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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표적을 구하는 신앙 (막 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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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을 구하는 신앙 (막 8:11~13)


짧은 간증을 하고자 한다. 20대 중반,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 표적을 구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당시 나의 기도 제목은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는 어떤 표적이 내게는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어떤 모습도, 어떤 음성도 들려오지 않았다. 꿈에서도 표적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주일이 되면 무엇인가 나를 이끄는 힘에 의해 교회당으로 나가게 되었다. 가서 졸다가 오고 안가면 불안하고, 신앙적 갈등을 겪으면서 확신 있는 믿음의 자리에 나가기까지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두 가지 사건은 내게 큰 표적이 되었다. 

하나는 부흥회에서 내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고 회개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는 금식하며 기도원 집회에 참석했다가 불 받았던 경험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는 표적으로서 도움이 된 것이지 그 표적이 나를 믿음의 확신에 이르게 한것은 아니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에게 표적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단호하게 꾸중을 들었다. 12절에서, 예수께서는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하시고 그들에게서 떠나셨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었는가? 그 이유는 표적을 요구하는 동기가 불순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 앞으로 나아간 것은 잘한 일이지만 그 동기가 악의적이었다. 예수께서 칠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 백성들 중에 예수님의 관심은 더욱 높아져 갔다. 그럴 수록 바리새인들의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져 갔다. 

1.바리새인들의 음모

막 8: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예수님에 대한 악의적 행동은 3단계로 진행되었다.
1)힐난하여, 
‘힐난’이란 말은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비난하려고 따지고 캐묻는 행동을 말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죄인 다루듯 함부로 대했다. 예수님의 행하시는 모든 일이 못마땅했다. 출신성분까지도 그랬다. 나사렛 목수 출신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관심이 예수님에게로 쏠리자 위기의식을 느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경계하고 뒷조사하면서 허물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심기가 뒤틀린 상태에서 예수님에 대해 좋은 말이 나갈리 없었다. 그들은 비난의 말로 예수님을 깎아내리려도 했던 것이다. 

2)시험하여, 
여기 시험이란 ‘유혹’을 가르킨다. 유혹은 사탄이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접근하는 수단이다. 사탄은 예수님까지도 시험하여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금식 중에 계신 예수님에게 접근하여,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 했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 했고,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내게 절하면 그것을 주겠다고 유혹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그 유혹을 물리치셨다.

이제는 유대교의 지도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리려고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한 가지 얻게 되는데 신자가 신앙이 순수하지 못하면 사탄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구보다도 영적으로 깨어 있어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고 섬겼어야 할 지도자들이 도리어 자신들의 탐욕으로 인해 사탄의 도구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늘 깨어 시험에 들지 않아야 한다. 

3)그들은 ‘하늘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다. 
마귀는 바리새인들을 사주하였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라!’ 예수님을 결정적으로 함정에 빠뜨릴 수 있는 요청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표적을 보지 못했는가? 그들은 많이 보았다. 오병이어의 기적, 그리고 바로 앞에서 있었던 칠병이어의 기적, 그리고 수 없이 많은 기적의 현장을 목격해 왔다. 그러나 강퍅해진 심령은 그 표적들을 부인했다. 그 정도의 표적은 하늘로서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선지자들이 이미 다 행했던 것이고 술사들도 다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강력한 기적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메시야되심을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표적을 원했던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 기적을 보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그런 표적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예)시내산에서 빽빽한 구름 가운데 강림하심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로 거절하셨다. 왜 거절하셨는가? 3가지 이유 때문이다.
1)그들의 의도가 불순했기 때문이다.
20대 청년시절 내가 표적을 구했던 것은 잘 믿고 싶어서 표적을 구했다. 20대 젊은 날의 방황을 그치고 껍데기 신자가 아닌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어서 였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의도는 예수님을 비난하고 부인할 목적으로 표적을 구했다. 순수하지 못한 목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는 반드시 재앙을 당하게 된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성에서 복음을 전할 때 병자가 낫고 귀신이 쫓겨나는 표적이 많이 일어났다. 그때 그 성에 마술사 시몬이 자신보다 능력이 센 것을 보고 사도들에게 돈을 주며 성령받게 하는 능력을 달라고 요청했다가 베드로가 저주하는 바람에 손바닥이 발바닥이 되도록 빌었던 사건이 있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은 가난한 심령, 애통하는 심령으로 나와야 한다. 

2)표적이 신앙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직신학자 루이스 뻘콥은 신앙의 종류에 대해 4가지로 열거했다. 역사적인 신앙, 이적의 신앙, 일시적 신앙, 참된 구원의 신앙. 그 중에서 참된 구원의 신앙 이외의 다른 것들은 구원을 동반하지 않을 수도 있는 위험한 신앙이라고 했다. 이적을 추구하는 신앙은 바른 믿음이 아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기적의 떡을 먹었다. 그러나 모두가 다 예수님을 믿은 것 아니었다. 기적이 신앙을 만들지 못한다. 지금도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표적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한다. 그러나 표적이 신앙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것을 아셨기에 단호히 거절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3)지금까지 사역이 충분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그것들만 가지고도 예수님의 메시야되심을 증거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기적은 신앙의 동기는 될 수 있어도 신앙을 자라게 하지는 못한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목적은 사람들을 구원할 목적으로 행하신 것이 아니다. 자신의 메시야되심을 알리시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의 사역 중에 증거하신 말씀이나 이적의 사건들만 가지고도 예수님의 메시야되심을 증거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듣고 받는 자의 믿음에 따른 것이다. 

2.예수님의 반응

막 8: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의 요구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셨는가?
1)마음 속으로 깊이 탄식하셨다.
‘깊은 탄식’이란? 노도처럼 밀려오는 극한 슬픔, 실망, 분노의 심정을 포함한 것이다. 그 탄식은 사람의 악함으로 아심으로 나오는 탄식이다. 예레미야서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 했다. 마음이 굳어진 사람은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안 믿는다. 강퍅한 심령, 들을 귀가 망가진 사람들... 그런 심령을 보실 때 주님께서 깊은 탄식을 하신다.

그런데 그 탄식은 유대교의 지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탄식하셨다. 바리새인들만 아니라 그 시대가 표적을 구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불신앙으로 가득한 세태.

마 11:16-17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불신앙으로 가득한 시대, 노아의 시대가 그랬고,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그랬다. 불신앙의 모습은 깊은 탄식만 불러올 뿐이다. 노아시대 하나님께서 사람지으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했다. 기적을 많이 행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다. 
예)뱃새다. 고라신, 가버나움(마 11장)

2)표적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심. 
아주 단호하게 선언 하셨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은 교만, 자만, 오만에 빠져서 스스로 재앙과 멸망을 초래해 왔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요. 죄악된 인간의 진면목이다. 표적을 보여줘도 믿지 않는 심령들에게 더 이상의 은혜는 필요가 없다. 그것은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곁을 떠나가 셨다(13절).

예수님께서는 거짓되고 위선된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거부하셨다. 그들을 떠나셨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헐뜻고 비난하고 믿음을 떨어뜨리는 사람과는 같이 있을 이유가 없다. 빨리 알고 그 자리에서 떠나는 것이 유익하다. 

3.교훈

주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그릇된 신앙을 경고하시면서 동시에 참되고 올바른 신앙의 모습은 무엇인가를 교훈하고 있다. 

1)표적을 구하는 신앙은 책망의 원인이 된다. 
기독교 신앙은 체험이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체험주의에 빠지면 안된다. 예수님께 나온 목적이 병 낳기를 위한 것이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면 그는 언젠가 주님을 떠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순수하지 못한 신앙이다. 자신이 목적한 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예)어느 직장 예배에서 한 청년이 한 쪽 손이 마비된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기도를 요청했다. 회복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안타까웠으나 이해가 되도록 설명해 주었다. 

2)표적은 믿음을 만들지 못한다.
앞서서 언급한대로 표적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되심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다. 풍랑이는 파도와 바람을 잔잔케 하셨을 때 제자들이 이렇게 고백했다. ‘이분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도다!’ 그러나 훗날 제자들은 다 예수님 부인하고 도망쳤다. 그러나 성령이 그들 중에 충만히 임하셨을 때 그들은 환란과 핍박 중에도 신앙을 지켰다. 

구약성경이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표적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믿음을 만들지는 못한다. 구원 얻는 믿음은 성령의 인치심을 통해서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작은 믿음이라도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 생활 현장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수 많은 이적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 

3)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표적은 성경이다. 
내게 있어서 두 차례의 경험은 나의 믿음을 강화시켜 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유효기간이 지나면 또 다른 체험을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체험이 신앙생활에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신자들의 신앙이 흔들리는 이유는 말씀을 떠나 다른 것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신학대학 시절의 은혜를 간직하고 있다. 사명감 없는 상태에서 두려움 때문에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강의 시간은 큰 은혜의 시간이었다. 마치 말씀의 칼이 내 심령에 박히는 듯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표적은 성경이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펴서 읽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분주한 마음이 아닌, 차분하고 조용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라. 그러면 주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다. 여러분의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낄 것이다. 여러분의 삶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거했다.

고전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표적을 구하는 신앙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신앙이 아니다. 이미 날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바라보라.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십자가를 붙잡고, 예수님을 묵상하라. 그리고 그분의 행적과 믿음의 사람들의 행적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보라. 날마다 책을 펴서 읽는 순간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표적을 보게 될 것이다. 나의 심령 속에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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