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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 예수는 이것들을 증거하게 하였노라 (계 22: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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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예수는 이것들을 증거하게 하였노라 (계 22:16~21)
  

어떤 글이나 책이든지 그 끝부분의 결론은 특히 중요합니다.
서론과 본론을 통해서 밝히고자 했던 내용을 종합적으로 요약하면서,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호소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동적인 결론이 있는 글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에 뚜렷한 인상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신구약 성경 66권 전체를 결론짓는 책은 바로 제일 마지막에 있는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러므로 그 요한계시록 중에서도 마지막 장의 제일 끝 문단은 그야말로 '결론 중의 결론'이 되는 셈인데,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22장 6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그 성경 전체의 결론에 해당되는 말씀이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요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진리 운동'입니다.
이것은 6절 이하에 계속해서 여러 차례 반복되는 단어들, "이 말... 이 책의 예언...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 이 책의 말...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는 등의 표현들만 보아도 자명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신구약 66권을 통하여 계시해 주신 말씀 전체를 염두에 두면서, 교회와 성도가 그 진리를 어떻게 믿고 따르고 전하고 지켜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성령께서 최종적으로 호소, 권면,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주일을 '고려신학교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의 총회직영 신학교인 이 고려신학교의 '교육 이념'에 보면 "1.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본분에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임을 믿고 그대로 가르치며, 2. 또한 장로교 원본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신도 개요서의 교리대로 교리와 신학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며, 3. 신전인격자로서 신학 및 생활을 순결케 할 교역자 양성을 설립 이념으로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1번과 2번의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바로 '진리 운동'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고려신학교를 위하여 기도하고 후원하는 궁극적인 목적 역시 이 진리를 수호하고 전파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진리 운동'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겠습니까?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성경 전체의 결론 부분 중에서도 후반부에 해당되는 본문의 16절 이하의 말씀을 통하여,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끝까지 지키고 따르면서 살아야 할 이 진리 운동의 뜻과 내용이 무엇인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진리 운동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세주로 믿는 것'입니다.

본문 16절 말씀에 "16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고 기록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비록 사도 요한이 환상을 통해 받아 기록하여 전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 계시의 참된 주체는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 당신이심을 아예 첫 문장, 첫 마디에서부터 명백히 선언하고 시작하셨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예수님께서 이 요한계시록의 결론 부분에 와서도 "나 예수"라고 아주 강력한 1인칭까지 동원하시면서 이 모든 계시의 말씀을 "증거하게" 하신 분이 바로 당신이시라고 다시 한 번 천명하셨습니다.
정말 사족이 필요 없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신구약의 모든 계시의 중심과 동시에 정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일 뿐이라는 사실을 주님께서 친히 이토록 명약관화하게 자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계시의 말씀을 "내 사자(使者)를 보내어" 증거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과 마찬가지로 모든 신구약 성경 66권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하여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교회들을 위하여" 그렇게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참된 교회는 오직 '성경 중심' 즉 성경의 말씀에만 기초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개혁주의 신앙인들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통하여 명하신 말씀을 따라가는 위치에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며, 반면에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인 성경을 판단하거나 결정하는 위치에 있다고 주장하는' 천주교는 그 출발부터가 이미 신성모독적인 교리에 입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가리켜 "다윗의 뿌리"라고 하신 것은 당신께서는 다윗 이전부터 영존하셔서 다윗이라는 존재의 원인이 되신 성자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이어서 또한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신 것은 구약 성경에서 예언되었던 메시아가 바로 당신이심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진 가운데 천국 영생을 밝혀 주시는 분, 사망의 저주가 임박한 중에 구원의 빛이 되신 분이심을 또한 자증하신 말씀입니다.

성경 전체의 요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약속'이며 신약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취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신께서도 바로 이 사실에 대하여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고 일목요연하게 자증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기독교의 '진리 운동'의 중심은 바로 "나 예수"입니다.
'이 모든 계시의 말씀을 증거하게 하신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진리운동이란 무슨 '토론'이나 '논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다수결로 판가름 짓는 회의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법정이나 논리로써 결론지어지는 학술회에서 결정되는 것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참된 '진리 운동'은 "내가 곧 진리요"라고 선포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더 이상 아무 토를 달 것도, 쓸데없는 수식어를 갖다 붙일 것도, 무슨 주석을 보완할 필요조차 없이 그저 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성경이 증거하시는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믿고 따르는 것임을 똑바로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진리 운동은 '영생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17절에 기록하기를 "17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고 기록했습니다.

16절에서 선포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이 17절에서는 "성령과 신부"가 함께 화답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두말할 것 없이 제3위 하나님이시며 그 '성령의 말씀'이란 구체적으로는 바로 성경입니다.
성령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보혜사이신 까닭에 신자로 하여금 성경에 기록된 당신의 말씀을 정확하게 깨닫고 믿게 만들어 주시는 일을 그 주된 사역으로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신부"란 바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이라는 구절은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께서 성경을 통해 하시는 말씀'과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은 항상 일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문자 그대로 '이구동성' 즉 마치 한 사람이 한 입으로 말하듯이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그야말로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만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성령 감동의 능력을 받은 교회가 외치는 복음의 요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오라"는 말씀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사실 번역이 조금 잘못된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과 교회'가 '오라'고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초청하는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말'입니다.
즉 '오소서'라고 번역해야 정확한 것입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라는 말씀 역시 똑같은 맥락으로서, 이 복음의 초청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신자들 역시 모두 다 예수님을 향하여 '어서 오십시오.'라고 화답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감화감동과 교회의 말씀 선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게 된 참된 기독신자들은 이렇게 주님의 재림을 함께 고대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올 때까지 교회가 지켜야 할 사명이 바로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세상을 향하여 초청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이 구원의 복음에 응답할 것을 사람들에게 촉구하는 전도인 것입니다.
'목마른 자'라는 것은 생명 유지에 있어서 필수적인 물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는 상태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초청해 주는 것은 바로 아무 인간 편의 조건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공로에만 의지하여 영생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음을 알려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진리 운동'이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약속된 '영생 구원의 복음'을 온 세상 앞에서 선포하며 천하만민들에게 전파하는 사명으로 직결됩니다.
즉 우리 기독교의 진리 운동은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사실을 그저 자기 혼자서만 깨닫고 믿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진리를 증거하는 전도라는 '신행일치'의 삶으로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만난 기독신자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하신 주님의 지상(至上) 명령을 자기의 존재 의의와 인생 목적으로 삼고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원로목사님께서 "오늘날 교회가 영생 구원을 전도하지 않으니까 과학자들이 대신 나서서 무슨 '유전자 복제' 따위를 가지고 마치 자기네들이 사람에게 영생을 줄 수 있는 것처럼 큰소리를 치고 있다."라고 한탄하시면서 "오직 교회만이 진짜 '영생 운동'을 할 수 있고 또한 교회는 오직 이 '영생 운동'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너무나 멋진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참된 '진리 운동'이란 이처럼 사람을 더 똑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복음'을 그대로 전파하는 것이며, 스스로 점점 더 높아져서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오르려 하는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을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하여 겸손히 굴복시키는 '말씀 선포'의 사명에 있음을 깨닫고 수행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진리 운동은 '성경을 떠난 이단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18절과 19절 말씀에 "18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기록했습니다. 

이제 여기서는 "이 책의 예언의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선포하시고 '성령'의 감화감동을 통하여 '성경'에 기록되었으며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전파하게 될 이 '진리의 계시'에 대하여 아주 엄중한 '경고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 대상은 '각인(every man)' 즉 앞으로 이 성경을 대하게 될 모든 사람이 다 해당된다고 했습니다.

그 최종적인 경고는 곧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성경의 결론에 해당되는 요한계시록이 기록됨으로써 이제 신구약 성경 전체가 완성되었음을 확증하는 동시에, 따라서 더 이상 '다른 특별계시'가 결코 없을 것을 공포하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것들 외에 더하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이 책에 기록된 재앙이 더하여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재앙'이란 바로 최후의 대심판 후에 사단과 불신자들에게 내려질 영벌 지옥의 심판을 가리킵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했습니다.
'완벽한 것'에는 더하는 것도 '사족'이지만 빼는 것도 '훼손'이 될 뿐입니다.
즉 이 정확무오한 신구약 66권의 말씀 전체를 다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중에 일부라도 거부한다면 그 죄는 성경 전체를 부인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 됩니다.
  
그러니 성경의 핵심인 하나님의 자증과 구원의 복음은 빼 버리고 그저 인간의 도덕과 윤리를 위한 교훈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제아무리 자기 나름대로 성경을 읽고 지켰다고 해도 결국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함'에 들어갈 수 없게 되는 것은 불신자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성경 말씀을 신앙과 행위의 유일무이하고도 정확무오한 법칙으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곧 이단을 정확하게 분별해 내는 시금석이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처럼 '성경에서 떠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단을 가리켜 갈라디아서 1장 8절과 9절에서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똑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면서 엄중히 경고했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바른 '진리 운동'은 자연히 '가짜 진리'를 색출하고 배격하고 대적하는 영적 전투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신구약 66권의 성경 외에 더하는' 대표적인 이단이 바로 천주교입니다.
이들은 '외경 7권'을 마치 정경인 것처럼 구약 성경에 '더해' 놓았으며, '교황령'이나 '바티칸 공회의 법령' 따위를 '성경과 똑같은 진리'인 양 아니 실제적으로는 '성경보다 오히려 더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끝없이 '추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는' 이단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믿는다고까지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성경에서 찾는 것은 그저 도덕, 윤리, 철학일 뿐이지 죄 사함, 십자가 대속, 천당 영생은 '쏙 빼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천주교가 '기왓장처럼' 수가 많고 아무리 자유주의 신학의 목사들이 '하늘로부터 온 천사'처럼 점잖은 얼굴로 나타나더라도, 적어도 이 요한계시록 22장 18절과 19절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기독신자답게 이런 이단들의 본색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 진리의 원수들을 대적하는 영전(靈戰)에 담대히 앞장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진리 운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20절과 21절에 기록하기를 "20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는 두말할 필요 없이 바로 지금까지 '말씀의 주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지키고 '천당 영생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이단을 대적하여 싸우는 전투를 수행'하는 '진리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우리 주님께서는 끝으로 너무나도 멋진 격려의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것이 곧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재림의 약속이었습니다.
성경의 첫 권인 창세기에서 인간은 바로 '언약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하여 낙원에서 쫓겨나는 사망의 저주 상태에 빠졌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성경의 마지막 권인 요한계시록에서 그것도 제일 마지막 말씀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다시 이 '진리의 약속에 대한 신앙'을 지키는 자를 영원한 낙원으로 회복시켜 줄 것을 예언해 주고 계십니다.
  
'진실로'라는 말씀은 창세로부터 이때까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성취된 것처럼 이 예수님의 마지막 약속 역시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 것을 확증해 주시는 것입니다.
'속히'란 단어는 달리 번역하자면 '어느 순간에든지'(at any moment)라는 의미로서 그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확신과 긴장의 자세를 그 어느 때에도 결코 늦추거나 놓쳐서는 아니 됨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런 놀라운 약속 앞에 교회와 성도가 고백할 수 있는 반응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이 확신과 감사와 소망의 화답일 뿐입니다.
이 문장은 헬라어 원어로는 '아멘 에르쿠 퀴리에 예수'인데, 이것을 아람어로 번역한 것이 바로 저 유명한 '마라나타'라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끝인사를 하면서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 번역된 부분 역시 바로 '마라나타'입니다.
즉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는 신자'는 반드시 그 재림을 믿게 되어 있으며 반면에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예외가 없이 '저주'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바로 이 '마라나타'라는 말을 성도들 사이에서 '인사말'로 사용하는 동시에 성찬식에서의 '신앙고백'으로도 사용했었습니다. 
오늘의 본문 제일 마지막 절에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했듯이, 기독교 신앙이 사람에게 주는 최고의 복은 오직 '주 예수의 은혜'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선물이며, 그것은 곧 진리 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저주의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구원의 은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 '진리 운동'의 최종 결론이며 또한 너무나도 멋진 대단원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재림이 없다면 우리의 '진리 운동'이란 그야말로 헛일이며 바보짓으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너무나도 든든한 약속의 말씀으로 격려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 마지막 영광의 순간을 믿고 있기 때문에 이 '진리를 사수하는' 외로운 길, 힘든 전투에서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고 외치는 소수의 무리들이 이 세상의 압도적인 '금송아지 혼합 운동의 세력'에 수적으로는 밀린다 해도 일단 예수님만 재림하시면 그 얼마나 통쾌하겠습니까?
천주교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단이라고 그 정체를 드러내고 기독교 목사라는 사람들 중에도 '천당 영생'을 믿지 않는 가짜들이 수두룩하다고 외치다가 이 '용과 짐승의 연합군'들로부터는 아무리 핍박을 당한다 해도 '어느 순간에든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만 하면 그야말로 속 시원히 만사해결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야말로 우리 믿음의 실상이며 성경 계시의 완성이며 원수 마귀의 세력에 대한 완전한 심판이 될 것을 확신함으로써 이처럼 최후의 영광스러운 승리가 보장되어 있는 이 '진리 운동'의 대열에서 끝까지 함께 싸우며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바로 '이것들을 증거하게 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바로 이 '진리 보존 운동', 이 '진리 사수 전투'를 계속하라는 최후의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참 구주이심을 믿는 '진리 신앙'의 운동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과 육신을 구원할 수 있는 진짜 복음을 전하는 '진리 전파'의 운동입니다. 
그것은 이 지상 교회에 섞여 있는 이단으로부터 참된 우주적 교회를 지켜내는 '진리 수호'의 운동입니다.
그것은 이 진리의 주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그날 너무나 영광스럽게 완성되고야 말 '진리 성취'의 운동입니다. 

이처럼 '진리 운동'은 참된 교회와 성도에게 주어진 종말역사적인 사명이며, 우리 고려신학교는 바로 그런 진리를 배우고 익히고 세상에 전파할 신전인격자적인 전도자들을 양성하는 특별한 교육기관인 동시에 훈련소입니다.
그리고 고려신학교는 비록 작은 신학교이기는 하지만 이 '진리 운동' 아니 '진리 전투'에 있어서만큼은 오히려 늘 최전선에 서 왔습니다.
  
'단군상 건립 반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에 대한 성명서' 등을 위시하여 이제는 'WCC 한국총회개최 반대투쟁' 역시 바로 이 고려신학교가 제일 먼저 주창하여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우리 고려신학교가 이처럼 초지일관 '진리를 지킬' 뿐 아니라 '비진리와의 싸움에 늘 앞장서는' 신학교라는 사실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질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려신학교만 개혁주의 신학이고 고려신학교만 진리 파수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날 조국 교계에서 진정 이 정통 신앙을 지키고 전파하고자 하는 신학교들이 소수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처럼 수적 열세에 있는 편에 함께 서 있을 뿐 아니라 실전의 전장에서 제일 앞장서서 싸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자랑스러운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오직 예수 신앙'만을 지키며 '복음 전도와 선교'에 힘을 다하고 '이단과의 싸움'을 끝까지 싸우는 가운데 '영광의 재림'을 기다리는 이 멋진 '진리 운동'에 더욱 기도와 물질의 후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보내는 자'의 사명을 다하는 경향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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