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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을 모신 사람의 특권 (롬 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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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모신 사람의 특권 (롬 8:12~17)

 
어제 늦은 시간에 한 구역을 대심방하게 되었습니다. 그 구역 식구들은 직장에 나가시는 분들이 많으시기 때문에 평일에는 심방을 받을 수가 없어서 토요일 오후 늦게 심방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구역을 보면서 다른 구역들도 다 좋습니다만 이 구역을 보면서 느낀점이 있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구역분위기가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개 비슷한 나이 또래의 분들이 계셔서 그랬을겁니다. 젊은 분들이 많은 구역이고 집들이 가까워서 걸어서 다닐수 있는 거리였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역원들 표정을 보니 허물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남에게 실례되는 행동을 하는건 아닌데 서로가 자기 부족한 허물까지도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 마음의 장벽이 없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참 좋게 느껴졌습니다. 한가정이 구역심방 받으면 우리가정 끝났으니 안녕히 가세요가 아니고 우리가정 심방 받았으면 성경찬송들고 따라 나섭니다. 

심방대원이 한 사람 늘어나는 겁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갈때는 전구역원이 다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마지막 집에서 8명이 함께 예배드리고 비빔밥을 준비해서 다 먹었습니다. 참 행복한 구역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사한 집이 좁아서 좁게 8명이 앉았는데 조그마한 식탁 2개를 준비해서 둘어앉아 비빔밥을 먹었는데 참 맛있게 먹었고 이런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어렸을때 7남매였으니 많습니다. 거기에 부모님과 할아버지 10식구가 좁은 방에서 식사하는 그런 생각이 납니다. 좁은 탁자하나 놓고 10식구가 먹으니 얼마나 비좁습니까. 그러나 거기에 불평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즐겁게 먹습니다. 아! 이게 가족이구나 그런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한가족으로 맺어진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우리를 향해서 가족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제가 꿈꾸는 교회모습은 가족같은 공동체, 가정같은 구역, 가정같은 성도들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에 보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권속이라는 말은 가족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다같이 하나님의 가족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흠이 없습니다. 부족한것 다 알고 충분히 이해합니다. 누구 약점잡으려고 하는 것 가족이 아닙니다. 가족들은 약점알고 그것이 다 기도제목이고 덮어줘야되는 부분임을 잘 아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도 가족관계라는 것 아실겁니다. 

그분은 하나님 한분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은 한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가족같은 관계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도 가족관계입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이니까. 모든 성도들도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에 우리는 한 가족관계로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놀라운 변화가 있는데 가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가족같은 친밀감, 가족같은 우정, 가족같은 사랑을 서로가 나누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님이 우리속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속에는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임재해 계시고 또 동거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8장 9절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만일 너희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은 곧 성령님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우리속에 성령님이 들어와 계신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린 그것을 성령의 내주, 성령의 동거, 혹은 성령의 임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니까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너희속에 계시겠음이니라. 예수님이 가시면 보내주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속에 영원히 거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속에 들어오신 성령님은 결코 떠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임재인것입니다. 아들이 있는자에게 생명이 있듯이 아들이 있는자에게 성령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우리가 받은 최고의 선물은 성령의 내주, 성령의 임재인 것입니다. 

요즘 중국에서 유행하는 유머중에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한 외국인이 중국을 방문해서 시골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집 앞을 지나가다 보니까 개가 개 밥그릇에 밥을 먹는데 개밥그릇이 보통 그릇이 아닙니다. 자기가 고고학에 조금 지식이 있는데 이게 보통 개밥그릇이 아니라 진시황때 그릇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 밥그릇을 돈주고 사려면 어려울 것 같고 그래서 이분이 집주인이 어리숙해 보이기에 꽤를 냈습니다. 

이보시오. 내가 지나가다보니 저 개가 참 마음에 드는데 나한테 안팔겠소? 주인이 그럽니다. 안판다고. 개가 내 가족같고 정이 들었는데 어떻게 파느냐고 합니다. 개가 너무 갖고 싶은데 팔라고하니, 그럼 얼마나주겠냐고 했습니다. 보통 시세의 4배를 주겠다고했더니 집주인이 그러라고 했습니다. 2만5천원이면 살것을 10만월을 불렀습니다. 개를 내주고 흥정을 끝냈습니다. 그리고나서 뭐라할까요? 이제 개도 없는데 이 개밥그릇이 뭐 필요합니까 이 개밥그릇 저한테 주시죠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집주인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듭니다. 개는 팔아도 개밥그릇은 드릴수가 없습니다. 아니 이까짓 개밥그릇 뭐에 쓸려고요 저한테 주시지 그랬더니. 이 집주인이 하는 말이 모르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 개밥그릇 때문에 개를 4마리나 팔아 치웠습니다. 그랬답니다. 그 사람도 뭔가 눈치는 채고 있습니다. 어리숙하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개만 샀지 개밥그릇은 얻을 수 없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이어서 성령님이 들어와서 내주 하신다 이게 굉장한 겁니다. 내 안에 나아닌 다른 분이 계시는데 성령님이 계시는 겁니다. 여러분의 집에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외부인이 들어와 함께 동거한다 생각해 보세요. 예전에 같으면 시골의 조카들이 올라와서 그 복잡한 집에서 함께 생활할 때 있잖습니까. 외부인이 들어오면 불편하기도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우리안에 성령님이 거하심으로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내주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을 모신 사람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놀라운 특권이 있습니다. 어떤 특권이냐? 먼저 우리는 모든 죄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절 2절을 다시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예수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죄로 안해 고소당하지 않습니다. 죄로 인해 심판당하지 않습니다. 죄와는 상관없는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과거에 지은 죄 때문에 고소당할 염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 이제 우리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얽매일 수 없습니다. 사망이 더 이상 우리를 위협할 수 없습니다. 왜? 우리는 자유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은 과거의 죄가 성령안에서 해결되어 졌습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다 치루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미가서7장 19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가져다가 저 바다밑 깊은 곳으로 던지셨다 그런말씀이 있습니다. 다시는 죄가 떠오르지 않도록 깊은 바다속에 던지셨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우린 죄에서 해방되었고 죄와 상관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어느교회 헌신예배를 가서 설교하는데 그 교회에 특별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남자집사님인데 아멘이 큰 집사님이셨습니다. 큰분은 많이 봤지만 그 분은 소리를 지릅니다. 처음엔 깜짝놀랐습니다. 나중엔 좋게 생각하고 힘을 주려고 그러는구나, 받은 은혜가 커서 그러는구나 생각했는데 그분은 늘 그러신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간증이 있으니 그런것일겁니다. 미국은 어느교회에서도 어느분이 은혜를 많이 받아서 아멘을 크게하는 집사님이 한분 계셨다고 합니다. 자기는 괜찮은데 외부강사가와서 조용히 설교하다가 아멘하면 원고를 잃어버리기 일쑤라는 것입니다.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어떻게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교회에 노회장님이 오시게 되었습니다. 노회장님은 설교도 조용조용하고 성격도 차분하신데 갑자기 아멘하면 놀랄것 같아서 미리 조치를 해야겠다. 그래서 아멘 집사님을 그날 따라 저 뒷방에 예배실 뒤에있는 사무실에 가서 예배를 드리게 했습니다. 성경책 가져가서 읽다가 은혜받으면 아멘할 것 같아서 재미없는 지도책을 집어주며 읽고 있으라고 애들도 봐주고 전화도좀 받고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순종해서 뒷방에 가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노회장님이 설교를 하는데 갑자기 아멘, 아멘, 아멘하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깜짝놀랐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아니 집사님 지도책보면서 뭐가 재미있어서 은혜받아서 아멘이라고 소릴지릅니까? 목사님 이것보세요. 지도를 보다가 보니까 필리핀 근해에 심해가 있는데 그 깊이가 일만미터랍니다. 그걸보는 순가 성경말씀이 떠오르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저 깊은 바다속에 던지셨다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얼마나 감사한지. 내가 과거에 지은 죄 저 일만미터 깊은 바다속에 던지셨으니 다시는 떠오르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고소할자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 모든 죄는 성령안에서 다 씻음받고 깨끗하게 해결됨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게 성령의 모신 사람의 특권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성령을 모신 사람의 특권은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성경 12절 13절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우리가 육신대로 살지말자. 여기서 말하는 육신은 죄악된 본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육신대로 살면 안됩니다. 이제 그는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며 살리니 몸의 행실은 다시말하면 악한 행실입니다. 타락한 본성에서 오는 이 악한 행실을 성령으로 절제시키고 통제하면 너희 영혼이 살고 영원히 살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성령을 모신 사람은 육을 죽이고 영이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죄악들을 성령의 이름으로 추방하고 통제하고 극복하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전에 우리가 성령을 모시기 전에는 죄하고 100번 싸우면 100전 100패입니다. 이길수가 없습니다. 번번히 우리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럿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모신 후에는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구하고 죄앞에 당당히 이길 수 있는 길이 열려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의 삶입니다. 여러분속에 있는 모든 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두 추방하시고 성령의 도움가운데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하게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하고 동거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실 때 내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같이 있으면 닮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닮는다 이런말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고 성령님을 닮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거룩한 삶의 변화되어 가는 것 이것이 성화의 삶입니다. 성령을 모신 사람은 성령의 영향가운데서 날마다 새로워 지는 겁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그랬는데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날마다 성격이 변하고 성품이 달라지고 인격이 달라지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성령을 모신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 하는 것입니다. 오늘 14절을 보니까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님이 인도해 가십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습니다.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면 그 분이 우리 갈길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갈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깜깜한 밤에도 불기둥을 보고 길을 찾아갈수 있습니다. 또한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니까 시원한 가운데서 그들은 광야를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우리모두의 인생을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인도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에도 그런 말이 있습니다.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것이며 불이 너를 사르지 못할 것이다. 우리 갈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성령님은 우리 삶을 보호하시는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을 모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성령을 모시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라지는 겁니다. 하나님은 두려운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는 당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심으로 하나님과 아주 친밀한 관계로 형성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성경 14절 15절 읽어보시죠.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아주 놀라운 것입니다. 로마의 법에서는 자기가 낳지 않아도 아이를 양자로 세우는 양자법이 발전했다고 합니다. 노예중에서도 총명한 아이가 있으면 자기의 아들로 삼고 자기 가정의 상속자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로마법에는 명시가 되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네로황제도 원래는 노예출신입니다. 

기독교를 많이 핍박한 악한 황제였지만 그는 원래 노예출신입니다. 그런데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그를 자기 아들로 삼았습니다. 상속자로 삼아서 그가 제5대 황제로 등극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로마의 법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죄의 종이였던 사단의 자녀였던 우리를 예수그리스도의 피값을 주고 다시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때는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속에 있고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속에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첫사람이 범죄했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어 죄가 들어오고 우리가 타락해서 사단의 자녀가 되고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그 모든 죄 값을 자신의 몸을 통해서 다 치루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다시 양자로 삼으신 것 이것이 바로 입양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설명하기 위해서 로마의 양자법을 인용해서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모두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순간 우리의 신분과 이름이 바뀐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성도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빌립부리어라는 술주정뱅이가 있었습니다. 이분이 예수를 믿고 변화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설교가가 되었는데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왕의 아들이다 그랬습니다. 술주정뱅이였던 그가 이제왕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감격과 그 은혜속에서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해 주셨습니다. 물론 그분께는 낳은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많은 자녀를 입양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자녀의 특권을 누리면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최고의 친밀감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때 어떻게 부릅니까?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때 용서받지 못했을 때는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모릅니다. 왜? 죄에는 심판이 있으니까. 죄의 삵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죄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우린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아빠라는 말은 아주 특이한 말입니다. 아람어로 아빠 아버지. 그런데 우리 말하고 똑같습니다. 우리 말과 이스라엘말은 공통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버지, 아버님 부를 수 있지만 좀 더 친밀하게 부를 때는 아빠라고 부를 수 있잖습니까. 엄마, 아빠,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친밀하게 부를 때 아빠라는 아람어로 부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마가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아빠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제 성령이 임하고 나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아주 놀라운 것입니다. 한번 불러보겠습니다. 아빠 아버지, 이게 참 좋은 표현입니다. 

가정에서 아이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보십시오. 어느 가정을 보면 아이들과 아빠가 굉장히 친밀합니다. 그래서 아빠가 퇴근하면 서로 아빠 옆에 앉는다고 난리입니다. 너무 친하니까. 심지어는 엄마, 아빠가 주무시면 그 사이에 와서 자겠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친밀하니까 그런겁니다. 어떤 집에 가면 아빠가 식탁에 앉으면 아이들이 다 도망가버립니다. 왜? 잘못말하면 매맞으니까. 아빠가 무섭거든요. 그래서 얘밥먹어라 그러면 저 배안고파요. 나중에 먹을께요 아빠드신다음에 먹을께요. 아빠옆에서 먹는게 불편하거든요. 아빠하고 친밀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도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가져야 합니다. 제가 심방하면서 교인들하고 식사할 기회가 많습니다. 식탁을 펴놓고 앉으면 제 앞엔 아무도 안 앉으려고 합니다. 아이고, 목사님 어려워서요. 괜히 소화안될까봐 못안겠다는 겁니다. 미안해서 못앉겠다네요. 제가 더 불편합니다. 교인들이 날 싫어하나 내 앞엔 안앉으려고 하나. 그러나 집에 가 보시면 아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어릴때 보면 화장실에 제가 들어앉아 있어도 아이들이 문을 막 두두립니다. 빨리 나오라고. 나 화장실갔다가 학교가야한다고 말이지요. 그건 자식들이나 가능한 겁니다. 

때로는 제가 설교준비에 바빠도 와서 문 두드리고 자기 어디가야하는데 차좀 태워달라고 난리를 칩니다. 여러분 그것은 자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우리 교인들도 나한테 와서 목사님 빨리 화장실 나오세요 이런분 없을 겁니다. 나 좀 태워주세요 이런분도 없을 겁니다. 그건 자녀이기 때문에 가능한겁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멀리 계신 분이십니까? 이웃집 아저씨 같은 분이십니까? 아니면 친밀한 아빠같은 분이시냐는 겁니다. 

어느 집에 노예들이 있는 집이 있다고 칩시다. 아무리 관대한 주인이라도 역시 종은 종이고 주인은 주인입니다. 아무리 주인이 잘해준다고 해도 종이 주인앞에서 엎어 누울수는 없습니다. 돈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왜? 주인이니까. 그러나 아들은 다릅니다. 언제든지 와서 부탁하고 요구도 할 수 있습니다. 주인님이라는 말과 아빠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다른 겁니다. 

요한 웨슬레가 유명한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성령을 받고나서 종의 믿음을 비로서 아들의 믿음으로 바꿨다. 전엔 종의 믿음이었습니다. 주인이 주면 받고 안주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믿음은 아닙니다. 안주면 달라고 조르는 겁니다. 그게 아들의 특권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친밀한 아빠같이 여기십니까? 아니면 멀리계신 근엄하신 분으로 여기십니까.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을 친밀한 분으로 고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게 바로 성령이 임한 사람의 변화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이 친밀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또 성령이 임하면 최고의 경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16절 읽어보겠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로마에서 입양을 할때에는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7명의 증인이 있습니다. 전엔 노예였지만 오늘부터 아들이라는 것을 증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문제를 삼으면 증인이 나서서 증인해주면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성령님이 증인입니다. 성령님이 친히 증인이 되어주시는 겁니다. 너희는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내 딸이라고 우리속에 말씀하시는 겁니다. 오늘 하나님의 음성, 성령의 음성이 들려지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하나님앞에 나갈 수 없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은 너무나 친근하신 분, 내 안에 계신 분, 나와 동행하시는 분, 내가 어렵고 힘들때 나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 내가 어떤 경우에 있더라도 나를 영접해주시는 분으로 여러분이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최고의 보장이 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17절 읽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자녀이면 또 후사요라고 했는데 이제는 상속자라고 나옵니다. 상속자는 뭡니까? 아들로 입양된 사람이 그 집에 모든 재산을 이어받는게 상속자입니다. 우리모두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땅에 사는게 이땅에 희망이 있는게 아닙니다. 이 땅에 소망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열심히 살고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살지만 우리의 중심은 천국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땅을 마치고 주님품에 갈 때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함께 하는 영원한 삶, 그 나라를 바라보는 겁니다. 천국의 기업을 상속받을 아들과 딸들. 이 확신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어떤분이 아파트를 분양받았으면 부금을 부을겁니다. 몇 년동안 부금을 다 붓고 공사가 완공되면 거기 입주하도록 되어 있는겁니다. 입주날에 내가 입주해도 되지만 입주안하고 비워놔도 내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 세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집은 내 집이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천국은 이미 우리모두에게 보장되어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분양이 끝났습니다. 부금도 끝났습니다.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게 다른겁니다. 세상의 상속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우리가 받게되지만 천국의 상속은 다릅니다. 우리가 죽을 때 천국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모두에게 아름다운 천국이 예비되었다. 우린 이 확신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많은 교인들이 자녀의 확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 믿어지지가 않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분들중에 어떤 분들은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기도안합니다.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게 영 쑥쓰러운것 같아서. 그런데 어떤 교회 장로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그분은 연세가 많으신데 새벽기도 나오시면 꼭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빠 아빠 이것좀 해주세요 저것좀 해주세요. 그래서 교인이 듣다가 장로님은 아빠를 모시고 왔나하고 봤더니 아무도 없는데 하나님을 향해서 아빠아빠 부르더라는 겁니다. 그만큼 친근한 겁니다. 무엇이든 요구할 수있고 자신의 부족함을 아빠한테 아뢸수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받은 우리들, 성령님의 임재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들, 이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쓰러질때도 사단의 고발이 있을 때도 때론 낙심하고 힘들어 넘어질때도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사랑한다 아들아 사랑한다 내 딸아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 딸이다라고 오늘 말씀하시는 겁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나에게 실망하여 내 자신 연약해 슬픔속에 눈물흘릴 때에 못자국난 그 손길 눈물 닦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 하시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언제나 변함없이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십자가 고통 해산의 그 고통으로 내가 너를 낳았으니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여러분 오늘 이 자녀된 확신 하나님의 딸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란 이 확신가지고 성령님과 동행하시는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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