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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래. 믿어!(Yes, I believe in God) (롬 1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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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믿어!(Yes, I believe in God)  (롬 10:8-13) 

    
설교내용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은혜를 아는 사람이 아쉽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은혜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은혜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기가 살아가는데 옷깃만 스쳐도 은혜 아닙니까? 저 사람이 내 손을 잡아 주는 것 만해도 은혜입니다. 내게 미소를 지어 주는 것만 해도 은혜입니다. 아침에 에레베이타를 탔는데 인상을 잔뜩 쓰며 바라보는 인간을 보면 하루가 재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인사하는 사람을 만나면 하루가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설교를 열심히 들어주는 것만 보아도 은혜가 됩니다. 이처럼 처처에 은혜가 넘칩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감사하며 겸손한 사람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교만한 법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은혜를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은혜를 잊어버리거나 불만스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너희가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은혜를 감사하고 감격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행복합니다. 감사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 불행 한 것이 아닙니다. 감사가 없어서 불행 한 것입니다. 감사하면 더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은혜를 아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언제인가「여인천하」라는 드라마를 잠시 본적이 있습니다. 궁중은 뇌물사건으로 벌집을 쑤신 듯 난리였습니다. 대신들 중 어느 하나도 뇌물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중종왕은 뇌물 받은 대신들을 모조리 숙청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중전은 모든 대신들의 비리를 덮어주고 그들을 용서하여 종묘사직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며 왕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간언합니다. 왕은 중전의 아량과 지혜를 고맙게 여겨 "내가 그렇게 하리다"라며 마음을 바꿉니다. 

드디어 대신들이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처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호령이 떨어지고 파직에 중형이 떨어지기를 전전긍긍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 중종이 대신들에게 치부책을 내주며 자기이름과 뇌물액수가 적힌 부분을 각자 뜯어내라고 명령합니다. 대신들은 떨리는 손으로 자기에게 해당된 부분을 뜯어냅니다. 다 뜯고 남은 책을 되돌려 받은 중종은 책을 불로 태워버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짐은 이 책을 본 일도 없고 아는 바도 없노라" "경들도 자기가 뜯어낸 종이를 불에 태워버리도록 하라" 왕의 용서가 떨어진 순간입니다. 

그 다음 장면이 중요합니다.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받은바 용서가 감격하여 "성은이 망극하여이다"를 외치는 대신이 있는가하면, 야릇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잘됐다. 죄는 없어졌으니 중전내치는 일을 서둘러야지"라는 표정으로 눈을 내려뜨는 대신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지켜보며 은혜를 모르는 자의 뱃속에는 어떤 괴물이 들어 있는가보다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사함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감사하고 감격하여 눈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구원 받았다면서 감사도 감격도 없이 늘 불평과 불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그 복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첫째는 믿고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 했습니다. 

9절 이하를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해야 됩니다. 13절에는 "주의 이름을 부르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했습니다. 불러야 합니다. 그러면 구원을 받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먼저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마음은 모든 행동을 결정하고 지시하는 인격의 중심지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전인격적으로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내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먹는 음식도 먼저 마음에 받아들여야 음식이 목으로 넘어 갑니다.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먹으면 탈이 납니다. 아기들 약을 먹여 보세요. 먹는 것이 아니라 전쟁입니다. 입을 벌리고 강제로 수저를 집어넣고 아이는 죽는다고 야단이고 한바탕 소란을 떨어야지요. 이유가 뭐에요 마음에 받아들이질 않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마음에 받아 들여 보세요. 술술 넘어갑니다. 

몇 년 전에 한 다세대 주택 3층에서 프로판 가스가 터져 불이 났습니다. 그때 그곳에 5살 짜리 아이가 불을 피하지 못해 베란다에 갇혀 있었습니다. 불길이 심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이불을 잡고 아이에게 뛰어내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말해도 아이가 겁에 질려서 뛰어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인근에서 장사를 하던 아버지가 급히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그 아버지가 "아빠야! 빨리 뛰어내려!"하니까 그때서야 아이가 뛰어내렸습니다. 마음으로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맡길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믿으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뛰어 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믿고 뛰어드는 자는 지옥의 불길에서 구원 받을 줄로 믿습니다. 

다음은 입으로 시인해야 구원을 받게 됩니다. 나는 믿습니다. 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습니다.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모든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해야 합니다. 입으로 시인한다는 말은 입을 열어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한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입술로 시인 한다"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초대교회 때는 입술로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고 시인하면 잡혀 죽는 때였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입술로 시인하면서 사자 밥이 되었고, 평생 지하무덤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분위기에서 입술로 시인한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의미가 아닙니다. 그 고백은 오늘날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의 신앙고백과는 아주 차원이 다릅니다. 그 고백은 생사를 가르는 것이었고, 결국 구원의 유무를 가르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처럼 생사의 갈림길에 선 심정으로 주님을 내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들어 교회에는 정체 불명의 교인들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그런 분들을 'UFO(미확인 비행물체) 교인'이라고 말합니다. 교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1999년 봄, 미국 덴버에 있는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학생 총격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학생 2명이 학교에서 자기들을 왕따시킨 친구들에게 잔인하게 복수한 사건이었는데 그 사건으로 학생 12명과 선생님 그리고 총을 쏜 학생 2명이 함께 죽었습니다. 그때 한 범인이 캐시라는 여학생에게 총을 겨누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느냐?" 그 순간에 "믿지 않아."라고 말하면 살 수 있었지만 "그래 믿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범인은 총부리를 더 가까이 겨누면서 소리쳤습니다. "하나님은 없어!" "아냐 있어! 너도 믿어야 돼!" 곧 이어 캐시는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의 크리스챤 십대들이 캐시 버넬 T셔츠를 입기 시작했습니다. 그 T셔츠에는 "그래. 믿어!(Yes, I believe in God)"라는 캐시의 고백이 쓰여졌습니다. 그 T셔츠를 입고 소년소녀들이 전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을 미국의 한 신문이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캐시가 미국 교회에 불을 질렀다."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들어도 어떤 일이 부닥쳐 온다 해도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신앙이 무엇입니까? 어느 순간에도 그래 믿어 하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고백하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먼저 자신에게 시인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속여도 자신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자신 있게 말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말하지 못하는 자는 믿는 자가 아닙니다. 나는 예수를 믿는가? 그래 믿어! 나의 구주는 예수그리스도이다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럴듯하게 예수님을 설명하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학교 교사로 수많은 어린이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예수님을 가르친 사람가운데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가르치면서 자신은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구주이심을 믿습니다. 

그 다음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고 말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나는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나의구주이십니다. 하고 떳떳하게 말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 주님께 말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은혜로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나는 주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입을 열고 고백하고 기도로 찬송으로 말해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더러는 엘리야라고도 하고 더러는 선지자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누구라 하느냐? 여기에 중요한 대답이 있어야지요. 베드로가 주님께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의 방을 찾았습니다. 도마는 그때 자리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선생님이 다시 살아나셨다 하니까? 도마가 믿지를 못합니다. 그때 주님이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내 손과 발을 만져 보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그때 주님 앞에서 도마의 고백은 당신은 나의주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누구입니까?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2. 두 번째는 주의 이름을 부르면 부요해집니다. 

12절을 보면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하나님은 부자입니다. 우리 주님도 부자입니다. 에베소서 2:4을 보면 "풍성하신 하나님"이라 했고, 고린도후서 8:9을 보면 "부요하신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풍성하시고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 중에도 부자는 많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부자가운데는 믿는 자가 많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 믿지 않는 자의 부는 3,4대까지밖에 못가지만 믿는 자의 부는 천대를 갑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부의 축복을 지금도 그자손인 이스라엘이 누리고 있습니다. 뉴욕의 금융가를 쥐고 흔드는 사람들이 유대인입니다. 

그 동안 노벨상을 받은 민족가운데 유대민족이 22퍼센트입니다. 그리고 기독교국가에 속한 사람들이 64퍼센트를 차지합니다. 나라별로 노벨상을 받은 순위를 보면 스웨덴, 스위스, 덴마크, 노르웨이, 미국, 영국, 독일 순입니다. 모두가 기독교 국가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믿고 성경공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성경공부하면 머리도 맑아지고 좋아집니다. 새벽 2시나 3시까지 술 마시고 잠만 잔 사람이 공부 잘하겠습니까? 기도하고 성경공부하고 자는 사람이 공부 잘하겠습니까? 공부도, 사업도, 출세도, 성공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영적으로도 부요하고, 육적으로도 부요합니다. 북미는 신앙 찾아 모여든 사람들이고, 남미는 돈 때문에 모여든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자유 찾아 나선 사람들이 세운 미국은 잘살고, 돈벌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세운 남미는 못삽니다. 수명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길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런데 남자보다 여자가 더 수명이 깁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남자보다 여자가 예수를 더 잘 믿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 어느 교회를 가도 여자교인이 많습니다. 다른 하나는 재료 때문입니다. 남자는 흙으로 만들었기에 쉽게 바스러지고, 여자는 뼈로 만들었기에 평균 10-15년을 더 산다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확실하게 불러야 합니다. 우물쭈물하면 안 됩니다.

13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입니다. 구원의 대상은 구별도 제한도 없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면 됩니다. 고백하면 됩니다. 청와대는 아무나 들어 갈수 없습니다. 미국도 아무나 갈수 없습니다. 미국의 어느 학교는 백인 아니면 들어 갈수가 없습니다. 유색인종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못 들어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든지 들어 갈수가 있습니다. 누구라도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습니다. 소리 내어 주의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가나안 여인도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도, 물속에 빠져가던 베드로도 주님을 불러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소서"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주님은 나의 구주이십니다." 부르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말하는 데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의학적으로도 판명이 났습니다. 우리 신경조직 가운데는 중추신경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사람의 모든 생각을 몸 전체에 전달하는 사역을 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신경조직이 일을 합니다. “아! 피곤하다!” 말을 하면 신경조직은 어떻게 되느냐? “주인께서 피곤하다 하신다. 모두 다 피곤할 준비를 하라!” 그래서 피곤해져 버립니다. “아! 기분 좋다!” 라고 말하면 “주인이 기분 좋단다. 모두 기분 좋은 준비를 하라!” 하고 받쳐줍니다. 

“내일 아침 새벽기도를 꼭 가야 되겠다.” 그러면 신경조직은 “내일 아침에 주인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된단다. 긴장하고 준비하라.” 그래서 도와줍니다. 그런데 “새벽에 가봐야 알지.” 그러면 “새벽까지 가봐야 안단다. 기다려라!” 합니다. 말하고 생각하는 대로 사람이 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으리라 주의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 단다. 구원받을 준비를 하라. 듣는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람이 마지막에 오는 죽음에 대하여 모르는 것 셋, 아는 것 셋이 있답니다. 모르는 것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어디서 죽을지 모릅니다.' '어떻게 죽을지 모릅니다.'그 다음 아는 것은 '언젠가 반드시 죽습니다.' '그 길은 누구도 함께 가지 못합니다.'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근방에서 일평생 동안 쌍마차를 몰면서 많은 사람을 실어다 주는 마부가 있었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천천히 말을 몰고 올라가고 내리막길은 제동기를 발로 힘차게 밟으며 내려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평생 동안 수많은 사람을 태워 많은 거리를 오가곤 했으나 사고라고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늙음이 오고 병이 찾아와서 죽음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문병을 와서 보니까 오른발이 이불 밖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합니다. 사람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하기를 ‘죽음의 내리막길을 내려가지 않으려고 제동기를 밟는 중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밟아도 고장이 났나 브레이크가 들지를 않습니다.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길은 하나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 믿습니까? 그래 난 믿어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축복이 여러분의 것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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