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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에 이르는 길 (롬 1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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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이르는 길 (롬 10:8~13)

 
지난 수요일부터 금년도 사순절 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력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를 꼽으라고 하면 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 사순절을 꼽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온갖 수치와 모욕과 고난을 다 당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건의 의미를 새기는 절기가 바로 사순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죄 없으신 주님이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습니까?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우리 인간을 구하시려고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구원이란 말은 건져 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내는 것이 구원입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건져 내는 것이 구원입니다. 더 나아가 죄 때문에 죽음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을 살려 내는 것도 구원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죄 때문에 참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죄 때문에 인간답게 살지 못합니다. 인간은 죄 때문에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그 누구도 죽음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을 살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배로운 피로 주홍 같은 죄를 눈과 같이 희게 씻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구원에 이르는 방법은 과연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아주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9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두려워 떨고 있는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도 사도 바울은 똑같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그렇습니다!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베드로도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 말씀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구원을 받기 위해서 오직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천국 문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막 그 문으로 들어가려는 그를 천사가 붙들었습니다.
"잠시 기다리시오. 이 문을 통과하려면 약간의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별건 아니고 당신이 일생 살아온 것을 점수로 환산해서 1,000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이제 점수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을 말해 보시오."
그가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30년 동안이나 자선 단체의 리더였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1점입니다."
"네? 1점이요? 고것 밖에 안 되나요? 저는 충실한 가장이었습니다. 한 여자와 결혼해서 무려 40년을 살았고 아이들도 아주 잘 키웠죠."
"그래요? 매우 훌륭하군요. 2점 가산입니다."
그는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른 1,000점을 만들어야 할 텐데 좀처럼 점수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조바심이 난 그가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지난 60년 동안 한 번도 교회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또 매일 새벽 기도회에 참석했고 주일에는 성경 공부를 인도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모든 면에서 훌륭한 사람이군요. 또 1점 가산입니다."
"겨우 4점이군요. 이제 저는 어쩌죠? 더 이상 점수에 보탬이 될 만한 얘기가 없는데... 주님! 저는 어쩌죠? 저는 천국에 들어갈 만한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제발 이 죄인을 용서해 주세요. 제게 구원을 베푸실 분은 오직 주님뿐이십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
그러자 천사가 외쳤습니다.
"자, 이제야 당신은 1,000점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들어가도 좋소!"

만약 인간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어떤 노력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솔직히 말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노력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를 삶의 주인으로 모신다는 말과 같습니다.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가 주인이 되시도록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주인으로 모셔 들이는 데는 많은 희생이 따릅니다. 나를 고집하면서 예수를 주인으로 모셔 들일 수 없습니다. 결국 구원을 받으려면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울러 사도 바울은 구원에 이르는 길을 걷기 위해서는 믿음을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은 내적인 것일 뿐 아니라 공개적이라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공동체 앞에서 공개적으로 믿음을 고백합니다. 교회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 앞에서 세례를 받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모일 때마다 다 같이 신앙을 고백하는 것도 우리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사람을 주님도 인정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8장 38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주님은 또한 마태복음 10장 32절 말씀으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예수 그리스도에게 굴복하고 복종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공개적인 고백과 복종의 자세는 교회 안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도 숨김없이 드러내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상의 생활 속에서도 예수가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신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우리는 전적으로 그분의 소유임을 드러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의 삶은 오직 그분을 위한 삶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을 입으로 시인하지 못할 때가 의외로 많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아직도 우리가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직도 우리의 마음이 땅의 것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렇게 입으로 시인하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는 길로 인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날마다의 삶 속에서 믿음을 입으로 시인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끝으로 사도 바울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본문 13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주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마가복음 10장 46절 이하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구원을 얻지 않았습니까?

사실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복입니다.
옛날에는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권한이 제사장들에게만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주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면 누구에게나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크고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아울러 큰 소리로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말미암아 모두 다 구원에 이르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미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의 십자가로 우리에 대한 그 큰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구원의 확신 속에서 살아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새로운 피조물로서 복된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참된 평화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야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받은 바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세상 만민에게 널리 전하는 충성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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