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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 신앙의 요소(1) : 지적인 요소 (요 17:3, 히 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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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신앙의 요소(1) : 지적인 요소 (요 17:3, 히 5:12~14)


얼마동안 우리는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보내면서 구원의 도리에 대한 말씀을 중단하였었습니다. 이제 다시 구원의 도리에 대하여 계속 생각하려고 합니다. 우선 구원에 필요한 요소로는 크게 ‘복음’과 ‘신앙’이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복음을 접하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고 복음을 접하고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바른 복음의 내용을 핵심적인 것만이라도 여러 시간을 걸쳐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복음의 내용을 바르게 접하지 못한다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바르게 믿지 못하여도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른 신앙의 자태에 대해서도 생각한바 있습니다. 복음의 내용을 단지 역사적으로 있었던 사건이라고 지(知)적으로 수납하는 정도라면 구원의 신앙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현세적인 기대를 가지고 일시적으로 기뻐하고 믿는다고 한다지만 믿음 때문에 오는 어려움으로 신앙을 포기하는 경우도 구원의 신앙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상적인 다반사로 일어나기만을 기대하면서 믿는 것도 구원의 신앙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역사신앙이나 일시신앙 기적신앙은 신앙이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구원의 신앙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신앙은 사명의 신앙으로 나아가야 하고 매일 신뢰하면서 살아가는 신앙으로 계속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오늘부터는 ‘구원의 신앙’이 반드시 구비하여야 할 요소 세가지를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구원의 신앙을 가진 자라면 전인적으로 반응을 나타내게 됩니다. 구원의 신앙을 소유할려면 우선 지적인 요소가 있어야 하고 거기에 따르는 정서와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의 요소 중에 어느것 하나만 결핍되어도 구원의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이 세가지 요소 중에서 “지(知)”적인 요소를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Ⅰ. 알지 못하고 믿는 것은 맹신(盲信)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믿는다고 할 때는 그 믿는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믿는지도 모르고 덮어놓고 믿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맹신(盲信)입니다. 맹(盲)하게 미든 것입니다. 옳고 그름의 분별이 없이 덮어놓고 믿는 것이요 까닭도 모르면서 무작정 믿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치 아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단을 쌓았던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ale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알지도 못한 분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맹신입니다.

맹신(盲信)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에는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믿을려면 믿는바 대상이신 구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만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분을 믿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믿음이 아니라 맹신(盲信)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알고 믿어야 영생을 얻습니다. 

Ⅱ.구원의 신앙에 있어서 지적인 요소가 차지하는 위치

 1.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을 얻은 증거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요17:3에 보시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영생을 얻습니다. 그리고 잠11:9에서도 “의인은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호4:6에서도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을 영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일까요?

(1)타락의 결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잃었습니다.

우리 사람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결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잃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나타난 결과중에 도덕적인 부패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잃었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워졌다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영적으로 암매(暗買)한 상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롬1:21-23과 3:11을 읽어 보십시오!

(롬1:21-2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이렇게 영적으로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왜곡되었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어두워졌습니다. 따라서 아담 이후에 태어나는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깨닫지 못합니다.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2)구원의 시작: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회복되는 데서부터 회복이 되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중생한 사람에게는 영혼의 기능에 변개가 일어나는 것인데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지적인 기능”이 되살아 나는 것입니다. 중생으로 인하여 우리의 영혼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느냐 할 때에 먼저 무엇을 알게 하는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중생으로 말미암아 결정적인 큰 변화가 어디에서 부터 일어나느냐 하면 우리가 과거에 알지 못하던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변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은 전인적인 변화가 일어나서 하나님께 대해서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정상적인 관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르게 알게 되고 하나님께 대한 감정이 정상적으로 나타나고 하나님께 대해서 정상적으로 의지가 발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변화는 하나님에 대해서 바르게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들을 때에 전에는 못 알아듣던 것을 알아듣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그 전에는 도무지 알 수 없었고 이야기를 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던 그 사람이 적어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 이야기 하는 것을 다 알아 듣는다는 말음 아닙니다. 그 사람의 정도에 맞춰서 이야기 할 때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사람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알 수가 없으나 자기는 알아요 자기는 보아서 알아 듣는 것이 있고 알아 못듣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가 있는 것입니다. “아, 나는 요만한 정도로 가면 참 어렵다!” 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어떻든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기능에 있어서 중대한 변화를 받은 것입니다. 다른 것에서 갑자기 없던 재주가 발생할 것은 아니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사람의 재주로 깨달을 수 없던 그것을 비로서 깨닫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새 생명의 장성입니다.

새 생명의 장성도 하나님을 알아 가는데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기원하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엡1:17). 또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베드로 사도도 베드로후서 서두에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라고 기원하면서 그들의 영적 성장을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경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는데 그렇게 하신 본의는 하나님을 앎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고 또 그 생명이 장성해 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다시말해서 우리의 새생명이 장성해 가는데 필요한 영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영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 갈 때에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가는 것이 신앙의 장성이요 그 장성의 정도는 얼마나 하나님의 품성을 발휘하느냐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린 아이와 같지만 세월이 갈수록 점점 장성해서 어른과 같이 나타나야지만 중생의 확실한 증거를 보이는 것입니다. 밤낮 어린 아이와 같이 생겼으면 그 사람이 중생한 자인지를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밤낮 어린아이 같이 살고 있다면 과연 중생한 자인지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 새 생명의 장성을 위해서는 지각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새 생명이 자라기 위해서는 이미 변개가 일어난 영혼의 지각(知覺)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야 할 것인지 아니면 꼭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인지 갈팡질팡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에만 머물러 있는 당시의 히브리인들을 향해서 그들의 신앙이 그렇게 자라지 못하게 된 원인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성한 자들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히5:12-14까지를 찾아서 같이 읽어 보시지요.

(히5:12-14)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신앙의 장성은 지각을 사용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상할 때에 우리의  생명에 변개가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영혼의 기능이 변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지적인 기능에 변개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지각의 변화가 왔습니다. 따라서 중생시 변개된 우리의 지각을 사용할 때에 새생명의 장성이 있게 됩니다. 지각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 혹시 중생하였다고 할지라도 자라나지 못하고 항상 어린 아이로 있게 됩니다. 따라서 중생한 성도들은 지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생각하고 깨달아 가야 합니다. 지각을 사용하여 말씀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 갈 때에 신앙의 장성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분별력이 생겨나게 되고 분별력이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장성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신앙의 장성을 위해서 가장 힘써야 하는 부분은 막연히 여러 기관에서 일에 봉사하는 것보다는 지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깨달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각을 사용하여 말씀을 깨달아 가므로 하나님을 알아 갈 떄에 장성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미 변개된 영혼의 기능 중에서 지각을 사용하지 않고 말씀을 배우지 않으면 10년이되고 20년이 되어도 그 사람의 신앙은 상 어린 아이와 같이 자라지를 않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 중에서 장성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지각을 사용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고서 믿는 것입니다. 의미도 모르고 뜻도 없이 종교적인 신행들에만 열심을 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신앙의 자성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린아이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싸움과 분쟁과 시기와 부도덕한 추태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대학교 입시준비를 위해서는 얼마나 지각을 많이 사용하십니까? 머리를 싸매고 밤을 새워가면서 몇 날 몇일을 씨름하지 않습니까? 또 사업을 경영하는 분들도 얼마나 지각을 많이 사용하십니까? 심지어 가정에서 가사를 꾸려나가는 주부들도 지각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가는 일에는 얼마나 지각을 사용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머리를 싸매고 밤을 세워 보신 일이 있습니까? 철야기도회는 많이 있어도 철야 사경회는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신앙의 장성을 기대하기가 어렵지요! 만년 미숙아들만 모여서 교회를 이루고 있으니 어찌 어린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싸움과 불평과 시기와 분쟁과 같은 미숙한 모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지각을 사용하십시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 힘을 기울이십시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도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사용하여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은 영혼의 변개가 일어난 사람에게 주시는 새로운 지각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변개시켜 주신 지각을 사용하여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신앙의 장성이 있습니다.

3.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우리가 중생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을 향한 지각이 생기기 시작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점점 자라다가 우리가 부름을 받아 주님의 나라에 이르게 되어 우리의 구원의 완성되면 주님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아는 일에 자라났다고 해도 이 땅에 있는 동안의 우리는 여전히 희미하게 알 뿐입니다. 

이점에 대해서 고전13:9-10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13:9-12)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이사야 선지자도 그날에 가서 하나님을 온전하게 알게 될 것에 대해서 예언한바 있습니다. 그리고 하박국 선지자도 그와 비슷한 예언을 한바 있습니다. 
(사11:9)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합2:14)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이렇게 우리는 주님이 재림하시어 온전한 몸으로 부활하게 되어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에 가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해서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의 지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워야 하겠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제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되었으니 더 이상 하나님을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이 정도면 더 이상 성경공부 할 필요가 없다! 지각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열심히 봉사만 하면 된다!”고 할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 뵐 그날이 올 때까지 주님을 알아가는 일에 자라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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