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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당하신 예수님 (요 7: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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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신 예수님 (요 7:25~36)   


1.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입으면 날개를 달고 올라가듯이 기분이 상승하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저희가 어릴 때, 설날이 되면 부모님께서 설빔을 사주셨습니다. 새 옷을 입으면 왠지 으시대고 싶고, 고개를 들고 어젓이 걷게 됩니다. 반대로, 오래 입어서 여기 저기 꿰맨 옷, 코가 빠진 옷을 입으면 괜히 심리적으로 위축감을 느낍니다. 성형수술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수술을 해서 예쁜 얼굴로 바꾸면 당당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좋은 옷을 입으면서 가졌던 당당함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사라집니다. 성형수술 후의 자신감도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부분에 대해 또 불만족하면서 그 당당함과 자신감이 사라져갑니다.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갖게 되는 자신감과 당당함은 곧 불만으로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속적으로 당당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겉모양에 의존하지 말고 속사람이 새로워지면 됩니다. 
속사람이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으면 환경에 관계없이 항상 당당할 수 있습니다. 

2.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복음서를 통해서 그려볼 수 있는 예수님의 겉모양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못 배웠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서 어려서부터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목수 일을 배웠습니다. 그 당시에 목수는 비천한 직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목수일를 하면서 동생들을 키우고 가계를 이끌어갔습니다.

이렇듯 겉으로 드러난 예수님의 외모는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겉보기에 초라한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탁월하게 가르쳤습니다. 병자들을 고치셨고, 배고픈 무리를 먹이기도 하는 등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가진 것은 없어도, 예수님은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일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매력을 느끼고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분의 제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자신감, 당당함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오늘 말씀으로 들어가서 살펴봅시다. 

3. 예수님은 초막절이라는 유대인의 명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성전에 모인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당국자들이 죽이고자하는 바로 그 사람이 아니냐? 체포하지 않고 뭐한단 말인가?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진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아니야. 이 사람은 그리스도가 아니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다고 했는데,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당시 일부 유대인들은 ‘메시야는 갑자기 온다. 어디서 오는 지 알 수 없다’ 라는 그릇된 메시야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온 사람인 것을 그들이 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라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지고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28-29절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예수님은 자신을 비난하고 의도적으로 비하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위협적인 환경에서도 예수님은 도리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얼마나 당당합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를 꺾으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전혀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합니다. 수레에 물건이 가득 실리면 조용합니다. 
속이 꽉 찬 사람, 내공이 있는 사람은 외부의 환경에 의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내공이 있는 분인지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세요.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안다.”
너희들이 내 출신을 알고 있다는 것, 인정한다는 말씀입니다. 

못 배웠다고 비난하면, “그래 못 배웠다.” 라고 인정하고, 
시골에서 왔다고 하면, “그래, 나는 시골출신이다” 라고 인정하면 됩니다. 
‘어쩜 눈이 저렇게 작지? 눈 감았는지, 눈 떴는지 구분이 안 되네’ 라고 놀리면,
“그래요. 나는 눈이 작아요.” 라고 사실을 인정하면 됩니다. 
겉으로 드러난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 이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못 난 부분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 내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속이 꽉 찬 사람입니다. 내적인 힘이 있는 분입니다. 
마음에 상처가 많은 사람은 그런 말을 들으면 화를 냅니다.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내적인 힘이 약하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보지 못하는 내적인 부분, 본질적인 부분을 보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함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여기에서 예수님은 유대들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 하나님의 존재를 언급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구약성경을 배워서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머리로는 압니다. 이론적으로는 잘 압니다.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실제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과의 동행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알지 못한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분입니다. 육체로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만질 수 없습니다. 외모만 보는 유대인들- 예수님이 어디 출신이고, 어떻게 생겼고, 그 가족은 누구 누구고,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얼마나 못 배운 사람인지- 이런 외모만 갖고 사람을 평가하는 유대인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못하고 도리어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육체적으로 어디 출신이냐는 것보다 그 마음, 영혼이 어디 출신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육체적으로는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요셉의 가문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를 있게 한 분은 우리의 부모님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부모님이란 그릇을 빌려 우리를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당당함의 근거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나 안전하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런 당당함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4. 재미 교포 중에 신호범 장로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1935년 일제시대 때,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나이 5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어린 그를 버려두고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그 이후 친척 집을 전전하다 8살부터는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거지 생활을 했습니다.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 쓰레기라도 주워 먹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비참하게 살았는데, 6·25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10대 청소년 신호범은 미군 부대의 청소부가 됩니다. 

그러다가, 레이 폴(Lay Paul) 이라는 군의관을 만나게 되고, 그 군의관이 신호범을 미국에 데리고 가서 양자로 삼게 됩니다. 18살이 넘은 나이에 미국으로 가게 되는데... 나이가 많아서 학교에 갈 수가 없었고,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에 들어가서 나중에는 대학교수까지 됩니다. 그가 이렇게 성공하게 된 것은 양부모님으로부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려운 고비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너무 힘들어요...”

그러던 어느 날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자신의 비전을 발견합니다. 
“미국 역사를 보면, 아일랜드 사람들은 천주교를 미국에 갖다 주었고, 프랑스 사람들은 예술과 아름다운 가구들을 전해주었고, 독일 사람들은 과학을 전해주었고, 중국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가져왔는데... 한국 사람들은 신앙! 교회를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로마가 군사력이 없어서 망한 것도 아니고 도덕적인 부패 때문에 망했는데, 21세기에 미국이 망하는 위기가 올 때에 한국 민족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줄 민족입니다. 한국은 장차 우리 미국을 살려낼 민족입니다!”
신호범장로님에게 있어 한국은 절망의 나라, 아픔의 나라, 그래서 부끄러운 나라일 뿐이었는데... 미국을 살려낼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확신을 갖고, 미국을 살려내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동양인 최초로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신호범 장로님이 자라온 환경은 형편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에 하나님이 들어오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래, 내가 미국을 변화시킬 수 있다.” 비전이 생겼습니다. 속사람의 변화, 이것은 그의 운명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안에 하나님이 들어오시면, 우리의 운명이 바뀝니다. 
속사람이 하나님으로 가득 차면, 예수님처럼 언제, 어떤 환경에서나 당당해질 수 있습니다. 
30절을 보세요.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 악한 것들이 함부로 손대지 못합니다. 
속사람이 하나님으로 충만한 사람, 성령충만한 사람, 그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당당합니다. 
다음의 세 가지를 믿으시면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첫째,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십시오. 
둘째, 어떤 자리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그 자리로 보내주셨음을 믿으십시오. 
셋째,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좋은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실 줄 믿으십시오. 

5. 지난 주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계절입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훈련을 하는 계절이 사순절입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됩니다. 그래서 훈련하는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동안 한 주에 하루를 금식하거나, 하루에 한 끼를 금식하며 기도해보십시오. 텔레비전 시청 시간을 줄이고 대신 찬송 부르고 성경말씀을 읽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사순절 기간 동안 특별히 새벽기도를 드려보십시오. 이 기간 동안 안 믿는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해보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이 좀 더 맑아지고, 주님을 더 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처럼 당당하게 사실 수 있을 것입니다.  
 
25.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 
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30.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31.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32.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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