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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이 주는 유익 (히 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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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주는 유익 (히 5:7~10)


폭포가운데 세계적인 명소로는 북미의 나이아가라 폭포와 남미의 이과수 폭포를 들 수 있습니다. 이 폭포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의 폭과 높이가 대단합니다. 만일 이 폭포들이 물줄기의 폭이 넓지 않고 낙차가 없이 한강처럼 고요히 흐른다면 결코 세계적인 명소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물이 바위에 부딪혀 깨어지고 물줄기가 곤두박질쳐 폭포를 이루는 모습이 장관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 감탄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감동을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가 극한 역경을 경험한 사람들의 경우입니다. 부딪히고, 꺾이고, 떨어지고, 망가진 곳에서 다시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동을 줍니다. 고통을 좋아하거나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고통에서 예외일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하여 고난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을 품고 하나님을 잘 섬기며 봉사한다 하여 그 대가로 고난이 면제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데 왜 그렇게 하실까요? 고통 속에는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가 내재(內在)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로 본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데에는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본문 9절에 말씀하기를 이로 인해“온전하게 되었은즉...”하셨습니다. 고난이 사람을 온전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기 5장 7절에 말씀하시기를“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라고 하셨습니다. 

농구 황제로 불리는“마이클 조던”은 말하기를“내 생애에서 나는 9,000개가 넘는 슛을 놓쳤고 300번 넘게 시합에서 졌다. 26번의 경기에서는 게임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결정적인 슛을 날렸지만 모두 놓쳤다. 나는 수도 없이 넘어지고 실패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나의 성공요인이기도 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온전하게 됩니다. 군인이 받는 훈련도 그렇고, 운동선수들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고난을 거쳐 온전함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천하장사였던 씨름 선수 이만기씨가 말하기를“모래판을 땀으로 적셨더니 그 모래가 황금으로 변하더라.”고 했습니다. 땀 흘림의 고난을 통해 씨름의 달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이 결코 나쁜 것만 아니라 유익을 주는 것이라면 이 고난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겠습니까? 그 방법을 예수님의 삶을 통해 찾아보고자 합니다. 

一. 예수님은 고난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본문 7절에“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기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참으로 간절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하시기를“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간절하게 통곡하시며 눈물로 기도하셨던지 온 몸의 피하조직의 모세혈관이 터져 땀에 피가 섞여 나왔다는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볼 때, 사람이 심적으로 큰 압력을 받으면 피하의 모세혈관이 터져서 땀구멍을 통해 피가 나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앞두시고 간절히 기도하시는 가운데 피땀을 흘리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시므로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견디시며 승리하셨습니다. 인류의 죄를 다 속하시고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사탄의 책략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고난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시므로 그 큰 고난을 이기시고 승리하시므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우리들도 고난 많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도 고난에 대해서는 예외가 없습니다. 형편과 처지가 다를 뿐 누구에게나 고난은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18절에 말씀하시기를“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하셨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의 주요성에 대하여 미국의 10대교회중 하나인 달라스제일침례교회 크리스웰 목사는 말하기를 “가장 잘 무릎 꿇는 이가 가장 훌륭히 서는 자요. 가장 연약하게 무릎 꿇는 이가 가장 강하게 서는 자요. 가장 오래 무릎 꿇는 이가 가장 오래 서는 자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어떤 분은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기도에 대하여 말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들은 시간이 없다. 
다른 어떤 일에서 시간을 떼어 내야만 한다.

다른 어떤 일도 중요하다.
대단히 소중하며 긴급하다.
그러나 기도만큼 중요하고 긴급하지는 않다.” <S. D 고오돈>

골로새서 4장 5절 말씀에“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월을 아낀다는 것입니다. 한 번 지나간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사람은 시간 관리를 하되 항상, 중요하고 급한 것을 우선합니다. 그 다음, 급하진 않지만 중요한 것에 시간을 투자합니다. 
기도가 바로 여기에 속합니다. 기도하지 않는다 하여 당장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급하지 않게 보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자의 눈으로 볼 때 기도는 급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독서가 또한 여기에 속합니다. 당장 책을 읽지 않는다 하여 어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손에 책을 놓는 시간이 점점 많아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자기도 무르게 퇴보한다는 것입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어리석은 자는 시간을 사용하되, 중요하지 않으면서 바쁜 일에 시간을 낭비하거나, 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시간을 보냅니다. 비생산적인 모임이나, 지나치게 텔레비전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면 여기에 속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고난을 이기는 힘과 지혜가 하늘로부터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4장 6절~7절에 말씀하시기를“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절~8절에는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고아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조지 뮬러는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은 빌립보서 4장 19절이었습니다.“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이 말씀을 통해 뮬러는“하나님은 은행장이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깨달은 날부터 뮬러는 어려울 때나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기도실에 들어가 이 말씀을 손으로 짚어가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여기 약속하신 대로 아이들의 쓸 물건을 주십시오. 먹을 빵과 우유를 주십시오. 필요한 돈을 주십시오.”그때마다 응답하셨습니다. 응답이 늦을 때에는 빌립보서 4:19 말씀을 손가락으로 비비면서 기도했습니다.“하나님, 여기 약속하셨잖아요. 약속하신 대로 이행해 주세요.”라며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이 말씀을 손으로 짚었던지 그 자리에 구멍이 났다고 합니다. 그는 훗날 말하기를 “내가 46년 3개월 동안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서 받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간절한 기도는 그 사람의 소원을 성취케 하시므로 그의 삶을 아름답게, 보람되게, 그리고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二. 예수님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경외하셨습니다. 

본문 7절에“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의“경외”란 헬라어 원어의 의미는“잘 붙들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극심한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는 제사장들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불법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극형에 처하는 이 살벌한 상황에 두려움을 느낀 제자들은 모두 주님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최후의 순간까지 하나님을 굳게 붙드셨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붙드신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누가복음 23장 46절에 기록하기를“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마지막 운명하시면서“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극한 고난 중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예수님을 무덤에서 삼일 만에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고난이 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버리신 예가 없습니다. 구약의 요셉이 그렇습니다. 형제들에 의해서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주인에 의해 억울하게 죄수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구약의 다니엘이 그렇습니다. 동료들의 음모로 억울하게 사자굴에 던짐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사자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다윗도 그렇습니다. 블레셋으로부터 나라를 건지고자 생명을 걸고 고리앗과 싸워 이겼습니다. 어처구니없게 이일이 그만 사울왕의 정적으로 낙인찍히고 말았습니다. 사울왕은 왕의 권력을 총동원하여 소년 다윗을 죽이고자 10년 동안이나 다윗을 찾아다녔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이 나라 저 나라, 이산 저산, 이 동굴 저 동굴을 찾아다니며 몸을 숨겨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마침내 사울을 제하시고 다윗을 그의 왕좌에 앉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경외하는 사람을 사랑하시며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34편 9절~10절에 말씀하시기를“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려면 반드시 고난에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도 고난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1장 12절에 말씀하시기를“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서양 속담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귀가 쓰던 도구를 다 경매 처분하는데“이것은 팔지 않음”이라고 붙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낙심”이라는 도구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실패하도록 미혹하는데, 낙심토록 하여 포기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위대한 정치가인 윈스턴 처칠은 1943년 전시 내각을 수립하고 독일 비행기가 하루에 1천여 대씩 런던을 폭격할 때, 그는 하루에 18시간씩 근무를 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전쟁 중에 BBC 방송을 통해서“우리가 전쟁에서 이기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땀과 피와 눈물밖에 바칠 것이 없습니다.”라고 전 영국군에게 호소하자, 그 방송을 들은 영국군은 3일밖에 먹을 수 없었던 양식을 가지고 보름이나 견디면서 싸워 마침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처칠이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영문학에 낙제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을 쓰고 나서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했습니다. 

그가 은퇴한 후에 한번은 그의 모교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칠은 지팡이를 짚고서 단 위로 올라갔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여러분의 대 선 배이신 처칠 경이 말씀하실 때 한 마디도 빼놓지 말고 모두 받아쓰라.”고 했습니다. 처칠 경은 지팡이를 짚고 강단에 서서 두꺼운 안경 너머로 학생들을 한참 동안 응시하더니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는 뚜벅뚜벅 걸어 내려갔습니다.“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결코!”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집념과 인내의 사람이 처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이 닥친다 해도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4:9~10))라고 하셨습니다. 

三. 예수님은 고난 중에도 순종하셨습니다. 

본문 8절~10절에“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가운데“고난으로 순종을 배웠다”는 것은, 순종하므로 고난도 받은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므로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구원을 완성하셨고, 메시야 즉 구원자의 사명을 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순종하시는 예수님을 무덤 속에 두지 아니하시고 부활케 하셔서 메시아임을 입증하셨고, 천하의 무릎이 예수님 앞에 꿇도록 하셨습니다. 그 극심한 십자가의 고통까지 순종하시므로 이처럼 온전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자아가 전혀 없으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도“예”하고 순종하셨습니다. 단 한번도“아니오.”가 없으셨습니다. 

매사에 있어서 순종이 온전케 합니다. 누가복음 5장 5절~6절에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라고 하셨습니다. 밤새도록 수없이 그물을 내리며 물고기를 잡고자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그 말씀에 대하여 책임을 지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평생을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온 어부였습니다. 고기잡이에 전문가였습니다. 반면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목수출신이십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순종의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이것이 순종의 결과입니다. 

젊은 청년 두 사람이 성 프랜시스를 찾아 왔습니다. “원장님, 우리는 훌륭하신 선생님 밑에서 신앙을 배우고 수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이 수도원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그 때 프랜시스는 한 가지 시험을 했습니다. 채소밭에 데리고 가서 채소를 다 뽑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배추를 거꾸로 심으라고 했습니다. 잎을 땅에 묻고 뿌리는 하늘을 향해 심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프랜시스는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한 청년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프랜시스가 시키는 대로 거꾸로 심었습니다. 잎을 흙 속에 묻고 뿌리를 위로 향하게 다 심었습니다. 다른 한 청년은 똑똑한 청년이었습니다.“아하, 프랜시스가 신앙은 좋고 인격은 훌륭하지만 농사짓는 데는 무식하구나. 배추를 심으려면 뿌리를 흙에 묻어야지, 잎을 흙 속에 묻고 뿌리를 위로 향하게 심으면 죽지.”그래서 그는 불순종하고 모두 바로 심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프랜시스원장이 왔습니다. 거꾸로 심은 청년에게“자네는 합격일세. 오늘부터 우리 수도원에 들어오게.”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심은 청년에게는“자네는 자격이 없네. 불순종하는 자는 우리 수도원에 필요 없네.”하며 내쫓았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배워 깨달은 것을 머리에만 머물게 하면 안 됩니다. 뇌리에만 머물러 있는 지식은 사탄이 도구로 악용합니다. 고린도전서 8장 1절 말씀에“지식은 교만하게 하며...”라고 하셨습니다. 깨달은 말씀을 신속히 발끝으로 옮겨야 합니다. 때로는 실천하기에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천에 옮겨진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라고 했습니다. 살아 있는 씨앗을 땅에 심으면 반드시 싹이 나고 자라나서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풍성함에 이르게 됩니다. 

순종이 온전케 합니다. 내가 겪은 경험이나,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이 하나님의 말씀과 맞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때에 그 지식, 그 경험 다 뒤로 미루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성도의 지혜입니다. 이사야 55장 9절 말씀에“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가는 길에는 반드시 고난이 있습니다. 고난은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고난의 날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잘 붙들고 변함없이 경외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또한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바라는 소망이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내 삶이 온전케 됩니다. 풍성하게 됩니다. 영광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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