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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성령충만한 교회 (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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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충만한 교회 (행 2:1~4)

   
우리 교회는 2010년 교회의 표어를 “성령 충만한 교회”로 정하였습니다.  기도하실 때 마다 꼭 성령 충만한 교회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개인 기도하실 때에도 이 제목을 놓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지금까지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성령의 임재를 간구해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이유는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는 사회적 분위기가 점점 더 고조되고 있으며,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구원하는데 힘을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세상을 구원하고 사회를 선도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사랑과 존경과 신뢰를 받아왔는데, 이제는 그 어떤 영향력도 없고, 지도력을 잃어 우리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만심에 가득 차게 되었고, 세계와 사회의 변화에 대하여 무감각하여 무사안일주의에 빠지고 세상의 욕심으로 영성은 땅에 떨어지고 불신사회나 다를 것이 없는 영적 빈사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개신교회는 제2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는 변해야 하고, 고쳐야 하고, 새로워져야 하는데, 모든 교회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서 본질에 충실하며, 사람의 힘이 아닌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와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위로부터 주시는 능력을 받아 하나님과 대면하여 기도하고 우리 자신을 바르게 세우고 이 사회를 향하여 예수 믿어 구원받으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는 제가 목회하는 중에, 가장 부족한 부분이요, 힘써 노력하고 채워야 할 분야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목회자로서 전인적인 목회, 통전적인 사역이 되어야 하는데, 성령 충만이 부족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섰을 때에, 성령의 임재와 성령의 충만을 많이 강조하지 않았느냐고 책망하실 것 같았습니다.   사회봉사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대한 것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수정하게 된 표어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교회라고 정하게 되었습니다.  일 년동안 성령 충만을 강조하고, 성령에 대한 성경구절도 찾아보고, 성령충만을 받은 사람들을 찾아보고, 우리도 성령충만을 받아야겠습니다. 

우리 개신교회가 지키는 성령강림절은 유대인들이 기키는 오순절입니다.  그래서 개신교회는 성령강림절과 오순절을 혼용해서 사용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오순절은 성령강림절이요, 성령강림은 오순절에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오순절을 ‘하미쉼 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최대의 명절인 유월절의 안식일 다음날부터 계산하여 일곱 번의 안식일이 되는 날이기에 칠칠절(하그 샤부오트)이라고 불렀습니다.  보리와 밀을 거둬들이는 계절이라고 하여 이날을 맥추절(하그 하카치르)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에서는 이 오순절을 ‘펜테코스테스’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주님이 공생애 3년 시절에도 주님이 아버지께로 올라가시면 다른 보혜사를 보내어주신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보혜사라는 말은 예수님도 보혜사가 되신다는 것을 전제로 하시면서 다른 보혜사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일서2:1에는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대언자라고 하시면서 난하 주에 보면 “또는 보혜사”라고 하셨습니다.  대언자라고 번역하였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보혜사라고 번역하였기 때문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파라클레토스’라고 하여 “곁으로 세움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돕는 자, 헬퍼(Helper) 옹호자, 방어자, 변호자, 대변인, 대언자, 위로자, 인도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곁에 계시어 우리에게 조언해주시고, 상담에 응해주시고, 위로해주시고, 대변해주시고, 기도해주시는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보혜사이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위하여 도고의 기도, 중보의 기도를 드려주십니다.  롬8:26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요14:17에서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영이시며, 우리 속에 계시는데, 우리 몸을 성전 삼으시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시고 있습니다. 

요16:13에는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성령이십니다.  영원한 진리이신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시고, 진리를 알게 하시고, 진리를 소유하게 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에게 구하여 다른 보혜사를 보내어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것은 우리들에게 매우 유익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요16:7에서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되신다고 하시면서, 주님이 만일 떠나가시지 않으면 보혜사가 우리에게 오실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떠나가시므로 보혜사를 보내어주시고, 보혜사가 우리에게 오시게 되었습니다.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이 팔레스틴에서 나셨는데, 지금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고 축지법을 쓰시고 돌아다니신다고 하면 혼란스러워 차마 볼 수 없습니다.  미국에 나타나셨다가 한국에 동시에 나타나시고, 하실 수는 있지만, 육신을 입고 오신 주님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구하시고, 아버지가 보내어주시는 성령님은 영이신 하나님이시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금도 전 세계 모든 성도들 속에 임재하시고,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자신이 떠나가시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제3일에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약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도들과 함께 모이셨을 때에, 사도들에게 분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행1:4-5에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명령의 말씀은 누가복음24장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눅24:49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기에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진다고 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에 모였는데, 주의 11제자와 주의 모친과 형제들과 성도들이 약 120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요, 교회의 대표사도이신 베드로가 제안하여 예수님을 팔고 배신한 가룟유다 대신에 맛디아라는 사람을 12사도의 일인으로 보선하였습니다.  

120명의 성도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 때에 성령이 강림하셨고, 각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성령님을 말하게 되니, 성령과 관련하여 몇 가지 인상을 받게 됩니다.  열광적인 부흥사나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투시하는 그런 희한한 능력을 연상하게 됩니다.    성령은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고, 기적을 행하고 병을 고치는 신비스러운 능력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사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령 받은 사람들이요, 성령이 임재하시고 내주하시는 사람입니다.    성령은 목회자나 부흥사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사람을 흥분시키거나 자극하는 신비로운 물질이 아니고, 어떤 능력이 아닙니다.   성령을 어떤 신비한 기적이나 행하고, 능력을 주는 어떤 감화력으로 생각할 때에, 영적으로 혼미한 상태에 빠지고, 정신적으로 병들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창조의 영이시며, 하나님의 영이신 동시에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서 성령입니다.  

오순절이 되는 날 아침까지 저희 성도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성도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말씀하신 명령, 곧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한 곳에 모여 기도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성령이 아니 계신 때는 없었지만, 그리고 간간히 특별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임하신 적은 있었지만, 이제부터 교회의 역사와 더불어,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영이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실 때에,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심령 속에 강림하시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의 몸을 성전 삼으시고 , 우리들 심령에 임재하셨습니다. 

그 때에 홀연히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났는데,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었습니다.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은 그런 불길이 나타났는데,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성령이 강림하시면서 보여주신 현상이지, 바람 같은 소리가 성령도 아니요, 불의 혀 같은 것들이 성령도 아닙니다.  성령님이 강림하실 때에 그런 현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들은 성령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것들입니다.   바람 같은 성령님의 역사가 온 성도들에게 임하고 있었고, 죄악을 불사르고, 심령에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주시는 불같은 성령이 각 사람 위에 임하고 있었습니다.  

120명의 성도들은 모두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것은 성령님의 온전한 지배하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우리 예수님과 함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의 역사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후에 주님이 보내어주시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할 때에 성령의 오심과 성령의 역사로 주님으로 영접하게 됩니다.  성령의 선물, 성령의 세례는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고, 하나님이 자녀가 되고,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의 선물이나 성령의 세례라는 것이 구원받은 후에 뒤따라오고, 다시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할 때에 시초적인 축복이며, 보편적인 축복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임재와 내주하심 곧 성령 세례에서 이제부터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임재와 내주 즉 성령 세례는 단회적인 것이지만, 성령 충만은 지속적이어야 하며, 갈수록 더욱 더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신 후에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성령의 임하심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게 하셨고, 계속하여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있습니다.  이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충만은 반복되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계속해서 유지되어야 합니다.  

충만이란 우리의 죄로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임재하신 성령님을 사모하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면서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해야만 성령충만을 주십니다.  성령으로 다시금 채워주시고,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님들은 칭찬 듣는 사람이요, 지혜가 충만하였고, 믿음이 충만할 뿐 아니라,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사도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안디옥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성령충만이란 어떤 특별한 사역이나 직책을 위해서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충만을 입게 될 사람이었습니다.  다메섹의 아나니아가 사울이란 청년을 안수할 때에 사울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사람이었습니다.  

성령 충만은 일생동안 계속되는 직분을 위하여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해야 할 일들, 어떤 위기 상황에 준비시키기 위하여 주어졌습니다.  사가랴는 예언하기 전에 성령이 충만히 임하셨습니다.   
베드로도 산헤드린 국회 앞에서 말씀을 증언할 때에, 성령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순교자 스데반이 순교하기 직전에 성령으로 충만하였습니다.    바울은 박수 엘루마를 꾸짖기 전에 성령으로 충만하여 외쳤습니다.  

엡5:18에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은 계속적으로 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순절에 성령 충만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에도 여러 차례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 받은 이들, 우리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일은 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구원받은 이들은 성령의 성전이 되었고, 성령이 임재하는 사람, 성령이 내주하시는 사람이 되었어도 사도바울은 그런 사람들 중에도 신령하지 않은 사람, 세상적으로 치우치는 사람,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령의 성전된 사람이 되었어도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 성령님을 가두어놓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신령한 영의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고, 여전히 육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우리들 중에는 구원받은 확신이 있고, 성령 세례받은 사람이요,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지만 고사상태에 빠진 이들이 있습니다.    성령을 모신 것으로 만족하고, 성령님이 강력하게 나를 통하여 역사하실 수 없도록 성령님을 감금하고, 가두어놓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충만을 누릴 것입니까?  우리들이 계속적으로 성령 충만하려면 예수님이 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요7:37-39에는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고 하셨습니다.  

라일 주교는 “성경에는 금박으로 인쇄해야 할 본문들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앞에 이 본문이야말로 그런 본문 중의 하나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목마르거든 오라, 마시라, 믿어라고 하십니다.  육신이 목마르면 물을 찾아야 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목마르면 주님에게 나아와 마시고, 주님을 믿을 때에 우리가 마시는 물은 흐르는 물이 될 것입니다.  곧 성령 충만을 받게 됩니다.

윌리엄 템플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성령을 소유하면서 (또는 성령이 내주하시는 자도 그 누구도) 그 성령을 자신에게만 제한시킬 수 없다.  성령은 그 계신 곳에서 흘러나가신다. 만일 흘러나가지 않는다면 그 분이 거기 계시지 않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 앞에 나아와 사모하고 주님을 마시고, 주님을 믿으면 우리 안에 생수의 강이 흘러내릴 것입니다.  

누가복음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행2:38에서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이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임재하시고 내주하시고 있습니다.  그 성령님이 우리를 통하여 온전히 역사하시고 능력 발휘할 수 있도록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님에게 순종하고, 성령의 사람으로 온전히 헌신할 수 있을 때에, 성령은 충만하게 역사하십니다. 

금년 한 해동안 열심 기도하시고, 성령님에게 온전히 사로잡혀 사용될 수 있는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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