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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복 있는 사람 (마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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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마 5:1-12)


본문에는 팔복이 나옵니다.  듣기만 해도 좋은 말씀들이 주옥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옥같은 복들을 진정 누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듣기는 좋아도 내 것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복 있는 사람을 꿈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 생각을 합니다.  조금 내 삶에 이루어진 것도 있고,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할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팔복을 날마다 소망하며 꿈꾸며 살면 언젠가는 나도 모르게  주님의 모습으로 닮아져 있을 것을 확신합니다.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오돈은 어네스트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소년 어네스트가 사는 동네의 산 기슭에는 사람 얼굴 모양의 큰 바위가 있습니다. 그 큰 바위 얼굴은 강하고 친절하며 존경할 만한 것이었기에 어네스트는 늘 이와 같은 인물을 동경하며 그 바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볼 때마다 어네스트는 늘 마음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는 언젠가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늘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그와 같은 인물이 되기를 동경했던 어네스트가 어느덧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된 후에도 어네스트는 변함없이 그와 닮은 사람을 어디에나 만나 볼 수 있는가 하여 열심히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큰 바위 얼굴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갑자기 “보라, 어네스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을 닮았네”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큰 바위 얼굴을 늘 바라보던 어네스트는 결국 그것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던 것입니다.  

잠 23:7에 “무릇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암탉이 알을 품으면 알이 깨어 노란 병아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을 품으면 그 사람의 됨됨이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 갑니다.  팔복을 품고 있고 간직하고 있으면  어느새 주님을 닮아 있을 것입니다. 

1963년 8월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연설을 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100년 전 노예 해방을 선언한 링컨을 기념하는 기념관 앞에서 루터 킹 목사님은 꿈을 말했습니다.  100년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었고, 5년 후에는 킹목사님도 암살을 당합니다.  그러나 다시 40여 년이 지나, 워싱턴에는 오바마 흑인 대통령이 집무를 보고 있습니다.  결국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서연교회 로고 앞에는 ‘꿈이 이루어지는’이 붙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주님의 팔복을 닮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주님을 닮아 주님께서 하신 3대 사역을 이루는 것입니다.  3대 사역은  ① 복음을 전해 사람을 살리는 것이며, ② 그 복음을 몸에 베게 가르치는 것이며, ③ 그래서 그 복음으로 다른 사람까지 치유하는 것입니다.  이런 꿈이 가족 3대에 까지 흘러가 믿음의 가문을 이루고,  주변의 이웃도 예수생명을 얻어 하늘 가족이 되어가는 꿈입니다.  

대리석 고딕 양식의 빼쭉한 첨탑이 있는 교회에서 이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껏 뛰어 놀며 달릴 수 있는 운동장이 있고 주일에는 강당에서 예배하며 평일에는 각 교실에서 미래의 꿈을 위해 인격적인 만남과 배움이 있는 학교 부지에서 꿈이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새성전 건축 부지 헌금은 그 밀알을 심는 것입니다. 링컨과 루터 킹 목사님 이후 100년, 그리고 40년이 지나면서 그 꿈이 조금씩 이루어져 간 것처럼,  우리의 꿈도 조금씩 이루어져 갈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아직은 보이지 않지만 실상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웨슬리 목사님도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완전’이 이루어진다고 설교했습니다.  사람들이 완전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웨슬리 목사님은 그 사람의 이름을 댈 수도 있으나,  그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은 질문하는 이들의 구설수에 올라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르쳐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성경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요구하셨습니다.  (창 17:1, 개정)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CCTV보듯 훤하게 알고 계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완전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되고 못할 것을 알면서도 요구하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고,  하나님께서 친히 ‘저는 나의 친구’라고 하신 것은 완전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 완전은 하나님의 꿈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간직하는 것입니다.  ‘완전하라’고 요구하시는 주님은  곧바로 아담, 인간이 범죄하자마자 세상 살리기 위해서 주셨던 복음을 말씀하십니다. 

(창 17:2-9, 개정)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비전 30333입니다.  문구가 마음에 들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해졌다고 생각되어지면  여러분의 믿음을 모으고 꿈을 모으고 아이디어를 모아 다시 정해도 상관없습니다.  문구가 어찌 되었든 하나님의 꿈은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5대 비전과 3대 사역, 그리고 그 공동체의 꿈은 팔복에 녹아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꿈입니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에 가난합니다. 그래서 주님 계신 천국만 바라봅니다.(3절)  같이 아파하니 위로가 됩니다.(4절)  하나님의 뜻, 의가 나타나기를 바라며 핍박을 받으니 그 길은 주님이 친히 걸으신 십자가의 길이요 십자가 길따라 천국에 이르러 하나님을 만나니 하나님의 의로 배부릅니다.(6, 10, 11-12절)  다름을 인정하는 넉넉한 마음이 모든 것을 얻게 되고(5절) 용서하는 마음이 나도 용서받고(7절)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이 하나님을 드러내며(8절), 하늘과 땅을 잇는 화평의 손잡음으로 십자가의 주님처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는 이들(9절)이 모여 함께 사는 곳, 바로 그곳이 하늘 가족 서연 공동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꿈을 위해 팔복을 위해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품읍시다.  팔복의 꿈을 위해 나를 내려 놓아야 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져야 하니  때로는 힘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지면 곱하기가 되듯이 우리 인생에 진정한 하늘의 복이 임할 것입니다. 

외국 어린이 동화 중에 ‘개미들의 사랑’이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한 청년 개미가 큰 길 건너편에 사는 아가씨 개미를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그 청년 개미는 애인을 만나기 위해 용기를 내어 큰길을 건너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큰길은 오래되어 낡고 험한 아스팔트길이기 때문에 아버지 개미는 무척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개미는 아들에게 건너갈 때 쓰라고 아주 기다란 지푸라기 두 개를 등에다 업혀 주었습니다.  이 아들 개미는 이것을 왜 가져가야 하느냐고 아버지께 항의했지만 아버지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 청년 개미는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투덜거리며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가다 보니 아스팔트에 상당히 넓어 보이는 갈라진 틈새가 있었습니다. 그 틈새는 개미에게 깊은 벼랑과도 같은 난관(難關)이었습니다. 
이 청년 개미는 낙담한 채 등에 업고 있던 지푸라기 두 개를 팽개치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지푸라기가 그 틈새 사이로 떨어져 어느새 틈새를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었습니다.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했던 지푸라기 두 개가 만든 구원의 다리를 건너가면서 청년 개미는 아버지 개미의 지혜에 감탄하며 감사드렸습니다.

마 11:30은 말씀합니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꿈에는 댓가가 있습니다. 희생 없는 꿈은 꿈이 아닙니다.  주님을 닮으려면 주님이 주신 멍에를 매야 합니다. 한 해 십자가 사랑하며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아 주님을 모두 닮는 복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이명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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