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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라 (엡 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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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라

(엡4:17-24)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 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1.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쪽에는 ‘알카트라즈’(Alcatraz island)라고 하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이 섬은 1907년부터는?전쟁 포로들의 감옥으로, 1934년에서 29년 동안은 알카포네 등의 마피아와 흉악범들을 감금했던 탈출이 절대 불가능한 악명 높은 연방 교도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감옥은 해변가에서 1.5마일(2.4Km)정도 떨어져 있는데 조류가 매우 빠르고 수온이 낮아 공식적으로 단 한 명도 탈출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고 합니다. 

단지 4명의 기결수가 사라졌는데... 오늘날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끔 죄수들이 육지가 가까워 쉽게 탈출할 수 있다고 판단해 바다에 뛰어들기도 하지만 섬을 굽이도는 급류 때문에 단 한명도 탈출에 성공하지 못해서 그 교도소 문에는 이런 팻말이 있다고 합니다. “당신이 이 섬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도망가는 길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변화되는 길뿐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은 ‘변화’되는 것입니다. 인간됨의 성숙함이나 영적인 성숙은 변화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저의 30년 목회 생활을 통해 저 자신과 성도들에게서 가장 힘들고 보기 어려웠던 열매는 변화된 사람들이 맺게 되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5:22-24)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변화’에 대해 깨우치는 “나의 기도”란 제목의 짧은 글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나는 혁명가였고,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기도는 이것이 모두였다. “주여! 내게 세상을 개혁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중년에 이르러 한 사람의 영혼도 고쳐놓지 못한 채 내 반생이 흘렀음을 깨닫자 내 기도는 이렇게 달라졌다. “주여! 나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을 변화시킬 은총을 주소서. 그저 가족과 친지들만 개종시켜도 만족하겠나이다.” 이제 노인이 되어 죽을 날이 가까워 오늘 내일하고 보니 이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알게 되었다. 이제 나의 유일한 기도는 이것이다. “주여! 나 자신을 고칠 은총을 주소서!”> 

정작 중요한 것은 사회변혁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변화도 아니고, 내 자신의 변화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변화로부터 인격적, 영적인 성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와 성숙으로 세상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부름받았지만 그가 부름받은 한 순간에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겁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졌지만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자주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되었지만 그 땅에 기근이 심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자기 아내 사라를 자신의 누이 동생이라고 속였습니다. 애굽의 권력자들이 자기를 죽이고 아리따운 아내를 빼앗아 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창12:10-20) 

이러한 거짓말은 20여년 후에도 반복됩니다. 그가 90세가 되었을 때,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두려워 자기 아내를 누이 동생이라고 똑같은 거짓말을 했습니다.(창20:1-17) 여전히 변화되지 못한 아브라함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성숙되어가지 못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 역시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전,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혈기가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모세는 성장해서 자신이 히브리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애굽 사람이 자기 동족을 학대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해 애굽 사람을 쳐죽여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양을 치는 목동으로 40년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한 순간의 혈기를 다스리지 못해 애굽 제국의 왕자가 보잘 것 없는 목동으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훗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는 지도자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갈 때, 백성들에 이어 자기 가족들까지 가세하여 모세를 비방하고 불평하며 모세의 지도력에 시비걸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민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하나님께서 이 정도로 모세가 온유하다고 칭찬하셨지만 20여년이 지난 B.C. 1430년경, 광야 40년을 마쳐갈 즈음에 가나안 땅 진입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다시 마실 물이 없자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 불평을 퍼부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석에 명하여 물을 내어 마실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반석에 명하여 ‘물을 내라’ 하지 아니하고 홧김에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행위가 못마땅하지만 반석에서 물을 내어 모든 백성과 짐승들이 마실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일로 치명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민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나를 거룩한 자로 높이지 않았으므로 너희는 그들을 인도하여 내가 준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한 순간의 분노가 꿈에도 그리던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모세의 치명적인 약점은 혈기 문제였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성군(聖君)으로 불리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손꼽히는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 대해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실 만큼 다윗을 높이셨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성적(性的)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여자에 약했습니다. 사울 왕의 시기로 지명수배를 받아 도망자의 신세로 쫓겨다니는 와중에서도 ‘아내들’을 많이 두었습니다. 나중에 권력을 장악하고 나라가 태평성세를 누리게 되었을 때, 왕궁 옥상을 거닐다 건너편으로 한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윗 왕은 목욕하는 여인의 외모에 반해 그 여인이 충신 우리의 아내인 것을 알고도 불러 간음죄를 범합니다. 이 여인 역시 자기 아내로 삼고자 충신을 함정에 빠뜨려 죽이도록 하는 청부살인까지 자행합니다. 이 일로 다윗 왕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가장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왕궁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게 됩니다.

(삼하12:7-12)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이처럼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 믿음의 선진들도 저마다 단점과 약점들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시간과 세월이 흐른다고 자동적으로 사람이 변화되지는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다윗 모두 2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거짓말하고, 혈기부리고, 여자에 약한 모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고양이가 미남 청년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자신을 여자로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고양이의 딱한 사정을 가엾이 여긴 여신은 고양이를 아름다운 처녀로 만들어 주었고, 청년은 첫눈에 그녀에게 마음이 사로 잡혔습니다. 이들은 결혼을 하였습니다. 첫날밤에 <아프로디테>신은 그 신방에 쥐 한 마리를 넣었습니다. 그러자 처녀가 된 고양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를 까맣게 잊은 채 침대에서 뛰어내려 쥐를 잡아 입에 피를 묻히며 잡아먹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신은 처녀를 본래 고양이 모습으로 되돌려 버렸다는 신화가 있습니다. 

이처럼 본질이 변하지 않으면 변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치명적 약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뿌리가 깊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은 너무도 뿌리 깊어서 인간은 사실상 스스로 변화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2. 그래서 오늘 본문 22-24절에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했습니다. 인간의 옛 본성을 버리고 마음과 정신, 영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형상대로 재 창조된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간단히 말해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인간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죄의 본성이 얼마나 뿌리깊이 박혀 곤고한 삶을 살았었던가를 이렇게 토로했었습니다.

(롬7:19-24)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이러했던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이 변화된 것을 감사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는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는 은혜가 항상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잠언 21:1에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고 했습니다. 농부가 봇물을 필요에 따라 조절하듯이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원하시는대로 다루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왕의 마음을 ‘보의 물’과 같이 다루시는 목적은 인생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을 돌보시고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할 지도자로 모세를 세우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출7:2-5)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보내게 할지니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하리라마는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여 많은 이적을 행하시고 그로 인해 애굽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하신대로 9가지 이적을 보여주었지만 바로 왕은 마음이 강퍅하게 되어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거절했습니다. 바로 왕은 결국 10번째 재앙인 장자 죽음의 재앙이 내리기까지 그 마음이 강퍅했습니다. 바로 왕은 자신의 장자가 죽음을 당하는 비통스러운 재앙을 당하고서야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주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냥 빈손으로 해방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애굽에서 나갈 때, 애굽 사람들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 말씀대로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자 구하는 대로 몽땅 내주었습니다.

(출11: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보낼지라. 그가 너희를 보낼 때에는 여기서 정녕 다 쫓아내리니 백성에게 말하여 남녀로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국에서 바로의 신하와 백성에게 심히 크게 뵈었더라.

(출12:35-36)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그러나 바로 왕은 끝내 그 마음의 강퍅함을 버리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다 결국 애굽의 최정예 군대가 홍해 바다에 몰사당하는 패망을 당했습니다.

(출14:15-1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을 알게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게 만들고,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구원과 복을 주시기 위해 ‘왕의 마음을 봇물처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느부갓네살 왕에게 제국의 왕이 되었다고 교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라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교만하면 “(단4:16) 그 마음이 변하여 인생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부갓네살 왕은 1년 후 이렇게 말하며 교만을 떨었습니다. 

“(단4:29-30)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이 말이 떨어지자 곧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단4:31-33)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니 그 동시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았었느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교만했을 때 인생의 마음이 짐승의 마음으로 변하자 사람사는 사회에서 쫓겨나 들에서 짐승처럼 풀을 뜯으며 짐승처럼 몸이 이슬에 젖고 그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아졌고 손톱은 새 발톱처럼 변해서 7년을 그렇게 지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짐승의 마음으로 짐승처럼 7년을 지낸 후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인간의 마음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단4:34 -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의 온전한 마음으로 돌아왔다는 뜻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생의 마음으로 온전히 돌아와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니엘 4:35-37(현대역)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하고 영원히 사시는 그분에게 이렇게 찬양하였다. ‘그는 영원히 다스리시며 그의 나라는 대대로 지속될 것이다.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시며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나 땅에 있는 사람에게 자기 뜻대로 행하시니 그의 뜻을 거역하거나 그가 행하시는 일을 물어 볼 자가 아무도 없구나.’ 내가 이성을 되찾게 되었을 때 내 명예와 위엄과 내 나라의 영광이 나에게 되돌아왔으며 내 신하들과 귀족들이 나를 영접하고 나는 다시 왕위에 앉아 이전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래서 나 느부갓네살은 지금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높이고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다. 

그는 진실하고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분이시다.돼지가 새끼를 낳았는데 농부가 너무 예뻐서 한 마리를 집안으로 들여왔다고 합니다. 그는 돼지를 깨끗이 씻기고 발굽을 닦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돼지에게 향수를,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샤넬 No.5를 뿌려주고 목에 리본까지 달아 주었다고 합니다. 농부는 돼지를 안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돼지는 제법 멋있어 보였습니다. 분명히 붙임성 있는 애완동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이 열리자 그 돼지는 안방에서 뛰쳐나가 집 앞뜰에 있는 진흙 웅덩이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고 합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돼지의 본성 자체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돼지같은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짐승의 마음이 온전한 인생의 마음으로 변하여 느부갓네살 왕처럼 하나님이 인간의 생사화복과 나라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심을 깨닫고 겸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부정하는 한 빨래비누 공장 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믿음 좋은 그의 친구를 만나면 늘 “자네는 그렇게도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데, 왜 세상은 저렇게 점점 더 죄악이 늘어나고 부조리가 날로 심하여 가는지 설명 좀 하게.”라고 말하며 조롱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성도는 역으로 비누 공장 사장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자네는 그렇게도 열심히 빨래비누를 많이 만드는데 왜 거리에는 아직도 저렇게 더러운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그거야 저들이 내가 만든 빨래비누를 사다가 쓰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나?”라고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거야! 복음은 분명히 복음이지만 사람들이 믿고 받아들여 순종하지 않으니 어찌 세상이 밝아지겠나. 내가 그렇게 전하여도 당장 자네마저도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으니까 그 모양이라네. 그러니 어떻게 이 세상에 변화가 있겠는가?”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혹 용광로 속에서 쇠가 녹지 않는 길은 있어도 성령의 불길로 녹지 않을 죄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변하게 됩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맹물을 극상품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 맹물이 삶의 기쁨의 상징인 포도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변화됩니다. 겁이 많아 거짓말을 일삼았던 아브라함이 믿음의 정상에 우뚝 서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전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거짓말로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했던 아비멜렉에게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20:3) 변화되지 못한 아브라함의 거짓말로 자초한 상황가운데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창17:15-16)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고 언약하신 축복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사라를 보호하시는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창20: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그를 “선지자”로 불러주시므로 변화되지 못한 아브라함이었지만 여전히 선지자로 인정하시는 은혜를 베푸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변화되지 못한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를 은혜로 붙들어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비록 여자에 약점을 가졌지만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는 은혜로 그는 점점 강성해지는 가문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약점과 단점, 실수와 허물, 그리고 어떠한 죄라도 십자가에서 담당하시고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로 붙들어주시는 하나님의 끝없는 은혜가 성도 여러분에게 항상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해방되어 구원받았지만 그 날부터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원망 불평을 일삼으며 하나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렘11:7-10)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간절히 경계하며 부지런히 경계하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청종하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각각 그 악한 마음의 강퍅한대로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에게 행하라 명하였어도 그들이 행치 아니한 이 언약의 모든 말로 그들에게 응하게 하였느니라.

(렘 22: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광야 40년 동안 날마다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만나를 일용할 양식으로 받았음에도, 그리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수많은 기적과 능력을 체험했음에도 범사에 감사할 줄 모르고 “습관적으로” 원망불평하며 끝까지 변화되지 못했던 그들은 결국 광야에서 다 죽고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2009년도 마지막 주일입니다. 곧 새해가 시작됩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시어”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으시고 다윗처럼 점점 강성해지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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