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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가문의 몰락 (삼상 2:11~36) 
 
 
본문은 한나의 찬송에서 이미 예시되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교만한 엘리 가문을 꺾으시는 모습을 기록합니다.

사무엘은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게 되었습니다(11). 당시 성막이 있었던 ‘실로’는 여호수아 시대 말기부터 이스라엘의 종교와 정치와 사회의 중심지였습니다. 그곳에 핵심 지도층에 해당하는 엘리 가문이 있었지요. 엘리는 삼손 이후 사사가 되어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린 대제사장입니다. 반면 사무엘은 성막에서 제사장을 돕는 사환에 불과했지요. 그런데 사무엘서 기자는 엘리의 두 아들과 사무엘을 반복하여 대조하면서 하나님께서 엘리의 가문을 버리시고 사무엘을 성별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선택과 유기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지만, 본문을 보면 버림 받은 자는 결코 변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였습니다. 문자적으로는 ‘벨리알의 아들들’이라는 뜻인데, 사악한 자들 혹은 쓸모없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집에서 제사장 직무를 행하고 있는데도 불량자가 된 이유는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12)는 말씀이 설명합니다. 호세아 4장 6절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하면, 아무리 중요한 종교직분을 담당하며 종교의식 속에 파묻혀 지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사악하고 쓸모없는 자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의 죄는 “습관”(13)이 되어 있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제물 중에 제사장 몫은 부위가 정해져 있습니다. 또 번제단에서 기름을 먼저 여호와께 태워드린 후에야 취할 수 있습니다(레 7:28-36; 신 18:3). 하지만 그들은 여호와의 율법에 나타난 규정과 절차를 싹 무시했습니다. 제사장의 직권을 남용해서 세 살 갈고리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이나 마구취했지요. 삶은 고기에 질리면 삶기도 전에 생고기를 취했습니다. 제사 드리는 자가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취하도록 막아도, 당장 주지 않으면 “억지로 빼앗”겠다고 협박했습니다(13-16). 이와 같은 홉니와 비느하스는 철저하게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는 제사장들이었습니다(17).

구약 시대에 율법에 따른 제사는 죄인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한 일은 이 유일한 통로를 막아버린 죄였습니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죄는 여호와 앞에 심히 큰 것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였는데, 그 이유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 결과 그들은 습관적으로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게 되었다’가 됩니다. 언제나 착각하지 말아야 할 점은 종교적 직분이 그 사람의 신앙을 말해주지 않는 다는 사실과, 종교적인 활동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여호와를 바르게 아는 것을 보장해 주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성소에 살고 있었지만 사무엘은 엘리의 아들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으로 자랍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습니다(18). 한나는 매년제를 드리러 갈 때마다 에봇 안에 받쳐 입는 “작은 겉옷”을 지어 주었지요(19). 엘리는 엘가나와 한나를 축복하며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드린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하였습니다(20).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셨고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랐습니다(21). 문단의 앞뒤로 사무엘이 ‘여호와 앞에’ 있음이 강조되고 있지요.

아이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형성되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에 속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라고 해서 부모가 두 손 놓고 있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아마 한나는 만날 수 없는 아들을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매년 짧은 만남 속에서도, 사무엘이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 앞에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의미 있는 교훈을 주었을 것입니다. 자녀는 여호와께서 주신 선물이며, 자녀가 “여호와 앞에” 자라도록 돕는 일은 부모의 의무입니다. 요즘은 알아서 공부하도록 두면 뒤쳐진다며 자녀의 학과 교육에 세세하게 신경 쓰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경외심은 알아서 자랄 것처럼 방치하기만 한다면 심각한 오해겠지요.

엘리는 한나와 대조적으로 늘 자녀와 함께 있었지만 그들의 신앙을 돕지 못했습니다. 엘리가 “매우 늙었”을 때에(참조. 4:15),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들었습니다(22). ‘동침’이라는 표현은 성폭행이 아니라 상호 합의되었음을 뜻합니다. 당시 이방 종교들은 성소에서의 성행위를 종교의식의 일부로 행했는데, 그 시대의 죄악이 여호와의 성소에 있는 제사장 계층까지 깊이 퍼진 것이지요. 엘리는 젊잖게 자녀들을 타이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사무엘서 기자는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고 해석합니다(25b).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려고 방탕하게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은 전혀 몰랐습니다. 단지 그들이 살고 싶은 대로 살았을 뿐이지요. 하나님께서 바르게 살고 싶어 하는 자를 억지로 당신님의 뜻에 굴복시킨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100% 보장되는 동시에 하나님의 뜻도 100% 실현되는 모습을 본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어떤 사람을 선택하고 어떤 사람을 버리기로 작정하셨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버리기로 작정한 사람은 엘리의 아들들처럼 하나님 앞에 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끝내 회개의 기회들을 저버리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한 민족을 형성케 하신 것은 그들을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출 19:6). 그런데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점점 이 목적에서 벗어난 삶을 삽니다. 이런 목적 자체를 싫어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권면하면 거부하지요. 자신의 쾌락을 좇으며 자기 원하는 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줘도 진심으로 사양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말해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버림받은 자는 변명할 수 없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사무엘 같은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26).

자녀로 하나님 앞에 살게 한다는 것은 사람의 힘만으로 되지 않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신다면 날마다 책망하고 권고해도 소용이 없지요. 한나처럼 성실하게 기도하고 권면한다고 해서 모두가 사무엘처럼 자라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엘리에게 직무유기의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엘리에게 먼저 하나님께서 그들의 가문에 풍성한 은혜를 주셨음을 길게 상기시킵니다(27-28).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지게 하느냐”(29)고 책망했지요.

아들들의 죄에 대해 엘리가 지적하긴 했지만, 그들이 지은 범죄에 비하면 치리가 너무 약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23-25). 이 말만 했을 뿐 회개치도 않는 그들을 여전히 제사장 직에 두었지요. 계속해서 여호와의 제물과 예물이 짓밟히도록 방관한 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행동이 근본적으로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 지적하셨습니다.

성경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막연히 종교 활동에 많이 참여하도록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배는 어떤 자세로 드려야 하는지, 하나님 앞에 있음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마땅히 행할 길”을 하나하나 “가르치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위해서 때로는 채찍도 필요합니다. 성경은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잠 23:13)고 했지요. 또한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고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이미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성인이라 늙은 아비의 말을 잔소리로밖에 듣지 않는다는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변명할 수 없는 까닭은 ‘아들보다 하나님을 중하게 여기는 경외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상황과 교육 방법이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가 먼저 참되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서는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칠 도리가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예외 없이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는 원칙을 천명하셨습니다(30).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는 하나님을 존중하는 삶을, 하나님께서 버리신 자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삶을 나타나게 됩니다.

이제 중심까지 썩어버린 신앙을 회복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집을 차지한 자들에 대한 형벌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엘리 가문의 몰락이 예언됩니다(31-36). 아론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나답’과 ‘아비후’는 경외심 없이 여호와께서 명하지 않으신 불을 드리다가 즉사했습니다(민 3:4). 엘리는 ‘이다말’의 후손인데 솔로몬 시대에 그의 가문은 몰락하고 ‘엘르아살’의 후손이 제사장직을 승계하지요.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는 예언(35)은, 일차적으로는 3장에 등장하는 사무엘에게서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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