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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여! 나를 도우소서(마 16: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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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나를 도우소서(마 16:16-25)

세상과 인생의 실체
사람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을 잘 살기 원한다.  그래서 인생이 무엇이고 세상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고, 그 결과물로  철학, 과학, 문학과 예술 그리고 스포츠 등 인류 문명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세상과 인생에 대한 실체를 가장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성경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영원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세상 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 살다가 죽음이 꿈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되리라” 철학과 사상 이념은 시대가 변하는 대로 따라 변한다.  그러기에 영원할 수 없다.  하나님이 보여 주신 세상과 인생의 실체만이 진리이다.  
믿음 가지고 사는 여러분이 가장 잘 사는 것이다. 믿음 지키며 사는 여러분이 가장 후회없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믿음 지키며 살기가 쉽지 않다.  스가랴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 말씀이 맞다.  (슥 4:6, 개정) 『...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그래서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  도우심은 기도를 통해서 얻는다.  기도할 때 하늘 문이 열린다.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  기도함으로 우리들의 믿음이 지켜져 승리할 수 있다.  

깨닫게 하실 때 내 것으로 만들도록 기도하라
오늘 본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세상을 가장 잘 사는 복 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6절에 믿음 고백을 했고,  18절부터  반석이 되니 이제, 무슨 집을 지어도 무너지지 않고 안전하다.  음부의 권세가 싸움을 걸어도 요새가 되어 넉넉히 이긴다.  거기다가 천국열쇠까지 받아 이 땅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매고 풀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것을 누리게 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하셨고 깨닫게 하셨기 때문이다(17절).  알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웨슬리의 신학적 설명을 빌리면 ‘선행은총’이다.  세상에서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알고 보면 주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될 수 없다.  고백은 내가 하는 ‘자유의지’이지만  그 자유의지를 사용해서 하늘의 복이 내게 임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주여! 나를 도와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기도가 전부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늘의 복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구원과 은혜는 내 몫이다.
십자가의 구원은 완성되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다 이루었다”고 세상에 선포되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다. 마치 천국에 가는 고속도로가 완성된 것과 같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는 것은 내 몫이다.  개통식이 끝난 것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톨게이트에 들어서는 것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제사(예배)보다 순종이 더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 15,22)고 하셨다.   
말씀의 씨는 완전하다.  문제는 그 씨를 받아들이는 밭에게 있다.  말씀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딱딱해진 마음을 뒤집어 엎어야 한다.  찬양을 뜨겁게 할 때 그 마음을 뒤집어 엎어진다. 온 맘과 뜻을 다하여 쟁기질을 해 보라. 전심으로 주를 찬양하며 고백하라. “주여! 나의 찬양에 힘을 주시고, 나를 도우소서” 기도하면서 찬양하라.  주님을 찾는 자에게  주님은 손을 거절하신 적이 없으시다. 심령이 뒤집어져 말씀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도록 여유가 있는 마음이 될 것이다.  

나를 위한 기도 타킷
나를 가만히 보면 살가운 것이 없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표현하기 어려워하고 서툴 때가 많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 많다.  무던히 참아 준 아내,  아이들도 하나는 듬직하고, 하나는 까불까불해서 조화와 균형을 맞추어 주셨나 보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아내와 자녀들에게  살가운 것이 없어서 다정한 말투가 잘 나오지 않는다.  얼마나 무뚝뚝한지.  때로는 집안 내력이라고 생각도 해 본다.  그래도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말이 많아 ‘젤젤이’라고 불리웠으니까.  그러나 그러면 뭘 하나,  살갑지 않은 것을!
나를 위한 기도 타킷, 기도 제목은 바로 이것이다.  “살갑게 하여 주셔서, 주님 주신 가장 좋은 복들을 누리게 하옵소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을 이기는 기도를 순간순간 주님께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주여! 도우소서.”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절대 사실
기도하면서 깨닫게 하신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변치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주일 말씀 요절은 이를 잘 보여 준다.  (롬 8:38-39, 개정)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러니 나를 힘든 환경에 있을 때 “주여! 나를 도우소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절대 사랑을 바라보아 이겨야 한다.  세상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떼어 놓을 수 없다. 나를 비참하게 할 수 없다. 외롭게 할 수 없다.  나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는 존재이다. 
또 하나 깨달은 것은 환경 위협적이고 사단은 더 위협적이지만, 이를 이기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가인과 아벨이 다같이 예배를 드렸지만,  아벨의 예배는 열납했으나 가인의 예배는 열납하지 않았다.  둘 사이, 특히 가인에게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기분도 나쁘고 별 생각도 다 들었을 것이다.  사단이 할 수 있는 것은 틈을 타고 들어와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이때, “주여! 나를 도우소서”기도해야 한다.  
그 결정적인 순간을 창세기 4장 7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환경도 중요하고 틈을 타는 사단도 문제지만 결국은 자기문제이다.  자기 자신을 잠언 16장 32절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라고 또 잠언 4장 23절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한다. 

자기 십자가를 질 힘을 달라고 기도하라.
베드로는 제자 중, 최초로 아마 당시에 그를 따르던 사람들 중에 최초로 주님이 원하시던 그 고백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너무 기뻐하시면서 하늘의 복을 다 쏟아 부어 주셨다. 
그런데 그 모습은 너무 잠시였다.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하시는 주님을 베드로는 붙들고 항변하면서 절대로 십자가의 죽음은 주께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호헌한다. ‘반석’이 ‘걸림돌’이 되는 순간이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하는데, 사람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목숨같은 자존심을 내려 놓기가 쉽지 않다.  자기 생각에는 반드시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죽기보다 어렵다. 그러니 자기 십자가 질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주여! 도우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라는 모 전자회사 선전문구가 있었다.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이미 와 있는 하늘의 복이 내 것이 되기도하고 그냥 있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를 이길 기도 “주여! 도우소서”를 매 순간 기도하라.

아차산 살인의 추억
작년 겨울 반사회적 인격장애 사이코패스인 사람이 불신검문에 잡혀 차 트렁크를 여는 순간 주민등록증이 여러 개 나오면서 범죄행각을 추적하게 되었다.  완강히 버티던 그가 한 형사를 만나 범행 추궁대신 12시간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단다.  재혼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단칸방에서 이복형제를 포함해 6명이 살다가 아버지가 중3때 돌아가셔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인쇄소에서 일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한 남자에게 아차산 길을 가르쳐주러 나갔다가 성폭행을 당했다. 사춘기 때는 포르노에 빠졌다. 이렇게 사이코패스가 되어갔다. 
12시간 동안 이야기를 들어 주었더니 여태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이 없었다며 형사에게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하면서 실토하기 시작했다. 미제 살인 사건으로 있던 2건이 밝혀졌다.  형사가 말했다.
“넌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인생을 포기해버린 게 아닐까.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는데 말이야. 이제부터라도 죗값을 치르고 다시 시작해라.”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남 진도에서의 어린 시절, 고교 졸업 후 고층 건물 외벽을 닦으며 경찰시험을 준비했던 일을 말했다. 

가롯 유다와 베드로 
가롯 유다도 예수를 은 30에 팔아 넘기고 고민했다. 뉘우치고는  받은 돈을 다시 대제사장들에게 갔다 주었다. (마 27:3, 개정)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자신과 마음을 다스리도록 기도하지 않았다.  주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베드로도 실수는 했다, 본문에서 여전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여! 나를 도우십시오” 기도를 했다.   하늘의 복을 내 것으로 누리는 것은 기도하는 자신을 통해서이다.  자신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기도밖에 없다. 그래서 기도가 그 만큼 중요한 것이다. 

받은 것 가지고 기도하자.
성령이 임하면, 꿈과 비전을 주신다. 그러나 마귀도 비슷하게 역사할 수 있다.  분별할 수 있도록 “주님! 도우소서”라고 냉철히 기도해야 한다.  성령이 주신 꿈은 현실을 죽이지 않는다. 반면에 마귀가 주는 가짜 꿈은 현실을 하찮게 여긴다. 
이상형을 가진다는 것은 꿈을 꾼다는 것이다. 아주 바람직하고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 이상형 때문에 다른 것들을 하찮게 보일 수 있다. 이상형의 교회 때문에 모든 교회를 하찮게 여기며 정착하지 못하고 충성하지 못한다. 이상형의 남자 때문에 모든 다른 남자와의 만남을 무가치하게 여긴다.  이상형의 직장 때문에 지금 있는 직장이 맘에 들지 않는다. 
기도하면 도우시는 성령님은 가능성을 보고 현실을 직시하게 하신다, 현실을 안고 충성을 다하게 인도하신다.  기도하여 환경과 자신과 틈타는 사단을 이기기를 축복한다. 
(서연교회 이명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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