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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중한 복 (창 2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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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복 (창 28:10~22)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성도 여러분! 구정에 복 받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축복(祝福)은 사람이 사람에게 복을 기원할 때 사용하는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복(福)을 달라고 기도할 때는 ‘복을 주시옵소서’ 라고 사용해야 합니다. ‘축복’이라는 글자를 잘 보세요. 축(祝)자는 빌 축(祝)자 복(福)자는 복 (福)자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는 것을 축복이라고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여러분을 축복(祝福)합니다” 하는 말은 말이 되어도 하나님께 “우리를 축복하여 주옵소서”는 말은 구조상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친히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을 표현할 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셨다’ 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다고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서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때 “축복하여 주옵소서” 하는 말은 잘못된 말이고 “복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이 옳은 표현입니다. 예를 들면 ‘모세가 백성들에게 축복하였다’는 말은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복을 빌었다는 뜻입니다. 올바른 표현입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하나님 아버지시여 제 자식에게 복을 주옵소서’ 또는 ‘하나님 저에게 복을 내려 주소서’라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제 자식을 축복하여 주옵소서’는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복(福)과 축복(祝福)을 다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본문의 주인공 야곱은 돈만 쫓아 가다가 출세, 성공, 이렇게 복만 받으면 다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살다가 이제 부모 형제까지 다 떠나서 외로운 나그네의 길,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한 40∼50km를 걸어서 도착한 곳이 오늘 나오는 루스, 벧엘이었습니다. 날이 저물어 더 이상 갈 수가 없습니다. 천사가 하늘에 사닥다리를 놓고 위로부터 하늘로부터 야곱이 잠자는 자리까지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 환한 빛이 비쳐졌습니다. 내가 계획했던 인간의 방법에 물질의 사닥다리 욕심의 다리, 세상의 모든 다리는 끊어졌는데 위로부터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총의 사닥다리가 다 끊어졌을 때 그때에 열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야곱아!’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그 말씀이 13절부터 나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네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얼마나 놀랍습니까? 아무도 도와줄 이 없는 이 밤에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 하였습니다. 

그렇게 복 받으려고 노력했던 것이 오히려 집을 떠나야 하는 이유가 되었고, 부모의 유산이 없는 빈 털털이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이제 정말 제가 원하는 너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복을 주겠다. 내가 주는 복으로 너는 최고의 축복의 삶을 살 것이다. 너의 가는 길 앞날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 내가 너의 앞날을 어디 가든지 너를 돕고 너를 지키며 항상 너와 같이 하겠다.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하게 하겠다. 또 오늘밤 이곳을 떠나면 영원히 고향을 떠난다고 생각지 말아라. 너는 축복을 받아서 돌아오게 될 것이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마지막이라고 생각지 말아라. 너만이 아니라 너의 자자손손 후손들에게도 내가 복을 주겠다.’ 본인의 힘으로는 다 끊어지고 떨어지고 모든 것이 다 마지막이었지만 벧엘 광야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제부터 시작하고 이제부터 너와 함께하고 너를 축복해 주겠다’라는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진짜 소중합니다(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오늘 이 시간   복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만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본문 14절에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찬송가 1장의 가사가 무엇입니까? “만복의 근원 하나님 온 백성 찬송 드리고~~” 

찬송가 28장에도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아멘?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시며 주인이십니다. 창세기 12장 2절을 보세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했습니다. 옛날 성경에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했는데 새로 개정한 성경은 ‘복이 될지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이름을 창대케 하시고 하나님께서 복이 되도록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또 창세기 1: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했습니다. 하나님만이 복을 주시는 분인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선물은 복(福)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복을 누리며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복의 하나님이시고 그 복을 주시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잘 보세요. 성경의 첫 책 창세기 1장에 복을 말씀하시고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에서도 복을 말씀합니다. 

시편에서도 복의 말씀으로 시작하고, 산상보훈에서도 첫째가 복을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을 창조하실 때 복을 주시려고 창조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영육 간에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도 안타깝게 사람은 헛된 우상에게 복을 구합니다. 또 사람이 복을 주는 줄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복의 주인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그 통로로 쓰임을 받을 뿐입니다. 

성경에 복을 누린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그런 복을 누린 이유는 하나님이 복의 근원임을 확신했고 그 복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3계단입니다. 야곱과 같습니다. 첫째는 부모님 밑에서 이삭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계시다는 이야기 항상 많이 들었습니다. 듣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이야기 항상 많이 들었습니다. 듣는 하나님, 배우는 하나님, 교육에서 캠퍼스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데,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단다. 설교를 통해 목사님이 늘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니까 계신가보다. 이렇게 생각하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은 계시데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셔 굉장히 많으신가봐. 날마다 듣는 하나님입니다. 친구를 통해서 많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시단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은 야곱에게 힘이 되지 못했어요. 

그 후에 야곱은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약속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경험해야 합니다. 반드시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경험하고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경험해야 할 줄 믿습니다. 경험하지 않고 여러분 신앙생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분을 교회가 이끌고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예배에 계속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예배가 지옥입니다. 교회가 감옥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교회가 천국이요. 가정이 천국이요. 이 세상이 천국이 될 줄 믿습니다. 어떤 분은 병원에서도 만나고 환란에서 만나고 사고에서 만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큰 시험 중에도 만나고 자녀를 통해서도 만납니다. 여러 가지 세상에 어려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유명한 톨스토이도 15살까지 기독교 가정에서 잘 자라났지만은 하나님에 대해 날마다 들어도 그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15살부터 그는 탕자가 됩니다. 유랑생활을 하며 방황하고 허무주의에 빠졌다가 50세에 하나님을 만나면서 돌아오게 됩니다. 어거스틴도 마찬가지입니다. 18살에 사생아를 낳고 탕자의 길을 걸어가다가 30세에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 번째 단계는 어떤 단계입니까? 
하나님은 나를 보호하시고 능력을 주시고 도와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라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시오, 끝까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알면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두려운 하나님이 이제는 좋으신 하나님이 되고 사랑하는 하나님이 되고 고백하는 하나님이 되고 증거하는 하나님으로 발전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사모하면서 ♬ 내가 영원히 사모할 주님, 부드러운 그 모습을 나 뵈옵고 그후로부터 내 구주로 섬겼네. 내 구주로 섬겼네 ♬ 

21세기 새 천년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믿고 경험할 때 여러분은 물, 불이 두렵지 않고 어디든지 이 세상을 독수리 같은 새 힘으로 살 줄 믿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복은 사모하는 자의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는 오늘 본문에 형을 피해 도망을 칩니다. 야곱이 행한 짓은 아주 야비하기까지 합니다. 형의 장자권을 빼앗으려고 형의 약점을 이용해 팥죽 한 그릇과 바꿉니다. 그것도 모자라 어머님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를 속이고 형이 받을 복을 가로챕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야곱에게 속은 줄 알았던 이삭은 그가 행한 축복을 취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삭 같았으면 어찌 했을까요? 분명 아들에게 속았습니다. 괘씸하잖아요. 그러면 “하나님 좀 전에 했던 축복을 취소합니다.” 그리고 에서를 다시 축복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축복을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야곱의 마음속에 복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복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란 말이 그것입니다. 하늘의 복은 사모하며 노력하는 자의 것입니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해에 복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자면 새해에는 누구를 가까이 할 것인가, 무엇을 가까이 하고 살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가까운 사람부터 만나보면 알 수 있습니다. 즉 그 사람의 가장 가까운 부모님을 본다거나 부모님이 안계시면 그가 사귀고 있는 친구를 보면 되고 그리고 그의 직업이나 종교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흔히 가깝게 지내고 가까운 사람들을 지칭할 때 쓰이는 말로 친교, 친구, 친척, 친분, 친정, 친밀하다는 말을 씁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리어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여호사밧이 기도할 때 여호사밧에 의해 ‘주의 벗’이라고 불리어졌고(대하20:7), 또 야고보에 의해서도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리어졌습니다(약2:23),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도 그를 가리켜 ‘나의 벗’ (사41:8)이라고 할 만큼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여겨진 인물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요? 그는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약속대로 행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요15:14에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시편 73편은 아삽의 시입니다. 아삽은 이 시편 전반부에서 흔히 우리들이 갖고 있는 투정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악인들이 형통하고 죽을 때도 고통이 없고 힘이 건강하고 재물이 쌓여져 가는 것을 보면서 죄 없이 깨끗이 사는 것이 헛되지 않느냐(13절)’하며 큰 실의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소에 들어갈 때 이러한 생각들이 깨달아 정리가 되었고(17절) ‘주님밖에 이 땅에서 사모할 자 없는 유일한 분이심(25절)을 알게 됨으로써 결국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은 망하게 됨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27-28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관심을 멀리하고 눈을 떼서 사람과 세상으로 돌릴 때 우리도 이러한 함정에 종종 빠질 때가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에게 즐거움이 있고 기분이 좋을 때만 신앙생활 하는 사람, 그런가 하면 내게 이익이 있다고 여기기에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이신 주님,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을 믿고 주님 한분만으로 삶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처지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가까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주님을 가까이 하고 있습니까? 기쁨이나, 유익이나, 건강이나, 더 나은 재물을 위해서입니까? 이것들이 목적이 되어 사는 한 죄송하지만 주님을 가까이 하는데 도리어 방해가 될 뿐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주님을 믿는 본질적인 것들이 아니며 주님이 여러분의 전부가 될 때 주시는 부수적인 것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래서 분명히 말씀합니다. ‘세상과 벗하지 말라’, 즉 ‘멀리하라(약4:4)’, ‘다툼을 멀리하라(잠20:3)’, ‘우상을 멀리하라(요일5:21)’, ‘돈을 사랑치 말라(딤전 6:10)’,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는 자에게서 떠나라(롬16:17)’. 그 대신 ‘하나님과 친밀 하라’, ‘말씀을 가까이 하라’, ‘주의 전을 사모하라’ 등등으로 말씀으로 권합니다. 

구원은 우리의 지와 노력과는 상관없이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후에 누리는 복은 복 받을 짓을 하며, 사모하는 자가 누리게 됩니다. 

우는 아이가 한번이라도 젖을 더 얻어먹습니다. 마찬가지로 복의 소중함을 알고 사모하는 백성이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복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며 사람은 그 복의 통로에 불과함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인간이 기대하는 복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은 다 좋은 줄 압니다. 한국인과 중국인들은 유독 복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복(福)자를 유난이 많이 사용합니다. 오죽하면 제  이름도 영복(福)입니다. 

저는 영원히 복 있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우리 인간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원하는 복은 A를 원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른 B를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원하는 복과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복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참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고 싶습니까? 그런데 때로는 스데반처럼 설교 한 번 멋지게 하고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세례요한처럼 목 베여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 우리는 그들을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성경적으로 보면 그런 인생은 정말 복이 있는 생애를 산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려면 우리가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 십자가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려면 때로는 아브라함처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아멘을 안 합니까?  

오늘 본문의 야곱을 보세요. 분명 아버지의 축복을 통해 하나님께 엄청난 약속의 복을 받는 축복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당하는 현실은 형 에서가 미워하고 죽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살기위해 우선 도망쳐야 했습니다. 이런 경우 인간편에서 생각해 보면 ‘복이 아니라 저주처럼 보입니다.’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받았는데 형 에서가 그를 죽이려 하므로 

어머니의 권유로 결국 외삼촌 집으로 피신을 하여 자그마치 20년 동안 수없이 많은 고생을 합니다. 그런데 본문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고 약속하셨고 함께 해 주셨기에 20년의 힘든 삶도 마침내 복을 박기 위한 연단의 세월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때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당대에 내 앞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안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먼 훗날에 복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는 액 430년 후에 이루어질 복을 하늘의 별과 같고 땅의 티끌과 같은 자손의 복을 약속으로 받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을 보세요. 다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어떻게요? 그들이 기다렸던 복은 현세에 것으로는 나타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그들 후대에 이루어졌고 하늘나라에서 누린 복도 많습니다. 
그래서 ‘현세만을 보고 복을 받았다 복을 받지 못했다’고 단정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봐야 우리가 알게 될 경우도 있습니다. 그날이 우리의 모든 것을 들어내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정근모 장관이라고 과학기술처 장관을 하신 장로님 호서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신 이분은 1951년에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처음으로 실시된 국가고시에서 전국에서 1등을 했습니다. 경기 중학교에 1등으로 들어가서 1등으로 졸업하고 1등으로 경기 고등학교를 들어갔는데 4달을 다니고 서울대학에 들어갑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시간 주립대에서 석사도 거치지 않고 박사를 2년 만에 박사학위를 땁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 만에 박사를 땄습니다. 

그리고 바로 63년에 플로리다 대학에 조교가 되고 64년에 25살에 프린스톤 대학에 핵 융합 연구소에 연구원이 됩니다. 66년에서 MIT 공대에 핵공학 연구원이 되고 이어 미국 정부에서 핵 융합 연구소를 창설하고 책임 연구원이 되는데 지금 이것이 스타워즈라고 하는 우주 전략 방어를 하는 연구소가 되게 된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천재라고 미국 신문에도 끊임없이 대서 특필하던 분이 정근모 장관이었습니다. 그러나 69년 닉슨이 대통령이 되면서 한국을 물질적으로 돕는 것 보다 교육적으로 한국을 도와서 교육에 인재를 길러야 되겠다하여 그때 유명한 정근모 장관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뒤떨어진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1971년에 카이스트(KAIST) 한국 과학 기술원을 만든 분이 바로 정근모 장관입니다. 친구들하고 미국에 있던 교수들을 데려와서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 기술원을 만듭니다. 

3년이 지난 후에 그는 간염에 걸리게 됩니다. 미국으로 돌아가서 또 아들이 병에 걸렸습니다. 만성 신장염에 걸려서 매일 피를 거르게 됩니다. 병이 악화되고 수술하지 않으며 며칠밖에 살수가 없다고 하여, 아들에게 신장을 떼어주게 됩니다. 수술은 잘 되었는데 황달이 오고 흑달이 오면서 더 이상 살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약을 투여하면 간에 무리가 가고, 투여를 않으면 신장에 어렵고…. 의학적으로 방법이 없고, 과학적으로도 방법이 없는, 최선을 다했지만 이분에게도 벧엘에 온 야곱과 같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방법으로 더 이상 길이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교회에 권사님들이 정근모 장관 내외분을 데리고 교회에 가서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아이는 병원에 두고 그런데 그날 밤에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일 변화되기 어려운 분들이 과학자입니다. 

더구나 23살에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도 그런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성경에 나오는 그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던 사람이 그 밤에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은총을 받고 와보니 아들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이럴 때 박수를 치는 것입니다. 이분이 변화를 받고 오늘날까지 복음을 증거 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납니까? 대체로 하나님은 위기에서 만나고 죄인일 때 만나고 인간의 방법이 마지막일 때 하나님의 시작을 우리는 하나님의 종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우리가 원하는 복이 다르더라도 실망하지 마세요. 우리가 기대한 복은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리면 그것이 진짜 복이고 최고의 복인 것입니다. 이사야 55:8~9절을 보세요.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그러기에 잠깐 보이는 가짜 복을 복이라 여기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복, 영원한 복을 사모하고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3. 사람의 축복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복을 누리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러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직접 약속으로 받는 것도 중요하나 그것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축복을 받는 것이고 또한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이 복을 누린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복을 받은 사람도 있으나 많은 경우 사람의 축복을 통해 누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누린 것을 보세요. 그는 소돔성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다가 멜기세덱을 만납니다. 그가 누굽니까? 성경에는 그는 신비스러운 존재인데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히브리서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가 아브라함을 축복합니다. 창14장 19~20절을 보세요.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멜기세덱 제사장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옵소서”라고 복을 빕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당시 아브라함이 너무 감사해서 십일조를 드립니다. 그래서 결국 아브라함은 복을 누립니다. 

창세기 12장 3절에서도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남에게 축복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삭도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받았고 야곱도 아버지 이삭에게 받았고, 요셉도 그 아버지 야곱에게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는 주변 사람에게 축복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많은 사람을 축복했습니다. 특히 마가복음 10:16절을 보면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했습니다. 
또한 나도 축복을 남에게 받으려고만 말고 남을 축복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남을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면 그 복이 그대로 임하게 됩니다. 

동시에 내가 남을 저주하면 그것 또한 그대로 됩니다. 그러기에 남에게 욕먹을 짓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통신호를 어겨서 달려가면 다른 차들이 욕을 합니다. 그들의 욕이 내게 저주로 임할 수도 있습니다. 
야곱을 보세요. 야곱은 축복의 열망 때문에 몸부림치던 사람입니다. 얼마나 축복을 사모했든지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축복을 받고, 나중에 얍복강에서 천사를 만나 씨름할 때도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아니하겠나이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때 응담을 받아 그의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뀌고 축복을 받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가 나이 많아 죽기 직전에 열 두 아들을 불러놓고 그들의 행위대로 축복을 합니다.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았기에 자식을 축복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도 귀하게 여기시기 바라고 그리고 사람들이 베푸는 축복도 귀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6장27~28절을 보세요.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어서 38절에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내 원수, 미워하는 자, 모욕하고 저주하는 자까지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나 하나님의 복을 믿는 사람이라면 능히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왜요? 주님께서 나를 그렇게 대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눅6장 31절에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축복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창 27장 28~29절을 보면 야곱은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야곱은 축복기도를 받은 사건 이후에 도망을 치는 신세가 되었고 빈손으로 인생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축복받은 기도 때문에 즉, 그 때 받은 축복이 먼 훗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도 복을 약속받습니다. 하나님이 벧엘 들판에서 잠자는 야곱에게 직접 찾아오셔서 약속하십니다. 오늘 본문 13~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그런데 20년의 고생 후에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복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신기합니까?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고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물질만능, 지식만능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만이 부자인줄 알고 큰 소리 치고, 손에 모든 것을 가진 자 만이 큰 소리를 치는 이 시대에 내 손에 것이 떨어져 나가도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만군의 하나님께서 도와 주심과 은혜와 응답의 사닥다리가 있다면 즉,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만 나와 함께 한다면 반드시 나는 승리할 수 있다는 이런 믿음으로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결국 야곱이 응답을 받고 받아 누린 복이 뭡니까? 

1)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 주셨습니다. 

나그네 생활 20년 동안 하나님은 그를 지키셨고 그를 보호하셨고 책임을 져 주셨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10여차례 이상의 계약위반과 속임수에서도 보호해 주셨고, 밤낮으로 양을 칠 때도 보호해 주셨습니다.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올 때 형 ‘에서’의 무서운 칼날에서도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야곱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도 보호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물질의 복을 주셨습니다. 

야곱은 빈손으로 외삼촌 집으로 갔으나 돌아올 때는 아버의 유산 100%를 받은 에서가 놀랄고 외 삼촌 라반과 외 사촌이 놀랄 정도로 거부(巨富)가 되었습니다. 동분서주 뛰어다닌다고 복을 받는 것 아닙니다. 본문 20절에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고 서원하였고 믿음으로 살았는데 결국 그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물질의 복 받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주시는 분,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그분의 복을 귀히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3) 자녀의 복을 주셨습니다. 

양곱은 약속대로 자손들이 번성하였습니다. 12명의 아들과 딸 한명, 모두 13명의 자녀입니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 애굽에서 나올 때는 장정만 60만 명이고 여자와 어린아이 노인까지 합하면 최소 200만 명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그 자녀 중 요셉은 대 애굽 제국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면 요즘 말로 말하면 내 자식이 훗날에 미국의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믿음으로 붙잡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늘 주변의 사람들에게 축복을 받으셔야 합니다. 특히 부모님의 축복과 목회자의 축복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복과 축복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이 복의 근원이 되시고 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시고,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시고, 믿음으로 복 받을 수 있는 삶을 사시기를 부탁드리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범사에 그 분을 의지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사시기 바라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일하는 사역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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