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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역경의 은혜(16) (고후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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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은혜(16) (고후 1:3~7)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고린도후서 1:3-7

오늘은 ‘역경의 은혜’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역경을 당해 본 사람은 비슷한 역경을 당한 사람의 마음을 잘 알고 이해합니다. 이미 역경을 당해 본 사람이 지금 역경을 당하고 있는 사람과 대화하면 상대방이 바로 공감하고 큰 위로를 받습니다. 경험이 없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도움은 되지만 속이 시원하지는 않지요. 

어떤 사람이 훌륭한 상담자입니까? 역경을 당해 본 사람입니다. 고통을 겪고 고생을 하고 외로움을 당하고 파탄을 겪으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역경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상담을 받고 위로를 받아 봤기 때문에 마음이 넓어지고 깊어져서 이해력과 관용과 지혜와 올바른 판단력과 따뜻한 가슴이 있습니다. 역경은 당해 본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위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온갖 종류의 역경과 시련과 고난을 당할지라도 우리의 그 경험 때문에 비슷한 역경을 겪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위로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욥은 정말 엄청난 시련을 겪었습니다. 욥의 친구 4명이 시련을 겪고 있는 욥을 찾아와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친구들은 7일 동안 아무런 말없이 고통당하는 욥과 함께 슬퍼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욥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8일째부터입니다. 7일 동안 말없이 욥과 고통을 나누고 지지해 주던 친구들이 8일째부터는 욥이 왜 고생을 하는지 이성적 대답을 제시하려고 한 것입니다.

욥과 같은 고난을 당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네가 이렇게 고생하는 이유는 네 죄 때문이다. 뭔가 잘 못한 것이 있고, 회개 안 한 것이 있고 숨기는 것이 있어.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숨겨 놓은 죄가 있을 거야. 그것을 생각해서 찾아 내! 네가 아무 이유 없이 고생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고난과 역경은 절대로 그냥 오는 것이 아니야! 분명히 죄의 대가야!” 이렇게 설명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욥기서 1장부터 37장까지, 그 긴 시간 동안 4명의 친구들이 번갈아 가며 야단치고, 설명하고, 따지고, 책망했습니다. 고난 속에 있는 욥은 이들 때문에 더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처음 7일처럼 조용히 고통을 나누었으면 좋았을 것을, 지금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 옆에서 역경의 이유를 찾고, 인간의 지식과 이해력으로 역경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설명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결국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마 욥과 같은 역경을 당해 본 사람이 욥을 찾아 왔더라면 큰 위로와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아는 척을 하면 할수록 욥을 더 괴롭히는 일이 될 뿐입니다. 

데니스 디한이라는 분은 우리가 잘 아는 ‘오늘의 양식’의 전 편집자로서 수십 년 동안 ‘오늘의 양식’에 글을 써오셨습니다. 그분은 7년 전에 17살 된 아름다운 막내딸을 교통사고로 잃었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자 목사님은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 자신과 가족들에게 위로가 필요한 시간에 남을 위로하는 글을 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목사님의 딸은 너무나 좋은 아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미소를 가지고 있었고 삶에 대한 사랑과 경건함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씨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던 좋은 딸이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은 목사님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믿었던 하나님, 그동안 믿었던 성경, 그동안 믿었던 천국도 흔들립니다. ‘그렇게 사랑스런 딸이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을 수가 있나?’ 누가 그것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장례를 마친 후에도 목사님은 몇 달 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목사님은 조용히 앉아서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그러자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고 디한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눈물의 계곡, 슬픔과 고통의 계곡을 지나왔습니다. 그러나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고 내 곁에 계셨고 나를 붙잡아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의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하나님께 가져왔습니다. 사람은 위로할 수 없었으나 위로의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셨고 그분은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 때 이후로 ‘오늘의 양식’에 쓴 그분의 글들을 보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위로가 넘치고 은혜가 풍성하고 이해와 사랑이 깊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고난을 스스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그와 같은 극심한 고난을 경험한 적이 없었고 성경공부와 묵상을 통해 글을 썼지만 이제는 엄청난 아픔과 고통, 슬픔, 안타까움, 외로움, 이별을 거치고 성령의 감동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수많은 독자들에게 큰 은혜가 되었던 것입니다. 디한 목사님에게 닥친 역경이 변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3절에서 사도 바울은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가장 고통이 심하고 마음이 아픈 시기에 쓴 글입니다. 고린도후서를 읽어 보면 사도 바울의 아픔과 슬픔과 고통과 분노가 가득 들어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린도후서의 첫마디는 “찬송하리로다”로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이 왜 찬송을 하는가? 여러 고난을 거치면서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 것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 보았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3-4절).

우리가 환란의 골짜기로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우리를 위로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신뢰하는 사람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을 찾아오셔서 두려움의 계곡, 슬픔의 계곡 속에 있는 그들을 위로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역경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역경을 당했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위로하시는지를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위로를 통해 모든 환란 중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능히 위로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환란을 겪고, 고통과 시련을 당하고, 질병의 고통을 체험하고, 심지어 가족들의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이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크고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욱 잘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여러분은 이웃에게 과거 언제보다 더 잘 쓰임 받을 수 있고, 나와 같은 역경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데니스 디한 목사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역경 속에서 우리의 찬양의 제목이 되십니다. 

우리가 환란과 역경을 통해 훈련되고 준비됨으로써 더 이상 다른 사람의 고난을 비방하거나 허물을 찾아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반드시 축복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중에도 옛날에 가난하게 살아본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본 사람이라면 점심이나 저녁에 한 그릇의 음식을 받을 때 깊은 감동과 감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굶어본 사람만이 아는 것입니다. 헐벗어본 사람은 한 벌의 옷을 입고 밖에 나갈 때나 시장에 가서 옷 한 벌을 살 때 그 마음에 감사가 있습니다. 헐벗어 봤기 때문입니다.

병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늘의 건강을 감사합니다. 제가 병원 심방을 자주 가는데, 이런 말씀을 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목사님,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병원에 와본 적이 없었습니다.” 건강을 자랑하던 사람들이 병원 침대에 누워서 하늘을 향하고 보니 하나님 밖에 보이는 분이 없습니다. 한 번 병원에 가서 그 침대에 누웠다 일어나본 사람은 오늘 하루 건강하게 사는 것이 감격입니다. 더구나 위험한 수술을 받았던 사람들은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지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아프다고 하면 찾아가서 위로하고 기도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도 병원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아픈 사람의 심방을 가도 그 심정을 완전히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생명의 위협을 당해본 적이 있나요? 지금 건강하면 감사하십시다. 예전에 아팠다면 여러분이 지금 아픈 사람의 심정을 알게 된 것과, 그 병중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를 알고, 아픈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전할 수 있는 것 역시 감사하십시다. 

한국은 신앙 때문에 핍박을 받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전에 북한에서 신앙 때문에 핍박을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마음껏 교회에 갈 수 있는 종교의 자유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잘 압니다. 그리고 신앙의 핍박과 그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가슴 아파합니다. 여러분에게 신앙의 핍박이 없었다면 감사하십시다.

저는 어려서 북한에서 학교 다닐 때 교회에 간다고 매를 많이 맞았습니다. 주일에 교회 한 번 갔다고 월요일이면 교무실에 가서 쇠몽둥이로 맞은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 우리가 마음대로 찬송하고 마음대로 예배드릴 수 있는 것,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내게 건강이 있고 주님의 전에 와서 예배하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것,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십시다. 

우리는 역경을 당해도 위로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환란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전 4:8-9).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망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하나님의 힘이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내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모든 위로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와 주실 것입니다. 

여기서 “우겨쌈을 당하여도”라는 뜻은 사방에서 압력을 가해서 깨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았다”고 번역을 했습니다만, 아무리 압력을 가해도 “부서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서 힘을 주시기 때문에 주위에서 압력을 가해도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로하시고 그 분이 나의 소망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능력이요 힘이기 때문에 아무리 압박을 해서 깨뜨리려고 해도 깨지지 않는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체험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분이 힘주시고, 그분이 위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누가 우리를 쓰러뜨려도 다시 일어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여러분의 인생에 날마다 이런 체험을 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비록 우리가 나이가 들고 노쇠해 지고 기운은 떨어지더라도 그동안 수많은 시련을 통해 우리 속에 키워온 이해력과 관용과 지혜와 판단력, 능력들이 솟아나옴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점점 새로워지고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더 성숙해진 여러분이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에게 큰 위로를 베풀고 위로의 하나님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역경이 있으면 그 역경의 짐을 반드시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가져와야 합니다. 그래야 위로의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 방황하고 헤매다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 아니라, 견디다 못해 쓰러지기 전에 모든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가져와서 맡겨 버리십시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시 55:22). 이것은 체험자 다윗의 말입니다. 다윗은 수많은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 앞에 그 짐을 맡기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를 붙들어 주셨는지를 체험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위로의 하나님께 염려와 근심을 맡겨 그분이 돌보시고 주관하시고 자유롭게 하시는 체험을 날마다 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시편 저자는 또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시 94:19)라고 했습니다. 복잡한 생각, 고민하는 생각, 근심하는 생각, 분노하는 생각, 온갖 종류의 힘든 생각들이 나를 괴롭힐 때 하나님께 나아가서 머리 숙여 기도하고 맡기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즐겁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의 주님, 나에게 평화로운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폭풍과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 속에서 안식과 평온을 지키게 하여 주옵소서. 내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고요하심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는 주님의 고요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역경이 오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뿐 아니라, 과거에 내가 역경을 당하고 하나님을 찾아와 맡겼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돌보셨는지를 기억하며 오늘도 내일도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시련을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나를 위로하시고 돌보시고 건져주신 그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나를 돌봐 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역경이 많은 이 세상을 헤쳐 나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김상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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