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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3.1절] 자유인, 하나님의 종 (벧전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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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 하나님의 종 (벧전 2: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오늘은 3.1절 기념주일입니다.
일본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우리나라에 통감부를 설치하고, 1910년에는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빼앗아 갔습니다. 우리 민족은 모든 주권과 자유를 일본에 빼앗긴 것입니다. 3.1 독립만세운동은 이러한 우리 민족이 민족적 자주생존권을 주장함과 동시에 자유를 선언한 운동입니다. 

3.1운동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 자유와 평등정신의 운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자유와 평등입니다. 3.1운동은 빼앗긴 자유를 찾고 일본인과의 불평등에서 평등을 찾기 위한 운동이었습니다.   
  
󰓎 의로운 운동입니다.
독립선언문에 보면 도의의 시대가 열렸다고 했습니다. 양심과 진리가 우리와 함께 함으로 만세를 부른 것입니다. 권력과 압제의 폭력에 양심과 진리와 도의를 빼앗길 수 없기 때문에 맨주먹으로 나가서 진리와 양심의 소리로 만세를 부르짖은 것입니다.  
  
󰓏 민주정신의 운동입니다. 
삼일운동은 어느 특정한 지도자가 지시한 사건이 아닙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전 민족이 일어나 자율적으로 일치단결하여 일으킨 민주적 운동이었습니다.
  
󰓐 비폭력저항 운동이었습니다.   
간디의 무저항 운동도 이미 삼일운동이 일어난 후의 사건이었습니다. 인도의 정신적인 지도자 네루수상이 자기 딸에게 “빈 손들고 독립운동을 편 한국의 저 소년들을 보라”고 했습니다. 3.1운동의 비폭력 운동을 표현한 말입니다. 독립운동의 공약삼장을 보면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신, 인도, 생존, 번영을 찾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고,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마지막 한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마지막 한 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민족의 의사를 시원하게 발표하라”
  
“모든 행동을 먼저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들의 주장과 태도가 어디까지나 공명정대하게 하라” 
  
3.1운동은 감정이나 파괴적인 생각으로 일으킨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총칼 앞에 빈손 들고 비폭력적으로 공명정대하게 자유와 독립을 주장한 운동으로 문화민족임을 드러낸 것입니다.  
   
󰓑 교회의 역사적 참여 운동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성서적으로 볼 때에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애족 하는 신앙입니다. 3.1운동당시에 기독교는 모든 교파를 초월해서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3.1 운동은 교회의 역사적 참여 운동이었고, 나라를 잃어버린 민족과 함께 하는 애국운동이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3.1 독립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과 동시에 주도적 역할을 다했습니다. 이 운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해  지도자들을 보면, 목사가 54명, 전도사가 127명, 장로가 67명이었습니다. 특히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가 16명이었는데, 그 중에 9명이 감리교 지도자였습니다. 기독교는 많은 교회가 불타며, 많은 신앙인들이 순교하면서 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며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축복 중의 하나는 자유입니다. 그러므로 토마스 제퍼슨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동시에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고 했습니다. 인간은 자유 없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패드릭 헨리는 “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너희는 자유가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새번역성서에서는 ‘여러분은 자유를 누리십시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어느시 대 보다도 자유를 누리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시대보다도 자유롭지 못함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참 자유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참 자유를 누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또 다른 자유를 찾아야 합니다. 그럼 그 자유는 무엇입니까?  

죄에서부터 자유입니다.
인간의 참된 자유는 ‘죄’로부터 자유 하는데서입니다. 죄의 지배와 죄의 영향력에서부터 자유 해야 인간은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죄에서 자유 해야 영혼의 자유를 가지게 됩니다. 왜 이유 없이 불안해야 합니까?  필요한 것 다가졌는데도 왜 만족할 수 없습니까? 죄 아래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에서 자유 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죄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까?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8:36)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6:1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 하도록 해 주셔야 합니다. 오로지 예수님만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를 주장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해 대속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구원 받고, 그 은혜아래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십니다.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참  자유의 기쁨과 평화 즐거움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나’ 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우리들은 ‘나’의 노예로 살아감을 봅니다. 그러나 참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나에게서 자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에서 자유를 얻어야 ‘너’가 보이는 것입니다. 나의 노예가 되면 너가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에 편견과 고집 속에 살게 되고, 이기적이 되어 모든 것을 나 중심적으로 생각하기에 항상 자기가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러기에 배려와 용납이 없습니다. 나누고 베풀어 주는 선행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혹, 선행을 행할 지라도 그 선행까지도 자기자랑이 되고 맙니다.    
  
나에서 자유 하여야 너가 보이는 것입니다. 너가 보일 때에 이해해 주게 되고 배려하고 베풀어 주게 됩니다. 간섭이 아니라 관심을 가져 주는 것입니다. 선행을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7-40)

네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내가 나에게서 자유 해야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화/ 조덕삼 장로-나에게서 자유로운 지도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그곳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의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세속성으로부터 자유 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삶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성공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야 하는 곳입니다. 세상은 관리하고 운영해야 할 곳인 데, 그 세상이 우리를 지배하는 곳이 될 때에 참 자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세상에는 세상이 만들어 내는 세속성이 있습니다. 세속성은 우리를 지배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세속성의 대표적인 성향은 쾌락적이며 소비적입니다. 세속성이 탐욕을 누리는 문화를 꽃피워 우리를 주관 할 때에, 우리는 참 자유를 가진 인생을 살지 못합니다. 자유의 보람과 즐거움을 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속성에서 자유 해야 합니다. 세속성의 노예가 아니라 세상을 고나리하고 운영하는 자유를 가져야 합니다. 이 자유를 가져야만 세속성이 꽃피워지는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세속성에서 자유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셨는데 그 자유를 잃지 않을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고 종의 삶을 살아가는데서입니다.

예화/ 항해 중에 새장 안에 있는 새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 자유는 하나님께 복종할 때만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6절부터  읽겠습니다.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참 자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감으로 참 자유를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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