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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은혜의 보좌 앞으로 (히 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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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보좌 앞으로 (히 4:14~16)


어떤 소년이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방학이 되어 농촌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땀을 흘리며 밭을 가
시는 것을 보고 도와드릴 생각이 난 소년은 소를 몰고 밭을 갈았습니다.  서투른 쟁기질로 한참 갈다 
보니 아버지가 간 밭의 고랑은 똑바른데 자기가 지나간 고랑은 매우 구부러졌습니다.  아버지는 이것을 
보고 ‘처음 보습 질을 할 때는 앞에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야 똑바로 갈 수가 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소년은 그 말씀을 듣고 둑에 풀을 뜯고 있는 황소에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역시 고랑은 똑바르게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황소가 자꾸 움직이니까 너의 고랑도 구부러지는 것이니 움직이지 않은 것
에 목표를 두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청년은 앞에 우뚝 솟은 포플러 나무에 목표를 두고 
열심히 밭을 갈았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밭을 똑바로 갈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에 목표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든든하게 서 있는 그 어떤 것
에 목표를 세우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은 결국 목표가 이끌어 갑니다.  목표가 있으면 그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목표입니다.  아무리 빨리 가도 잘못된 방
향이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결국 목적이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매순간마다 흔
들리지 않는 목표를 세우고 그 길로 가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신앙과 인생의 열매와 결실을 보는 
것입니다.

금년 우리교회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날마다 나아가자’라는 표어를 정했습니다.  지난 12월 저는 기도
원에서 묵상하는 중에 이 표어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전을 짓느라고 열심히 달려왔고, 지난 한해는 전도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며 
달려왔습니다.  사실 이렇게 아름다운 성전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많이 누리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도들의 노고와 수고와 열정으로 이루어진 일이기에 평안과 은혜를 누리는 것이 필요했습
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나가야 합니다.  은혜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은혜를 받
은 자는 뭔가 다릅니다.  얼굴부터 표정부터 말부터 다릅니다.  하지만 은헤 받지 못하면 건조하고 메마
르고 답답합니다.  그래서 자기도 힘들고 남도 힘들게 합니다.  이제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어떤 사
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외적성장도 중요하지만 내적성숙을 이루어야 합니다.  바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라는 표어를 정한 것입니다.  올해 한해는 우리 모두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은혜가 임하는 곳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은혜의 보좌는 어떤 곳일까요?  성경은 은혜가 임하는 보좌가 어디라고, 무엇이라고 말할까
요?  본문을 통해 그것을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첫째는 성전입니다. 

오늘 새해 첫 주일에 우리는 히브리서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신약성경 가운데 히브리서는 매우 
독특한 성경입니다.  먼저 저자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여러 정황과 증거들로 볼 때 대부분의 
학자들은 바울이라고 말하지만, 어떤 사람은 바나바, 누가 혹은 제3의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한 히브리서는 서신이지만 서신의 형태를 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일반서신과는 다르게 접
근하고, 내용이나 형태도 보통 서신과는 다른 것을 봅니다.  무엇보다도 히브리서는 그 쓰인 배경이 전
적으로 유대인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유대교에서 개종하여 그리스도인이 많았습니다.  
바울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동족의 핍박이 심해서 개종했지만 다시 유대교로 돌아
가거나 성도임을 숨기는 자들도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들을 향합니다.  그래서 
성경제목도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뜻입니다.  저자는 그들을 향하여 유대
교의 전통이나 사상이나 신학을 그리스도와 비교하여 우월성을 심어줍니다.  그리고 이제 히브리서 6장 
2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고 권면합니다.  믿음을 잃지 말고,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지 말고 다시 주님을 붙잡으라고 강조합니다.

이런 주제로 흐르는 말씀가운데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옛날 구약시대 제사와 비교하여 강
조합니다.  그래서 1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을 제사장, 
대제사장, 큰 대제사장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다시 굳건하게 믿으라고 15절에서 이렇게 권면합
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
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면서 16절에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라고 선언합
니다.  

여기 예수님을 큰 대제사장으로 말하면서 은혜의 보좌를 설명하는 것은 곧 옛날 구약의 제사가 행해진 
성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모든 제사와 제사장의 일은 성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구약성경, 특
히 레위기에 자세히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성전을 떠나지 않고 성전에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함을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사장의 일
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은혜의 보좌로 강조하는 것은 제
사장이 감당하는 현장, 곧 성전을 의미합니다.  성전은 오늘날 교회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은혜의 보좌
는 바로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여기 이 성전, 교회를 뜻하는 것입니다.  여기가 바로 은혜의 보좌입니다.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자는 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임하는 교회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왜
냐하면 이곳이 은혜가 임하는 중요한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에 보면 성도들은 성전이 어떤 곳이고, 
무엇을 하고, 성전을 어떻게 생각하고, 믿었는지를 이렇게 알려줍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이것이 바로 당시 그들이 생각한 성전입니다.  

그들은 성전을 삶의 보금자리로 알았습니다.  성전에 있는 가장 큰 축복으로 알았습니다.  성전은 힘을 얻는 곳으로 알았습니다.  성전을 기도하는 곳, 고통과 괴로운 날에 기도하면 응답하는 곳으로 알았습니다.  한마디로 은혜가 임하는 곳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사랑했고, 머물기를 즐겨했던 것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에게도 성전은 이런 곳입니다.  성전은 보금자리이고, 성전은 복을 받는 곳이고, 힘을 얻
는 곳이고, 기도하는 곳입니다.  성전은 은혜를 받는 곳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은혜받기 위해 이곳
에 나온 곳입니다.   
새해는 더욱 성전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사모하고, 즐겨 찾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곳에서 많은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힘을 얻고, 또 얻으시기 바랍니다.  2010년 은혜의 보좌인 하나님의 성전으
로 우리의 발걸음이 날마다 옮겨지고, 교회를 중심으로 힘을 얻으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는 제사입니다. 

은혜의 보좌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이루어지고, 성전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제사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필요했고, 레위지파의 제사장은 성전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신실하게 제사를 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보좌는 바로 제사의 현장을 말하고, 제사는 오늘날 예배를 의미합니다.  예
배가 바로 은혜의 보좌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성전에서는 많은 제사가 있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등 5대 제사를 비롯
하여 감사제, 거제, 낙헌제, 소제, 요제, 전제 등 많은 제사가 있었습니다.  매일 제사가 드려졌고, 절기마
다 제사가 있었고, 특별한 때는 더욱 신실하게 제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제사는 단순한 제사가 아니
었습니다.  모든 제사마다 반드시 제물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제물을 잡아 각을 뜨고, 
내장은 태워 향기로 올리고, 제물에서 뽑은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모든 제사는 다 이렇게 행하였습니다.  어느 제사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정성과 열정을 다해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제물과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무엇보다도  제사를 즐겨했고, 제사가 있는 날은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마음과 육체의 준비를 하면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드려지는 모든 제사를 통해 큰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며 헌신을 다짐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구약시대의 제사처럼 예배를 드리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런 제사는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어린양의 피로 단번에 드린 십자가의 제사로 더 이상 매번 제물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
다.  하지만 제사의 귀중한 형태와 거기에 담겨있는 의미는 지금도 보존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그처럼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처럼 우리도 예배를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들이 제사를 준비하며 정성을 다한 것처럼 우리도 예배를 위한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들이 제사를 드릴 때마다 모든 것의 우선순위를 제사에 삼고 제사가 있는 날 성전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처럼 우리도 모든 예배에 기쁨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국문학을 전공하여 목사가 되신 김석환 목사라는 분이 쓴 ‘교회용어 바로쓰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기
독교연합신문에 연재가 된 것을 책으로 묶은 것입니다.  거기에 보면 그 목사님은 한국교회가 오랫동안 
관행으로 쓰고 있는 말 중에 ‘기도회’라는 말을 모두 ‘예배’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용어에 
큰 비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배의 중요성을 심어주는 측면에서는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교인이 
공동적인 신앙행위를 위해 교회당에 모이는 것은 동기와 목적이 언제나 규모의 다소를 막론하고 예배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모임에 기도와 찬송과 말씀이 있는 곳이면 예배가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교회에서 모여 드리는 모든 것이 다 예배입니다.  주일예배, 찬양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 금요예배, 구역예배, 모두가 예배입니다.  구약 성도들이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하나님께 나아간 것을 감안하면 그 어느 예배도 소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는 점점 예배의 모임에 빠지기 시작했고, 예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임
에는 더욱 소홀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새해에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기를 다짐한다면 
교회의 모든 공예배에 기쁨과 감사로 참여해야 합니다.  주일예배는 물론이고, 주중에 모이는 모든 예배
도 참여해야 합니다.  

대략 세어보니까 교회에서 모이는 공적예배가 10번이 됩니다.  나는 과연 몇 번이나 참여합니까?  100점을 만점으로 계산한다면 나는 몇 점 신자입니까?  낙제는 면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한국교회의 가장 큰 힘이 모임에 있었고, 예배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예배는 은혜의 보좌이고, 은혜가 임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모든 예배로 나가야 합니다.  새해 온 성도들이 이처럼 예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말씀입니다. 

은혜의 보좌는 성전이고, 제사이면서 무엇보다도 말씀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 제사장은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제물을 받으시고, 말씀하십니다.  때론 용서를 선포하시고, 때론 사랑을 전하고, 때론 하나님의 뜻을 전하십니다.  그 말씀이 임하는 곳에 바로 은혜의 보좌였습니다.  보좌는 성전의 중앙을 말하고, 보좌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계십니다.  그래서 보좌 하면 하나님을 생각하게되고, 당연히 그의 말씀이 떠오르게 됩니다.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을 지성소라고 불렀습니다.  

지성소는 성소 중에 성소입니다.  성전중의 성전입니다.  성전의 가장 중심이 되는 하나님이 계신 보좌입니다.  여기 은혜의 보좌는 바로 지성소를 가리킵니다.  바로 거기에서 하나님은 제사장을 통해 그의 뜻을 전하십니다.  

그런데 지성소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곳은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갔습니다.  당시 제사장
은 에봇이라는 옷을 입고, 우림과 둠빔의 흉패를 붙이고, 옷 끝에 금방울을 달고 들어갔습니다.  대제사
장이 그곳에 들어갈 때 백성들은 숨을 죽이며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제사를 받으시고 죄를 용서하시
며 말씀이 임하면 안에서 방울소리가 들렸습니다.  방울소리가 들리면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 방울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제사장은 그곳에서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제사장이 그곳에 들어갈 수가 없기에 사람들은 갈고리로 제사장을 끌어냈습니다.  정말 무서운 곳이고, 엄한 곳이고, 함부로 가까이 할 수 없는 거룩한 현장입니다.  오늘날 그렇게 한다면 살아남을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이젠 거룩한 지성소에 누구라도 들어갈 수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상징하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입니다.  

그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친 휘장입니다.  그 휘장이 찢어지면서 이제 우리는 지성소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누구라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강조합니다.  이처럼 여기 은혜의 보좌는 곧 말씀을 의미합니다.  은혜의 지성소로 담대히, 가까이 가서 말씀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해 동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자는 말은 곧 말씀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말씀이 임한 곳으로 이제 담대히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말씀의 은혜로 살라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에 보면 성경을 기록한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바로 이것이 말씀이 은혜가 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교훈하고, 때론 책망합니다.  말씀을 우리를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합니다.  말씀은 하나
님의 사람으로 우리를 온전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하게 합니다.  말씀은 이렇게 우리 삶에 역사합니
다.  그러니 은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말씀을 잘 받고, 말씀대로 살면 분명 우리에게 큰 은혜가 임하
여 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모두 말씀의 지성소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받은 대로 살기를 바랍니다.  분명 말씀은 우
리 속에 역사하여 때론 힘을 주고, 교훈하고, 때론 도전하면서 이끌어 가실 줄로 믿습니다.

지난 송구영신예배에서 우리는 한 해 동안 나에게 주신 소중한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이 내 삶
에 어떻게 역사하는지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며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한 해 동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담대히, 날마다 나아갑니다.  교회로, 예배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여기에서 큰 은혜를 받으시고 새해 우리 생애 최고의 해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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