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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면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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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면 (눅 5:1~11)
  

시작하는 말

오늘은 주현절 후 다섯 번째 주일이며 동시에 감리교에서 정한 은급주일이기도 합니다. 은급이란 잘 쓰지 않는 한자어인데 은혜 은(恩)자에 줄 급(給)을 씁니다. 연금과 같은 말로 조건을 갖추어 퇴직한 사람에게 죽을 때까지 주는 연금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은급주일이란 감리교에서 평생 목회하시고 은퇴하신 목사님들의 은혜를 기리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기금을 위하여 헌금하는 주일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개인에게 잊지 못할 목사님이 계시면 기억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면 더 좋구요. 하지만 오늘 우리교회에서는 특별한 순서를 갖지는 않겠습니다. 

교회력에 따라 설교하겠습니다. 주현절의 끝자락입니다. 다음 주일을 지나고 수요일(재의 수요일)부터는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주현절은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얼마나 실감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모 방송국에서 방송하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시간대도 그렇고 우리 아이들하고도 관계가 없으니 보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만 스치면서 보면 정말 별난아이들 많구나!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전문가를 만나거나 좋은 선생님들에 의해 짧은 시간내에 엄청난 변화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기하고 놀라운 변화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게 됩니다. 어린 아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복합적인 문제들이 많고, 이것들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도 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 신분이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진 이야기는 성경에도 많고 우리 주변에도 너무 많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의 내용도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의 놀라운 변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밤새도록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이를 했으나 잡지 못하여 실망한 베드로가 실패와 패배의 그물을 씻고 있다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의 생애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의 변화를 보며 나는 진정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예수님을 만났다면 나에게도 베드로에게 있었던 그런 변화가 과연 있는가? 살펴보는 시간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그를 만남으로 얻게 되는 은혜와 복이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몸 말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베드로에게는 이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첫째로 삶에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주님께서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긴긴밤 어두운 바다에서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어부 베드로의 심정을 생각해 봅니다. 

분명 그는 허탈함과 좌절감에 빠졌을 것입니다. 시편 90:10에서 시인은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심각하게 피곤을 느끼는 때는 뜻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베드로의 피곤은 오늘 우리들도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베드로가 어제 밤 실패했던 바다로 다시 배를 저어 나갔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후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누구에게라도 새로운 도전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용기와 활력이 주어집니다. 그리하여 실패했던 바다로 다시 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유는 내가 실패했지 예수님께서 실패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실패자이지 예수님께서 실패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해서 안됐지 예수님께서 하셔서 안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새로 시작하십시오. 새로 도전하십시오. 어제까지 되지 않았던 일, 어제까지 실패했던 일을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 만난 오늘부터 다시 시작해보십시오. 베드로의 경우 제일 중요했던 것은 ‘다시해보라’는 그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였습니다. 만일 그가 자신의 실패와 경험을 내세워 순종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날 그곳에 실패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5절) 라고 대답한 후 깊은 바다로 다시 나갔습니다. 문제는 다시 해보라는 그 말씀에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다시 도전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다시 도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말씀대로 배를 다시 저어 나가 그물을 던졌을 때 그는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신비한 풍요를 체험한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놀라운 풍요가 언제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7에서 ‘그리스도 안에는 은혜가 풍성하다’고 했고, 3:19에서는 ‘하나님은 충만하신 분이다’라고 했으며 3:20에서는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8에서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나에게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주셨다’고도 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주인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주시면 풍요롭게 될 것이고 주님께서 가져가시면 오늘이라도 가난뱅이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6절에서 ‘그물이 찢어지는지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너무 많은 고기가 잡혔기 때문에 그물이 찢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엄청난 고기가 잡힐 줄로 믿고 다른 그물을 준비해 가지고 나갔더라면, 그물도 찢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고기도 더 많이 잡았을 것입니다. 그물이 찢어졌기 때문에 그는 많은 고기를 놓쳤을 것입니다. 

초대 교부였던 어거스틴은 찢어진 그물을 당시 교회의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교회라는 그물도 찢어지면 고기가 다 새어 나가고 맙니다. 지금 한국 교회 안에도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그물을 찢고 망가뜨려서 고기가 다 새어 나가도록 하려는 불순분자들이 있어 교회 파괴 공작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언필칭 교회의 비리를 파헤친다느니, 교회를 갱신해야 한다느니 하면서 교역자를 헐뜯고 비난하는가 하면, 교회의 약점만을 찾아 세상에 알리는 등 온갖 수법으로 교회를 찢고 있습니다. 교회 그물이 찢어져 고기가 새어 나가면 그 고기는 모조리 마귀의 밥이 되고 맙니다. 교회 밖에서 그물을 찢으려는 세력들은 공산주의자 아니면 이단들이고, 교회 안에서 그물을 찢으려는 사람들은 아가서에서 말하는 포도원을 허는 여우며 사탄의 하수인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난 후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풍요를 체험했습니다. 깊고 긴 밤의 헛수고 끝에 엄청난 고기를 잡았다는 경제적 가치나 기쁨 외에 베드로가 얻은 축복은 예수님을 만나면 이토록 기쁘고 좋고 행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시는 분,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시는 분, 무의미를 의미로 바꾸시는 분, 가난을 풍요로 바꾸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풍요는 권세나 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의 풍요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만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여러분들에게도 이 풍요함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물고기로 가득찬 배를 이끌고 육지에 올라온 베드로가 처음한 행동은 바로 예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기적을 체험하면서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베드로는 그 순간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 다 안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의 신적 권위 앞에 서게 되었을 때에 그는 자신의 추악함과 죄인 됨을 그 즉시로 깨닫게 되었고, 그런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예수님을 향하여 ‘선생님’(5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신적인 권능과 위엄 앞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의 말은 ‘주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고백으로 미루어 보아 베드로는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 이상의 신적인 존재이심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가 풍요함 앞에서 어깨가 올라가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죄인 됨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거울과 같으신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예수님께 온전히 부복하는 자가 비로소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새로운 사명을 부여 받습니다. 10절에 보면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4:19에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죄짓고 살던 사람이 죄를 버리게 됩니다. 못된 짓하던 사람이 그 버릇을 버리게 됩니다. 자기 소명을 소홀히 하던 사람이 사명에 충실하게 됩니다. 내가 노력하고 내가 힘쓰고 내가 부지런하면 돈도 벌수 있고 목적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교만하게 살던 사람이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과 그의 영광을 위해 하겠노라고 결심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베드로가 분명 예수님을 다 이해하고 순종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궁금합니다. 흔히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베드로의 순종을 강조하지만, 사실은 베드로가 순종할 수 있도록 그 마음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권능에 더욱 중요한 초점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스스로 혹은 의지적으로 순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베드로가 의지저그로 순종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결국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로 하여금 이해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순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전능하신 하나님을 뵈옵는 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은 우리에게 놀라운 결실을 가져다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주님을 만나,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사명을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명에 순종하는 은혜와 능력이 내려지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진정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그를 따르게 됩니다. 11절에 보시면, 이 놀라운 만남이 있은 후 제자들은 배에서 내려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들은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그 즉시 자신들의 배를 버리고 주님을 좇아 나섰습니다. 11절의 ‘따르니라’의 원어 ‘아콜루데오’는 ‘누구의 뒤를 적극적으로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심을 알고 그 앞에서 자신들의 참 모습을 발견한 어부들은 예수님의 뒤를 적극적으로 따르는 제자의 삶을 택하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모든 것을 뒤에 다 버려두고 말입니다.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 전능하신 주님을 온전히 뵈온 자는 이제 이전의 모든 것들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은 그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이전에 그들의 삶은 갈릴리 호수에 나가 고기를 잡고 그 잡은 고기를 시장에 내다 팔아 생활을 꾸려가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그저 이 세상에 태어낳고, 살고, 죽고를 반복하는 그런 의미 없는 생을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모든 인생의 주인이자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들의 삶의 의미는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진정 예수님을 만나 뵈옵는 자는 그 인생의 의미가 달라지고,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를 만남으로 전혀 의미가 다른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처럼 비린내 나는 고기를 잡던 어부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천하보다 귀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 낚는 어부로서의 삶을 살아보십시오. 열심히 공부합시다. 그러나 공부 때문에 예수님을 멀리하지는 맙시다. 열심으로 장사하고 사업합시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등한히 하지는 맙시다. 열심히 성공하고 출세합시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떠나지는 맙시다. 예수님을 만나야 살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야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 진정한 성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무리하는 말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 5;1-11에서 베드로와 그의 형제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 만남으로 달라진 그들의 생을 읽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은 주님을 만난 이후에 그들의 생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였을 때 그들의 삶이 놀랍게 풍성한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들 생애 전부를 주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며 살아가는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우리 인생의 참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그 안에서 우리의 삶이 온전히 변화되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텔레비전의 ‘개콘-개그콘서트’를 아시지요. 그 속에 ‘남보원-남성인권 보장 위원회’란 프로가 있습니다. 왜 작년 성탄절 설교 때 ‘예수님 생일인데, 선물은 니가 받냐’한 번 했잖아요. 오늘도 그 풍으로 말씀을 마무리 해 보겠습니다. 황현희, 박성호 최효종 중에 박성호 흉내를 내보겠습니다. ‘우리 인간적으로 예수님 만나 살림 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괜히했어. 괜히했어. 아무도 안 웃어. 아무도 모르잖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베드로와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만남으로 삶의 놀라운 질적 변화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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