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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강력하신 뜻 (살전 5:16~18) - 기쁨, 기도, 감사,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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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강력하신 뜻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 
의 뜻이니라  

오늘 현대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병은 우울증이라는 병입니다. 우울증은 갱년기에 오는 신체적인 변화중 하나인 우울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울증과는 다른 불균형의 삶에서 오는 불안이나 고민 그리고 걱정에서 오는 우울증도 있습니다. 이 우울증이 더 무서운 병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07년도 한 해 동안 우울증 치료자가 49만 명이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국민 100명당 한명 꼴입니다. 

원인은 경제가 나빠질 때 대부분 감정을 안으로 삭이기 때문에 온갖 삶의 불안들이 우울증으로 발전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우울증이 결국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2008년도 OECD 헬스 데이터에 의하면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는 24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OECD국가 중 첫째입니다. 2000년에서 2007년도까지 자살 사망자는 모두 7만여 명입니다. 이 수치는 한 지역의 군이 자살로 사라진 셈입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자살자 3명중 2명이 우울증을 앓았던 경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런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오늘 읽은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우리들이 여러 번 읽고 들은 말씀입니다. 간략하고 딱 떨어지는 말씀입니다. 경쾌하고 시원하고 해설이 필요 없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왕 빌립 2세의 양자 카산더가 세운 도시인데 완성 후에 자기 부인 이름을 따서 데살로니가로 지었습니다. 그 데살로니가에 사도바울이 3주간 방문하여 야손 집에서 집회하며 전도한 것이 후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서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24년 후에 기록된 책입니다. 교회가 조직화되기 이전 즉 예수재림 대망신앙이 최고조 일 때 쓰인 책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서는 아주 순수한 신앙 모습 그대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의 문제는 종말관이 잘못된 점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재림이 임박하였다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생활을 등한히 하였습니다. 

또 예수재림 전에 죽은 자는 어떻게 되는가에 관심이 고조되어 신앙에 혼란이 야기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4장 5장에서 죽은 자 문제, 부활의 문제, 재림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생활에 충실하라고 강조하고 합니다. 본문은 그렇게 해서 주어진 말씀입니다. 종말 때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5가지를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5장12절에서 교회 안에서 수고하는 자들을 칭찬하고 사랑으로 존경하라고 강조합니다. 존경의 이유는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사역은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고로 교회에서 일하는 사역자들을 존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존경하지 않으면 가르침을 무게 있게 받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13절에서 화평을 유지하라고 하였습니다. “귀히 여기고 화목 하라” 교회는 화목하고 평화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당연한 일인데 다시 강조하는 이유는 이 일이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교회들이 불화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본연의 일을 못하고 있습니다. 몸이 건강하면 온 정신을 살아가는데 쏟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몸에 종기가 나거나 아프게 되면 온 정신이 그 상처를 치료하느라 정신을 쏟게 됩니다. 그러면 할 일 못하게 됩니다. 교회가 할 일은 전도하는 일입니다. 교회가 건강해야 그 본연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귀히 여기고 화목하고 평화를 유지하라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14절에서 게으른 자를 권면하고 낙심 자를 격려하고 연약한 자를 도우며 오래 참으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신자들은 대부분 영적으로 약한 자들입니다. 상처입고 고민하고 걱정하고 문제들을 안고 있는 분들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자들입니다. 교회는 그들을 권면하고 세워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의 중직자들은 그런 점에서 중요합니다. 

네 번째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항상 선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의 윤리입니다. 마태복음5장39절에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6장27절에서 “너희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의 핵심적인 가르침의 내용도 있습니다. 로마서12장14절에서는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4장12절에서는 “욕을 당한 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 즉 참으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3장9절에서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고 하였습니다. 이상의 내용들의 공통점은 그냥 쉽게 이루기 어려운 일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네 가지 덕목을 이루려면 몇 가지 더 할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16~19절에서 제시한 세 가지 원리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상의 내용을 이루려면 이 3가지 덕목을 이행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 3가지가 신앙의 요소이고 삶의 요소이고 승리하는 요소이고 강력한 영양제이며 기적을 일으키는 요소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이 말씀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에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기뻐하게 만드시려고 말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근심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기뻐하고” (고린도후서6장10절) 근심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런데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기쁜 일도 없는데 어떻게 기뻐합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래도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기뻐하면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라고 하셨으니 나는 기뻐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웃으면 기쁨이 옵니다. 웃을 일이 없는데 어떻게 웃습니까 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래도 웃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웃으면 복이 오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는 뇌는 진짜로 웃는지 가짜로 웃는지 분간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억지로 웃어도 엔돌핀이 나온다고 합니다. 미국 스텐포드 의과대학교에서 웃음의 효과를 연구하였습니다. 1시간동안 웃음 터지는 비디오를 보여주고 몸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조사하였습니다. 그때 암을 억제하는 호르몬이 평소보다 200배가 증가되더라는 것입니다. 

한바탕 웃을 때 몸속의 650개의 근육 중에서 231개의 근육이 움직여 위장과 가슴과 근육과 심장 전체를 움직이게 하더라고 합니다. 1분을 웃으면 2일을 더 살 수 있고 5분을 웃으면 500만원 상당의 엔돌핀이 우리 몸에서 생산된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웃는 사람은 심장이 더 튼튼하고 암을 이길 수 있는 저항력이 더 커진다고 합니다. 혼자가 아니고 여럿이 모이면 33배를 더 잘 웃을 수 있다고 합니다. 웃으면 장수한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은 여성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평균 7년을 더 장수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성들이 남성들 보다 더 감사하고 더 많이 웃으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께서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강조하시는 뜻입니다. 여성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들은 대부분 그렇게 중요한 내용들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대화를 이어갑니다. 그 점이 여성들이 지닌 장점입니다. 

남성들은 너무 쓸 말만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웃음이 적고 대화가 부족한 것입니다. 아내들로 하여금 동창회에 자주 내 보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웃고 들어오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웃음의 삶은 생동감을 회복하고 마음에 치유를 동반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류의 기쁨, 웃음 말고 진정 예수 안에서 주어지는 행복의 웃음을 이루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이겠습니까. 구원받은 사람들이 구원의 은혜로 주어지는 기쁨과 행복의 웃음으로 기뻐함의 삶을 이룰 수 있다면 삶의 엄청난 파괴력이 발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삶의 차원을 높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삶의 원동력이 되는 엄청난 힘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 어디에서 우울증이 찾아오겠습니까.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라 

삶에는 많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문제들이 사람으로 하여금 우울하게 만들어 삶을 어둡게 할 것입니다. 우울증은 문제가 해결되어야 치료될 수 있습니다. 그 해결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울증의 치료약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야고보서5장13절에서는 “너희 중에 고난당한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기도가 있는 곳에 문제가 풀리고 고난이 극복될 수 있습니다. 

기도에는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국은 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6만개의 한국교회가 매일 새벽마다 얼마나 많이 기도를 합니까. “구하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구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이 나라가 복을 받지 않겠습니까. 매일 새벽마다, 수요일 마다, 구역 예배 때 마다, 철야기도에서 그것도 모자라 산골짜기 마다 기도자 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로마서12장12절을 보면 “소망중에 즐거워하며 환란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넘어질 때 보면 큰 걸림돌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것에 의해서 넘어집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고 홍해를 건넙니다. 금성철벽 여리고성을 손 하나 쓰지 않고 무너트립니다. 파죽지세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그 다음 어이없게도 아주 작은 아이성과 싸움에서 패배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큰 문제들 앞에서도 겁 없이 이겼기 때문에 아이성을 우습게 여기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사람들이 넘어질 때를 보면 큰 돌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는 적습니다. 아주 작은 일에 넘어집니다. 너무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기도하는 시간에 내 영혼이 내안에서 약동하고 나의 온몸이 움직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내 영을 살리는 방법입니다. 내 영이 살아야 내가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내 몸이 약동하고 내 신앙이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그때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 됩니다. 그 때가 내가 가장 강렬해질 때입니다. 골로새서4장2절에서는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우울증을 이기는 최고의 약은 항상 기뻐하는 일이고 항상 기도하는 일입니다. 


항상 감사하라 

모든 일에 감사하기는 힘듭니다. 그런데 성경은 “범사에, 모든 경우에도 감사하라”고 강조하십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고난을 당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움찔하고 불평부터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넘어질 때 더 가슴아파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때 성령을 보내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고린도후서1장3~5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 환란 중에서 위로하시고 ... 그의 위로가 넘치는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약속이 있습니다. 좀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지체 부자유자들을 보면 해맑게 웃음을 웃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들을 보십시오. 장님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시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간절한 삶의 모습들입니까. 

영국의 BBC방송이 신앙자가 비신앙자 보다 평균 수명이 길다는 보고를 하였습니다. 왜 더 장수하는가 하면 신앙자들이 규칙적으로 교회에서 봉사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보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비신앙자들 보다 신앙자들이 혈압이 낮고 우울증이 적고 불안증이 적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면역력은 강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장수한다고 하였습니다. 

미국 북캐로라이나주에서는 노인 4천명을 상대로 최근 6년간 사망자를 조사했더니 사망자 중 정기적으로 교회에 다니던 노인들은 22.9% 였고 37.4%의 노인들은 신앙생활과 전무한 사람들이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감사하는 삶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감사하는 삶은 병을 낫게 합니다. 장수하게 합니다. 행복한 삶을 살게 합니다. 감사는 조건이나 환경이나 넉넉함이나 풍부함이나 좋은 집과는 상관도 없습니다. 감사는 마음에서 조성되고 그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보다 마음을 다스리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의 아이들“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가난한 집에 초등학생 오빠와 여동생이 살았습니다. 오빠가 다 떨어진 여동생의 한 켤레밖에 없는 운동화를 수선해 오다가 한눈파는 사이 잃어버렸습니다. 당장 내일 여동생이 학교에 뭘 신고가나 걱정되어 동생은 울고 있고 오빠는 잃어버린 운동화를 찾을 때까지 오빠 운동화를 함께 신자고 학교에 다니자고 위로합니다. 오전반인 여동생은 오빠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가고 끝나면 숨이 턱밑까지 차도록 뛰어오면 바통 터치하듯 오빠가 운동화를 신고 오후반 학교로 뛰어 갔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여동생의 운동화를 신은 아이를 발견하고 오빠는 그 아이의 뒤를 밟아 집에 가 보니 그 아버지는 장님이었고 자기 집보다 더 가난하였습니다. 차마 그 운동화를 돌려달라고 할 수가 없어 운동화 찾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오다가 전국 어린이 마라톤대회를 한다는 벽보를 보았습니다. 3등 상품이 운동화를 준다고 했습니다. 이 어린 오빠는 순간 눈이 번쩍 띄였습니다. 그 길로 학교로 달려가 체육선생님에게 내가 마라톤에 나가겠다고 신청하였습니다. 운동화 때문에 학교를 뛰어다니다 보니 달리기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돌아와 오빠는 여동생에게 “내가 꼭 3등해서 운동화를 타다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오빠의 목표는 1등이 아니고 3등입니다. 그래야 운동화를 상품으로 타기 때문입니다. 

시합이 시작되어 열심히 뛰는데 자꾸만 1등을 합니다. 아이는 속도조절로 스스로 3등으로 처졌습니다. 그런데 이러다가는 나중에 3등도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얼마 앞에 놓고는 죽을 힘을 다해 뛰었는데 그만 실수로 1등을 해버렸습니다. 모두들 기뻐 박수를 치는데 이 오빠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1등을 하고도 기죽어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이미 아버지가 여동생 운동화를 사 오셨습니다. 오빠는 그것도 모르고 헌 운동화를 신고 뛰느라 발이 부르트고 진물이 나고 아파서 돌아오는 길목의 연못에 발을 담그니 금붕어들이 모여들어 상처 난 발 부위를 핥아주었습니다. 그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여기서 이 영화가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누가 천국에 사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감사는 조건이나 환경이나 큰집에 있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 삶에는 매일같이 짓누르는 일들이 있습니다. 몰려오는 걱정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진 것이 있으나 늘 부족합니다. 이것들이 마침내 스트레스를 일으켜 내 삶을 더 짓누르고 이 스트레스들이 마침내 우리 몸 안에 무서운 질병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스트레스들 이 쌓이고 쌓여 암을 일으키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런 악순환으로부터  풀어줄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오늘 성경에서 제시하신 세 가지 조건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이 요소들이 우리의 삶에 건강을, 치료를, 영광의 삶을, 자유함을, 생명의 약동함을,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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