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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이름을 멸시하는 사람들 (말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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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름을 멸시하는 사람들 (말 1:6~14)


본문 1절에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하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라고 말입니다. 
아들은 아비를 공경하고 종은 주인을 공경하는데 너의 아버지 되고 너의 주인 된 하나님을 왜 멸시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라고 반문합니다. 

이 반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에 귀를 귀울여야 합니다.
왜냐면 현대를 사는 우리들도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들 하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이 보실 때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행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하고 섬긴다고 하면서 은연중에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행위들을 하지 않았습니까? 내 쪽에서는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는데 받으시는 하나님 쪽에서 무시 당하는 느낌을 받으신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이란 결국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에부터 출발합니다. 
불 신앙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1. 주의 이름을 멸시하는 사람들의 특징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1절에 보면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 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두려워 함이 어디 있느냐” 라고 묻고 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면 세가지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①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은 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조차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죄를 물먹듯이 먹으면서도 전혀 가책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더러운 떡을 제단에 드렸습니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두려운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존중하는 것이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②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두려움은 행동 유발의 첫째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희망이나 믿음, 사랑과 두려움 중에서 사람의 행동을 가장 빨리 유발시키는 것이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그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선하게 작용하여 손들고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 2:12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일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일해야 합니다. 

③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 합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두려워해야할 존재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만이 두려움의 존재입니다. 

몇해전 대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장성인이라는 39세된 사람이 구마 고속도로 상에서 1.4t 화물트럭을 몰고 가다 차량 강도를 당해서 현금 30만원을 빼앗겼다고 대구 서부경찰서에 신고했습니다. 그런데 경찰 조사결과 장씨는 이날 친구 2명과 성서공단내 한 사무실에서 고스톱을 치다 현금 8만원을 잃자 아내로부터 잔소리 들을 것을 우려해 강도를 당한 것으로 허위신고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아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두려워서 거짓으로 신고하여 챙피 당하고 쇠고랑을 차게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 10:2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실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 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든지 아니면 나중에 심판대 앞에서 만나든지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였습니다. 
진실한 성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믿음에서 나오는 두려움은 경외심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가 무엇입니까?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면 곧바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가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는 무엇일까요?

① 하나님을 세상의 통치자보다 더 못하게 섬기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께는 드리는 제물은 흠이 있어 상품 가치도 없는 “더러운 떡”과 “눈먼 짐승” “저는 것” “병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관원들에게는 최고급 물건을 갖다가 뇌물을 썼습니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 정부의 관리에게 하는 것 만큼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서 심한 모욕감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1: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사실 사람들은 세상의 관원이나 통치자들에게는 쉽게 굴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다는 이유로 쉽게 무시하고 맙니다. 혹시 하나님을 세상의 관원이나 하다못해 동사무소 직원만큼도 대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시다. 

②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번거롭게 여겼습니다.
본문의 13절의 말씀을 보면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하는 일에 대하여 아주 귀찮고 번거로운 것으로 알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였는지 다음의 구절에 아주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번폐스럽게 여겼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라고 했는데 이 일이란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번거롭다는 말은 예전 번역성경에서는 번폐(煩弊) 란 말로 번역되어있습니다. 번폐란 말은 국어사전에 보니까 “괴로워할 번” 자에 “해질 폐” 자로서 번거로운 폐단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귀찮고 번거로와서 없어져야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제물은 정성도 없는 제물을 갖다 바치면서 그나마도 아주 귀찮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대하여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주의 깊게 듣지 않습니다. 주의 깊게 경청하지 않으니 말씀이 귀에 안 들어 오고 정성없이 예배하니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꾸벅 꾸벅 졸기만 한 사람에게 예배 시간은 한없이 길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③ 예배를 멸시하였습니다. 
본문 13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제단에 제물을 드리는 것을 번거롭고 귀찮게 여겼을 뿐아니라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코웃음하였습니다. 

코웃음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예배를 비웃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사람을 만나십니다.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실현입니다. 그래서 요4:24절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예배를 비웃는 행위는 하나님을 비웃는 행위입니다. 
예배를 소중히 하는 자를 찾으시고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요한복음 4:23절에 보면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 8:17절에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예배를 가벼이 여기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소중히 여깁시다.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예배를 소중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는 것은 그의 말씀과 그의 뜻을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반면 무시하고 멸시하는 행위는 그의 말씀과 그의 뜻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①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② 하나님을 세상의 관원보다도 더 못하게 여깁니다. 
③ 예배를 귀찮아 합니다. 
④ 진실하게 예배하는 자들을 비웃습니다. 
이러한 일을 행할 때 하나님을 우리들에게 멸시당하는 감정을 느끼십니다. 이런 잘못들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두려워 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세상의 대통령보다 더 귀하게 생각합시다. 즐겁게 예배드리고 예배를 존중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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