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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는 바람처럼 (요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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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는 바람처럼 (요 3:1~8)


현재 세계는 ‘아이티’라는 나라에 이목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이티는 대서양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입니다.  넓이가 남한의 4분의 1이고, 인구도 1,000만 명 정도입니다.  아름다운 카리브 해에 위치하고 
있지만, 나라의 운명은 기구하고, 국민들은 몹시 슬프고 가난합니다.  2009년 6월 미국의 외교 전문잡지 
‘포린 폴리시’가 발표한 실패국가순위가 있었습니다.  세계 177개국을 대상으로 난민발생, 인권, 기형적
인 인구구조, 환경악화, 극도의 치안부재 등 12개의 지표를 점수로 환산하여 선정합니다.  아이티는 실
패국가 명단에서 12위를 차지했습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이 섬에 도착한 이래 아이티는 파란만장한 역사의 연속이었습니다.  스페인, 프랑스, 미국의 식민지배와 혁명이 이어졌고, 20세기 후반에는 독재정치와 내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정치적 불안 속에 경제는 침체되고 국토는 황폐해졌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300달러이며 인구의 80%가 빈곤층에 속합니다.  이런 나라에 엎친데 겹친 격으로 대지진이 발생해 나라를 초토화시키고 말았습니다.  

자연의 움직임은 인간의 영역이 아닙니다.  만물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인간
은 그저 자연의 재앙 앞에 두려울 뿐이고, 대자연의 위력 앞에 연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하시
는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은혜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영역이고, 하나님이 주
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때론 강물처럼, 불길처럼, 그리고 바람처럼 임합니다.  과연 바람처럼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시원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에 초점을 맞추는 성경입
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통해 구세주로 오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과 사람들과 만
남을 중요한 주제로 합니다.  1장에 제자들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여러 사람, 여러 계층의 사람을 만남으
로 예수님의 메시야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본문에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
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관원입니다.  

오늘날 국회의원에 해당되는 고위급 간부이고, 또한 유대교신앙에 투철한 바리새인입니다.  이런 사람이 주님을 만나는 것은 당시 획기적이고, 충격적이고,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깊은 대화를 갖기 위해 조용한 시간에 주님을 어렵게 찾았습니다.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비밀을 말씀하셨고, 그것을 무엇보다도 ‘바람’에 비유하여 강조하셨습니
다.  그래서 7절과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
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
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주님은 구원과 성령과 은혜를 바람으로 설명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는 것은 바람처럼 임하고, 성령도 바람처럼 홀연히 오고, 하나님의 은혜도 바람같이 임하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바람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바람하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시원함입니다.  불은 먼
저 뜨거움을 연상하게 되지만, 바람은 시원함을 생각합니다.  은혜가 그런 것입니다.  은혜가 임하면 시
원해진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나름대로 잘살았습니다.  배울 만큼 배웠고, 가질 만큼 가졌습니다.  누릴 만큼 많이 누리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알만큼은 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 뭔가 막
힌 것 같았습니다.  인생이 무엇이고, 신앙은 무엇이고, 어떻게 천국을 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주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주님과 대화하면서 
이런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막혔던 모든 것이 뚫어지는 시원함을 경험한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주님 앞에 나오면, 주님을 깊이 만나면, 주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가 임하면, 무엇보다 우
리의 영혼과 육체가 시원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생을 ‘수고와 슬픔’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많이 가져도 여전히 없는 것 같습니다.  알아도 아
는 게 없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습니다.  행복한 것 같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기쁨이 있어
도 지속하지 못합니다.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하나가 다가오고, 한 고개를 넘으면 더 깊은 골짜기가 기
다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생은 답답하고, 두렵고, 불안하고, 우울함의 연속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삶
을 해결해 보려고 여러 가지로 노력하지만 근원적인 답답함을 풀어줄 길이 없습니다.  이런 인생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가 임하면 시원해집니다.  막힌 것이 뻥 뚫리게 됩니
다.  이것이 은혜의 능력입니다.  지금 니고데모가 경험하고,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여러분, 몹시 답답하십니까?  뭔가 막힌 것 같습니까?  매우 힘들고 어려우십니까?  무엇을 어떻게 해
야 할지 막막하십니까?  바로 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은혜가 임하면 모두 해결됩니다.  바람 같은 하
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문제와 난관과 장벽이 무너지고, 날마다 시원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니고데모가 주님을 만나 쩔쩔매고 있습니다.  그도 선생이고, 알만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는 주님의 책망을 듣습니다.  10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그는 살면서 이런 책망을 받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싫지가 않았
고, 기분 나쁘지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받으면서 마음이 녹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까
지 살았지만, 잘 살지 못했고, 믿었지만 제대로 믿지 못했습니다.  당시 유대인가운데 가장 힘든 사람들
이 바로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은 너무도 단단했습니다.  자기들의 테두리에서 한발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자기와 다르면 누구라도 대적할 수 없게 짓밟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부서지고, 깨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니고데모도 그중의 한 사람입니다.  여느 바리새인보다 심하면 심했지, 못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은혜가 임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 바람은 참으로 강력했습니다.  니고데모의 모든 사상을 부수고, 완전히 무너지는 강력한 바람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강력한 것입니다.  그 은혜 앞에 녹아지지 않을 사람이 없고, 무너지지 않을 장벽이 없으며, 해결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강력한 바람을 생각하면 ‘태풍’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타이픈, 허리케인이라고 부르는 태풍은 
무서운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태풍은 미국에 있었던 ‘카트리나’입니다.  2005
년 8월 29일 미국 남부를 강타하여 이틀 만에 도시전체를 삼켜버리고,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태풍은 1959년 추석날 아침에 찾아온 ‘사라’입니다.  2002년 강
타한 ‘루사’는 가장 많은 재산피해를 낸 태풍입니다.  또한 2003년 남해안을 치고 들어온 태풍 ‘매미’는 
지금까지 한국에 불어온 가장 강력한 태풍이었습니다.

은혜가 바람처럼, 태풍처럼 강력한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내게 임해야 합니다.  은혜가 임하면 녹아지
고, 부서지고, 무너지고, 깨집니다.  우리는 많이 부서져야 할 사람들입니다.  내가 깨지는 길은 은혜 외
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만큼 깨진 것도 은혜 때문입니다.  내가 주를 알고, 하나님을 믿었기에 이 정
도가 된 것입니다.  세상에 완악한 사람, 돌 같은 사람, 바늘도 안 들어 갈 것 같은 사람이 너무도 많습
니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가 많이 깨진 것 같습니다.  은혜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은혜가 
더욱 강력하게 임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 깨지고, 무너지고, 부서져야 합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 가운데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부서져야 하리,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더 많이 깨져야 하리, 씻겨야 하리, 깨끗이 씻겨야 하리’  날마다 고백하며 불러야 할 나의 노래이고, 간절한 기도제목이어야 합니다.  강력한 은혜로 더 부서져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개인만이 아니라 공동체에도 임해야 합니다.  은혜가 공동체에 임하면 놀라운 일이 생깁
니다.  한국교회역사에 강력한 성령과 은혜의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1907년에 있었고, 1970년대에도 불
었습니다.  1970년대는 한국역사의 획기적인 사건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은 비로소 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움이었고, 성령의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강력한 바람입니다.  그때 믿은 사람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때 태어난 자녀들이 큰 축복을 받았습니
다.  

그때 학생, 청년들의 예배가 가장 뜨거웠습니다.  그때 목회자, 선교사의 헌신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때 세워진 교회가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교회들이 가장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많이 
녹고, 깨졌습니다.  지금 누구라도 동감하는 그때가 이처럼 그리워지는 이유는 강력한 은혜의 바람 때문
입니다.  그 바람이 다시 불어와야 합니다.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가 개인과 교회와 민족위에 임해야 합
니다.  그 은혜를 부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셋째는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주님을 만나 은혜의 바람을 체험한 뒤 그의 닫혔던 마음이 열리면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
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삶은 놀랍게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처음 그는 밤에 찾아올 만큼 자신을 
숨기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젠 숨기지 않고 모두 드러냅니다.  은혜의 바람이 그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것입니다.  니고데모의 이야기는 요한복음에 2번 더 언급되어 있습니다.  7장에 보면, 당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부당한 판결을 내리려고 했습니다.  그때 니고데모가 강력하게 이의를 제
기합니다.(7:50-52)  3장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이제는 숨기지 않았고, 부끄럽지도 않았고, 주저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을 옹호함으로 받을 불이익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이런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은혜의 바람이 삶에 큰 영향을 준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요한복음 19장에 한 번 더 나옵니다.  그때는 주님이 죽으신 이후입니다.  제자들은 스승을 버리고 도망한 상태입니다.  아무도 주님의 시신을 처리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때 다시 당당하게 나선 사람이 니고데모입니다.  

그는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시신을 처리합니다.(19:39-40)  당시는 주님의 죽으심으로 위기가 닥친 상황입니다.  이젠 누구라도 예수님 편에 서면 역적이 되고,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두려워 도망간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용기를 갖고 결단을 내린 사람이 니고데모입니다.  그에게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이젠 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그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것입니다.  그래서 옳은 일 앞에 당당하고, 용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니고데모에게 임한 은혜입니다.  바람처럼 강한 은혜가 임했을 때 그는 달라졌습니다.  은
혜는 삶의 방향과 목표를 바꾸는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니고데모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바람은 영향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회에 일어나는 모든 좋은 일이나 나쁜 일에 우리는 바람
이 불었다고 말합니다.  민주화바람, 자유화바람, 서구화바람, 감원바람, 부동산바람을 말합니다.  이런 
바람이 불었고, 또 앞으로도 많은 바람이 불어 올 것입니다.  여기서의 바람은 과연 무슨 뜻입니까?  한
마디로 ‘영향’입니다.  바람은 곧 영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바람이 불면 영향을 줍니다.  자기는 물론, 자기가 속한 모든 곳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
서 믿지 않는 자가 믿고, 믿는 자가 더 잘 믿게 됩니다.  주님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심겨지고, 주님의 사
랑이 가슴속에 파고듭니다.  그래서 어둡고 각박한 세상에 은혜의 힘을 보여주게 됩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반드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본인이 알든지 모르든지, 의식이든지 무의식이든지,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자녀는 부모를 보면서 따라하는 
것입니다.  자녀교육은 많은 부분에서 부모에게 달려있습니다.  자녀는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
라집니다.  경건한 부모에게서 경건한 자녀가 나옵니다.  좋은 부모에게서 좋은 자녀가 만들어집니다.  
가까이에서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불신자는 신자의 영향을 받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신자의 기도와 신실한 삶이 악한 세상을 덮
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점점 악해질 때 우리 믿는 자가 먼저 통탄이 여기고 회개해야 합
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부끄러움과 잘못을 돌아보고 각성해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을 
기억하십시오.  소돔과 고모라는 심판을 받아 망한 도시입니다.  그곳이 무너진 이유는 악인이 많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의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건하게 사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처참하게 무너진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악인들이 많아도 신실한 의인들이 살아있으면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적은 의인들, 신실한 의인들, 골방에서 민족을 붙잡고 기도하는 의인들이 결국 민족을 보존시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인이어야 합니다.  악인을 지적하기보다, 내가 의인이 되어 세상을 보존하고 변화시켜야 합니다. 

나중에 온자는 먼저 온자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먼저 온자들이 리더요, 선생입니다.  선생(先生)
은 ‘먼저 태어난 자’라는 뜻입니다.  모든 곳에 먼저 된 자가 나중에 된 자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것이 
사회이든, 학교이든, 심지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먼저온자가 리더요, 선생입니다.  먼저 믿
고, 먼저 이곳에서 생활하는 우리가 나중에 온 사람에게 반드시 영향을 줍니다.  나는 먼저 믿고, 먼저 
교회에 나오고, 먼저 직분을 받은 자로서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입니
까?  왜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하는지를 가슴깊이 새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향을 주는 사람들
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큰 은혜를 받아 우리가 속한 모든 곳에 좋은 영향을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은혜는 바람처럼 임합니다.  은혜는 우리를 시원하게 하고, 은혜는 가장 강력한 것이
며, 은혜는 영향을 줍니다.  이런 은혜가 나와 공동체에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여 한 해 동안, 한주간도 바람처럼 살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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