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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분깃 (신 3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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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분깃 (신 32:9~12)


12세에 경기중학교 수석 입학, 15세에 경기고등학교 수석 입학, 고교 입학 4개월만에 대입 검정 고시 전국 수석, 16세에 서울대학교 문리대 차석 입학, 21세에 미국 미시간 주립대 박사 과정 수석 합격, 24세에 박사 학위 취득, 미국 사우드 플로리다 대학 조교수, 27세에 MIT 원자력 공학과 연구원, 28세에 뉴욕 공대 전기물리학과 부교수, 43세에 한국전력 사장, 그리고 51세에 과학기술처 장관 여기까지 열거한 것들은 정근모(鄭根謨) 박사의 이력입니다. 

이 정도 실력이면 험한 세상에서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근모 박사는 "이 화려한 것들은 어머니의 기도와 신앙 안에서 생활해 온 결과" 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자신은 환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들이 만성신장염을 앓게 되어 콩팥 하나를 아들에게 떼어 주게 됩니다. 그러나 수술이 잘못되어 아들은 죽음의 지경에 이릅니다. 그때 정 박사 부부는 아들의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믿고 교회에 나가 부르짖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과학과 의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정 박사는 그의 글에서 고백합니다. "정말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체험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나의 전공인 과학의 힘으로도, 인간의 의지나 설득으로도, 부모와 자식이라는 원초적인 관계로도 해결할 수 없는 한계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창조주요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태 신앙이기도 했던 정근모 박사는 그동안 신앙생활에 불충실하고 세상일에 전념했던 모습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피했더니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노라 간증합니다. 후에 교포들과 함께 교회를 개척하면서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살 수 있다는 확고한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분깃을 통해 역사하신 모습입니다. 

신명기 32장은 모세가 죽기 직전에 하나님의 역사를 회상한 것으로서 '모세의 노래' 라고 불려집니다. 모세의 죽음이 임박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부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유는 모세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길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노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보호하심을 생생하고 상징적인 어조로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는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 '분깃' 이라는 단어는 '하라크' 인데 '나눈 한 몫' 이라는 뜻입니다. 영어성경은 Portion(분깃)이란 단어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즉 모세는 우리가 하나님의 분깃이며 그의 백성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증거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분깃임을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분깃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는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첫째로 택하시니

조지 워싱톤(George Washington)은 태어나면서부터 몸이 약해 곧 죽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17세와 22세 때는 세 번이나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뻔했습니다. 19세 때 천연두, 20세 때 늑막염에 걸렸습니다. 35세 때 급성 이질에 걸려 죽을 고비를 또 넘겨야 했습니다. 43세 때에 치아가 거의 못 쓰게 되어 고통받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택하여 주시고 같이 하여 주시기에 사명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약함과 병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43세인 1775년에 미국 혁명군의 총사령관이 됩니다. 전투는 연전연패였습니다. 그러나 끈기 있게 싸워 1781년 승리함으로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 후 1789년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주셨다는 확신이  버린돌에서 머릿돌이 되게 한 것입니다. 선택되었다는 확신은 택함 받은 사람으로서 주어진 모든 축복을 발휘하게 만들어 줍니다. 

본문 9절입니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즉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택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믿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못하면 치욕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부끄러운 일들이 생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심을 믿는 순간 치욕과 수치는 그치게 됩니다. 관념으로 감정으로 기분으로 혹은 입으로 믿은 것들을 이제 실천할 때가 되었습니다. 

혹시 하나님과 수직적 관계는 좋은데 이웃과의 수평적 관계가 나쁜 것은 아닙니까? 믿음은 좋은데 믿는 사람이 왜 그럴까 핀잔을 듣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바르면 이웃과의 관계가 잘못될 리가 없습니다. 비도덕적인 행동은 성서에 기초한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이 아니라 종으로 여기면 자기 중심이 되고 맙니다. 그때의 모습은 신앙 따로 생활 따로가 됩니다. 믿는 것과 말하는 것, 고백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따로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택하셨음을 믿는 믿음대로 행하여 여호와의 분깃에 합당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지키시니

인도의 아크바르(Akbar)황제 때 비르발(Birbal)이라는 현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황제가 어전으로 나오더니 벽에다 줄을 하나 긋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말합니다. "잘 들어라. 지금부터 그대들은 내가 벽에 그어놓은 줄을 짧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거라. 단, 줄에 절대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 일절 손을 대지 않고 이 줄을 짧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손도 안 대고 어떻게 벽에 그어진 줄을 더 짧게 만들 수 있습니까? 손만 댈 수 있다면 물론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비르발이 나섰습니다. 그어진 왕의 줄 밑에 더 길게 줄을 그어 버렸습니다. 줄이 길어지니 왕의 줄은 상대적으로 짧아졌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상대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적 강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분깃의 믿음을 소유해야 하나님의 지키심이 가능함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눈에는 1억개의 신경세포가 있어 거리, 광도, 색상을 자동으로 조절합니다. 눈의 기능은 자동 시스템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눈꺼풀만 해도 유사시에 자동으로 덮힙니다.  눈물샘이 있어 안구운동에 지장이 없도록 습도를 조절해 줍니다. 하나님이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신다는 것은 눈을 보호하듯 철저하게 완벽히 지켜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눈을 보호하듯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얼굴 쪽에 공격을 받으면 눈을 감든지 손으로 눈을 가리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눈동자처럼 여기고 지켜 보호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통과하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일교차가 심합니다. 낮에는 폭염에 시달리고 밤에는 추위로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마실 물이 없고 독사와 맹수가 들끓는 사람의 힘으로 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 위기를 잘 넘어가도록 하나님께서 주야로 지켜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반석에서 샘을 터트려 물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어미 닭이 새끼를 날개 아래 품음같이 내가 자녀를 모으려고 한 일이 몇 번이냐고 주께서 말씀하심도 우리를 자식같이 품으며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자신이 '여호와의 분깃' 이라는 믿음을 가짐으로 하나님께서 지켜주심을 확신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이끄시니

메리 스티븐슨(Mary Stevenson) 여류시인은 미국의 대공황기에 어렵게 살았습니다. 1936년 겨울 어느 날, 집안에 갇힌 그녀가 눈 위의 고양이 발자국을 보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영감을 받아 쓴 시가 '모래 위의 발자국(Footprints in the sand)' 입니다. 그녀는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시의 내용인즉 어느 날 밤 한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속에서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늘을 가로질러 삶의 장면들이 펼쳐졌습니다. 모래 위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그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삶의 마지막 장면이 비쳐졌을 때 하나의 발자국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때가 가장 어렵고 슬픈 시기들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그를 괴롭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하면 저와 동행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음이 어찌된 일입니까?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왜 떠나셨는지 이해할 수 가 없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한 자야,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나는 결코 너를 떠난 적이 없었다. 네가 고통과 환난 가운데 있을 때 한 사람의 발자국을 본 것은 내가 너를 업고 갔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된 순간에 주께서 우리를 업고 가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해도 느끼지 못해도 하나님이 여전히 이끌어 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렇게 한 다른 신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이끄실 때 업어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려운 순간에는 업어서라도 이끄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물이 침몰치 못하도록 불이 사르지 못하도록 이끌어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의 분깃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1862년 4월 30일 링컨(A. Lincoln)이 행한 연설 가운데 유명한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미국의 비극과 전쟁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다같이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링컨은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영광과 부귀, 그리고 치르고 있는 남북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해답은 바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데 있다고 역설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기에 온갖 갈등, 대립, 분쟁을 치르고 있으니 하나님께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삶의 모든 해답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분깃' 이란 자긍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존귀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즐거움은 여호와의 분깃인 우리에게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은 즐거움을 누리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깃에 합당히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택하여 주시니, 지켜주시니, 이끌어주시니 여호와의 분깃의 확신을 가지고 바로 믿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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