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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1) (고후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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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자신을 확증하라(1) (고후 13:5)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1. 오늘 본문은 현대역으로 “여러분은 믿음으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 살피고 시험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 시험에 불합격한 사람입니다.” 라고 읽습니다. ‘믿음 안에 있는가?’ 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과연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가를 알아보고 자기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보라는 것입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 의로운 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에녹은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방주를 만들어 구원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하나님께 바쳐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히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았을 때 믿음으로 이삭을 바쳤습니다. 그는 많은 후손을 보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인데도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바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통해서 난 사람이라야 네 후손으로 인정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까지도 다시 살리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말하자면 아브라함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삭을 다시 받은 셈입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히11:1-26) 하나님의 상 주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히11:6)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지만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습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이전 시대(B.C.)나 예수 그리스도 시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후 시대(A.D.)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변함이 없이 믿는 자에게 구원과 승리와 축복을 받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믿음을 확증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복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2. 예수께서 하루는 갈릴리 호수가에 배를 데시고 배 위에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어느 덧 날이 저물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 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즉시 노를 저어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에 이르렀고 예수께서는 피곤하셨는지 곤히 주무주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풍이 몰아쳐 엄청난 풍랑이 일자 물결이 배를 덮쳐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일촉즉발(一觸卽發) 침몰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 고물, 배 뒤편에서 베개까지 베시고 풍랑과 전혀 상관이 없는 평온한 모습으로 주무시고 계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다급한 나머지 주무시는 예수님이 야속하게 생각되어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모른 척하십니까?” 라고 소리치며 깨웠습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향해 “잠잠 하라!”, 풍랑이는 바다를 향해 “고요 하라!”고 명령하시자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람은 멎고 풍랑은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어찌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제자들은 몹시 두려워하며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도 복종하는가?’ 하고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제자들은 그간 예수 그리스도와 동고동락하면서 수많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기적과 권세있는 하나님 말씀을 보고 들었음에도 “어찌하여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풍랑을 만나 침몰 위기에 빠졌을 때,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모른 척하십니까?” 라고 소리친 것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호칭은 제자들이 아직도 예수가 누구이신지 완전히 깨닫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과의 관계는 단순히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시고, 제자들은 구원받아야 할 죄인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와 죄인과의 관계입니다. 

실로 우리가 예수를 향하여 어떤 호칭으로, 어떤 외침을 부르짖는가에 따라 우리 신앙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시험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람과 바다를 한 인격체처럼 꾸짖고 타이르는 것은 그가 창조하신 자연세계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자, 만유(萬有)의 주(主)님이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실로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권위와 능력을 한껏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아주 잔잔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직도 무서워하며,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제자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라며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실 뿐만 아니라 바다 위를 걷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구세주)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 본체(本體)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고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B.C. 1070년경 이스라엘 사사시대에 엘가나라는 사람에게 한나와 브닌나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남편 엘가나는 자식이 없는 한나를 브닌나보다 갑절이나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한나에게 자식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브닌나가 자식을 낳지 못하는 한나를 비웃고 조롱하며 몹시 괴롭히고 업신여겼습니다. 견디다 못해 한나는 성전에 나가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합니다. 

“(삼상1:11)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다음 날 남편과 함께 예배드리고 돌아왔는데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기억하셔서 그 밤으로 잉태하게 되었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사무엘’은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아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후 서원한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자 한나는 3남 2녀를 더 낳게 되었습니다. 구한 것에 더 넘치도록 채워주셨습니다. 태(胎)의 문을 열게도 하시고 닫게도 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한 한나가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삼상2:1-10) 여호와께서 내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축복하시고 높여 주셨으므로 내가 원수들에게 뽐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나를 구해 주셨으니 나는 정말 기쁩니다. 여호와처럼 거룩하신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주 밖에는 다른 신이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보호자도 없습니다. 교만한 자들아, 너무 잘난 체하지 말아라. 거만한 자들아, 너무 우쭐대지 말아라. 여호와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다. 그가 너희 행위를 판단하시리라. 한때 배불리 먹던 자들은 이제 굶주리게 되었고, 지금까지 굶주리던 자들은 이제 주리지 않게 되었다. 자식을 낳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자녀를 많이 둔 자는 자식 없는 신세가 되었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사람을 저 세상에 보내기도 하시고 다시 돌아오게도 하신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그는 가난한 자를 티끌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잿더미 가운데서도 일으켜 그들을 귀족처럼 대우하시고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하시는구나. 땅의 기초는 여호와의 것이다.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네. 여호와는 성도들의 발걸음을 지키실 것이나, 악인은 어둠 속에서 말없이 사라지게 하시리라. 사람이 자기 힘만으로는 승리하지 못하는 법.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니 그가 하늘의 벼락으로 그들을 치시리라. 여호와는 온 세계를 심판하시고 자기가 택한 왕에게 힘을 주시며 기름 부어 세운 자에게 큰 영광을 주시리라.

한나의 찬양이 성도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고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람과 바다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 안에 거하는 믿음이 충만하여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2. ‘믿음 안에 있는가?’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라는 뜻이고, 이는 ‘하나님 말씀 안에 있는가?’라는 의미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는데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1:1-14입니다. 

(요1:1-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가셨는데 그곳 주둔군의 한 장교, 백부장이 예수께 나와 간구합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예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고 하시자 그 백부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내 집에까지 오시게 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나으라는 말씀만 한마디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 저도 웃사람을 모시고 있고 제 아래에도 부하들이 있어서 제가 부하에게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내 하인에게 ‘이 일을 하라.’ 하면 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에 놀라시며 따르는 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이스라엘 온 땅에서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동서 사방에서 많은 이방인들이 모여들어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니라.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통곡하며 이를 갈 것이니라.” 그리고서 예수님은 백부장에게 “가거라. 네 믿음대로 될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로 그 시각에 백부장의 하인이 나았습니다.(마8:5-13) 

예수께서 칭찬하신 백부장의 믿음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백부장의 간구에 예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치유 기적을 행하실 때 주로 병자들이 찾아오거나 만난 자리에서 만져주시거나 말씀하시므로 치유되었습니다. 직접 찾아가셔서 고쳐 주시겠다고 하신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점령자인 로마 사람들을 이방인으로서 경멸했고, 또 로마인은 유대인을 편협하고 배타적인 민족으로 멸시했었습니다. 

이러한 민족간에 장벽을 잘 알고 계시는 예수께서 직접 가서 고쳐 주시겠다는 것은 민족간 편견과 증오의 벽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허물어 버리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방인 백부장에게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마8:8-9)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라고 말함으로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고 그 앞에 겸손함을 나타낸 것입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라는 고백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자 하나님,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로 믿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 앞에 겸손한 백부장은 믿음을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군대 조직에서 이해하고 깨달았습니다. 명령하는 상관과 그에 복종하는 부하와의 관계 속에서 질병과 자연세계를 말씀 한 마디로 복종시키시는 하나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믿은 것입니다. 

만약 그가 예수를 어떤 비상(非常)한 의사로 생각했다면 특효약이나 손을 만지는 등의 치료 요법을 요청했을 것이고 또 능력있는 종교 지도자 정도로 생각했다 하더라도 기도나 안수 등을 요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대 세계 최고의 통치자 황제 이상의 존재로, 다시 말해 자연과 우주를 복종시킬 수 있는 만물의 통치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는 절대적인 능력과 권세가 있음을 믿었기 때문에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라고 했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 세계의 원리까지 꿰뚫어 본 백부장의 신앙의 지혜를 보여주는 답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백부장의 지혜롭고 겸손한 믿음에 감탄하셨습니다. 그리고 따르는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8:10-1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이 백부장은 이방인으로서 예수를 메시야로 계시하고 있는 구약 예언을 거의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어떤 유대인들보다 예수의 인격과 그의 본체가 하나님이신 것을 누구보다 더 깊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여태까지 만나 본 유대인들 중 그 어느 누구도 말씀만으로도 병이 낫겠다고 고백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을 가진 백부장,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동서남북을 가리지 아니하고 누구나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믿는 유대인일지라도 이 백부장같은 믿음을 가지지 아니하면 지옥에 들어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혈통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에 감탄하신 예수께서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시각에 하인은 치유되었습니다. 백부장의 하인이 말씀만으로 치유되는 이 기적 바로 전에 나병환자를 치유하신 기적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8:1-4입니다.

(마8:1-4)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한 나병환자가 나와 예수께 절하며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자신의 병을 고칠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지만 다만 자신을 고쳐줄 의사(意思)가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 대한 강한 믿음을 가졌지만 예수님의 의사를 타진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고 그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해진 것입니다.(마8:1-3)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지라도 예수께서 원하시지 않으시면 치유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예수 믿고 영육간에 구원받는 것입니다. 나병환자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뜻 가운데서 병 고침을 받게 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에게는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백부장의 믿음의 양(量)에 비례해서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란 말씀이 떨어진 즉시 나았다는 것은 “말씀”이 곧 능력, 곧 생명 창조의 능력인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도마라 하는 제자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동료 제자들의 말에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했습니다. 그 후 8일이 지나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한복음20:24-29) 

어떤 신체적 접촉이나 환상 등, 눈으로 볼 수 있는 외적 증거에 의지하지 않는 믿음, 백부장처럼 말씀 안에 거하는 믿음이 칭찬받는 믿음입니다. 백부장은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려 하지도 않았고, 예수의 몸이 닿은 손수건이나 그 밖의 다른 어떤 것들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예수의 말씀 한 마디면 충분하다고 확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살아 있는 말씀으로 믿은 것입니다.

백부장은 살아 있는 믿음, 그 믿음대로 행동하는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역사하는 말씀으로 믿는 믿음,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앞에 겸손한 믿음, 백부장의 이러한 믿음에 예수께서 감탄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능하사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아들로 믿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믿음으로 인정받고 칭찬받아 범사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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