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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 (창 32: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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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2:24-29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더불어 이겼음이니라.” (창세기 32:28)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된 야곱은 극히 인간적이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 사이에서 형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때에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으므로 ‘발꿈치를 잡음으로 따라 잡은 자’란 뜻의 야곱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지지 않으려는 상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모든 일에 지기를 싫어했고, 모든 것을 차지 하고자 했습니다. 사냥하다가 돌아온 허기진 형에게서 간교함으로 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아버지로부터 형이 받아야 할 축복기도를 약삭빠르게 가로채기도 했습니다. 그는 성공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과 교활함과 함께,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질김을 가졌습니다.  
  
야곱은 형이 자기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것을 알고 하란에 살고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그곳에서 20년간 머슴처럼 열심히 일했습니다. 외삼촌의 딸 라헬을 뜨겁게 사랑하여 그 사랑을 얻었습니다. 외삼촌의 두 딸과 그들의 두 여종에게서 12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약속을 가지고도 있었습니다. 위기 때마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자신의 방법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기보다는 자신이 주인이고 하나님은 자기의 성공을 위한 필요대상일 뿐이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과의 갈등으로 처자와 모든 재산을 가지고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고향에는 원한을 가지고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형 에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야곱의 귀향소식을 듣고 형 에서가 400명의 용사를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두려움가운데 빠졌습니다. 야곱은 많은 가축을 세 때로 나누어 차례로 선물로 줌으로 에서의 마음을 녹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형의 공격을 받을 것을 대비하여 가족을 나누어 이동시켰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해놓고도 금방 돌아서서 자기의 꾀를 짜내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야곱이 하나님을 새롭게 체험했습니다. 그것은 얍복강 나루터에서 가족과 모든 가축을 건너보내고 홀로 남아 고민하다가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를 만난 것입니다. 성경은 야곱이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했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그날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문제를 놓고 씨름했던 것입니다. 그 밤이 야곱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야곱은 천사를 붙들고 동이 틀 때가지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 어긋났음에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천사는 그런 야곱에게 ‘네 이름이 다시는 야곱이라고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네가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겼다는 것’은 직역하면 ‘하나님과 사람에게 끝까지 달라붙어 이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겼다’는 것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패배를 당했다는 것이 아니라, 야곱이 매달리는 것을 눌러 꺾을 수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져주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 진실히 다가가는 사람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아내들과 자녀들과 모든 소유로 얍복강을 건너게 한 후 홀로 남았습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자 천사를 만난 것입니다. 천사를 만났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홀로 있다는 것은 진실하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조건이고 우리를 변화시키는 기회입니다. ‘홀로 단독자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그런 경험은 하나님을 진실히 만나게 해줍니다.      
  
많은 사람들은 ‘홀로 있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므로 모여서 떠들어 대고 작당하며 소란을 피웁니다. 그러기에 진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왜 내가 여기 있을까?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지금 나의 삶을 옳게 걸어가고 있는가? 내 믿음의 삶은 바로 되어 있는가?” 라는 진실한 물음은 홀로만이 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고독한 시간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 진실한 모습으로 한적한 곳을 찾아 그곳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진실하신 아들 예수님의 모든 요구를 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게 다가가는 아들 예수님께 할상 져주셨습니다. 
  
진실하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싸워 이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하게 하나님과 씨름하는 사람들을 만나주시고 져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는 항상 싸우셨습니다. 진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녀, 세리와 같은 죄인들과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에게는 져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실한 모습으로 예수님께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진실하게 만나셔서 우리의 문제와 깊이 씨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이기는 사람이 되도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 없이 홀로 서있다는 것은 정말 외롭고 쓸쓸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진실하게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져주시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러지고 깨어지는 사람이 하나님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천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쳤습니다. 이 부분은 힘과 생명을 상징하는 뼈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야곱의 가장 강한 부분을 깨뜨리시고 부러뜨린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가 깨어져야 합니다. ‘나’라는 인간의 강한 고집과 교만’, ‘내가 절대적으로 믿는 나의 능력’ 이 모든 것이 부러지어야 하나님을 이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강한 것이 깨어지고 부러진 사람에게 져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깨어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낮아짐으로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10)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인생)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사29:19)
  
왜 하나님은 야곱을 절뚝거리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고 그의 인생을 통하여 놀라운 일들을 행하기를 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무한하게 축복하셔서 이스라엘 국가를 형성하는 12족장의 아비가 되게 하여 그 민족에게 자기의 아들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자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하나님의 계획과는 달리 자신의 고집대로 살았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술수를 부렸고 간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자심을 위해 있는 분이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부러뜨리고 깨뜨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심으로 400명의 용사를 거느리고 다가오는 형 ‘에서’로부터 도망갈 수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야곱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격과 성품의 사람인 새 사람의 이름 ‘이스라엘’을 부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쩌면 하나님과 씨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벼랑 끝에 서서도 아직도 하나님을 받아드리지 않고 내 고집과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아직도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러뜨리시고 깨뜨려서 우리로 절룩거리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 가운데 거의 그 지점까지 이르러 있는 상태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를 절뚝거리게 할 수밖에 없는 고집 센 사람이 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러져야 할 것을 부러드리고, 깨져야 할 것을 깨드리는 성도에게 져 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이 부러지고 깨어질 때에 형 에서와의 갈등은 해결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부러져야 하고 깨어져야 할 것을 부러뜨리고 깨뜨릴 때에 우리의 삶의 과제와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이 하나님을 이기는 사람입니다.
야곱은 밤이 새도록 천사와 씨름했습니다.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면서도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면서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야곱에게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 끝까지 예수님을 붙드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져주시는 것입니다.   
  
두로아 시돈 지방에 살고 있는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찾아와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상이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나이다.”고 아뢰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애원하는 이 여인에게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계속 간구 하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고 모욕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면서 끝까지 예수님을 붙들고 놓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여인에게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고 말씀하시면서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그 믿음에 예수님은 항복하신 것입니다.       
  
켄터키주 살렘에 있는 한 광산에서 바위가 무너져 내려 5명의 광부가 53시간동안 갱 속에 갇히는 끔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네 명의 광부는 작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중이었고, 다른 한 명은 갱이 무너질 위험에 있으니 빨리 나오라고 전갈을 주려고 들어가다가 모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갱 속에서 빛도, 물도, 양식도 없었습니다. 죽음에 처한 그들에게 있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찬송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들의 찬송과 기도는 계속 되었습니다. 그들이 갇힌 지 53시간이 지난 일요일 아침 그들은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구조된 한 광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계속 기도했습니다. 앉아 있을 힘이 없어지자 누워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찬송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했을 때 멀리서 빛이 비춰오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갱 속에서 발견된 그들의 모자에 적혀있는 글 귀였습니다. 
  
“우리를 발견했을 때에 우리 몸이 이미 시체가 되어 있더라도 슬퍼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는 믿음 그 믿음은 하나님을 이기는 믿음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삶에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야곱은 형 ‘에서’와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역사로 형을 변화시켰습니다. 형과의 원한의 싸움은 용서와 화목의 역사로 승리했습니다. 야곱의 변화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고 형과 겨루어 이기는 변화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신앙의 삶은 승리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항복하시고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인생은 사람과도 겨루어 이기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겨루어 이기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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