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았습니다.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결론은 7절에 나오는 마지막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라고 했습니다. 

진실은 영적 은행에 저축할 수 있는 품목입니다. 은행에 쌀을 맡길 수 없습니다. 은행에 책을 저축할 수도 없습니다. 은행은 오직 돈만 저축할 수 있습니다. 아무 것이나 다 맡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적 은행에는 진실을 받아 맡길 수 있고 진실하면 나중에 진실을 찾아 쓸 수 있습니다. 진실하면 인정받게 되어 있습니다.

2. 기도 잔고가 남아 있나요? 

영적 은행에는 기도도 저축할 수가 있습니다. 나중에 기도도 이자 붙여서 찾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여 두면 쌓이고 쌓인 기도 때문에 나중에 큰 화를 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말고 이방인으로 최초의 그리스도인은 고넬료입니다. 
고넬료는 로마 사람으로 이스라엘을 지배하러 왔다가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는 성령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고넬료의 그런 마음을 알고 말했습니다.
행10:31절에 보면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평소에 고넬료가 기도를 저축하여 놓았더니 하나님은 그 기도를 찾아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중보 기도는 영적 은행에 저축이 되어집니다. 여러분의 영적 은행잔고에 기도가 저축되어 있나요? 기도가 모자라 하나님이 문자 멧세지를 보내지 않으시나요?

3. 구제 잔고가 남아 있나요?

영적 은행에 저축되는 것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제입니다. 행10:31절의 말씀을 다시 읽어봅시다.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고낼료는 늘 기도하고 구제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구제를 받으셨습니다. 성경은 구제에 대하여 이렇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잠19;17)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눅6;38)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 본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 (잠28;27)
몇 주전에 아이티 지진 참사 구호 헌금을 실시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참여했지만 설날 관계로 고향에 다녀온 분들은 참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송천동에 있는 작은 예배당에 불이 났습니다. 우리교회가 매월 10만원씩 후원하는 교회입니다. 전기 누전으로 불이난 것을 일찍 발견하여 끄긴 했지만 성전안의 모든 성물들이 망가져서 손해가 크다고 합니다.
구제헌금이 더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 한편을 소개합니다. 
옛날 어느 왕이 한 남자에게 사신을 보내어 곧 입궁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 남자에게는 세 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친구와는 매우 친한 사이였습니다. 두 번째 친구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친구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친구는 친구이기는 했으나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겁에 질린 그는 무엇인가 문책을 당할 것이 틀림없으리라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인지라 아니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 친구를 불러 동행해 주기를 간청하였습니다. 
먼저 가장 친한 친구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냉정하게 한마디로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친구는 “왕궁의 대문 앞까지만 동행하겠다” 고 대답했습니다. 

실망한 그 남자는 세 번째 친구에게 같이 가지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자 세 번째 친구는 “당연히 같이 가야지. 자네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니 함께 임금님을 만나도록 하세” 라고 쾌히 승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친구는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친구였습니다. 
‘탈무드’에 의하며 첫 번째 친구는 ‘재물’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 물질이 아무리 좋아도 죽었을 때 장례식을 준비하는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친구는 친척을 뜻합니다. 겨우 무덤까지만 동행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가주겠다는 세 번째 친구는 구제를 뜻합니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사후에까지 남는 것은 이것 뿐이라고 <탈무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제를 잘하면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왜냐면 구제는 영적은행에 저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십일조 잔고가 남아 있나요?

십일조도 영적 은행에 저축할 수 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십일조에 대하여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말3:10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 하나 보라” 라고 했습니다. 십일조 잔고가 있어야 축복을 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적 은행에 십일조 잔고가 사라지지 않았나 점검하여야 합니다.

박재봉 목사님이 십일조 드린 4,000명을 조사하였습니다. 3,990명이 복을 받았습니다. 10명은 온전한 십일조가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7대 부자를 조사하니 모두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린 이였습니다. 석유왕 록펠러, 콜게이트 치약 사장 콜게이트, 맨소리담 회사 하이드, 아이보리 사장 크로웰 등은 철저히 십일조를 드린 이들이었습니다.

여의도 광장에서 대 집회에 강단을 만들어 봉헌한 장로님이 계십니다. 
오재경 장로님이십니다. 시골 고향이 너무 어려워서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기로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옷 안쪽에 주머니를 만들어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것은 십일조 주머니다. 얼마나 생기든지 10분의 1은 하나님의 것이다. 농부는 굶더라도 종자씨는 먹지 않는다. 어부는 굶어도 그물을 팔지 않는다. 십일조는 건드리지 말고 돈 생길 때마다 여기 넣었다가 하나님께 드려라”
오 장로님은 서울로 올라와서 날품팔이부터 하였습니다. 돈이 생길 때마다 어머니가 만들어 준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십일조 생활을 정확하게 하였습니다. 얼마 후 철공소 직원으로 겨우 취직을 하였습니다. 그 때에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지금은 재벌이 되었습니다. 십일조 잔고에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어느 날 안이숙 여사에게 한 여자 집사님 한분이 하얗게 질려서 뛰어 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백화점에 갔다가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들어 있는 지갑을 잊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안 여사가 물었습니다.
“그 동안 십일조 생활을 하셨나요?”
“네.”
“그러면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께 물질을 정확하게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 손해보게 하시겠어요? 나와 같이 백화점을 가봅시다.”
그리고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산 가게마다 둘렀습니다. 한 곳에 갔더니 주인이 너무나 반가워하면서 말했습니다.

“잘 오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렇게 많은 돈이 든 지갑을 두고 가셔서 얼마나 걱정하실가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연락할 만한 아무 연락처가 없어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한 푼 손실도 없이 고스란히 찾았습니다. 십일조는 영적 은행에 저축되는 돈입니다.
여러분의 잔고에 십일조 잔고가 있나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오늘 문자 멧세지는 오지 않았나요?
<십일조 잔고가 없습니다.>

5. 전도 잔고가 남아 있나요?

전도도 하늘의 영적은행에 저축되는 품목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말하고 있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빛나리라” (단 12;2-3)

헌금 많이 하는 사람이 천국의 VIP가 아닙니다.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 천국의 VIP가 아닙니다. 봉사 많이 한 이가 천국의 VIP가 아닙니다. 이들은 천국에서 면류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별과 같이 빛나는 이들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고 아끼시는 이는 전도 많이 한 이들입니다. 영혼을 많이 구원한 이들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적 은행에 전도 잔고가 남아 있나요?

진실, 기도 구제 십일조 전도의 잔고가 남아있는지 점검해보는 신앙이 됩시다. 혹시 잔고가 부족하다면 빨리 잔고가 채워지도록 노력합시다. 영적 저축을 많이 하여 잔고가 많이 남아 있는 신앙 생활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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