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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를 받자 (히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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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받자 (히 12:28)


(히 12: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새 언약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진동치 아니할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심판을 자초하는 배교나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행위를 범하지말고 오직 은혜를 굳게 붙들 것을 권면하며 은혜를 받자고 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부흥성회를 통하여 은혜 받는 모두가 됩시다. 

  갈망하여야 합니다

단비 같은 은혜를 갈망하여야 합니다.

(신 32: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신 32:2)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모세는 자신의 입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치 메마른 사람의 영혼을 새롭고, 기름지게 만드는 단비와 이슬 같다고 선언합니다(Keil).    이는 또한 이스라엘이 옥토(沃土)와 같은 마음밭을 갖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줄 것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실로 물이 귀한 이스라엘의 환경을 참작할 때, 그리고 타는 듯한 사막의 메마름을 백성들이 익히 알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 비유의 신선함을 선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히 6: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히 6: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이슬(탈)은 '살짝 뿌리다', '덮다'란 말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이스라엘 지역에는 이슬이 많이 내리는데 그 원천은 지중해의 습한 바람입니다. 8-9월 중에 많이 내리는 이슬은 이스라엘에서는 수자원(水資源)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특히 비가 제때 안 내릴 경우 이슬은 한 해의 농사에 큰 구실을 합니다. 따라서 만약 이슬이 제대로 내리지 않으면 가뭄의 피해는 가중됩니다. 이런 점에서 이슬은 비 못지 않게 중요한 자연의 혜택이었습니다. 

가는 비(사이르)는 '머리카락', '털'에서 파생된 단어로 '가볍게 내리는 비'를 가리키며 눈에 보이지 않으나 생명을 돋아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감화력'을 상징합니다. 

단 비(레비빔)는 '풍성함', '많음'에서 파생된 단어로 '소나기'(KJV, showers) 또는 '많은 비'(NIV ,abundant rain)를 가리키며 사람들의 눈에 현저하게 띄일 정도로 크게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생명력', '강권력'을 상징합니다. 이와 같이 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메마른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힘이요, 삭막한 심령에 풍성한 결실을 보장해 주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갈망하여야 합니다

(시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시 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 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갈급함같이(아라그)는 이곳과, 지독한 가뭄 때 하나님을 향하여 '헐떡거리는' 들짐승들을 묘사하는 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욜 1:20)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

이 용어는 `찾기에 갈급함'같이로 번역하기보다는 '울부짖으며 찾음과 같이'로 번역해야 원문의 의미가 살아날 듯싶다하기도 합니다(Luther).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는 지성소 및 성전에 나아가게 됨을 묘사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으로(84:7 ; 출 23:17) 지성소에서의 갈망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갈망을 분명한 형태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말을 물가로 데리고는 가지만 물을 먹이지는 못한다 하기도 합니다. 말이 물을 먹고 싶어야 먹는 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회로 모여도 각자의 심령에 따라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빚을 지고 죽은 선지 생도 남편을 대신하여 생활을 책임져야 할 그녀에게 있어서 당장 끼니를 이을 양식 걱정보다 빚으로 인하여 채권자의 종으로 끌려 갈 두 아들에 대한 걱정이 앞섰습니다. 만약 빚을 갚지 못할 경우 두 아들은 채권자의 종으로 7년 동안 종살이를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출 21:2). 

이처럼 어려운 곤경에 처한 가난한 과부의 호소를 들을 엘리사는 이 문제를 실제적으로 해결해 주었습니다. 엘리사의 응답은 이제 구체적으로 가난한 과부에게 주어집니다. 그녀는 한 병의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기름 한 병밖에 없다는 대답을 들은 엘리사는 다시 말하기를 이웃에게 빈 그릇을 빌리되 빌릴 수 있는 한껏 빌려오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그녀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음으로 빌릴 수 있는 한껏 빈 그릇들을 빌려 왔습니다.
빈 그릇의 수효는 곧 그녀의 믿음의 분량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하신 만큼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빌려 온 빈 그릇에 엘리사가 시키는 대로 기름병의 기름을 부었습니다. 아무리 부어도 기름병의 기름은 줄지를 않다가 마지막 그릇을 가득 채우자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빈 그릇은 하나님의 복을 담는 그릇이었습니다. 물론 그릇이 더 있었다면 그것도 가득 채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름이 넘쳐 바닥에 흐르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복도 무가치하게 바닥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을 때에도 컵, 주전자 바케츠 양동이 수차등 준비한데로 물을 길어 감 같이 준비한 심령의 그릇대로 은혜를 받게 됩니다.
옛 이야기처럼 가마니를 짠데로 새끼를 꼬은 대로 세경을 받아 갔던 처럼 준비된 그릇대로  은혜를 받는 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그릇 준비하여 은혜 받는 모두가 됩시다

옥토의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를 유형별로 나누어 교훈 하셨습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길가는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통행로입니다. 거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이나 차량도 다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은 매우 단단하여 씨를 심어 보았자 자랄 수 없습니다.
   
길가를 특징 지워 주는 단어는 '단단함'입니다. 단단하다는 것은 굳은 상태를 말합니다. 굳어진 마음은 폐쇄적인 마음입니다. 마음의 문을 꼭 걸어 잠근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 잡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용납도, 포용도 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강퍅한 마음은 복음의 씨를 키울 수 없습니다. 많은 불신자들이 이와 같은 마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길가와 같이 단단하게 각질화 된 마음은 진리를 듣긴 들어도 그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하므로 진리를 믿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우매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세상적 지식과 지혜가 뛰어나다 할지라도 마음이 길가와도 같은 사람은 무지한 사람입니다.
니고데모에게서 이와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진리에 어두운 사람은 가장 불행합니다. 구원의 진리인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돌밭같은 마음입니다. 돌밭은 흙이 얇은 곳으로 씨앗이 뿌리를 내리되 깊이 내리지를 못합니다. 심지가 깊지 않은 마음에서 위대한 사상이 나올 수 없습니다. 사랑과 겸손, 자비와 온유와 같은 성도의 덕목은 모두 깊은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마음은 인격과 통합니다. 기독교는 마음의 종교입니다. 산상 수훈의 교훈은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마 5:3).
   
돌밭 마음은 일단 말씀을 듣고 깨닫기는 합니다. 이치에 맞기도 하고 그가 듣기에 좋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뿌리를 내리지 못하므로 그 말씀에 확신이 없습니다. 정말 그럴까 의심하며 확실하게 믿지를 못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의 신앙은 넘어지기 쉽습니다. 시험이 닥치면 쉽게 포기합니다. 한때의 열정으로 뜨겁게 타오르는 듯하다가 곧 식어 버립니다. 신앙의 초기 단계에서 믿음을 저버린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입니다. 이 밭은 부드럽고 좋은 땅이지만 씨가 자랄 때 가시와 함께 자라게 되어 열매에 상처를 입어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염려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염려는 '분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나친 염려는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성도에게는 영혼의 상처를 가져다줍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아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지만 세상의 염려와 근심으로 믿음을 해치는 성도들의 상태를 말합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유혹에 쉽사리 빠지는 마음입니다.
유혹은 사탄의 무기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끊임없이 사탄의 유혹을 받게 됩니다. 유혹을 받는다고 해서 유혹에 쉽게 빠져서는 안 됩니다. 모든 유혹은 욕심에서 기인합니다. 유혹은 사망을 낳는 원인입니다.
   
좋은 땅과 같은 마음입니다. 좋은 땅은 앞서의 세 종류의 마음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옥토를 말합니다. 구별의 기준은 열매에 있습니다. 옥토만이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마음입니다.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호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호세아 선지자는 지금이 여호와를 찾을 때이므로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의 상태는 묵은 땅과 같이 강퍅하여져 있었습니다. 묵은 땅을 다시 일구듯이 강퍅한 마음을 다시 뒤집어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라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아 회개하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내리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비처럼 내린다는 말씀은 은혜를 아낌없이 충만하게 내려 주실 것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게 비를 내리시듯이 용서와 긍휼을 한없이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과거에 가졌던 악한 마음에서 돌이켜 새롭게 변화되도록 권고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의를 심기는 커녕 오히려 죄악 가운데 방치해 두었던 마음을 갈아 엎음으로 새롭게 변하게 하라는 말씀이다. 이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촉구한 회개의 권고와 유사하다

(렘 4:3)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결국 회개를 요청하는 내용으로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란 예수의 비유와 일맥 상통합니다.

(마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막 2: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매우 값비싼 괘종시계를 가진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시계가 고장 나서 멈추어 섰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시계가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처음엔 무게를 높여서 무거운 추를 달아보았지만 오히려 기계에 압력만을 더해 줄뿐이었습니다. 낡은 유리를 새것으로 갈아 끼워도 별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시계 바늘을 새것으로 갈아 끼웠습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의 애쓰는 모습을 이상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던 딸이 입을 열었습니다. '아빠, 그 고장 난 시계의 내부 기계를 모두 새것으로 갈아 끼워야 되잖아요.' 

우리 역시 우리의 옛 행실을 고치고자 한다면 새롭게 태어나는 '중생'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옥토는 일구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땀이 필요합니다. 적당한 거름도 필요합니다.
성도의 마음이 기름진 옥토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요 3:5). 거듭나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새롭게 중생한 성도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는 마음입니다.

옥토란 추수기에 다른 땅보다 많은 수확량을 내는 땅을 말합니다. 옥토와 같은 성도의 마음은 신앙과 생활의 '열매'를 다른 성도들보다 많이 맺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새겨 생활에 적용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옥토와도 같은 마음으로 풍성하고도 거룩한 생명의 열매를 많이 맺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간마다 참석하여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에 그곳에 없었던 도마는 주님의 부활의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은혜의 시간에 함게 해야 합니다. 
텔레비전도 안 보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두들은 은혜의 시간에 동참 하지 아니하면 대화가 통하지 아니합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임하는 모습이 어떠 합니까

(행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은혜의 역사는 개별적적임을 알게 합니다.

시간 시간 함께 하며 은혜받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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