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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셉 때문에 (창 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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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때문에 (창 39:1~6) 


인간은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싫든 좋든 인간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본질상 ‘사회적 존재’(Social Being)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상대방에게 축복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저주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축복과 저주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게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축복과 저주가 인간을 통해 전달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인간관계를 통해 축복과 저주의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삶을 살면 좋겠습니까? 서로에게 저주가 되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축복이 돼야 합니다. 나 때문에 주변 모든 사람들이 축복을 받게 되면 정말 좋을 겁니다. 그게 나 자신이 잘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요셉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 요셉처럼 주변 사람에게 축복을 전달하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아무개 때문에 : 저주의 통로, 축복의 통로 

인간 상호 간에 주고받는 영향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때문에’ 라는 단어입니다. 아무개 때문에 축복을 받았다, 아무개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 ... 이런 식의 표현입니다. 다시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이런 겁니다. ‘~때문에’라는 말은 때로는 긍정적인 의미로, 때로는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 덕에’ 혹은 ‘~ 탓에’ 이런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인간관계에서 어떤 경우는 남에게 저주가 되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경우는 축복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저주의 통로가 되는 사람과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① 저주의 통로 :

요셉의 주변에는 저주의 통로가 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우선 그의 형들이 그랬죠.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 열한 번째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이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심부름을 시킵니다. 형들이 들판에서 영을 치고 있는데, 잘 하고 있나 보고 오라는 겁니다. 외딴 들판에서 만난 형들이 제거할 기회로 여기고 그를 노예상인들에게 팔아버립니다. 아버지에게는 짐승에게 잡혀 먹혔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본문 1절은 그런 상황을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요셉에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 ”(창37:28 참조) 노예상인들이 요셉을 애굽으로 끌고 갔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그의 인생에 저주의 통로가 되는 자들이었습니다. 

또 보디발의 아내가 있었죠. 요셉이 애굽에서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보디발은 바로 왕의 친위대장(경호실장)이었습니다. 요셉이 그의 집에서 잘 하고 있었는데, 요셉을 좋아하던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합니다. 요셉이 물리쳤지만, 여자가 거꾸로 자기를 겁탈하려 했다고 모함을 해서 감옥에 들어갑니다.(창39:7~20) 부잣집 아들이었던 요셉이 하루아침에 노예가 된 것도 기가 막힌데, 게다가 죄수 아닌 죄수가 된 겁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멀쩡히 살아가다 주변 사람들이 내 인생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집안에도 보면, 이런 애물단지가 꼭 한 둘씩 있습니다. 그런 사람 때문이 집안이 평지풍파가 일어나고, 풍비박산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안뿐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성경에 보면, 그런 경우가 여러 군데 등장합니다. 여호수아 7장 보면, 아간의 이야기가 나오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정복에 나서 첫 번째 성인 여리고에서 대승을 거둡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경고한 말씀이 뭐죠? 전리품을 개인적으로 취하지 말라는 겁니다. 광야 생활 하던 그들에게 시험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간이 몰래 시날 산 외투(명품 모피코트)와 금덩어리 은덩어리를 숨겨둡니다. 그 후 아이 성을 정복하는데 이스라엘이 어이없이 패합니다. 여리고 성에 비하면 아이 성은 정말 아이 같이 작은 성인데 말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아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지 않은 겁니다. ‘아간 때문에’ 수백만 명의 이스라엘 공동체가 저주를 받게 된 겁니다. 

요나서 1장을 보면, ‘요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앗수르의 니느웨 성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가던 중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배 밑층에 들어가 쿨쿨 잠을 자고 있는데, 난리가 납니다. 큰 폭풍이 일어나며 배가 난파 직전에 이르게 됩니다. 배 안이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요나 때문에 죽을 지경이 된 겁니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결국 요나가 자수해서 승객들이 그를 바다에 던져버리고 나서야 광풍이 가라앉게 됩니다. 그래서요, 비행기나 배나 차를 탈 때, 기도 많이 해야 돼요. 혹시 그 안에 요나 타지 않았는지 주위를 둘러보면서 기도해야 돼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가 요나인 줄도 모르고 주변만 두리번거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한심한 거죠.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줄을 잘 서야 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축복을 전달하는 사람 옆에 붙어야지, 엉뚱하게 하나님에게 저주받고 아간 같은 사람이나 요나 같은 사람 옆에 붙으면 함께 망하는 겁니다.   

② 축복의 통로 :  

이와 반대로, 어떤 사람은 그 사람 때문에 주변 사람들까지 덩달아 복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축복의 통로입니다.   

인간은 본래 아담 이후 저주의 통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때문에 바뀌었습니다. 아담과 예수님의 관계를 생각해 보십시오.(롬5:12~19) 인류의 시조 아담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함으로 모든 인류에게 죄를 퍼뜨렸습니다. 그로 인해 사망이 왔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믿는 모든 자들이 죄와 사명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됐습니다. 

롬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아담)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고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7장을 보면, ‘바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수지맞는 사건이 나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체포되어 로마로 호송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보기에는 항해가 어려울 것 같아서 호송관인 백부장에게 쉬었다 가자고 건의합니다. 그런데 선장과 선주가 고집을 부리고 항해를 강행하다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납니다. 배가 깨지고 난파되어 죽을 지경이 됩니다. 하지만 바울 때문에, 바울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그러니까 뭡니까? 바울 때문에 승객 276명이 안전하게 생존하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씀드리는데, 줄을 잘 서야 된다니까요. 바울 같은 사람 옆에 있으면 함께 축복을 받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어느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부인은 신실한 신앙인인데 남편이 아직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부인이 새벽기도를 하는데, 어떤 날은 피곤하잖아요. 부인이 피곤해서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 있으면, 남편이 옆에서 툭툭 친다는 겁니다. 빨리 일어나서 새벽기도 가라고 말입니다. 자기는 안 가면서. 남편이 아내의 기도 덕분에 집안이 잘 되는 것을 알고 있는 거죠. 그나마 아는 게 다행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가 기도하고 가족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다른 사람 때문에 곁다리로 복을 받는데서 벗어나 이제는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도록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게 성숙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이 그랬습니다. 
  

[2] 요셉 때문에 : 저주를 극복하고 축복의 통로가 된 요셉 

요셉 때문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렇게 되기 전에 먼저 한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하면, 주변에서 저주가 되는 인간들에게서 오는 여러 가지 갈등과 고통을 극복한 것입니다. 

① 저주를 극복한 인생 :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요셉이 얼마나 억울합니까? 잘못한 것도 없이 노예가 되고, 죄수가 되고 ... 하지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그런 기록이 전혀 없어요. 그런 점에서 요셉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죠. 대개 사람들이 잘 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을 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말입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억울해도요, 남의 탓만 하는 사람은 신앙의 진도가 안 나갑니다. 그냥 그 자리에서 헤매고 있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원수라도 미워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용서하고, 더 나아가 축복하라고 합니다. 롬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이게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하고 그 원수 같은 사람에게도 유익하지만, 결국은 나 자신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 이런 게 있어요. 마10:12~13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어떤 사람이 골목길 자동차를 주차해 놓았는데 누가 긁고 도망갔어요. 얼마나 약이 오르겠습니까? 화가 나는 걸 꾹 참고 이렇게 쪽지를 붙여놨대요. “제 차 긁고 그냥 가신 분 자손만대 복을 받으시고 만수무강하시기 바랍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런 인간성 나쁜 사람은 보나 마나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을 테니까, 그 축복을 자기가 다 받을 거란 말입니다. 

옛날 70년대였나요, 이런 가요가 있었죠. “ ... 그건 너 그런 너 바로 너 때문이야” 만약 요셉이 감옥에서 이 노래나 부르고 있었다면, 신세타령이나 하고 남의 탓만 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그러다 인생 끝나는 거죠. 그러나 요셉은 용서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인내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됐나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2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 ”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고 축복하십니다. 형통한 사람이 됩니다. 

보디발이 옆에서 보니까 신기해요. 어떻게 저 친구가 하는 일은 잘 되는지! 3절. “그의 주인(=보디발)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보디발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머리를 좋은 것 같아요. 그 후에 또 어떻게 합니까? 4절. “요셉이 그의 주인(=보디발)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② 축복의 통로가 된 인생 :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후로부터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이 축복의 통로가 된 겁니다. 그가 가정총무가 되어서 보디발의 집안 사림을 다 하면서부터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5절.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NIV-because of Joseph)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하나님이 보디발의 집에 복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한 대목이 있습니다. 요셉을 위하여! 요셉 때문에(because of Joseph)라는 말입니다.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집안사람이 다 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복덩어리입니다. 축복의 통로라는 말은 복덩어리라는 말입니다. 

이런 일이 요셉의 생애 가운데 계속 일어납니다. 그가 감옥에 가니까, 감옥이 있는 사람들이 요셉 때문에 다 복을 받아요. 그가 감옥에서 만난 술맡은 관원장이 소개해서 바로 왕을 만나죠. 남에게 축복의 통로 역할을 하다 보면 남을 통해서 축복을 되받는 경우도 생깁니다. 주고받는 겁니다. 바로 왕을 만나서 총리가 된 후에는 어떻게 됐죠? 그가 7년 풍년, 7년 흉년을 잘 치리하니까 애굽 사람들이 풍족한 삶을 살았어요. 더 나아가 주변 각국 백성들이 요셉 때문에 흉년 중에도 죽지 않고 잘 살았어요. 또 그의 부모 형제와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이민 가서 잘 살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축복의 사람 요셉이 가는 곳마다 축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요셉 때문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다 축복을 받아요. 마치 이런 겁니다. 호수에 돌멩이 하나를 던지면 어떻게 되죠? 호수 전체로 물결이 퍼져나갑니다. 이게 바로 축복의 물결(Blessing Ripples)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축복의 물결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심으로 축복의 통로가 된 사람들을 통해 가정 가정에, 세상 곳곳에 축복의 물결이 번져나갑니다. 그 물결이 나에게까지 온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복을 받고 있는 게 나 자신이 잘 해서라기보다 이렇게 축복의 물결이 밀려와서 내가 복을 받은 겁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했고, 누군가 나에게 복음을 전해 줬고, 누군가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들어오게 된 유래를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1806년 미국의 윌리엄즈 대학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사무엘 밀즈(Samuel Mills 1783~1818)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캠퍼스에서 정기 기도회를 모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몇 명이 모였는데, 갑작스런 폭우가 내렸는데 이를 피해 건초더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땅이 패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비록 적은 무리지만 함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역사해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를 통해 건초더미 기도회(Haystack Prayer Meeting)가 시작됩니다. 그 기도의 물결이 번지면서 이윽고 선교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SVM(학생자원운동)으로 이어졌고, 무디(D. L. Moody)의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선교에 헌신하게 됩니다.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조선의 선교사로 헌신하게 됩니다. 언더우드, 아펜셀러, 게일 등이 그들이었습니다. 

이런 혜택을 우리가 받은 겁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내가 신앙생활 똑바로 못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겁니다. 반대로 내가 기도하고, 내가 복음 전하고, 내가 사랑을 실천하고, 내가 헌신하면 ... 나 때문에 가정이 복을 받고 교회가 복을 받고 직장이 복을 받고, 나라가 복을 받고, 민족이 복을 받고 세계가 복을 받게 됩니다. 

이게 진짜 축복입니다. 나에게 흐르고 넘쳐서 이뤄지는 축복의 역사입니다. 나 자신에게도 최고의 축복인 셈이죠.

중국내지 선교회(China Inland Mission)를 창설했던 허드슨 테일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당신의 부모, 형제, 자매, 심지어 당신이 기르고 있는 개나 고양이가 크리스천인 당신 때문에 더 행복해지지 못한다면 당신이 정말 크리스천인가 의문이 생긴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나 때문에 주변의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불행해지고 있습니까? 아무쪼록 요셉이 가는 곳곳마다 ‘요셉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은 것처럼 ‘나 때문에’ ‘우리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복을 받는 ‘축복의 물결’이 계속 번져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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