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믿음의 실체와 허상 (요 4:5~30)

  • 잡초 잡초
  • 385
  • 0

첨부 1


믿음의 실체와 허상 (요 4:5~30) 

 
사람이 자기를 얼마나 아는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예로부터 아무리 물이 깊어 열 길이 되어도 그 물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만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한 자나 될까한 사람의 속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온통 사람의 마음을 몰라 안타까워하고 그 마음을 알고 얻고자하여 안달하고 있습니다. 

옛날 가수 [방주연]이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 중에 <당신의 마음>이라는 노래를 아시는 분이 많을 텐데 그 노래 가사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재밌습니다.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린다는 내용인데요.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턱 밑에 있는 점하나도 그리고 심지어는 빙그레 웃을 때 생기는 입가의 미소까지 다 그렸습니다만 마지막 한 가지 그리지 못한 것은 지금도 알 수 없는 당신의 마음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또 어떤 가수는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하고 노래하더니만 스타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나도 나를 알지 못해서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이처럼 사람이란 자기를 아는데도 여간 어려움이 많은 존재입니다. 흔히 사람이 자기를 아는데 네 가지의 시각으로 구분합니다. 먼저는 나도 알고 남도 아는 내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내가 나를 아는 만큼 남도 나를 아는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둘째는 나는 나를 잘 알지만 남이 모르는 내가 있습니다. 아무리 남이 나를 잘 안다고 해도 나만큼 나를 몰라요. 아마도 대부분이 이런 경우이리라 생각 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 경우는 나는 모르는데 남이 아는 내가 있습니다. 내가 잘 몰랐던 나의 장, 단점들을 남이 잘 꼬집어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맞는 것 같습니다. 남이 나를 더 잘 아는 부분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나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신비입니다. 아무리 알려고 노력을 해도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도, 훈련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끝까지 알아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오직 초월하신 분만이 아십니다. 결국은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결론입니다. 

이상의 네 가지를 두 가지의 차원으로 봅니다. <의식의 차원>과 <무의식의 차원>이 그것입니다. 내가 나를 어느 정도든 아는 경우를 <의식의 차원>이라고 말하고 나를 내가 모르는 경우를 <무의식의 차원>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의식의 차원이 많을까요? 무의식의 차원이 많을까요? 아무래도 무의식의 차원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우리가 잘 하는 말 중에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빙산의 일각이란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그 뜻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이 숨겨져 있고 외부로 나와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처럼 정말 빙산은 수면에 나와 있는 부분이 10분의 1에 지나지 않고 10분의 9는 물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자기를 아는 것도 그렇다고 여겨집니다. 자기를 알고 있는 <의식적 차원>보다 나를 모르는 <무의식적 차원>이 더 많을 것이라는 일리 있는 얘깁니다. 그러고 보면 매일 우리는 나를 안다고 하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판단할 것도 아니요, 남의 판단에 나를 맡겨서도 안 되는 것이며 오직 주님만이 나를 판단하고 하나님만이 나를 사용하도록 맡겨야 함이 옳은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허점투성이요, 실수투성이요, 부족함 뿐임을 고백하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때로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릅니다. 누가 나를 완전한 사람으로, 완벽한 인간으로 알고 있고 믿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숨 막히는 일입니까? 

제가 실수를 곧 잘합니다. 약속을 잊어 먹기도 잘하고 집에서도 엉뚱한 실수를 저지를 때가 종종 있습니다. 가령 휴대폰을 차에다가 그냥 두고 와서는 온 집안에 벨을 울리면서 찾아다닌다거나, 안경을 쓰고 안경을 찿느라 허둥대기도 합니다. 아내도 어디에 뒀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니까 제가 화가 나서 “의료보험증은 언제든지 들고 나갈 수 있도록 잘 둬야지 도대체 어디에다 두고 이렇게 고생을 하게 하느냐!”고 닦달을 했지 뭡니까? 

그리고는 나중에 제가 입고 다니던 옷 안 주머니에서 없어졌던 것이 나왔습니다. 어찌나 허탈하던지....그런데 그때마다 제 아내가 깔깔깔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완벽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럴 때 보면 그렇지 않아서 참 좋아요.”그럽니다. 처음에는 제가 실수도 안 하고, 똑똑하고, 깔끔한 사람인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살아 보니까 그게 아니라서 좋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제가 정말 완벽하고, 실수가 없는 사람이었다면 숨 막힐 뻔 했다는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 보다는 실수투성이인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합니다. 완벽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사는 그런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어차피 자기를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완벽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완전 초보운전자인 어느 목사님이 사거리에서 신호를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란불이 들어와도 차를 출발시키지 못해서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파란불이 노란불로, 빨간불이 다시 파란불로 바뀌어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이 때 교통경찰이 목사님에게 다가와서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속삭입니다.“목사님! 아직도 마음에 드시는 색깔을 못 고르셨습니까?”

인생은 언제나 초보 운전자처럼 사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안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초보운전자가 베스트드라이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늘 이런 마음자세로 사는 삶이 중요합니다. “내 삶은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내 인생은 주님이 주인이어야 합니다.”라는 고백적인 마음, 이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클레멘트 스톤]이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혁명이 있어야합니다. 마음을 바꾸어야 모든 것이 바뀝니다. 

교회학교 유치부에 다니는 한 어린 소녀가 어느 날 교회학교에서 급히 돌아와서 몸무게를 달고 있었습니다. “너 어제도 몸무게를 달더니 오늘도 또 몸무게를 다니?”라고 어머니가 묻자 그 소녀는 대답했습니다. “엄마, 오늘 아침에 내가 나의 마음을 예수님께 바쳤기 때문에 몸무게가 얼마나 줄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그래요. 그런데 엄마, 몸무게가 꼭 같아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오늘 아침에 내 마음을 주님께 드렸으면 더 이상 내 마음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아이의 생각입니다. 얼마나 옳은 생각입니까? 우리는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린다고 하면서도 ‘드렸으면 없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여전히 내 속에 남아 있는 나를 계산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너무나 유명한 한 여인을 성경에서 만납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되는 이방여인입니다. 그 가운데는 사별한 경우도 있겠소, 배반당한 경우도 있겠고, 저가 배반한 경우도 있었겠습니다. 아무튼 파란만장한 인생으로 인간적인 견지로 참으로 불행한 여인입니다. 이 여자의 행위로 보아서는 어쩌면 여자의 행복은 남편에게 달렸다는 소위 <종속적인 행복관>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릅니다만 결국에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보십시다. 진정한 행복은 남자에게 달린 것도 아니요, 여자에게 달린 것도 아닙니다. 물질이나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본문의 이 여자는 행복이 남자에게 있다고 믿었는지 무려 다섯 번이나 결혼을 하였지만 끝끝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남의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내 남편을 빼앗겼으니 나도 남의 남편을 빼앗을 수 있다는 권리를 주장이라도 하듯이 합니다만 어쨌거나 인간적인 행복을 찾아 평생을 헤매었건만 비참한 인간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자포자기하고 인생이란 결국 이런 것인가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 보기에도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물 긷는 것도 가장 뜨거워서 다른 사람들은 우물에 올 엄두도 못내는 시간에 몰래 몰래 길어다 먹습니다. 

마침 그때에 주님께서 그 곳을 지나가셨고 이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물을 좀 달라.”십니다. 주님의 부탁에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불만에 가득 찬 태도로 “유대인인 당신이 사마리아인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나를 무시하자고 하는 것 아닙니까?”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듯 대꾸합니다. 

지금 이 여자는 우물가에서 물 한 그릇도 선뜻 내주지 못할 만큼 꼬부장해져 있습니다. 물을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과 시비를 벌이려 듭니다. 자, 이런 여인을 예수님이 만나주시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변화 되게 하셨습니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은 이 여인의 변화된 모습니다. 지금까지 이 여인은 허상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주님이 물을 얻어 마시고자 하셨던 그때까지 이 여인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은 허상이었습니다. “인생이란 이렇게 허무한 것이라.”는 인생에 대한 허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꿔 가면서 누리고자 했던 것은 행복에 대한 허상이었습니다. 쾌락의 허상이었습니다. 이 허상에 사로 잡혀 있을 때에는 영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생각에만 빠져 있었습니다. 감정이 온통 메말라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서너 시간을 토론을 벌인 것도 아닙니다. 여타의 사람들처럼 병을 고쳐 주신 것도 아닙니다. 여러 해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공부를 한 것도 아닙니다. 단 한번 예수님과 만남으로 인해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고 시원함을 얻게 됩니다.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28절에 보게 되면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증거 합니까? “나의행한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자기의 속을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말하지 않은 것까지, 남편이 다섯 있는 것까지, 마음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시는 주님을 뵈었다는 것입니다. 만나주시고, 사랑해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께 감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모습인 예배하는 자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자기의 허상에만 매달려 살던 사람이 주님을 만나고 영적실체로서의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만남에서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의 문제, 즉 여럿이 되는 남편의 문제나, 이방인 된 신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이 아니라 문제가 문제 되지 않게 만드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이든지 해결을 얻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아서 괴롭고, 슬프고 심지어는 신앙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 중요한 주님의 문제해결 방법은 문제를 문제 되지 않게 하시는 데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문제 많은 사람들입니다. 어디를 봐도요 하나님의 자녀가 될 만한 구석이 없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그 문제들을 문제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 문제들로부터 자유케 해 주셨습니다. 그것들은 신앙의 허상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영적실체로서의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 신분에 걸맞게 사느냐가 중요 할 뿐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아직도 신앙의 허상에 매여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이미 주님을 만난 자들 아닙니까? 주님을 만나자라면 영적 실체로서의 자신을 볼 줄 알아야합니다. 그림자에 불과한 세상의 잡다한 것들에 매여서 욕심 부리느라고 그림자 너머에 있는 영적 실체를 보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며, 슬픈 일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 영적실체로서의 자신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신앙의 승리가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