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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라! (롬 1: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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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라! (롬 1:15~17)


초등학교 다닐 때 가족사항을 적는 것이 기억이 난다. 11명을 써야 하는데 칸이 모자랐다. 형 동생 몇 명은 빼고 적었다. 그래서 매년 가족이 바뀌었다. 왜 이렇게 많이 낳으셨나. 부모도 내 자신도 부끄럽고 창피했다. 정말 철닥서니 없는 생각이었다. 그 부모님이 아니셨다면 나는 세상에 아주 없었을 것이다. 

입양 아이의 이야기를 보았다. 6.25 전쟁 중에 부모를 잃고 입양되었던 아이이다. 사춘기가 되면서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부모와 피부색이 다르다. 외모도 다르다.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았다. 왜 우리 엄마는 나를 버렸나? 밉다.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창피하다. 

그런 모습을 양부모가 보고 아이를 한국으로 데려왔다. 어느 시골 길 옆 무덤으로 데려가서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만삭이 된 어머니가 집으로 가던 중에 그만 산통이 왔다. 너무 급해서 다리 밑에서 아이를 낳고 말았다. 너무 추운 겨울이었다. 산모는 자기 옷을 다 벗어서 아이를 감싸 주었다. 
마침 그곳을 이동하던 미군 장교가 아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엄마의 품에서 갓난아이가 울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엄마는 얼어 죽어 있었다. 그 아이를 입양해서 키운 것이다. 
네가 그 아이이다. 여기가 네 엄마의 무덤이다. 그 아이는 조용히 자기 옷을 벗어서 어머니의 무덤을 덮어 드렸다. 엄마의 무덤을 끌어안고 울면서 말했다. 엄마 감사합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드디어 알게 되었다. 자기는 버림받은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머니가 생명을 바쳐서 사랑한 자녀라는 사실을. 
어떻게 했을까? 그런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믿음을 비밀로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 다니는 것을 비밀로 한다. 
비웃을 것 같아서, 무시할 것 같아서, 위선자로 비난할 것 같아서, 소외당할까봐, 손해볼까봐... 예수님을 믿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그러니 전도하는 것은 아예 시도하지도 못한다. 예수님께 참 죄송스런 일이다. 

사도 바울은 평생 복음 전하기를 힘쓰며 살았다. 사람들이 복음을 하찮은 것으로 여겼다. 고전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다. 
이유가 분명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복음 능력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복음 때문에 인생이 변화되었다. 완전 새 사람이 되었다. 새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결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복음을 자랑하며 전하며 산 것이다. 

복음을 부끄러워하며 신앙생활하지는 않는가? 그래서 숨기고 있지는 않은가? 
복음을 체험하는 신앙생활 하자. 우리도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신앙생활을 하자. 
그래서 복음을 자랑스럽게 전하며 신앙생활하길 간절히 소원한다. 

1. 복음이 왜 필요한가? 

복음은 복된 소식이다. good news이다. 단어의 뜻은 그렇다.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이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나? 

먼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상이 어떠한가를 알아야 한다. 롬1:28-31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인천 공항에 전신 엑스레이가 설치된다고 한다. 그 앞에 서면 밀수품, 폭발물 숨긴 것이 다 드러난다. 전신이 다 드러나는 것이다.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것도 다 찍는 엑스레이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만들면 모두가 곤란하다.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할 거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신다. 다 찍고 계신다. 그 사진이 로마서 말씀이다. 

사람들이 죄의 능력에 매여 있는 산다.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죄의 능력에 질질 끌려 다니면서 살게 만든다. 그러다가 죽는 것이다. 
죄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죄는 암보다 훨씬 무서운 병이다. 죄의 능력은 어떤 암세포보다 강력하게 마음을 병들게 한다. 썩게 한다. 더럽게 만든다. 이기적이게 만든다. 
암은 발견하는 대로 수술한다. 수술 후에도 항암치료를 한다. 암세포를 완전히 뿌리 채 뽑아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디 하나 남아있던 세포가 있으면 재발하게 된다. 
죄는 암세포 보다 훨씬 뿌리가 깊다. 어떤 방법으로도 죄의 뿌리를 뽑아 버리지 못한다. 

죄는 마침내 암보다 훨씬 무서운 죽음을 가져온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이미 영혼이 죽었다. 첫 번째 죽음이다. 영혼이 죽은 인간은 육체도 서서히 죽어간다. 
사는 동안 몸도 고통을 당한다. 늙어 가면서 고생한다. 병으로 고생한다. 마음은 더 고통을 당한다. 온갖 스트레스 염려 분노 미움 속에서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날 죽는다. 두 번째 죽음이다. 
죽으면 다 끝나나? 아니다. 결코 끝나는 게 아니다. 죽음 후에는 지옥의 심판이 있다. 영원한 죽음이다. 세 번째 죽음이다. 죄는 인간은 3중 죽음에 이르는 가장 무서운 병이다. 

벗어날 길이 있는가? 없다. 자기 힘으로 벗어난 사람이 있는가? 없다. 벗어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전혀 없다. 그래서 복음이 필요한 것이다. 

2. 복음은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왜 복음이 필요인가?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바울사도 시대에는 로마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모든 나라가 로마의 힘에 굴복하였다. 
'Fax Romana'라는 말이 있다. 로마의 평화라는 말이다. 로마의 힘에 의해 굴복된 평화이다. 
그 로마를 무너뜨린 더 강한 힘이 있다. 죄의 힘이다. 도덕적 타락이 로마를 무너뜨렸다고 한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은 죄의 권세를 박살내는 능력이 있다. 

능력이란 말이 ‘두나미스’라는 말이다. 여기서 다이나마이트란 말이 나왔다. 
복음이 들어가면 죄의 권세를 파괴시켜 버린다. 복음이 들어가면 저주를 깨트리고 축복을 주신다. 복음이 들어가면 죽음을 깨트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복음이 들어가면 지옥문은 닫히고 천국 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 어떤 영웅호걸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복음이 들어가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두나미스란 말에서 ‘dynamic’이란 말도 나왔다. 복음이 들어가면 생명의 능력이 역사한다. 
죽을 맛이 아니라 살맛이 나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 
사랑의 힘이 역사한다. 용서의 힘이 역사한다. 눈빛이 살아난다. 말이 살아나게 된다. 
복음은 죄의 능력에 매여 있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하나님은 죄인을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죄인이라도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이 둘은 서로 대립된다.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어떤 추장이 법을 정했다. 누구든지 도둑질하다 잡히면 손목을 잘라버리도록. 
한 도둑놈이 잡혀왔다. 살펴보니 자기 외아들이다. 사람들이 다 추장이 어떻게 할지를 지켜본다. 법을 지켜서 아들의 손목을 자를지, 아니면 법을 무시하고 아들에게 사랑을 베풀지. 
추장이 명령을 내렸다. 아들을 끌고 가서 보자기로 싸서 끌고 오라고. 추장이 방안으로 들어가서 명령을 내렸다. 손목을 자르라고. 사람들이 보자기를 풀렀다. 보자기 안에는 아들대신 추장이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대신해서 자기 손목을 자르게 한 것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함께 만나는 곳이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함께 실현되는 곳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예수님께 쏟아 부으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 죄를 짊어지시고 공의의 심판을 당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쏟아 부으셨다. 
죄는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의를 옷 입혀 주신다. 그래서 의인이라고 불러 주시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의를 입혀 주신 것이다. 

복음을 믿는 사람,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 대신 영원한 생명을 부어주신다. 
지옥의 문은 닫아 버리고 천국 문을 열어 주신다. 저주는 끝장내시고 축복을 부어주신다. 질병은 치유하시고 건강케 해 주신다. 미움은 사라지고 용서와 사랑을 하게 하신다. 
어둠은 물러가게 하시고 빛을 비춰주신다. 옛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이다. 

복음을 믿는 자는 이미 이 구원을 받았다. 그리고 주님 오실 때 그 구원을 완전히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 떠나는 날 천국에서 이 구원을 완전히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인 것이다. 
이 복음의 능력을 마음껏 체험하며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복음의 능력은 오직 믿음으로만 체험할 수 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체험할 수 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나니” 이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NIV- by faith from first to last) 믿음으로만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만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의인은 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이 믿음으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며 사는 것이다. 

맺는 말 
어떤 분이 이런 탄식을 하면서 돌아가셨다. <나는 일생 동안 다른 것은 다 준비했는데 막상 임종을 앞에 놓고보니 죽음의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나는 준비없이 죽는구나!> 
살 준비를 잘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죽을 준비를 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살 준비를 잘하는 것도 죽을 준비를 잘하는 것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사는 동안도, 죽음 후에도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며 사는 성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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