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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과 돈 (딤전 6: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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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과 돈 (딤전 6:17~19)
   

사람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가 소개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렸을 때는 당대에 최고의 철학자에게 개인 교수를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는 시와 노래에도 아주 박식했고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복도 길이만 1킬로미터가 넘는 궁전에서 살았습니다. 집안의 모든 벽은 상아와 자개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타던 말은 은장식이 달린 신발을 신겼습니다. 그가 외출할 때에는 1천명의 군사들과 마차의 행렬이 그를 수행했습니다. 그가 낚시를 할 때면 금으로 만든 바늘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많은 옷을 가지고 있어서 한 번 입은 옷은 두 번 다시 입지 않았습니다. 그는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로마의 황제였던 네로입니다. 

네로의 삶을 여기까지만 이야기한다면 매우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존귀한 삶을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네로의 다른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로마 황제로서 모든 것은 소유하고 있었지만 만족은 없었습니다. 끝없는 사치와 방종으로 타락했습니다. 음란한 삶을 살았고 다른 사람들을 끝없이 의심하면서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결국은 정신 이상까지 되어 어머니를 살해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구상하는 대로 로마시를 재구성하기 위해 로마시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는 기독교인들이 불을 질렀다고 소문을 내어 많은 기독교인들을 죽였습니다. 네로는 정신적인 불안과 두려움에 쌓여 결국은 자살하고 맙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소유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소유에 그 인생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극단적인 예일지 모르지만 네로 황제의 이야기는 소유가 사람을 무조건 행복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땅의 것을 중심으로 행복을 말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의 것을 중심으로 행복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도 이 땅에서 살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소유 지향적인 가치관과 행복관에 물들어 살기가 쉽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타락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물질 만능주의에 교회와 성도들이 물드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가 타락을 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을 물질의 세계를 더 풍요롭게 누리기 위한 방편으로 삼고, 또 그것을 축복의 전부인 것처럼 가르치고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믿음 안에서 물질을 어떻게 생각하고 다룰 것인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에베소라는 도시는 동서양을 잇는 관문으로서 동서양의 온갖 귀한 물품들이 에베소로 몰려들었습니다. 에베소에는 아데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에베소를 찾는 사람들은 아데미 신전을 찾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신 아데미는 번영과 다산과 부를 가져다주는 신으로 숭배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신전을 찾아가 제사를 드리며 빌었던 가장 큰 소원은 지금 보다 더 큰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물질 만능주의적인 가치를 가지고 살던 에베소 시민 중의 일부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며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 생활을 하면서 그들은 많은 도전과 벽에 부딪혔습니다. 물질주의와 땅의 쾌락을 행복의 가치관으로 알고 살던 그들이 그 세계를 뒤로하고 하나님의 정신과 가치를 따른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어려움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물질주의가 에베소 교회 안에 들어와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을 보고 아주 단호하게 말씀을 전합니다. 6장 9절에서 10절의 말씀을 한번 읽어봅시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여기에서 바울이 경고하는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형편이 나아지기를 원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넉넉해지기를 바라는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사업에서 성공하기를 원하는 사람’ ‘자신의 전문 분야와 업무에서 뛰어나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을 탓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와 같은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 17절 후반 절에 보면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후히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이 경고하는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돈을 삶의 목적으로 삼은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목적도 없이 자신만을 위해 단순히 더 많이 모으기를 원하는 사람, 돈을 모으고 불리는 데만 급급해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에베소 안에는 단지 돈을 더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아데미 여신에서 하나님으로 신앙의 대상만 바꾼 그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느 집사님으로부터 들은 유머입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아버지가 그 교회 장로님이셨습니다. 그런데 맨 앞자리에서 설교를 시작하면 항상 조는 겁니다. 목사 아들이 얼마나 민망하겠습니까? 하루는 목사님이 아들에게 ‘예배를 드릴 때 할아버지 옆에 앉아서 할아버지가 졸면 옆구리를 꾹꾹 찔러서 깨우거라 그러면 내가 1000원을 주마’ 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좋아했습니다. 아들은 할아버지가 설교 시간에 졸면 옆구리를 꾹꾹 찔러 깨웠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은 아들에게 1000원을 주며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들이 할아버지가 졸아도 깨우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난 후에 아들에게 ‘너 왜 할아버지가 조시는데 깨우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하는 말이 ‘할아버지가 조실 때 깨우지 않으면 2000원을 주신다고 그랬어요.’ 사건의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단지 돈이 많고 적음이 기준이 됩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돈이면 모든 것이 OK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언제든지 하나님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미 부자가 된 사람들에게 세 가지의 교훈을 줍니다. 첫 번째가 교만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선한 일을 많이 하며 나누며,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물질주의에 빠지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온 우주를 지으신 후에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모든 물질을 다스리고 관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물질의 노예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따라 물질을 관리하는 청지기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하면서 물질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정신과 가치는 사라지고 물질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물질 아래로 내려놓았습니다.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고 등을 돌립니다.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장자권을 동생 야곱에게 팝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살찐 양과 소를 가지고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 유다가 은 30냥에 예수님을 유대 지도자들에게 팔아넘깁니다. 물질을 위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모습이 성경에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사람이 하나님과 물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면서 인류가 타락하기 이전의 세계, 즉 하나님을 중심으로 물질을 관리하는 세상으로 돌리시기 위해 주신 대표적인 규정이 있습니다. 바로 십일조 규정입니다. 십일조 규정은 물질의 세계를 하나님 중심으로 다스리고 관리하는 규정입니다. 안식일은 시간의 세계를 하나님 중심으로 관리하는 규정입니다. 십일조와 안식일은 물질과 시간, 즉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십일조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대체적으로 교회하면 헌금과 관련해서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분은 헌금만 없으면 교회를 다니겠다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십일조 헌금은 많은 분들에게 있어서 부담과 부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자신의 수입의 10분의 1을 헌금으로 드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의 수입 중에 10분의 1을 헌금으로 드린다는 것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수입이 적은 사람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지만 사실은 수입이 많은 사람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피터 마샬이라는 미국의 교계에서 존경받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어느 날 목사님에게 어떤 남자가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목사님, 저는 한 동안 십일조 생활을 잘했습니다. 십일조 생활에 연봉이 2만 달러 일 때는 십일조로 2천 달러를 드리는 것이 어렵지만 그래도 기꺼이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연봉은 50만 달러입니다. 그러니 이제 5만 달러는 십일조로 드려야 하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상담했습니다. 그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마샬 목사님은 ‘당신의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문제가 있군요. 이 문제를 가지고 함께 기도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 사람은 반가운 표정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남자의 손을 잡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사랑의 주님, 이분이 십일조 헌금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간구하오니 이 분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이분이 십일조를 드리기에 부담이 없는 정도로 이분의 연봉을 줄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 일화는 십일조 헌금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도전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돈이 없으셔서 헌금과 십일조를 강조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일조를 말씀하시는 것은 세상의 물질주의, 물질의 우상숭배에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이 방법입니다. 물질의 욕심과 물질의 우상숭배로부터 자유하며 해방 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물질주의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가장 비옥한 땅인 갈대아 우르 지역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결단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도전입니다. 도전이라는 것을 어떤 도전이든지 쉬운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물질주의에서 자유과 해방을 선언하며 십일조 생활을 할 때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더 귀한 것으로 채우시며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복입니다. 말라기3장 10절에서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욕심에서의 십일조가 아니라 물질주의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중심으로의 삶을 고백하는 믿음의 차원에서 십일조가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물질을 관리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은 하늘의 문을 열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제대로 된 믿음의 헌금과 그 위에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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