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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 (행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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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 (행 13:22)
 
 
1.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흔히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들 하지요? “꼭 필요한 사람, 있으나마나한 사람, 없으면 좋을 사람.” 어떻게 사람을 이 세 종류로 한정지을 수가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한 번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여러분을 어떤 사람으로 볼까요? 사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쏙 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이 ‘A’라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좋을 수 없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지만, ‘B’라는 사람의 눈에는 별로 일 수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고, 여러분 자신이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또 어떤 사람에게는 별로인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에게 여러분은 어떤 사람일까요?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은 자기 기준에 따라 어떤 사람은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별로라고 여깁니다. 각자의 기준과 선호도와 취향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죠. 이렇게 각각이 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것은 어떨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실까요? 하나님이 보시고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오늘 여러분은 이 질문의 답을 알아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은? 

오늘 본문은 지난 2006년 4월 23일에 설교한 본문입니다. 제가 이 본문으로 다시 설교하는 이유는 새해로 접어들면서 저의 개인적인 질문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일까, 아닐까?” “나는 지금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고 있을까,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삶을 살고 있을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나는 목회를 잘 하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 이 시간, 여러분도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서 말씀에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1) 바울 사도의 전도 설교문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제 1차 전도 여행 때 설교한 說敎文 가운데 一部입니다. 바울 일행은 첫 선교지인 구브로 섬의 전도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배를 타고 밤빌리아 지방으로 향했습니다. 밤빌리아의 버가에 도착했을 때, 전도 팀의 일원이었던 ‘마가 요한’이 돌연 예루살렘으로 돌아 가버렸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추측이 있습니다. ‘바나바의 조카(골4:10)인 그는 삼촌보다 바울이 선교 여행을 주도하는데 불만을 가졌기 때문이다(Alexander).’ 

‘아직 철부지 청년으로서 힘든 전도 여행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어머니가 그리워서 돌아갔을 것이다(Holtamann).’ ‘바울이 밤빌리아 지방에 와서 말라리아에 걸려(갈4:13,14) 고생하자 겁을 먹고 돌아갔을 것이다(Ramsay).’ 등 등 이러 저러한 학설이 구구합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마가가 일행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은 바울에게 적지 않은 실망을 안겨 주었으며, 후에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고 헤어지는 결과(15:37-39)를 가져왔습니다. 이 마가의 일로 인하여 바울 일행은 버가에 오래 머물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바울 일행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갔고,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안식일에 회당을 찾은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려는 목적과 함께, 그 자리에 참여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45).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안디옥 회당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16절부터 41절까지는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설교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42절 이후에는 바울의 설교 후에 나타난 반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설교한 내용은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2:14~36)나 스데반의 설교(7:1~53)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의 설교는 크게 세 개의 대지로 나눌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메시야를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17~22). 아브라함을 지명하여 부르신 후, 그 후손을 인도하셨고, 야곱 때에 애급으로 내려간 그들을 다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그 모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신7:7). 

그러나 그들은 구원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어려움, 즉 홍해와 같은 장벽, 마실 물이 없고, 먹을 양식이 박하다는 이유로 늘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그들의 소행을 40년간 참으시고 어린아이 기르시듯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몰아내신 후, 그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첫 사사 옷니엘에서부터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세우셔서 다스리게 했습니다. 

“사사”는 하나님이 세우신 백성의 지도자요 재판관으로서 神政政治의 代理者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사사 시대 내내 끊임없이 罪惡을 반복함으로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통치를 거역했습니다. 그러더니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웃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 그 왕의 지배받기를 원했습니다(삼상8:6~9).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을 거역하면서 왕을 세워달라고 어거지로 떼를 쓰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요구대로 세워진 첫 왕인 사울은 어떠했습니까? 사울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사울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또 다른 왕을 세우셨는데, 그가 바로 다윗입니다.

바울의 설교의 두 번째 대지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메시아는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23절 말씀대로,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삼하7:12), 그가 곧 나사렛 예수로서, 그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속의 대업을 완성하셨습니다(23~37).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셔서 다윗의 혈통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게 하신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과 인생에서 입증된 그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은 믿지 않았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의 부활 사건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도록 공개적으로 증명된 예수께서 메시아라는 保證이었습니다. 

바울의 설교의 세 번째 대지는 ‘누구든지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으나 믿지 않는 자는 멸망한다’였습니다(38-41).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부활시키시므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완성된 구원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아무리 구원의 복음이 주어졌다고 해도 그것을 들은 사람이 믿음으로 답하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오늘 본문이 바울의 전도 설교라는 것과 그 설교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부름 받음에서부터 당시 역사까지의 긴 기간을 간단하게 요약하면서,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 역사의 세 꼭짓점으로 말했습니다. 그 중간 중간은 대부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죄를 범한 역사였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설명한 이스라엘 역사의 한 가운데에는 다윗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역사,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저버린 반역의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메시아를 약속하셨고, 그 약속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취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바울의 설교의 내용이자 목적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스라엘의 역사의 중심’이라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 후손에서 메시아가 나는 복을 받았을까요?

2)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인 다윗

다시 이스라엘의 역사와 다윗이 최초로 부름 받은 그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애급에서 노예로 있다가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해방되어 가나안을 차지한 이스라엘은, 애급에서의 430년처럼 가나안에서 약 450년 동안을 지냈지만,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사시대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나라요 백성이라는 위대한 특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왕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왕으로 세우셔서 40년 동안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하나님과 그 말씀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해버렸습니다. 마치 지금까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같았습니다. 사울 왕의 이러한 삶은 사울 개인의 불행과 집안의 불행으로, 결국 이스라엘 전체의 불행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을 王位에서 폐하시고 새로운 왕을 세우셨는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왕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준비시키려는 사무엘에게 하셨던 말씀을 바울이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에게로 보내어 그의 아들 중 하나에게 기름 부어서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삼도록 명령하셨습니다(삼상16). 그 말씀에 따라 사무엘은 왕이 될 사람에게 부을 기름을 준비하여 베들레헴으로 가서,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제사에 초청했습니다. 그 제사에 초청된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첫 번째 아들인 엘리압을 본 사무엘은 그의 큰 키와 수려한 용모에 감탄했습니다(삼상16:6). 누가 보아도 왕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사람이구나! 이 사람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16:7).” 이어서 이새의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을 계속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렇게 7명의 아들들이 모두 지나갔으나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을 선택하라고 하셨는데 ….’ 이런 생각을 하던 사무엘이 이새에게 물었습니다.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아닙니다. 하나가 더 있긴 한데 …, 아직 어릴 뿐 아니라 양을 지키느라 이곳에 오지 못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무엘이 이새에게 말했습니다.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그래서 들에서 양을 치고 있던 다윗은 부랴부랴 부름을 받고 사무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다윗의 모습에 대해 사무엘상 16장 12절은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제야 그 소년이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세워질 사람임을 사무엘에게 알게 하시고 그에게 기름을 붓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이렇게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기에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의 중심에 설 수 있었고,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언하고, 또 자기 후손으로 메시아가 나는 복을 누린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할 때,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3)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성경 원어로 살펴보아야 제대로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다”고 할 때, “맞다”는 말은 동사가 아니고 “카타(κατα)”라는 전치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분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말이 바로 이 “카타”라는 단어입니다.
“카타”의 일차적인 의미는 주로 공간이나 장소를 나타내는 단어와 함께 사용되어 “~아래”, 혹은 “~과 접촉하는 동안”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두 번째는 ‘육신’이나 ‘영혼’이라는 말 앞에 위치하여 “육신으로는”(롬1:3, 롬4:1, 롬9:3), “사람을 따라(고전3:3)”, “육신을 따르는 자(롬8:5)”, 혹은 “영을 따르는 자(롬8:5)”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카타” 뒤에 나오는 명사가 그대로 이루어지거나, 또는 그것이 참되다는 것, 그리고 어떤 행위가 실행되거나, 어떤 판단이 내려지는 척도, 표준, 혹은 기준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카타”라는 전치사는 그 뒤에 나오는 단어의 의미와 ‘일치하다’, ‘그대로이다’라는 뜻이 되는 것이죠. 이것이 오늘 본문의 용법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보는 대로 “카타”가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목적격 명사와 합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하다’, 또는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기준에 적합하다’라는 뜻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내 뜻을 다 이루리라”와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에 충분한 사람’, ‘하나님의 뜻을 이룰만한 사람’이라는 뜻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것은 ➊ 첫째로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다’는 뜻입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본 다윗과 요나단의 경우처럼, 요나단이 다윗을 보는 순간에 두 사람의 영이 하나로 연결되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실 때 모든 것이 서로 통하면서 둘이 하나로 여겨지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연결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내 마음에!” 즉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끌리는 사람, 하나님과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그런 사람 있잖습니까? 거저 보기만 해도 좋고, 언제 어떤 모습으로 있든지 사랑스러우며, 늘 가까이에서 함께 있고 싶은 사람, 떨어져 있으면 가슴에 사무치는 사람 말입니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으실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심장에 끌리는 사람, 즉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시고 더 사랑하셔서 그로 인하여 기쁨을 감추지 못해 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스바냐 3장 17절,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이 말씀이 그대로 딱 들어맞는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역시 예수님으로 인하여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더더욱 주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즉 하나님께서 여러분으로 인하여 기쁨을 감추지 못해 하시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과 일과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➋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말은 두 번째로 ‘하나님의 기준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기준을 벗어났습니다. 사무엘이 먼저 보았던 다윗의 형들은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기준으로는 정말 괜찮고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어떨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당신의 저울로 달아 보십니다! 

다니엘서 5장에 보면, 바벨론 왕 벨 사살이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신비한 손이 나타나 벽에 글씨를 쓴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쓰여진 글자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었습니다(단5:25). 벨 사살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자신의 명성과 권력을 자기 힘과 능력으로 이룬 것으로 알고 교만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그를 사람들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면서 소처럼 풀을 먹는 고난에 처하게 하셨다가,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차자 그를 다시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이것을 경험한 느부갓네살 왕은 이 세상의 모든 것과 한 나라의 興亡盛衰가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으며, 하나님만이 온 세상의 유일한 통치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은 이 사실을 바벨론 전역에 알렸고, 그의 아들 벨 사살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벨 사살 왕은 그 지식을 버렸고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 부족함이 드러났고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 벨 사살 왕처럼 하나님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삶도 저울로 달아보고 계십니다. 겸손한지 교만한지, 감사하는지 감사하지 않는지,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는지 자기 뜻대로 사는지, 절망하는지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는지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는 이 하나님의 저울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삶을 달았을 때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늘 하나님께 무게 중심을 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말은 세 번째로 그 뒤에 나오는 “내 뜻을 다 이루리라”와 연결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에 충분한 사람’, ‘하나님의 뜻을 이룰만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말씀이 사도행전 13장 36절에 나옵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겼다는 말은 “하나님의 목적(God's purpose/the purpose of God, NIV와 NASB)”을 따라 살았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목표로 하시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하여 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목표를 알고 그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全心全力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다윗이 그런 사람이었지요. 골리앗과의 싸움을 보십시오. 어린 열일곱 살짜리 소년이 골리앗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군대를 무시하고 조롱한다는 이유로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삼상17:26)” 그리고 사울 왕에게도 말했습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삼상17:36,37).” 보십시오.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처럼 義憤을 내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눈길이 머물고 하나님의 생각이 가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아 그것을 이루려고 애썼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증거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성도의 삶은 자신과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 그 일에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 여러분의 눈을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것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 그 일을 이루는데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살고자 한다면, 여러분들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 프랜시스가 그 제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 하나님께서 지구를 바라보시면서 사람을 찾고 계셨어. 가장 추한 사람이 누군지, 가장 불결한 사람이 누군지, 고통 가운데 번민하는 사람이 누군지, 가장 병든 인생이 누군지…. 그 하나님의 눈길이 나에게 머물렀어.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고 난 후에 ‘저 사람이야. 저 사람을 붙들어 내가 한 사람의 생애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 줘야겠어’라고 생각하시고 나를 선택하신 거야.” 저와 여러분도 성 프랜시스처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택함을 받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입은 자가 되었으니, 그때부터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는 그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야 합니다. 마음이 하나님과 서로 통하는 사람이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셔서 그 기쁨과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시는데, 바로 다윗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기준에 적합해야 합니다. 그 삶을 저울에 달았을 때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고 주님과 사람 앞에서 한결같이 살아가는 사람이지요. 세 번째는 내 계획과 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맞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은 이 다윗에게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다윗은 나라를 선물로 받았고, 그 후손에서 메시아가 나는 아주 특별한 복까지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나 이 세상이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김향림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누구를 대하든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 여러분들도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꼭 필요로 하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이 위대한 일, 큰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와 함께 이 땅의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를 도와주시고, 인도하시고, 복을 주시고, 높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 되고,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가정이 되고,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가 되고, 우리나라와 민족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민족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이 땅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가는데 쓰임 받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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