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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을 믿고 시인하고 부르는 사람들 (롬 1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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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믿고 시인하고 부르는 사람들 (롬 10:8~13)

   
‘메시아닉 쥬’에 대하여 들어보셨습니까?   ‘메시아닉’이라는 말은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이름입니다.  ‘메시아닉 쥬’라는 말은 유대인으로 예수를 믿는 크리스천들입니다.  이스라엘이 독립할 당시에는 ‘메시아닉 쥬’들이 40여 가정 정도만 있었습니다.  조금씩 성장하여 1950년 대에는 한 200명으로 증가하더니 60년대 초기에 보고된 것은 300명 정도, 60년대 후반에 와서는 500명, 70년대에는 약1000명으로, 이 숫자에는 2-300명의 유대인 가톨릭 신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80년대에는 3000명으로 보고되었는데, 조금은 과장된 보고라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꾸준히 증가하여 90년대에 들어와서는 7000명 정도로 보고되었습니다.   

지금에는 약1만 명 정도는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대인이면서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이들은 자기들 스스로를 '예후딤 메시히임'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 “예후딤 메시히임”이라는 말을 “메시아닉 쥬”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지금도 메시아닉쥬들이 온갖 역경 중에도 예수 믿는 신앙을 지키며 전도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복’이란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홍보영상을 보겠습니다. 

이 지구상에서는 가장 힘들게 같은 민족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온갖 차별대접을 받으며 테러에 시달리면서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도 이 영화는 상영 중입니다.

오늘은 “주님을 믿고 시인하고 부르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죄악 세상에서 멸망하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과연 구원이란 말은 무엇입니까?  구원이란 말은 포괄적인 개념으로 모든 악과 고난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 인간에게 악과 고난이 주어졌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므로 인하여 우리에게 악과 고난이 주어졌으며, 그 결과 사망 곧 죽음이 주어졌습니다.  

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라는 말은 구약에서 ‘핫타아’라고 하였고, 신약은 ‘하말티아’라고 하여 “과녁에서 빗나가다, 불순종하다, 잘못 행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옳지 못한 태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한 모든 것을 죄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생명 주신 하나님을 의존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존하고 순종해야 하는 인간이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보겠다고 불순종하여 범죄하였기에 사망이 주어졌습니다.   우리 인간의 조상들인 아담과 하와가 자기를 주장하려는 의지, 곧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와 독립을 선언하므로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고, 죄악에 빠지고 사망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실존의 문제는 죽음이라는 문제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그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라먹다가 더 이상 잘라먹을 것이 없으면 인생이란 무대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시간의 흐름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있다면 모래시계입니다. 모래시계는 실감이 납니다.   손목시계는 원을 그리면서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이 없습니다.  5분의 모래시계를 돌려놓고 땀내면서 억지로 참다가 모래시계가 움직이지 않으면 시간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고, 나와야 합니다.  모래시계는 인생의 유한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모래시계가 멈추는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력을 가진 존재인지, 모든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속아내시는데, 한 세기 안에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바꾸어놓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히9:27에서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죽으니, 따라서 죽는다고 하지만,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말씀에 두렵기만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과제는 우리의 이 더럽고 추한 죄를 가지고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선다는 말입니까?    우리의 추하고 더러운 죄와 허물을 무엇으로 가리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조그만 선행으로 죄와 허물을 가려보겠습니까?  사회적인 지위로 가려보겠습니까?  물질로 가려보실 것입니까?  이 더럽고 추한 허물과 죄악을 무엇으로 덮겠습니까?  

하나님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허락해주셨고, 해결해주셨습니다.   왜 우리에게 죽음이 주어진 것입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죽는다고 하셨기에 죽음이 주어졌습니다.  

창세기2:16-17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겔18:4에서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은 지금도 살아서 심판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보시고도 유야무야하게 그냥 넘어가고 좋은 않은 것도 좋고, 나쁜 것도 괜찮다고 넘기실 분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신 적이 있습니다.   노아 홍수시대에는 노아의 가족만 남기고 다 진멸하신 적도 있습니다.  죄를 짓는 모든 인간들, 다 지옥에 들어가라고 하셔도 우리는 할 말이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십니다.  단지 먼지와 같은 존재인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이 지옥을 만들고 그냥 다 쓸어 지옥에 보내버려도 됩니다.   그러나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들도 복되게 살고 죄와 싸워 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본래 지으신 목적대로 잘 살아가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형벌하시고, 대적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딤전2:4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벧후3:9에서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겔18:23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을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죄의 길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죄와 허물을 물으시고 반드시 징벌하시는 하나님과 그래도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재기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은 최후최선의 방책을 내셨습니다. 

한 사람 아담이 죄를 지었으므로 그의 후손들에게 죄가 들어오고 사망이 주어졌다고 하면, 이제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의로운 사람 한 사람, 새롭게 인간을 대표하는 사람을 보내시므로 그 안에 전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 없는 한 사람을 찾으셨는데,  사람들 중에는 그렇게 깨끗하고 죄 없고, 의로운 사람이 없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육신을 입혀 보내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전 인류를 심판하시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보다,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죄 없으신 의로운 아들 한 사람을 십자가에서 심판하시고, 대속하는 속죄물로 내어주시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엄청난 희생이요, 내려놓음이었습니다.  “반드시 죽으리라, 정녕 죽으리라, 범죄한 영혼은 죽으리라,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대로 아들을 죽음에 내어던졌습니다.   아들이 죽는 순간에 모든 사람을 심판한 것으로, 모든 인류가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아들 안에서 새롭게 새생명을 주기로 하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나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바로 나를 위한 죽음이었다고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사53:6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의 죄악”이라고 하셨는데, 그 안에는 저와 여러분의 죄악도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성경에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늘도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신뢰한다는 것이요, 나의 인생의 모든 문제는 주님이 맡아주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모셔 들이는 것이요,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를 대속하신 주님으로,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시고 새 생명을 주신 주님으로 모셔 들이고, 고백하고 시인하고 주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저는 사실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우리 주님이 나를 대신해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은 그 고백을 우리의 의로움으로 여겨주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8절에서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주시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말씀으로 되었습니다.   천지는 없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그 말씀으로 온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말씀이 그렇다고 하시면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이나 느낌은 하등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식언치 않으십니다. 

벧전1:23에서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우리 주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5:39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요6:68에서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에게만 영생의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사람에게로 가더라도 영생의 말씀은 없습니다.

롬10:17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잘 읽고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오늘 9절 말씀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에 우선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마음이 움직여야 우리의 온 몸과 인격이 움직입니다.   마음은 곧 그 사람이요 그의 속사람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그의 지정의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라고 마음으로 믿었습니다. 이제는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고백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믿어야 하지만,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사람 앞에 주님을 시인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만인 앞에서 내가 그를 사랑한다고 알려야 하고, 그 사람 앞에서 고백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만인 앞에서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10:32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의 10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70인역에서는‘퀴리오스’ - 주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퀴리오스’라는 칭호는 초대교회에서 하나님에 해당하는 절대적인 칭호였습니다.  로마 황제 앞에서 절대 충성을 맹세하면서 “당신은 나의 주입니다.”라는 것인데, “로마 황제가 주님이 아닙니다. 이제는 나사렛 예수,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서 믿은 것 같으며, 내 결심으로 주님으로 고백한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보내주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엡2:8-9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고전12:3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고후1:22에서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고후5:5에서도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셨습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인격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임재하시고, 우리 몸을 성전 삼으시면서 내주하시고 영주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 영에게 증거하시는데,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주시고 있습니다.

롬8:16에서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갈4:6에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령 받은 사람이요, 주님이 보내어주신 성령은 우리 구원을 끝까지 인쳐주고, 보증을 서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1절에서 “성경에 이르기를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라고 하셨습니다.  12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자와 안 믿는 자는 차별하지만 일단 예수 믿으면 다 구원받은 아버지의 자녀들이 됩니다.

13절 말씀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요엘2: 32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믿었습니다.  입으로 시인하였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구원받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가끔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란 복음성가를 부릅니다.  “나 무엇과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만이 내 삶에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 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되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 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제자 되기 원합니다.” 

성령 안에서 성령충만해서 구원의 감격을 누려야 구원을 이루게 됩니다.  칭의로서의 구원은 한번 받음으로 이루지만, 이제부터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의 감격을 누리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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