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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삶 (골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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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골 3:1~4)


하나님께서 많은 동물들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에게만 부여하신 독특한 기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동물들도 생각하는 가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 비교되지 않습니다. 까치나 까마귀들도 나름대로 생각을 해서 안전한 나무 꼭대기에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까치나 까마귀의 생각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나무 가지를 물어다가 집을 짓는데 전혀 발전이 없습니다. 제비도 마찬가집니다. 흙을 물어다가 추녀 밑 벽에 붙여 집을 짓습니다. 그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아마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 전에도 동일했을 것입니다. 

모든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혀 발전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각하는 기능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신 생각하는 기능은 제한이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입니다. 이 성전 내부에도 인테리어와 여러 가지 악기들, 그리고 예배를 위해 사용되는 첨단 장비들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생각한 것들을 현실로 이루려는 끝임 없는 노력의 결과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또 어떻게 발전할지 그것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생각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허락하신 가장 고귀한 은총가운데 하나이며 대단히 소중한 자산입니다. 

인간에게 생각의 기능을 주신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해야 할 생각에 대해 권면 하신 것이 본문입니다. 

一. 위엣 것을 찾으라 하셨습니다. 

본문 1절에“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은 누구입니까?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셨고, 세상 끝날 다시 오실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 즉 그리스도와 합께 살리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셨는데 위엣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하늘나라는 장차 우리들이 살아갈 본향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늘나라의 영광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시며, 그곳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하늘나라의 영광을 깊이 깨달은 사람들은 이 거룩한 영광에 참여하고자 세상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생명까지도 주저함이 없이 버렸습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서 8장 18절에 말하기를“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영광을 위해 믿음을 지키다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위엣 것은 이 세상의 것과 배교할 수 없이 고귀한 것입니다. 

귀한 것은 모두가 다 쉽게 눈에 띄지 않고 깊은 곳에 감춰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신안 앞바다에서 원나라 시대의 귀중한 보물들이 발견된 곳은 깊은 바다 속이었습니다. 금덩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도 깊은 땅속에서 찾아내는 것입니다. 진주도 깊은 바다에서 사는 조개 속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이 땅의 보물들도 그러할 진데 하물며 영원한 영광과 생명이 있는 위의 것이겠습니까? 

위의 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모스 5장 4절 말씀에“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단순한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찾느냐, 뭇 찾느냐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주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병든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육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일이라면 아무것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위엣 것은 육신의 생명에 비길 바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찾아야 합니다.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찾기 위해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 가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음의 가치에 대하여 잠언 8장 17절~19절에 말씀하시기를“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찾아 만남의 결과를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이 땅에서 주어지는 부귀와 재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천은보다 더 낫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늘나라 영광과 생명입니다. 그러므로“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음력으로 2010년 1월입니다. 이해에도 온 몸과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찾고 섬겨야 하겠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권면하신 삶의 방법입니다. 생명의 길입니다. 승리의 길입니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二. 위엣 것을 생각하라 하셨습니다. 

본문 2절에“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생각의 산물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물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과 생활도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평상시 그 사람의 생각의 결과입니다. 구약성경 예레미야 6장 19절 말씀에“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은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저주를 받아 나라가 망하므로 70년간 바벨론 포로로 고난을 겪었습니다. 선을 행하든 악을 행하든 모두가 생각의 결과입니다. 생각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기도 하고 저주를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 생각은 하나님이 항상 좌정해 계시며 지배하고 다스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원하시되 강압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4장 7절에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에게 말씀하시기를“네가...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속에 죄악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모두가 선한 삶을 살아갈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방법을 선택하지 아니하시고 인간 자유의지에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도 말씀하시기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로새서 3:2)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절로 위엣 것을 생각하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위엣 것을 생각하라”하셨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든 아니면 땅의 것을 생각하든 그것은 인간의 자유에 맡기셨습니다. 

인간 마음속에 있는 생각의 자유를 마귀도 지배하고자 미혹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유다가 영원한 저주를 받고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자초 한 것은 그의 생각이 마귀에게 점령당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 말씀에“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유다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했습니다. 3년 동안이나 주님을 따라 다나며 그 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행하신 문둥병자를 고치시는 기적,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는 기적, 바다 위를 걸어가시?

기적,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을 직접 목격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배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결국 은30에 예수님을 팔고 그 돈은 한 푼도 쓰지 못하고 목매어 자살했고, 그의 시체는 곤두박질쳐 창자가 터져 나와 죽은 처참한 말로를 맞았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로부터 오는 생각을 물리치지 못하고 받아들인 결과였습니다. 

전쟁을 할 때 군인들은 위장술을 씁니다. 지형의 색깔과 비슷한 옷을 입습니다. 푸른 숲이 많은 곳에서는 얼룩무늬 옷을 입습니다. 사막의 군인들은 모래색깔의 옷을 입습니다. 흰 눈 위에서 싸우는 스키부대는 흰옷을 입습니다. 땅속에 묻어둔 지뢰도 표가 나지 않도록 철저히 위장을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대적 마귀도 교묘한 위장술로 사람의 생각을 미혹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해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합니다. 그 예가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충성으로 여겼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시험에 들어 어려움을 당하는 교회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 시험의 주인공들은 모두 교회에 충성하는 중직자들입니다. 교회를 온통 아수라장으로 만들면서도 그들은 교회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으로 착각을 합니다. 이것이 곧 사탄의 위장술입니다. 이단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남의 영광을 짓밟으면서도 그들이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매사에 조심해야 하며, 하나님께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은 생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성격을 낳고, 성격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본문 2절에 말씀하시기를“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골로새서 3장 5절~6절에는“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좌악들은 모두가 생각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온 천하가 물로 심판을 받아 멸망한 때가 있었습니다. 멸망의 고고학적 증거가 세계 곳곳에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 창세기 6장 5절~7절에“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하셨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악마에게 지배되어 악해지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 대하여 한탄하시며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언 4장 23절에 당부하시기를“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의 생각은 끊임없이 조정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언제나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며 생각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행들을 놓으면 자동차는 멋대로 달려가다가 사고 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방치하면 금방 쓰레기통이 되고 맙니다. 아인슈타인은 말하기를“나쁜 사고를 몰아내려면 11배 이상의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수원지의 물이 수도관을 따라 각 가정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과 같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위에 계신 하나님과 생각의 파이프가 연결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그 사람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어 와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생각의 파이프가 연결된 사람의 생각에 나타나는 특징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압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심을 압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압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셔서 그를 높여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2. 언제나 믿음 안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민수기 14장 28절~30절에“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8장 27절에 말씀하시기를“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하셨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기준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 안에서 생각을 하며 말을 하게 됩니다. 

말이란 무엇입니까? 생각의 표현입니다. 말 한마디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도 하고 기쁘게도 합니다. 말 한마디가 낙심하게도 하고 소망과 용기를 갖게도 합니다. 이처럼 말로 하나님을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합니다. 입술의 말로 하나님을 인정하기도 하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고 하고 슬프게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들의 말을 다 듣고 계시면서 그가 한 말대로 되게 하십니다. 

도미노피자의 창업주인 타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타미는 고아원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중학생이 될 무렵 학교에서 여러 번 사고를 치는 바람에 퇴학 처분을 받았습니다. 씁쓸하게 교문을 나서는 타미에게 사랑으로 지도해주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모두가 너를 버려도 하나님은 절대로 너를 버리시지 않는다. 그러니 낙망하지 말고 큰 별을 따도록 노력해보아라.”그 선생님은 고아요, 문제 아였던 타미에게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타미는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새롭게 용기를 내어 피자가게에 취직했습니다.‘아마 나에게도 장점이 있을거야’라고 되뇌며 밀가루 반죽 법을 부지런히 배웠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배웠던지 피자 한판을 십 일초 만에 반죽할 수 있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전 세계 피자체인점으로서는 랭킹 2위로 뛰어오른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의 성공은 환경이 아니라 귀에 들려온 소망의 말과 생각의 결과였습니다. 이사야 40장 28절~31절에 말씀하시기를“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생각인 말씀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생각을 접붙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의 생각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접붙이고 나면, 하나님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질병에서 고치시고, 절망에서 소망을, 죽음에서 생명을, 낭패와 실망에서 승리를 주시는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에게 접붙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대의 사람들과는 달리 자기 경험과 이성과 지식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각이 쉽게 접붙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각을 접붙이는 과정이 힘이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 속에 접붙이고, 모진 시련의 풍파를 이겨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있으면, 연속적으로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구경거리나 장식품으로 만들지 말고, 그것을 통해 삶 가운데 하나님의 생각을 접붙여서 시간시간 분초마다 하나님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곳에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3. 항상 거룩한 생각을 합니다. 

워에 게신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 말씀하시기를“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아 성결한 삶을 살고자 힘쓰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셔서 귀하게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4. 항상 교회를 먼저 생각합니다. 

달나라에 가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지구에 있는 인간의 구조물 가운데 유일 하게 중국의 만리장성이 보인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신 하늘나라에서 이 지구를 내려다본다면 무엇이 보일 것 같습니까? 역시 만리장성이 보이겠습니까? 만리장성은 오늘날 우리들이 볼 때 세계적인 유산으로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내지만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한번 차출된 젊은이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만리장성은 수많은 여인들의 한탄과 눈물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그 성에 관심이 있으시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아니면 높은 빌딩이겠습니까? 부자들이 살고 있는 저택이겠습니까? 이러한 것들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것에 관심이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시면서 아무 것도 남긴 것이 없습니다. 가정도, 재물도, 한 권의 책도 남기시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 교회를 남기셨습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1장 18절에 밝히시기를“그(그리스도)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교회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예수님이 하셨던 영혼 구원의 사역을 계속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곳입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라면 당연히 머리의 지시를 따라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합니다. 

몸의 고통을 좋아할 사람이 없듯, 참된 교회의 지체는 주님의 교회가 고통 받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의 최우선 사명인 영혼 구원에 힘쓰게 됩니다. 영혼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처럼 주의 몸인 교회의 참된 지체는 항상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다운 교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 거룩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시며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또한 생각한 것을 행동에 옮기며 살아갑니다. 다만 그것이 선한 것인가? 아니면 악한 것인가? 그것이 육신의 것인가? 아니면 영혼의 것인가? 위엣 것인가? 땅엣 것인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본문인 골로새서 3장 1절~2절에 권면하시기를“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하셨습니다.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말고 짐승이나 다름없는 원시인처럼 살면서 하나님만 생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나그네 길이기에 거기에 지나치게 얽매이거나 착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모두가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끝날 이는 모두가 없어질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땅의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것보다 더 고귀한 것, 더 아름다운 것, 영원한 것을 생각하며 그것을 얻고자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하면 땅의 것은 덤으로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태복음 6장 31절, 33절에“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하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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