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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회만남을 사랑의 로 (요삼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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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만남을 사랑의 로 (요삼 1:1~4) 

 
내 용 

오늘은 한국도 미국도 매우 행복한 날입니다. 한국은 설날이고 미국은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입니다. 이 두 가지 의미를 합치면 “만남을 사랑의 기회로”란 제목이 아주 적절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만남이 오히려 가족 간에 어려움을 유발하는 동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에서 명절이 지나면 언제나 ‘명절증후군’이란 말을 사용하며 통계 발표를 합니다. 너무 복잡한 길을 지루하게 오고 가다가 피곤에 지친 상태에서 모두 힘들다 보니 이 명절 만남이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더 많고 부담이 더 큰 어려움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또 이때는 피차 무엇인가 기대감을 가지고 만나게 됩니다. 선물을 주고받든가 가족 간의 새로운 계획들을 만나서 이야기 하게 되는데 그런 것들이 만족하게 진행되지 않았을 때는 실망감으로 나타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심각한 통계가 있는데,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불만스러운 관계의 부부는 명절이 지난 후에 이혼 신청이 급격히 많아진다는 것을 언론이 발표합니다. 행복한 시간이 오히려 불행을 만드는 일이 없도록 노력이 필요하고 마음가짐이 필요할 때가 이때입니다. 

미국은 오늘 거의 모든 여자들이 장미꽃을 받는 날입니다. 한국은 이것을 거꾸로 하려고 하는데 이 꽃은 남자가 여자한테 보내는 것이 본래 모습입니다. 꽃집들은 오늘 하루에만 평소보다 30배도 넘는 꽃을 팔게 됩니다. 이 날 장미꽃을 받지 못하는 여자는 대단히 우울해지고 슬퍼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일을 안 해보던 한국 남자들이 이런 때 아주 혼나는 수가 많습니다. 저부터도 일 년에 몇 번씩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발렌타인데이 챙기는 것을 평소에 한 번도 안 해보고 살아왔잖아요? 그런데 미국 문화에 가서 하려니 이상합니다. 

장로님 한분은 나이가 좀 많으신데 남들은 하는데 왜 안하느냐고 아내가 말하니까 장미꽃 한 송이를 사면서 하는 말이 “사람 버렸네. 이런 것을 다 하고 살아야 되니….” 투덜거리면서 사가지고 가시는 것을 봤습니다. 아마 2월 14일이 주일이라서 괜찮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직장에 근무하는 직장 여성들은 근무 시간에 꽃이 배달되어야만 직장 동료들에게 자랑합니다. “이것 봐라! 꽃이 오지 않느냐?” 퇴근 시간까지 꽃이 배달되지 않는 직장 여성은 굉장히 마음이 상하고 우울하게 퇴근을 합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일리노이 주의 조그만 타운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이 발렌타인데이 날에 자기 교회 교인들을 생각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아주 사랑 많기로 소문난 목사님인데 오늘 같이 좋은날 꽃을 받지 못하는 교회 여신도들을 생각하니까 ‘꽃을 못 받으면 얼마나 우울할까? 얼마나 외로울까?’ 그래서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거금을 드려 혼자 외롭게 꽃을 못 받을 것이라 판단되는 교인들에게 모두다 장미꽃을 배달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얼마나 반응이 좋은지 빗발치듯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합니다.” 너무들 좋아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오늘 내가 목회를 참 잘한 것이다. 안 보냈다면 큰일 날 뻔했구나.’ 자신도 꽃을 받고 만족해하는 신도들을 생각하며 아주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주일날 목사님은 자기를 보고 행복해할 여신도들을 생각하며 즐거운 표정으로 설교를 하려고 강대상에 올라가서 성도들을 내려다봤는데 이상하게도 꽃을 받은 여신도들이 한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 이상하다.’ 그래서 주일이 지난 다음 월요일에 전화 심방을 했습니다. “왜 교회를 안 나오셨습니까?” 대답은 모두 다 똑같았습니다. “나는 목사님이 나한테만 꽃을 보내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돈도 날리고 교인도 날렸답니다. 여러분도 여기저기 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간이 제일 행복한 때는 언제인가? 사랑 속에 자기 발견입니다. 출생 때부터 숨을 거둘 때까지 똑같습니다. 젊은이들은 생각합니다. ‘노인들은 무슨 사랑이 필요한가?’ 무슨 소리입니까?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 사랑이 필요해서 어린이가 된다고 하잖아요? 인생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기를 얻고 싶어 합니다. 인기를 얻어서 무엇을 합니까? 귀찮기만 하지요. 다 사랑받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이미 인기를 얻은 사람을 보세요. 

그 인기가 떨어질까 봐 피나는 노력을 합니다. 얼굴 예뻐지려고 얼굴의 뼈까지 깎아내는 고통을 다 참고 견디고 몸매 관리를 위해서 그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않고 참습니다. 얼마나 이런 것을 심하게 하는지 죽는 사람이 생기기도 합니다. 사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도 심리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온 국민의 사랑을 한번 받고 싶은 심리작용입니다. 인간의 모든 성취 의욕은 사랑과 절대 관계에 있습니다. 마음이 외롭다는 것은 이 사랑의 관계가 만족하지 않을 때 느끼는 심리 상태가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땅히 사랑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함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선진국들은 어린이 정책을 아주 훌륭하게 해서 감탄할 정도입니다. 어린이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물품은 완벽하게 만들어냅니다. 법적인 제도를 철저히 해서 어린이 학대를 절대 못합니다. 엄마, 아빠일지라도 자기 자녀를 때렸다가는 자녀를 빼앗깁니다. 이민 목회하면서 이 문제가 심각해서 가끔가다 제가 광고하며 설교했습니다. “아이들 때리지 마십시오.” 선생님이 아이들 표정이 조금만 이상하면 조사를 합니다. “너 엄마한테 매 맞았냐? 아빠한테 매 맞았냐?” 물어봅니다. 반드시 묻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는 거짓말 안하잖아요? “엄마가 때렸어요. 이거 보세요. 여기 멍들었어요.” 그러면 당장 경찰서에 연락합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를 경찰이 데려갑니다. 

이런 것이 반복되면 어린 아이를 빼앗기는 법적 제도를 완벽하게 해 놓았습니다. 그러면 한국의 문화를 가서 잘 설명해야 합니다. “이것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의 다른 방법 문화이다. 한국에서는 매로 어린이들의 교육적 효과를 바라고 매를 드는 것인데 5천년 동안 문화적으로 내려온 것인데 여기 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그게 없어지냐? 여기 이민 와서 어린이 때리면 안 된다는 교육도 받은 일이 없는데…. 그러니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어린 아이를 풀어주어라.” “그러면 다시는 안하겠다고 사인하라.” 이때 꼭 사인해야 합니다. 부모도 사인하고 저도 보증인으로 사인하고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이런 일이 한국 부모에게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어린이 보호 문화가 완벽하게 제도화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선진국이 더 청소년 범죄가 많은가?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렇게 밖에는 설명이 안 됩니다. 선진국에서는 어린 아이 양육에 두 가지 문제점이 지적됩니다. 하나는 아이들을 엄마가 기르지 않습니다. ‘베이비시터’가 기릅니다. 엄마들은 사회 활동을 계속하고 어린 아이 돌보는 일은 거의 타 인종들이 하는 문화입니다. 미국의 경우 타 인종 가정부로 최고 인기 있는 여자들은 영어권 여자들입니다. 동남아 영어권의 어떤 나라 하나는 국가 예산에 그것이 반영될 만큼 많이 미국에 와서 어린 아이를 길러 줍니다. 

외화 수입의 1순위가 미국 가정부 수입입니다. 그만큼 많이 옵니다. 영어권이기 때문에 아이들과도 영어로 통할 수가 있어서 아주 인기가 있습니다. 엄마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에 그 사랑의 진액을 받지 못하고 성장하게 되니까 심리상태가 어떻게 형성되겠습니까? 이 베이비시터 문제점 때문에 엄마들이 가끔가다 베이비시터 몰래 감시카메라를 만들어 놓습니다. ‘우리 아이를 정말 잘 돌보고 있는가?’ 그래서 그것이 TV로 방송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엄마들이 깜짝 놀랍니다. 베이비시터가 아이에게 수면제를 먹여서 하루 종일 재웁니다. 그러면 자기 혼자 마음대로 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화가 나면 어린 아이를 철썩 철썩 때리는 것이 다 나옵니다. 이것을 전국에 다 방송합니다. “부모들은 베이비시터의 문제점을 아느냐?” 그러면 난리가 납니다. 그런데 현실이 그렇습니다. 그 아이는 국가의 보호막이나 제도, 교육 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롱펠로우의 가문은 세계에서 제일 부자입니다. 롱펠로우 아들, 손자는 뉴욕 시장 지냈고 한때는 하도 돈이 많아서 뉴욕 시민의 수도세를 혼자 낸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뉴욕 시장 당시 이 사람이 대통령 출마하면 무조건 당선된다는 분위기로 다음 대통령 출마하려고 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이혼하자고 해서 대통령 출마를 포기했습니다. “앞으로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당신이 퍼스트레이디가 되는데 왜 이혼을 하려느냐? 또 돈은 세계에서 제일 많은데 당신 정신 나갔소?” 아주 큰 뉴스거리이므로 기자들이 막 질문했습니다. 

부인이 대답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입니까? 나는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못 얻고 사는데 그래도 나더러 같이 살란 말입니까?” “그러면 제일 필요한 게 뭡니까?” “남편과 내가 사랑하면서 살아야 되는데 정치니 돈 번다고 하면서 날마다 거기만 다니며 나는 관심 밖에 있는데 내가 뭐 하러 같이 살아요? 대통령 되면 더할 텐데…. 싫어요. 나 이혼할 겁니다.” 결국 이혼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사랑이신가? 왜 기독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을 외치고 있는가?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이라 그렇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 다음에 선진국 엄마들은 모유를 안 먹입니다. 아기는 엄마의 모유를 먹고 자라야 사랑으로 키워집니다. 우리 사람이 만든 모든 식품은 아무리 위생식품을 철저히 해도 어딘가는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모유는 위생시설이 필요 없습니다. 자연 냉장고, 자연 보온병으로 가장 안전합니다. 아무 때나 먹어도 됩니다. 엄마의 체내에서 뿜는 사랑의 진액을 어린 아이가 쭉쭉 빨아먹고 배가 불러야 그 아이의 인격 형성도 사랑스럽게 잘 되는 것 아닙니까? 

이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엄마들이 안하니까 그 아이들은 미국의 법이 어떠하든 제도가 어떠하든 아무 소용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게 일어나는 겁니다. 저도 딸도 있고 며느리도 있고 다 있습니다. 자녀가 결혼한 후에 약속했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교육이니까 결혼하면 아기는 엄마가 기를 것! 반드시 모유를 먹일 것! 이 두 가지를 내가 권고하니까 이대로 실천해주기 바란다.

만약 나의 이 교육 방법이나 방침을 따르지 아니하고 다른 일을 할 때 나도 생각이 있음.” 겁을 주었더니 꼼짝 못하고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게 돈 제일 많이 버는 것이다.” 말했더니 아버지 말씀이 옳다고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엄마의 사랑을 받고 내가 손자가 네 명인데 얘들이 자라나니까 얼마나 건강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이거다.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너 돈 조금 더 벌고 베이비시터 값 지불하면 뭐가 남느냐? 그러면 큰 손해다. 내말 따라라.” 그래서 잘 따라주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미국 사회에서 제일 영웅 대접 받는 사람은 우수한 운동선수들이잖아요? 대통령보다 훨씬 인기가 있습니다. 근래 최고 영웅 대접 받는 사람, 또 돈 많이 버는 사람은 타이거 우즈, 마이클 조던입니다. 그런데 모두 가정 파탄이 났습니다. 부인들이 왜 파탄을 내겠습니까? 자기 남편이 그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제일 영웅입니다. 그리고 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돈이나 쓴다고 사람이 사는 거냐? 돈이나 벌어준다고 남편이나 아빠 일을 다 한다고 생각하느냐? 그만 두겠다.” 사랑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다른 이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PCUSA 장로교단에 리더 역할을 하시던 한국 목사님이 한분 계신데 저와 같은 교단이기 때문에 자주 뵈올 수 있었고 피차 협조하는 관계였습니다. 손녀딸이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우수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기숙사에서 자살했습니다. 우수 대학의 사건이라서 USA투데이에 톱기사로 났습니다. 그 소녀는 집안이 조상 적부터 기독교 집안이고 자기도 모태 신앙이며, 할아버지는 목사이고, 부모는 다 훌륭한 교역자이고,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모범생, 우수학생으로 교회를 떠나본 적이 없고 우수한 좋은 환경으로 자살할 이유가 0.1퍼센트도 없는 행복한 소녀입니다. 

그런데 USA투데이 신문에 이런 우수한 여학생이 왜 자살했는가 이유를 찾아볼 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가장 심증이 가는 제목이 뭐냐? “Academy's romantic trouble” 미국의 우수 대학생은 사랑할 시간이 없습니다. 공부를 얼마나 많이 시키는지 새벽 1~3시까지 잠잤다가는 그 학생은 뒤떨어집니다. 그렇게 해내지 않으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언제 사랑을 합니까? 그런데 그때가 제일 사랑이 필요할 때 아닙니까? 그런데 공부만 해야 되니까 우수 대학의 자살률이 높습니다. 이 문제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사랑의 기회를 주어야지, 낭만의 기회를 주어야지 이렇게 공부만 시켜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느냐? 그래서 그 엄마가 티켓을 들고 학교 운동장에서 “내 딸이 죽은 이유는 이 학교의 교육 정책 방침 때문에 죽은 것이다.” 그리고 1인 데모를 운동장에 가서 했습니다. 사랑의 결핍증이 걸리면 매사에 부정적이고 반항적이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 성경을 쓴 사람이 사도 요한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을 열두 제자 가운데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생각하면서 기독교 신학을 사랑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이 요한이 쓴 성경말씀의 요절이 되었잖아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사랑 때문에 세상을 창조했고 사랑 때문에 사람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1, 2, 3서 모두 제목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지금 요한의 마음속에 어떤 교회 하나를 생각하는데 그 교회에서 이 ‘가이오’라는 사람이 훌륭한 사도적 역할을 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향해 “나의 참 사랑하는 자여” 그리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느냐 하면 그 교회에 아직도 문제아가 하나 있습니다. 성경을 계속 읽으면 다 나옵니다.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 잘난 체하고 으뜸 되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교회에서 다 내어 쫓았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이 사람이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니까 지금 사도 요한은 자기가 너무나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서 훌륭한 일꾼인 가이오가 거기에 시험을 받을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써서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느니라.” 이런 말로 그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를 썼는데 이 사랑하는 대상에게 요한은 두 가지 소원을 본문에 말했습니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믿음이 있는 사람은 첫째로 영혼이 잘되기를 소원 기도드립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지금 순간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제일 사랑하는 대상이 누군가? 어떤 때는 아들일수도 있고 딸일 수도 있고 배우자일수도 있고 부모일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서 어떻게 되기를 내가 바라고 있는가? 내 소원이 뭔가? 생각해 보세요. 믿음이 있는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너도 나 같이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믿음의 생활을 진리 안에서 행할 수 있는 자가 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시험에 빠지는 문제가 우리 신앙생활을 중단시킵니다. 교회 나오다 교회 안 나오는 사람은 다 시험 받아서 안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시험의 문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주기도문 가르쳐주실 때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신앙 중단하는 것은 시험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시험에 빠지면 그 순간부터 영혼이 망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사도 요한은 교회에 절대 필요한 일꾼인 가이오에게 그 영혼이 망가지지 않도록 “네 영혼이 잘 되기를 내가 지금 간구하노라.” 이렇게 권고하고 있는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제가 심방을 다니면서 이 본문으로 설교를 한 예화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경험한 것입니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 권사님이 한 분 계시는데 이 권사님은 아주 젊은 시절부터 꽤나 실력 있는 여장부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30대 초반이었는데 저에게 “목사님, 나는 평생 하나님 축복 많이 받아서 나하고 싶은 것을 다했고 지금도 못할 것이 없고 내가 몸담는 교회의 내 나름대로의 책임, 내 몫을 아주 똑똑히 분명하게 잘 감당했습니다. 

나 이렇게 신앙 고백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내 인생의 한 가지 문제가 아직 해결이 안 됩니다. 내 기도만 가지고는 도저히 안 되니 목사님께서 나 좀 도와주세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이 문제를 위해서 목사님께서 기도를 좀 해주시겠어요?” “뭔데요?” “내 큰 아들이 한명 있는데 텍사스에 살고 있습니다. 부자이고 사업도 잘 합니다. 그런데 이 큰 아들이 교회를 잘 안다닙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는데도 영 해결이 안 됩니다. 체면이 있으니까 내가 자꾸 뭐라고 하면 어머니가 부탁한다고 일 년에 몇 번 나가는 정도로 하고 교회에도 협조 안합니다. 

내 평생소원은 죽기 전에 내 큰 아들이 나 같은 믿음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것 하나면 나는 아주 편안히 눈 감을 수 있겠는데 이것은 내가 제일 원하는 소원인데도 도무지 안 되고 있습니다. 목사님! 기도 부탁합니다.” “이름 주세요.” 부탁받았으니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1년 쯤 있다가 권사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목사님! 바쁘시지 않으면 우리 집에 심방 오세요.” “그러지요.” 심방 갔더니 싱글벙글 하시면서 편지 봉투 하나 내어놓으면서 “이것 좀 읽어보세요.” “뭡니까?” “읽어보시고 말씀하세요.” 읽어보니까 큰 아들에게서 온 편지였습니다. 

내용은 “어머니! 제가 지금 출석하고 있는 교회는 교인이 100명 정도 모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이 교회 건축을 선언하셨습니다. 교인들의 사정을 돌아보니 이 헌금을 넉넉히 도와줄 교인이 저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 교회 건축의 50퍼센트는 제가 혼자 감당해야 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앞으로 1년 동안은 생활비를 절약하겠고 어머니께 매달 부쳐드렸던 생활비는 어머니 넉넉히 가지고 계시니까 1년만 중단하고 어쨌든 이 교회 건축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 해로 제가 살겠습니다.” 이런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어머니는 평생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장 전화를 해서 “됐다. 나는 네가 이렇게 되기를 평생 기도한 사람이다. 내 기도가 응답되었다. 감사하다. 네가 아들이기 때문에 네가 생활비 보내주어서 내가 받기는 했지만 앞으로는 필요 없다. 나한테 보내줄 것을 네가 출석하는 교회에 헌금해서 하나님께 바치고 50퍼센트가 아니라 90퍼센트라도 네가 감당해서 교회 하나 잘 짓거라.” 그래서 교회를 잘 건축했습니다. 

이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아들의 영혼이 살아난 것이 자기 생애의 최고의 기쁨이 되는 분을 제가 봤습니다. 여러분! 영혼이 망가지고 다른 것이 다 잘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성경에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는 말씀이 있잖아요? 오늘 많은 교우님들이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날 터인데 인간적 욕심이 개입되면 불편한 관계가 벌어집니다. 영혼이 잘되기를 바라는 그 사랑으로 만나면 다 행복해 집니다. 

그 다음에 “범사에 잘되기를 바라노라.”라고 했습니다. 범사가 뭡니까? 인간 세상에서 사는 모든 범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농사짓고 장사하고 일터에 나가서 일하고 결혼하고 자녀 낳고 입학하고 졸업하고…. 이것 다 잘되기를 소원하는 기도를 지금 대상을 향해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끊임없는 관심을 갖게 마련입니다. ‘건강한가? 잘 사나? 어려운 일 없나? 힘든가? 밥 먹었나? 추운가? 더운가? 살 쪘나? 빠졌나?’ 매사에 관심 갖게 됩니다. 왜 그럽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 피차 가족의 만남이 이루어져야 행복한 만남이 되지, 이권 따지고 자기 이익만 따진다면 명절은 추악한 만남이 됩니다. 창세기 48장 21절에 야곱이 자기 사랑 1호 요셉에게 주는 말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요셉이 아버지의 그러한 사랑의 말을 전해 듣고 또 죽기 전에 똑같은 말을 남깁니다.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실 것이며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실 것이니” 이런 말을 하지요? 다윗왕은 자기 사랑의 1호인 솔로몬을 앉혀놓고 뭐라고 그럽니까?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 가는 길로 가게 되었느니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라.” 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춘추시대 “백아파금”이라는 말이 전해 내려왔죠? ‘백아’는 음악인입니다. 거문고 타는 사람입니다. 나라에서 거문고를 잘 타서 유명해졌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거문고 연주인이 된 것은 그의 사랑하는 친구 종자기가 있었기 때문에 된 일입니다. 이 종자기는 자기의 친구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내 생애 제일 큰 기쁨은 친구의 거문고 소리를 듣는 것이다.” 항상 와서 들어주고 칭찬해주고 행복해 하니까 이 백아는 그 친구가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너무 좋아 점점 더 거문고를 잘 타려고 노력하다가 과연 한 나라에서 거문고를 제일 잘 타는 연주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는 들려주는 행복으로, 하나는 듣는 행복으로 이렇게 관계를 맺고 살다가 종자기가 죽었습니다. 종자기가 죽고 나니까 백아는 지금까지 생명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던 자기의 거문고를 집어던지고 도끼로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백아는 그 후로 다시는 거문고를 손에 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백아파금’입니다. “왜 이렇게 하시는 겁니까?” “들어줄 사람이 죽었는데 거문고를 타서 뭣합니까? 나는 종자기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거문고를 탔으며 그가 기뻐하며 행복해하는 것을 보는 것이 내 행복이었는데 들어줄 사람이 없는 이 거문고는 내가 이제는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사성어가 된 겁니다. 

우리 인간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주님은 뭐라고 그러셨습니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웃이 있기 때문에 네가 행복한 것이다. 이웃이 없으면 어디 가서 행복을 찾겠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서 모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행복하게 삽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설날도 발렌타인데이도 모두 사랑의 기회가 될 때에 우리가 행복한 겁니다. 오늘과 내일 만나는 모든 가족 관계가 주님의 교훈대로 사랑의 기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 때문에 인간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시고 주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네 행복이라고 사랑의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이웃이 있음으로 내가 있는 진리! 우리가 이런 명절날, 또 이런 좋은 문화가 있는 날 깊이 생각하면서 피차 주는 사랑에 행복해 할 수 있는 은혜의 역사를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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